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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8

       

       

       

       

       붉은 실.

         

       여주인공 ‘구월’과 괴물이라고 불리는 3왕자 ‘이환’의 애틋한 로맨스를 그린 사극 드라마.

         

       스튜디오엔믹스의 전속 작가인 강예린이 칼을 갈며 만든 신작으로, 내년 1분기 최고의 기대작이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를 받고 있었다.

         

       물론 급히 만들고자 하면 올해 4분기에도 충분히 방영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다양한 변수를 생각해 제작 기간을 넉넉하게 늘렸다.

         

       사실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스튜디오엔믹스의 입장에서 딱히 급할 이유가 없던 탓이 컸지만.

         

       어쨌든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캐스팅 단계를 마무리해야 하는 시점이 찾아왔다.

         

       거의 대부분의 주·조연 인물들의 캐스팅 섭외를 완료하긴 했고, 사실상 이제 딱 두 자리만 남겨두고 있었다.

         

       여주인공 ‘구월’과 그녀의 어린 시절을 연기해줄 아역 배우.

         

       어찌 보면 ‘붉은 실’이라는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두 사람이 아직까지도 공석이었다.

         

       중요한 일부터 먼저 처리하고 싶어 하는 강예린의 성격상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은 처음부터 확정하고, 그다음 스텝을 밟고 싶었을 것이다.

         

       실제로 강예린은 사전에 ‘구월’ 역으로 점찍어둔 여배우에게 가장 먼저 접선을 한 적이 있다.

         

       거기서 그렇다 할 확답이 곧바로 안 튀어나온 것이 문제였지만.

         

       물론 젊은 나이에 최고의 여배우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던 그녀, 정확하게는 설소영을 놓치기는 싫었기에 유예의 기간을 넉넉하게 주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며칠 뒤, 다행히 설소영에게서 캐스팅과 관련된 긍정적인 소식을 듣긴 했다.

         

       듣긴 했지만……

         

         

       ─선배. 구월 역의 아역 있잖아요. 혹시 제가 추천해도 될까요?

       ─네, 네가 추천을? 어떤 아이인데?

       ─조만간 소개해 드릴게요.

         

         

       아역 배우 추천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대답을 듣게 되었다.

         

       이건 강예린에게도 나름 괜찮은 소식이었다. 앞서 말했다시피 아직 구월 역의 아역 배우를 정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이때까지만 해도 구월 역의 아역 배우에 관한 오디션을 보고 있었다.

         

       아역 배우의 자원은 매우 한정되어 있고,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아이들 역시 강예린의 마음에 쏙 드는 아이가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오디션 방식을 채택하게 된 것.

         

       그러니 일단 강예린은 차선책으로 몇몇 아이들을 생각해두고, 캐스팅 단계의 마무리 시점까지 최대한 인재를 찾을 생각이었다.

         

       근데 이 타이밍에 설소영으로부터 캐스팅에 대한 긍정적인 대답과 아역 배우를 직접 추천하고 싶다는 말까지 듣게 된 것이다.

         

       뭔가 갑자기 일이 너무 술술 풀리기 시작해서 되려 강예린은 조금 불안해졌다. 그리고 역시나 그 불길한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강예린의 옆에서 함께 걷고 있던 조용석이 한숨을 내쉬었다.

         

       10년 전만 해도 막내 PD의 직함으로 나영진과 서은우의 뒤만 줄줄 따라다니던 조용석, 그는 어느덧 강예린의 신작의 제작 총괄 자리를 맡을 정도로 연차와 경험이 쌓인 상태였다.

         

       그리고 그런 그가 날벼락이라고 표현할 정도의 상황은 그리 흔치 않았다.

         

       강예린과 조영석은 급히 스튜디오엔믹스 본사 4층에 위치한 회의실로 향했다.

         

       드라마 ‘붉은 실’의 캐스팅과 관련해 어제 막 설소영으로부터 연락을 받았고, 곧바로 오늘 날짜로 미팅을 잡았다.

         

       근데 여기서 문제는 설소영이 본사 정문을 통과한 순간, 방문만으로 스튜디오엔믹스를 긴장하게 만드는 사람까지 동행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회의실에 들어선 강예린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쓴 미소를 짓고 있던 나영진 PD였다.

         

       원래 그는 이번 ‘붉은 실’ 제작을 조용석에게 모두 맡기고,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얘기가 끝난 상태였다.

         

       다만, 스튜디오엔믹스 내에서 927 작가를 보좌하는 것이 국장 다음으로 권한을 가지고 있는 나영진의 또 다른 역할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이 자리를 함께하고 있는 것이었다.

         

       바꿔말하자면 오늘 설소영과 함께 본사를 방문한 사람이 바로 927 작가… 정확하게는 서은우라는 뜻이 되기도 한다.

         

         

       “작중 배경을 가상 국가로 설정한 거. 역사 왜곡 논란을 최대한 피하기 위한 거겠죠? 역시 선배다운 선택이네요.”

         

         

       그리고 이러한 사실에 틀림이 없다는 듯, 회의실에 들어선 강예린의 귀에 능글맞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예린은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곧바로 시선을 돌렸고, 그곳에는 역시나 서은우가 앉아 있었다. 자신의 신작인 ‘붉은 실’의 대본을 제법 흥미로운 표정으로 읽으며 말이다.

         

         

       “칭찬 고마워. 근데 네가 왜 거기 앉아 있을까? 상황 설명이 조금 필요한 것 같은데.”

         

         

       정확하게는 네가 아니라 너희들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서은우의 무릎 위에 어떤 여자아이가 다소곳하게 앉아 있었으니까.

         

       설소영과 똑 닮은 것도 그렇고, 인터넷상에 떠돌아다니는 사진이 있어서 강예린은 그 여자아이가 서은우와 설소영의 딸인 것을 단번에 눈치채긴 했다.

         

       거기에다가 이 자리가 붉은 실의 캐스팅과 관련된 얘기를 나누기 위한 자리이기 때문에 서은우와 그의 딸이 왜 함께하고 있는지를 어렴풋이 짐작되었다.

         

         

       “사극의 경우 방송 초반 드라마를 책임지는 아역 배우의 활약이 매우 중요하죠. 그리고 거기서 뜨는 아역이 있다면, 간단하게 대박 드라마라고 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예린 선배, 구월 역의 아역 배우 아직 못 찾으셨죠?”

         

         

       ……역시나.

         

       서은우의 입에서 예상했던 주제가 튀어나왔다.

         

         

       “설마 네 딸이 그 적임자라고 말하고 싶은 거야?”

       “네. 소영이를 구월 역으로 캐스팅한다고 가정한다면, 저희 은빈이보다 위화감이 적은 아역 배우는 아마 없을 테니까요.”

         

         

       그건 맞는 말이다.

       

       좀 더 과장하자면 위화감이 적은 수준이 아니라 아예 없을지도 모른다.

         

       거기에다가 화제성은 자연스레 따라오겠지.

       

       모녀가 한 드라마에 같이 출연하고, 여주인공의 어린 시절과 성인 시절을 연기한다는 것 자체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니까.

         

       즉, 서은우의 말을 따라 저 모녀를 함께 캐스팅한다면 실보다는 득이 크다는 소리였다.

         

       구미가 당기는 제안에 강예린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던 조용석과 나영진 역시 자신과 같은 생각일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여기서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한 가지 있었다.

         

       캐스팅 단계에서 아역 배우를 찾을 때, 중점적으로 보는 것이 크게 3가지 있다.

         

       외모, 이미지, 연기력.

         

       여기서 외모는 잘생기거나 예쁜 쪽이 아니라, 성인 배우와 얼마나 닮았느냐가 중요하다. 그러나 똑 닮은 배우를 찾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보통은 ‘이미지’가 비슷한 배우를 찾는다.

         

       그런 의미에서 서은빈의 외모와 이미지 쪽은 두말할 것도 없이 합격이다.

         

       문제는 바로 연기력 쪽.

         

       조금 당연한 소리지만 배우에게 있어서 연기력은 매우 중요한 소리다.

         

       이것은 당연히 아역 배우 쪽에게도 통용되는 소리였고, 아무리 외모와 이미지가 비슷하지 않더라도 연기만 잘한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물론 여기까지가 정론이고, 강예린은 슬슬 걱정보다는 기대감이 앞서기 시작했다.

         

       이 기대감의 근거는 천하의 서은우가 애지중지하는 자기 딸을 아역 배우로 자신 있게 앞세웠다는 점이다.

         

       생각해보면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아이들을 미디어에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왔다.

         

       아마 성장기 아이들의 정서적 건강을 걱정해서겠지.

         

       그렇다면 그 걱정을 감내하고도 그가 갑자기 스탠스를 바꾼 원인은 도대체 무엇일까?

         

       강예린은 이에 대해 두 가지 가정을 생각해냈다.

         

       하나는 자신의 딸인 서은빈 본인이 직접 연기를 하고 싶은 의사를 적극적으로 내비친 것.

         

       또 하나는 양쪽 부모의 재능을 물려받은 서은빈의 연기 재능이 서은우의 상상보다 훨씬 뛰어났던 것 정도.

         

       뭐… 어쩌면 둘 다 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건, 녀석이 보이고 있는 얼굴이겠지.’

         

         

       서은우는 딸의 얘기가 나오는 순간부터 어째서인지 계속 자신감 넘치는 얼굴을 보이고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조금 재수 없는 놈이긴 하지만 저 녀석이 일을 대충 하는 성격도 절대 아니고, 그렇다고 소중한 딸의 인생을 결정지을지도 모르는 중요한 일을 그리 가볍게 판단할 정도로 어리석지 않다.

         

         

       “좋아. 네 딸을 구월 역의 아역 배역으로 캐스팅할게. 조용석 PD님 상관없죠?”

       “예. 각본가가 원하는데 이견이 있겠습니까.”

         

         

       강예린의 시원한 결정에 서은우는 조금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

         

       이에 강예린은 마찬가지로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서은우는 그 의문에 답하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선배라면 분명 은빈이의 연기 테스트 정도는 볼 줄 알았는데 제법 의외네요.”

       “그러면 현장에서 처음 봤을 때의 감동이 없어지잖아? 애초에 너나 설소영이 그렇게까지 자신 있게 추천하는 아이인데 굳이 테스트를 볼 필요도 없겠지. 안 그래?”

       “뭐… 틀린 말은 아니네요.”

       “근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 왜 굳이 네 작품이 아니라 내 작품에 딸을 출연시키려는 거야?”

         

         

       서은우는 그 물음에 잠시 고민했다.

         

       그야 은빈이가 붉은 실의 대본을 열심히 연습한 게 조금 아까워서… 라고 대답하면 안 되겠지?

         

       참고로 소영이가 딸에게 구월 역의 아역 시절을 연습시켰던 건, 때마침 건네받았던 대본이 있기도 했고 어쩌면 곧바로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랬다고 들었다.

         

       물론 지금 시점에선 보면 꽤나 좋은 판단이기도 했고.

         

       어쨌거나 지금 상황에선 상대방이 충분히 납득할 만한 대답을 해줘야 하는데…….

         

         

       “어… 스토리가 나름 괜찮아서요.”

       “지, 진짜? 거짓말 아니지?”

         

         

       자신의 작품에 대한 갑작스러운 칭찬에 약간 흥분한 듯 말을 더듬는 강예린.

         

       음. 저 정도 반응이면 충분히 납득한 게 아닐까 싶다.

         

       다만.

         

       이렇게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끝날 것 같았던 미팅에 찬물을 뿌리는 사람이 있었다.

         

       그건 바로 아까부터 서은우의 무릎 위에 얌전하게 앉아 있던 서은빈이었다.

         

       얌전하게 앉아는 있었지만, 무언가 불만인 듯한 표정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서은빈이 지금처럼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이유는 참으로 단순했다.

         

         

       “힝… 붉은 실 말고 아빠 작품에 출연하고 싶었는데.”

         

         

       자신의 엄마가 그래 왔던 것처럼 첫 작품은 아빠 작품에 출연하고 싶은 것.

         

       뭔가 억울한듯한 서은빈의 그 말이 결국 회의실 내부에 울렸고 회의실에는 잠시 침묵이 찾아왔다.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서은빈의 저 말을 극단적으로 해석하면 붉은 실보다는 서은우의 작품이 훨씬 뛰어나다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다.

         

       거기에다가 순수한 어린아이의 생각이다 보니 이 해석의 신빙성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강예린과 여전히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서은빈을 제외하고, 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강예린의 눈치를 살폈다.

         

       애써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지만, 이를 악물고 있는 모습을 보니……

         

         

       ‘긁혔네.’

       ‘긁혔군요.’

         

         

       여전히 927 작가를 목표로 하는 강예린이었기에 어느 정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그런 말이었다.

       

       

       

       

       

       

       


           


I Became a Genius Writer Obsessed With a Popular Actress

I Became a Genius Writer Obsessed With a Popular Actress

인기 여배우에게 집착 받는 천재작가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She likes me enough to win an award. Meet Seo Eun-Woo, a passionate K-Drama fan turned writer, whose life takes an unexpected twist when he awakens in a world of mediocre dramas. Frustrated and desperate for the perfect storyline, he stumbles upon a former actress who sparks his creative genius. Watch as their fateful encounter turns his life into a captivating drama of its 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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