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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9

    우리는 스탁핀으로 출발했다.

     

     

    네르, 그리고 아르윈과는 이후 만나지 못했다.

     

    그들과의 이별은 이토록 한순간에 이루어지고만 것이다.

     

     

    나는 스탁핀으로 향하는 내내 그녀들을 머릿속에서 빼낼 수가 없었다.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그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부부가 된 이후로 우리들은 떨어져본적이 없었다.

     

    어떠한 의뢰를 완수하더라도 그녀들과 함께 여행하며 돌아다녔다.

     

    그녀들의 온기는 언제나 손 닿는 곳에 있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이혼.

     

    그녀들과는 완전한 남이 되었다.

     

     

    더는 서로를 가볍게 부를 이유도, 그럴 수도 없다.

     

    같이 침대를 공유할 일도, 산책을 나설일도 없다.

     

    손도 잡지 못할것이고, 포옹도 할 수가 없다.

     

    얼굴조차 평생 보지 않을지도 몰랐다.

     

     

    내가 선택한 당연한 길이었고, 이별에 익숙하기도 했지만… 새삼 그녀들과의 거리감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선택에 후회는 없다.

     

    하지만 익숙하지는 않았다.

     

     

    귀띔은 해놓았어도, 홍염단의 대원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내가 이혼했다는 사실을 어색해하는 듯 했다.

     

    혼란스러움이 가득해 나를 살피는 대원들이 많았다.

     

    나는 그들의 혼란스러움을 굳이 해소해주려 하지 않았다.

     

    해소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네르와 아르윈의 행동을 설명해야 했으니.

     

     

    이건 내가 안고 가야할 비밀이었다.

     

     

    게일과 시엔도 우리를 따랐다.

     

    어째서인지 그게 자연스럽게만 느껴졌다.

     

     

    게일은 아담 형을 잃은 내가 걱정이 되었는지, 혹은 아내…아니, 전아내들과의 이별이 걱정 되었는지 나를 계속해서 지지하고자 했다.

     

    그는 신생 가문이 된 우리의 기반을 잡아주겠다고 약속을 하기도 했다.

     

     

    시엔은… 성녀를 그만둔만큼, 달리 갈 곳도 없었다.

     

    애초에 그녀를 밀어내야할 이유가 내게는 더 이상 없었다.

     

     

    성녀를 그만두며 이전과 같은 위상도 함께 내려놓게 된 그녀라지만, 인족의 영웅이 우리의 영지로 와서 나쁠 것도 없었다.

     

    …솔직한 마음으로 그녀에게 의지하고 있는 마음도 있었다.

     

     

    모두를 잃은 나에게는 기댈곳이 필요했다.

     

     

    시엔의 존재가 어색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11살부터 그녀를 알았기에 그럴까.

     

    한때 그녀와 그 누구보다 가까웠기에 그럴까.

     

    나도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시엔도 뒤늦게 내 이혼 소식을 들은 듯 했다.

     

    그제야 며칠 전, 내가 그녀에게 기대었던 이유도 깨달은 것 같았고.

     

     

    어느 순간부터 아픈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였다.

     

    위로를 해주려는 듯, 계속해서 다가오기도 했다.

     

    내 아픔을 그녀가 대신 표출해주는 것처럼.

     

     

    그 누구보다 나의 감정을 우선시해주는 그녀를 보며, 나도 알 수 없는 위로를 받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점차 우리의 오랜 관계가 어떠한 모습이었는지….떠오르는 듯 했다.

     

     

    그렇게 한참을 이동해 우리는 스탁핀에 도착했다.

     

    드디어 도착하게 된 고향.

     

     

    내가 작위를 하사받았다는 이야기가 돌아 온 마을이 축제 분위기였다.

     

     

    “부단….단장님 축하합니다!!”

     

    “우리도 그럼 베르그 단장님의 영지민인거죠?”

     

    “잘 이끌어주시리라 믿을게요!!”

     

     

    나는 가볍게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며 그들의 환호를 받아냈다.

     

    네르와 아르윈의 부재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도 보였지만, 이내 주변 사람들이 건네는 눈치에 그들은 입을 다물었다.

     

     

    다들 암묵적으로 우리에게 일어난 일을 알고 있는 듯 했다.

     

     

    ****

     

     

    네르는 울다 지쳐 잠들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블랙우드의 영지에 도착해 있었다.

     

    그녀의 눈물도 이제는 메말라버렸다.

     

    믿기지 않는 현실에 그저 꿈에 있는 듯한 느낌만이 들 뿐이다.

     

    베르그가 자신을 두고 떠났다는게 이해할 수 없어 그녀는 멍하니 굳어있었다.

     

     

    ‘와아아아아!’

     

    고향에 들어서는 블랙우드 가문을 향해, 여러 사람들이 박수갈채를 쏟아냈다.

     

    네르는 마차속에서 그들의 환호소리를 한 귀로 흘렸다.

     

     

    당장은 들리지 않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 무엇도 굳어버린 그녀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

     

     

    그렇게 앉아있다보니, 앞에 있는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를 불렀다.

     

     

    “….네르.”

     

    부드럽게 그녀의 무릎에 깁슨이 손을 올렸다.

     

     

    네르가 힘없이 눈을 들어 그를 바라보자, 깁슨은 아픈 표정으로 네르에게 말했다.

     

    “…환호소리를 들어보거라.”

     

    “…”

     

    “…전부 너를 부르고 있단다.”

     

     

    그 말에 네르는 힘없이 고개를 돌려 밖을 바라보았다.

     

    시민들이 보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네르님! 네르님!!’

     

    ‘네르 블랙우드!!’

     

     

    “…”

     

    네르는 그 사람들이 왜 자신을 부르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마저도 그녀가 꿈을 꾸고 있는건지 의심하게 만드는 하나의 요소였다.

     

     

    굳은 표정으로 미약한 혼란을 느끼고 있는 네르에게 깁슨이 설명했다.

     

     

    “네가 홍염단으로 떠난 이후…너를 향한 평가가 천천히 바뀌었단다.”

     

    “…”

     

    “네 덕에 우리가 일어설 수 있었다는 걸 모두가 이해하고 있으니 말이다. 모두들…네게 감사함을 느끼고 있어.”

     

    “…”

     

     

    네르는 베르그와 함께 말에 올라타 이름을 호명받던 순간을 떠올렸다.

     

    베르그가 자신을 치켜세웠기에 받을 수 있던 환호기도 했다.

     

     

    그와 함께 말에 올라탄채, 꽃이 흩날리던 순간.

     

    그 아름다운 순간이 그녀의 가슴을 미약하게 자극했다.

     

     

    “…”

     

    하지만 이내 그 감정도 잠잠해진다.

     

    너무나도 많이 울어서 그런지 모든 것에 무뎌진 느낌이다.

     

     

    그녀는 다시 멍하니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침묵할수록, 외부의 환호 소리는 더더욱 선명히 울려왔다.

     

     

    ‘안전히 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네르님!’

     

    ‘이제 새로운 사람을 만나 행복해지셔야 합니다!’

     

    ‘이혼 축하드려요!!’

     

     

    “…읏…”

     

    그 말들에 네르의 감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네르는 그제야 깨달았다.

     

    아픔이 무뎌진게 아닌, 외면하고 있었던거라는 걸.

     

     

    베르그와 헤어졌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던거라는 걸.

     

     

    슬픔과 분노로 네르가 눈을 깜빡이는 동안, 깁슨이 설명을 이었다.

     

     

    “나쁜 뜻 없이 말하는 거란다. 네가 안전히 돌아왔으니…축하해주는 것 뿐이야. 너를 걱정하는 사람이 많았으니…”

     

    “…”

     

     

    그녀의 기분과 완전히 상반된 환호가 끝없이 이어졌다.

     

     

    ‘이혼 축하합니다!’

     

    ‘홀몸으로 우리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번 다시는 희생하는 일 없을 겁니다!’

     

     

    -콱!

     

    네르는 제 귀를 틀어막았다.

     

    더 이상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수 없었다.

     

    “…아니야…”

     

    그녀가 홀로 중얼거렸다.

     

    “…난….난 이혼하지 않았어…”

     

    눈물을 계속해서 닦아내어 헐어버린 눈가에, 쓰린 눈물이 다시금 흘러내렸다.

     

     

    “…베르그가 다시 올거야…”

     

    그러면서 자신의 희망을 속삭였다.

     

    “…베르그가 올거야…”

     

    ****

     

     

    스탁핀에 도착한 이후, 그로부터 10일이 흘렀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알지 못했다.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10일이 지나 있었다.

     

     

    나는 침대에 가만히 누워있다 옆을 바라본다.

     

    평소라면 네르, 혹은 아르윈이 누워 있었을 자리.

     

     

    “…”

     

    방에는 공허한 침묵만이 흘렀다.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 흰 이불보.

     

    피어나는 체취. 새가 지저귀는 소리.

     

     

    그 평화로운 방 속에서, 나는 점차 표정을 찌푸렸다.

     

    시간이 어떻게 흐른지는 알지 못했지만…이별이 여전히 나를 힘들게 한다.

     

     

    어느쪽을 선택하더라도 아픔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녀들과의 이별이 그나마 나을거라 생각해 선택한 길이지만, 아프지 않은게 아니었다.

     

     

    상처가 아직도 생생했다.

     

     

    나는 고개를 저어 그런 아픔을 무시하고자 했다.

     

    나에게는 할 일이 있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오늘도 아담 형이 그랬듯 집무실로 향한다.

     

     

    내게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게 아니다.

     

    가문을 일으켰고, 귀족이 되었지만…내 주위를 구성하는 것들은 아직 달라지지 않았다.

     

     

    집도 그대로였고, 사는 지역도 그대로다.

     

    나를 대하는 대원들과 주민들의 모습 또한 여전했다.

     

     

    이 편이 나도 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달라진 게 있다면 책임감이 달라진 것 뿐이다.

     

    내 관할로 떨어진 새로운 영지가 존재했다.

     

    숲 밖에 없을지는 몰라도, 분명히 우리의 영지였다.

     

    생각하지도 못한 새로운 할 일이 생겨났다.

     

     

    그럴수록 나는 이 자리가 아담 형의 자리였음을 실감했다.

     

    그 어떠한 감도 잡히지 않은 내게 떨어진 의무.

     

    내가 이끌어가기에는 나의 그릇이 너무나도 작았다.

     

     

    이럴수록 게일의 도움이 내게 커다란 힘이 되었다.

     

     

    집무실에 들어서자 나를 반기는 게일.

     

    “왔군, 베르그.”

     

    “…또 이른 아침부터 일하고 계셨습니까.”

     

    “네 힘이 되고자 약속했으니 당연한 일이지.”

     

    “…”

     

    “…게다가, 아담을 위한 나의 속죄이기도 해.”

     

    게일 또한 눈 앞에서 아담 형을 잃은 것에 대해 자책하고 있는 듯 했다.

     

     

    나는 그 동안 게일에게 아담 형의 이야기를 보다 세세히 전해들었다.

     

    아담 형의 동생들의 이름과 그들의 무덤의 위치까지도 전부.

     

     

    그럴수록 나는 형이 이루지 못한 꿈을 달성해야겠다는 목적의식이 분명해졌다.

     

    인족의 인식을 어떻게 바꿔야할지는 알지 못했으나, 그걸 꼭 이루고자 마음을 먹었다.

     

     

    형이 평생을 바쳐 이루고자 했던 꿈이다. 그에게 구원 받은 난 이럴 의무가 있었다.

     

     

    인족에 대한 생각을 하다보니….어쩌면 네르, 그리고 아르윈과 이별한게 이런 꿈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하는 이상한 상상조차 하게 된다.

     

    이별이 주는 아픔을 무디게 만들기 위한 나의 변명일지도 몰랐다.

     

    “…하.”

     

    나는 다시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앉았다.

     

    게일은 그런 내게 한 장의 서류를 건네며 말했다.

     

    “베르그. 네 가신으로 들어오겠다고 지원한 사람들의 목록이야. 한 번 살펴보게.”

     

    “…가신 말입니까?”

     

    “그래. 너도 이제 필요하겠지.”

     

    “…제게는 대원들이-”

     

    “-대원들이 네 옷을 입혀주고, 짐을 들어주고, 술잔을 채워줄 건 아니지 않나.”

     

    “…”

     

     

    귀족의 삶이 그런걸까.

     

    내게는 아직 어색한 것들 투성이다.

     

    …솔직한 말로, 그런걸 딱히 원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결국 가신이 필요하다는 게일의 말을 받아들이며, 나는 서류를 전달 받았다.

     

    글을 아직 완벽히는 읽을수 없었지만, 이제는 아는게 모르는것보다 많았다.

     

     

    아르윈이 가르쳐준 것들의 흔적이 내게 남아있다.

     

    앞으로 글씨를 볼때마다 이런 상상을 하게 될까?

     

    “…”

     

    잠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내게 게일이 말했다.

     

    “베르그. 대원들의 훈련은 빼먹지 말게.”

     

     

    나는 아르윈의 생각을 털어내며 게일을 보았다.

     

     

    우두머리의 개체수가 크게 줄은 상황속에서 그가 말했다.

     

    게일을 바라보자, 그가 설명했다.

     

    “이제 아담처럼 미래를 보지 못한 용병단들은 하나 둘 몰락하기 시작할걸세. 해체되는 용병들 중 누구는 똑바로 살 길을 찾아가겠지만, 누구는 검을 휘두르던 버릇을 잃지 못하고 강도질을 시작하겠지.”

     

    나는 그 동안 내가 마주했던 용병단들을 떠올렸다.

     

    그들이 모두 하나 둘 없어져 사라질거라 생각하니 이상한 느낌이었다.

     

    게일이 이어나갔다.

     

    “그리고 그런 범죄자들을 잡아 넣는건 이제 자네의 몫이 될 걸세. 뭐, 바란에게 위임해도 괜찮겠지만 말이야.”

     

    “….”

     

    “애초에 강한 무력도 힘이 될테니, 훈련을 등한시하며 그 힘을 포기할 이유도 없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땅을 넘겨받으며 작성해야할 서류들을 여럿 적어나갔다.

     

     

     

    내 머릿속은 최근의 이별로 가득했다.

     

    아담 형. 네르. 아르윈의 생각만이 들어찬다.

     

    한 사람씩 차례로 내 생각을 헤집고 사라졌다.

     

    그 속에서 익숙하지 않은 서류 작업을 하는게 쉽지는 않았다.

     

     

    얼마나 그렇게 작성했을까.

     

     

    나는 또 치워야할 서류들을 찾아나선다.

     

     

    그 과정속에서 다양한 가문의 인장이 찍힌 편지봉투가 보였다.

     

    “…이건 뭡니까?”

     

    “직접 확인해봐.”

     

    -찌익.

     

    나는 손으로 편지봉투를 찢어 열었다.

     

    내게 편지칼을 건네려던 게일이 혀를 찬다.

     

     

    “…그런 습관부터 바꿔야할 것 같군.”

     

     

    나는 게일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편지들을 읽어나갔다.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알아차리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정략혼 제안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연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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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ncompatible Interspecies Wives

IIW 섞일 수 없는 이종족 아내들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Polygamy is abolished.

We don’t have to force ourselves to live together any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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