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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9

       이거 지금 괴롭힘당하는 건가?

        

       릴리 베이커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평민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꽤 유복한 집안에서 자랐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귀족보다는 아침을 일찍 시작한다고, 그녀는 스스로 자부했었다.

        

       부모님은 제도에서도 꽤 유명한 빵집을 운영했다. 만약 릴리가 아카데미에 가지 않았다면, 그 빵집을 직접 물려받을 이는 릴리, 혹은 먼 훗날 릴리와 결혼하게 될 남편이었다. 누가 될지는 릴리 본인도 모르지만.

        

       하지만 아카데미에 들어간 이상, 빵집을 운영하는 것은 조금 어려울지 모른다. 부모님은 릴리가 조금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를 바라셨고, 릴리도 그러기를 바랐다. 아카데미 4년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면 그게 가능하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겁도 없이—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겠다—황녀에게 말을 걸었던 건 그런 생각 때문은 아니었다.

        

       담임인 에이다는 반을 대표하는 사람이 해야 할 거의 모든 일을 릴리에게 맡기고 있었다. 같은 반 친구들한테 일정을 알리는 일, 과제를 걷거나 갑자기 날아온 공지를 전달하는 일……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릴리는 C반의 대표 비슷한 존재였다. 시간이 지나자 담임뿐만이 아니라 같은 반의 아이들까지도 릴리의 그런 위치에 납득한 것 같았고.

        

       그렇기에, 누가 시킨 일은 아니었지만, 릴리는 나름대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로티는 학급 내에서 겉돌고 있었다.

        

       같은 반의 아이들과 몰려다닐 방과 후만 되면 제이크와 함께 다녔으니까.

        

       둘의 관계에 대해 이런저런 소문이 있었지만, 그걸 진짜로 믿는 사람들은 극소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공작가의 후계자가 식민지인을 연인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조금 이상했기 때문이다. 보통 그 소문은 ‘아무도 믿지는 않지만, 상대를 흉보기 위해 쓰는 명분’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릴리의 경우에는 ‘혹시’하는 마음도 가지고 있었지만, 그래도 일단은 제이크 옆에 로티가 있는 이유가 메이드로서 있다는 것 정도는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서로 마음이 있고 없고의 문제는 애초에 릴리가 직접 물어보지 않는 이상은 알 수 없는 일이고.

        

       그리고 직접 물어볼 일도 없었다. 애초에 개인적인 일이니까.

        

       릴리가 황녀에게 말을 걸었던 것은 그런 이유가 아니라, 순전히 의무감에 의한 충동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 죄책감 때문이기도 했고.

        

       그리고 돌아온 대답은—

        

       “어, 어쩌지……?”

        

       릴리는 그래도 친구가 꽤 있었다. 반년이라는 시간은 새로 만난 동갑내기들과 친해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물론 동네에서 함께 자란 다른 아이들만큼 친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거야 앞으로 서로 알고 지내다 보면 해결될 일이다.

        

       휴양지로 유명한 린드버러 남쪽 영지였기에, 벌써 약속이 잡힌 친구들도 있었는데—

        

       부모님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셨을까.

        

       릴리의 머릿속에 ‘기회를 잡아라!’하고 외치는 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후우.”

        

       흘러내린 안경을 다시 손으로 올리면서 릴리는 말했다.

        

       좋아.

        

       실습을 함께 해본 것은 아니었지만, 종종 수업 중에 마주치는 귀족반을 보면, 릴리 하나가 빠진다고 해서 귀족 반 일행에게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지는 않았다. 다들 실력이 출중했으니까. 릴리는 제니퍼 선생님의 주도로 이루어진 그 모의 전투를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상황에서, 정확하게 날아온 총알 한 발 한 발에 아군이 한 명씩 전사하는 경험은 설령 가상이었다고 해도 쉽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제니퍼도 귀족이었고 귀족반의 담임이었기에 귀족반을 봐준 것이 아니냐는 말도 종종 나왔지만, 황녀 실비아 팬그리폰의 움직임을 볼 때마다 그런 목소리는 서서히 줄어들어 갔다.

        

       응, 그렇지.

        

       그러니까, 이건 실비아 황녀님의 아량이었을지 모른다.

        

       로티가 고생하고 있는지 아닌지, 잘 지내고 있는지 물어본 자신에게, 직접 와서 확인할 기회를 주셨을 뿐이다.

        

       그러니까,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거절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라고, 그녀는 안일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네 시쯤 누군가가 자기 방문을 두드렸을 때, 그녀는 다시 한번 생각했다.

        

       이거, 괴롭히는 거 맞지? 하고.

        

       *

        

       “그거라면 걱정할 필요 없어.”

        

       새벽에 일어나서도 쌩쌩한 클레어가 말했다.

        

       내가 어제저녁에 이미 말해두었기에, 릴리 베이커의 존재는 우리 사이에 금방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애초에 평민……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하지만, 그래도 평민이나 다름없는 소피아라든가, 그냥 대놓고 평민 식민지 원주민인 로티까지 이미 일행에 포함되어있었다. 이제 와서 거절한다고 해봐야 신분이 명분이 될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녀가 말한 ‘친구들과의 선약이 있다’라는 이야기는—

        

       “그러니까 오전 열 시쯤 만나기로 했다는 거잖아? 그럼 그 전에 얼른 끝내버리고 편하게 만나면 돼!”

        

       라는, 클레어의 무시무시한 말에 그 논리가 산산이 조각나고 말았다.

        

       뒤에 서있는 앨리스와 샤를로트의 얼굴에 ‘그게 말이 되냐’는 생각이 떠올랐다가, 이내 ‘근데 진심이겠지’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자기 귀를 의심하는 표정을 하고 있던 릴리 베이커도, 앨리스와 샤를로트의 표정을 보고 나서는 지금 이 상황 자체를 의심하는 표정이 되었다.

        

       시선이 나를 향하길래, 나는 무표정하게 빤히 바라봐주었다.

        

       왜. 뭐. 왜.

        

       네가 먼저 말 걸었잖아.

        

       “이름이 릴리라고 했던가?”

        

       클레어 옆에 서 있던 레오가 말을 걸자, 릴리 베이커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나 때문인지 우리 그룹에서는 묘하게 하렘 주인공으로서의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레오였지만, 그래도 하렘 주인공답게도 얼굴은 잘생겼다. 게다가 키도 크고, 어깨도 딱 벌어졌다.

        

       단도직입적으로 여자애들한테 인기 많게 생긴 애라는 소리다.

        

       “잘 부탁해.”

        

       레오가 웃으며 손을 내밀자, 릴리 베이커는 손으로 자기 스커트를 잡아야 할지, 아니면 레오의 손을 맞잡고 흔들어야 할지 엄청나게 헷갈리는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은 조금 재미있었다.

        

       원작에서도 로티 따라서 움직이다가 이리저리 휘말려서 파티에 편입되는 캐릭터였으니까.

        

       …….

        

       음.

        

       이거 괴롭히는 건가?

        

       뭐 어때, 본인은 알지도 못할 텐데.

        

       나는 속으로만 싱글벙글 웃으며 그 두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

        

       아무튼.

        

       로티와 제이크 문제로 돌아와서, 나는 나름대로 세워둔 계획이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 계획을 바로 실행할 생각은 없었다.

        

       정확히는, 그 계획을 실행하기 전에 몇 가지 확인할만한 것이 있었으니까.

        

       “확실히, 실전에서 쓰기에는 너무 크고 무거운 것 같습니다.”

        

       나는 거의 대물저격총만한 소총을 든 채 말했다.

        

       일단 적어도 서서 쏘기에는 크기가 너무 컸다. 대전차 저격총도 거의 이만한 크기이긴 했지만, 내가 직접 쏴봤던 것은 아니니까.

        

       “그런데 거기 쓸만한 마르마로스 탄도 준비했잖아.”

        

       “그렇긴 합니다만.”

        

       ……진짜로 필요한 순간이 아니라면 쓸 일이 있을까 싶다. 음, 그래도 마차 안에 타고 있는 사람을 마차째로 불살라버리는 데는 쓸 수 있으려나.

        

       “일단 사냥용으로 사용해보고, 실전에 쓸지 그렇지 않을지는 이후에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긴, 어떤 무기를 쓸지는 네 마음이니까.”

        

       앨리스는 그냥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 뒤쪽에서 내가 어깨에 메고 있는 총을 보는 제이크의 시선은 그렇게 탐탁지 않아 보였다.

        

       ……이쪽 세상에서는 아직 동물보호법이니 하는 것들이 제정되지 않았는데도 이러는 걸 보면, 제이크는 의외로 동물을 꽤 좋아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 이유는 곧 알 수 있었다.

        

       탕!

        

       총알만큼이나 큰 총성.

        

       엎드려서 쏘는데도 내 어깨를 사정없이 밀어내는 개머리판.

        

       확실히, 총의 위력은 ‘익스프레스’다웠다.

        

       다만, 문제는 그 총기의 위력이 너무 확실했다는 거다.

        

       코로 불 뿜는 코끼리는 우리를 알아차리지도 못한 채 두개골이 박살 났다.

        

       내 총알은 그대로 코끼리의 미간을 꿰뚫었고, 코끼리는 한순간 뒤로 밀려나는 듯하더니,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옆으로 툭 쓰러지더니, 쭉 뻗은 앞 다리를 하늘로 치켜올린 채 부르르 떨었다.

        

       “…….”

        

       그 광경에, 전날에 코뿔소도 잡았다는 레오와 클레어까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코끼리 주변에 있던 다른 코끼리들은 죄다 도망가버리고, 아직 작은 새끼 코끼리 몇 마리만 남았다.

        

       우리가 죽은 코끼리 근처까지 다가갈 때도 새끼 코끼리들은 어미 주변에서 서성이다가, 우리의 손이 닿을 때쯤이 되어서야 헐레벌떡 도망갔다.

        

       “……어제는 민가를 위협하는 짐승을 사냥하는 거였는데.”

        

       레오의 중얼거림에 나는 이 둘이 왜 이렇게 당황했는지 알 것 같았다.

        

       “필요한 부분은 저기 상아뿐이야. 나머지는…… 아마 나중에 몰려들 독수리가 해결해주겠지.”

        

       아.

        

       그렇구만.

        

       제이크가 왜 ‘의뢰’를 탐탁지 않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음, 뭐.

        

       일단 총기 화력 실험은 할 수 있었으니까.

        

       어차피 내 생각대로 흘러가게 하려면 시간을 되돌려야 하기도 했고.

        

       ……다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다음화는 금방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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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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