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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9

    <169 – 어떻게 그런 심한 일이>

     

    “해결했어!”

     

    자랑스럽게 반지를 보여주었다.

    이것만으로는 잘 느껴지지 않는 걸까.

    싱이 인상을 쓰며 팅팅 부은 얼굴로 재촉했다.

     

    “보여줘라.”

    “여기서는 안 돼. 지켜보는 시선이 많아서 부끄러운걸…”

    “너희들. 오크노디를 빌려가겠다.”

     

    그렇게 알아두도록.

    일방적으로 통보를 해버리며 등을 돌리는 싱.

    당연히 그건 대화라고 할 수 없었다.

    가문에서 일평생 통보만을 받아온 싱다운 대화법.

    티토소가는 쭈구리가 되어서 눈치만 봤지만 누군가 예의없이 굴면 머리를 쪼개라는 용병의 대화법을 익힌 헤스티아는 도끼에 손부터 올렸다.

     

    “누구 멋대로? 오크노디를 데려가서 뭘 하려는 거야. 그 아이는 네가 아니어도 충분히 복잡하고 힘든 삶을 살고 있어. 허튼 짓은 꿈도 꾸지 마.”

    “누가 허튼 짓을 한다는 거냐.”

    “지켜보는 사람이 많아서 부끄럽다는 아이를 지켜보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데려가서 무슨 짓을 하려고 그러는 거지? 어서 그 더러운 속내를 실토해!”

     

    갑자기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되니까 당황스럽다.

     

    “모두들 나 때문에 싸우지 마!”

    “누가 너 때문에 싸운다는 거냐!”

    “아이를 건드는 네 더러운 성욕 때문이겠지!”

    “네년… 죽고 싶냐?”

    “헤스티아도 그만두세요. 왜 자꾸 나쁜 말로 싱을 도발해요. 안 그래도 어디서 벌에 쏘여서 얼굴도 팅팅 붓고 다니는 약한 사람을 괴롭히면 못 써요!”

    “안 쏘였다! 저주에 당한 거다!”

     

    화를 참다못한 싱이 기어코 검을 뽑아들었다.

    이에 질세라 헤스티아도 도끼를 들었다.

    한쪽은 살인검객.

    한쪽은 챕터보스.

    미친 검객과 광란의 도살자.

    붙는다면 곱게 끝날 싸움이 아니다.

    최소 팔 한짝, 최대 목 하나는 떨어져나가야 끝날지도 모를 굉장한 매치업!

    기어이 사단이 나도 크게 나겠다 싶던 위기는 생각지도 못하게 끝이 났다.

     

    스르륵

     

    반지에서 나온 유령, 가짜 린.

    그녀가 사람들의 눈에 보이도록 형체가 뚜렷해졌다.

    “유, 유령?!”

    “린. 돌아가 있어라.”

     

    여긴 위험하니까.

    그렇게 말하는 싱의 바짓가랑이를 린이 덥썩 붙잡아 안겼다.

    이런 싸움은 그만 두라는 것처럼.

    어정쩡한 자세로 도끼를 내린 헤스티아.

    다리에 매달린 가짜 여동생.

    적의를 계속 내세우기도 뭐해진 싱도 결국 마지못해 검집에 검을 도로 채워 넣었다.

     

    “오크노디. 설명 좀 해줄래? 저 유령은 또 뭔지.”

    “아, 저 그게 실은.”

    “그만.”

     

    싱이 낮은 목소리로 경고했다.

     

    “외인을 끌어들이지 마라. 나는 너는 믿어도 다른 이는 믿지 못한다.”

     

    방금 전에는 화가 난 개처럼 사납게 짖어대던 싱이지만 무섭기는 지금이 더 무섭다.

    원래 동물도 짖는 개보다 짖지 않고 조용히 노려보는 개가 더 무섭다.

    내게 칼을 뽑게 만들지 말라며 경고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 한 번 선을 넘기만 해봐라 바로 죽이겠다고 칼을 가는 기세다.

    살인멸구를 각오한 싱.

    이건 막을 수도 말릴 수도 없다.

     

    ‘으윽. 엄청 따끔따끔해.’

     

    느껴진다.

    싱의 <살인충동의 전조>가 아까보다 월등히 강한 크기로 경고를 하고 있음을.

    유령은 본디 몬스터.

    인간을 해하는 존재.

    나야 비밀을 지켜줬지만 다른 이들은 유령을 곁에 둘 수는 없다고 나를 위해서라도 퇴치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가짜 린이 퇴마를 당할지도 모른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당장 1챕터 챕터보스가 광란의 헤스티아가 아니라 광란의 싱이 될 거다.

     

    ‘몇 배는 더 무서운데?!’

     

    헤스티아는 광전사 스위치가 켜지지 않으면 그렇게까지 무섭지는 않지만 싱은 원래도 무섭다.

    안 그래도 무섭던 인간이 완전히 맛이 가서 미친 광전사마냥 날뛰기 시작한다면?

    차라리 그렇게 날뛰기라도 하면 제 풀에 지치거나 틈이라도 보이지, 차가운 이성으로 기계적인 대살육을 벌이기 시작하면?

     

    ‘아카데미가 개판이 나겠지!’

     

    학생 한 명 죽을 때부터 아카데미의 분위기는 피폐일변도로 악화되기 시작한다.

    외부의 간섭도 거세지고 틈이 생겼다며 악의 조직들도 활개 치기 시작한다.

    교수들이 학생들을 강하게 키워야겠다고 이상한 짓을 벌일 확률도 높아지고 교장이 아카데미 운영에 권태를 느낄 가능성도 열린다.

    최종적으로 교장이 아카데미를 확 떠나버리면.

    교장대리가 아카데미를 대신 운영하면서 그때까지 겪었던 것 이상의 강도 높은 외부간섭과 이를 막기 위해 달라진 교내분위기를 겪겠지.

     

    ‘이거 무조건 억까 트리거다!!’

     

    절대로 말하면 안 돼.

    가짜 린과 싱의 관계는 비밀로 해야 해.

    가짜 린이 사람을 해칠지도 모를 위험한 유령이라는 정체도 들키면 안 돼.

    그러려면 변명을 해야 한다.

    모두가 납득할 수 있을만한 변명을.

     

    “오크노디. 혹시… 그런 거야?”

    “네? 뭐가요?”

     

    근데 이건 몰랐네.

     

    “친구의 영혼을 데리고 다니는 거지?”

    “네??”

    “재단에서 친구의 몸을 식물의 몸에 집어넣은 꼴을 차마 볼 수 없어서 영혼이나마 고통에서 해방시켜주려고 뽑은 거 맞지?”

    “식물이요? 헉. 설마 제 방 들어왔어요?”

    “…얼마 전에. 밤에 뭘 주려고 갔다가 방문이 열린 걸 보고 알게 되었어.”

     

    헤스티아가 응애 만드라고라를 봤다는 사실을.

    심지어 그걸로 굉장한 착각을 했다는 사실도.

     

    “싱에게도 들킨 거지? 그래서 저 소아성애자가 비밀을 지키는 대가로 오크노디 네게 남이 보면 부끄러운 짓을 시키려고 하는 거지?”

     

    이게 참 뭐라고 해야 하나.

    헤스티아의 착각대로면 싱과 가짜 린의 관계는 완벽하게 속일 수 있기는 한데.

    그 대신에 싱의 취급이 너무 불쌍해지지 않아?

    본인도 같은 고민에 빠졌는지 흠칫하는 싱.

    마주친 눈에 짧고도 격렬한 고뇌가 스치더니 이내 체념의 빛을 띠었다.

     

    “그렇다.”

     

    진짜 여동생도 아닌 가짜 여동생.

    여동생 흉내를 내는 가짜 린을 지키려고 기꺼이 아동성애자의 오명마저 감수한 싱.

    한 남자의 눈물겨운 자기희생에 나는 그만 왈칵 눈물이 나올 뻔했다.

    싱, 너 이 자식…

    재수 없는 살인마 캐릭터라고 생각했지만 여동생 하나는 진짜 아끼는구나!

     

    “울지 마, 오크노디. 이제 괜찮아. 우리가 있으니까.”

    “오크노디 이거 내 손수건이야. 이걸로 눈물 닦아.”

    “고마어 티토소가… 흥!”

    “아, 아니잇… 코가 아니라 눈물을… 히잉.”

    “오크노디. 저 남자를 때려눕힐 수는 없겠지? 그러면 유령친구의 정체가 아카데미에 고발당해서 다른 학생들이나 교수님의 제보를 받고 토벌당할 테니까.”

    “그, 그렇죠…?”

     

    자기가 죽을 위기에 처했음을 그제야 알았는지 가짜 린이 화들짝 놀랐다.

    싱의 다리에 더욱 꼬옥 매달리는 모습에 헤스티아는 분기탱천해서 가히 악귀도 놀라 달아날 흉신악살과도 같은 표정이 되었다.

     

    “싱 너 이 자식. 오크노디의 친구가 매달리면서 애원하는데도 우정을 이용해서 네 성욕을 채우려고 들다니…! 용서할 수 없어. 너 같은 건 인간도 아니야!”

    “…닥쳐라. 내 심기를 거스르면 이 아이의 목숨은 없다. 내 성질을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너야말로 조심하는 게 좋아. 오크노디라면 네 뜻대로 놀아났겠지만 난 달라.”

     

    헤스티아의 팔뚝 위로 힘줄이 솟구쳤다.

     

    “오크노디를 생각해서라도 유령친구가 퇴마당할 위험을 각오하고 네 범죄행각을 고발할 수도 있어.”

     

    결국 헤스티아의 착각에 입을 맞춰준 싱의 재치 덕분에 헤스티아와 티토소가는 자신들의 착각이 진짜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친구도 없고 괴물은 식후 장난감 취급하며 약자를 경멸하고 강자를 편하게 여기는 헤스티아에게 글러먹은 착각병이 있다는 걸 몰랐던 패착 아닌 패착이다.

     

    [인물 <헤스티아>에 대한 이해도가 상승합니다.]

     

    ━━━

    헤스티아의 이해도

    친구 없음(이해도 10) – 버서커 클래스로 전직한 헤스티아는 친구가 없는 삶을 살아왔다.

    괴물은 장난감(이해도 20) – 교우관계와 반비례하는 힘을 얻은 광전사는 남들이 버거워하는 괴물도 식후 운동거리 취급한다.

    강자애호(이해도 30) –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이 시기와 질투, 음해를 하는 모습을 보며 자란 헤스티아는 약자를 경멸하며 반대로 강자를 편하게 여긴다.

    심각한 착각(이해도 40) – 인간의 바닥이 보이는 임무를 숱하게 맡아왔던 헤스티아는 모든 사태를 심각하게 여기며 착각에 빠지는 경우가 일상다반사다.

    ━━━

     

    [인물 <헤스티아>의 이해도가 40을 넘었습니다.]

    [2차 특전 <어떻게 그런 심한 일이>를 받습니다.]

     

    <어떻게 그런 심한 일이>

    분류 – 헤스티아 2차 특전

    설명 – 인세의 바닥을 접하는 끔찍한 용병임무를 수행해온 헤스티아는 작은 현상도 인세의 어둠과 연결지어 확대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효과1 – 인물 <헤스티아>의 걱정 어린 배려를 받을 확률이 대폭 상승합니다.

    효과2 – 헤스티아의 착각에 어울려줄 시, 일정시간동안 그녀의 자발적인 호위를 받을 수 있습니다.

    효과3 – 효과1을 너무 남용할 시, 자신도 모르게 응애타락하여 남의 배려만 받아먹는 탐욕스러운 응애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효과4 – 효과2를 너무 남용할 시, 헤스티아의 과보호가 심각해져 일상생활이 위협받습니다.

     

    매 회차마다 일정부분 변화하는 랜덤기질.

    그것이 이번 회차에서는 이런 무시무시한 함정특전으로 이어질 줄이야!

    잠깐이지만 챕터보스급의 든든한 무력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편리한 특전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섬찟해질 정도로 부작용이 만만찮다.

     

    ‘역시 챕터보스. 폭주트리거를 제거해도 절대로 방심할 수 없어!’

     

    어차피 얼굴이 부은 것도 수풀 속에서 튀어나와 오크노디를 납치하려고 했다가 저주에 걸려 부은 것일 거라며 악담을 퍼붓는 헤스티아.

    그녀의 독설을 일방적으로 수용해야만 하는 입장이 된 싱은 울화가 터져서 걸음을 돌렸다.

     

    “그 꼬맹이를 곱게 보살피는 게 좋을 거다. 후회할만한 일이 생기고 싶지 않다면.”

    “저 나쁜 새끼. 이제 하다못해 유령친구를 납치하겠다는 선언까지 해? 유령도 어린애라고 범할 생각이구나, 이 끔직한 아동성애자 녀석!”

    “…….”

     

    말대꾸를 할수록 손해임을 뼈저리게 느끼며 신속하게 달아나는 싱의 뒷모습이 이렇게 짠할 수가 없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딜교를 할수록 상대에게 사회적 자살이라는 일방적이고도 천문학적인 피해를 강요하는 무시무시한 챕터보스 헤스티아.
    너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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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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