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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9

    디아나에게는 목표가 생겼다.

    바로 시루드와의 결혼이었다.

     

    겨우 8살이긴 하지만, 결혼이라는 것에대한 의미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다이튼이 말하길, 결혼이란 남자와 여자가 가족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자세히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단 하나는 알고있다.

     

    바로, 가족은 모든 것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시루드의 과자와 음료수, 그리고 비행기를 마음껏 이용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목표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 이 오빠랑 결혼하고 싶어.”

     

    그 말에 담긴 의미는 그러했다.

    속물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어리기에 그 누구보다 순수한 의지가 담긴 바람이었다.

     

    그러나 다이튼, 자신의 오빠라는 작자는 자신의 이마에 딱밤을 날려버린 후, 이렇게 말했다.

     

    “바보야, 그건 좋아하는 사람끼리 하는 거야.”

     

    “난 이 오빠가 좋은데.”

     

    “……아하하.”

     

    하지만, 자신의 진심어린(?) 고백을 들은 시루드의 표정은 당황해서 그저 웃어넘기려는 성향이 강했다.

    디아나는 이래봬도 눈치는 꽤 빨랐다.

    누군가의 표정을 보고 그것에 담긴 의미를 찾는 것, 그것은 옛날 양육시설에서 자라며 이미 갖추게된 것이었으니까.

    아마 오빠는 나를 안 좋아하는 거겠지.

     

    그리 생각하니 울음이 나올 것 같았다.

    너무 어린나이에 겪게 된 ‘실연’(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는 도저히 모르겠지만)은 그럴만한 사유가 된다고 생각했다.

     

    “……우윽.”

     

    “어? 이, 이 녀석, 갑자기 왜 울고 그래?”

     

    그러자 당황한 것은 다이튼이었다.

     

    “글쎄, 다이튼 네가 이마를 너무 세게 때린 거 아니야?”

     

    갑작스러운 아이의 울음에 예르나 역시 조금 당황하며 대꾸한다.

    듣고보니 그럴 듯했다.

     

    “그, 그런가? 야, 미안해! 그렇게 아팠냐? 나름 힘 조절한다고 한 건데…….”

     

    하지만 다이튼이 호들갑을 떨며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기 시작하자, ‘오빠는 자신이 왜 우는 지 모른다’는 생각에 한층 더 서러워진 디아나는 도리어 더욱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난 고작 이마가 아파서 우는 게 아닌데.

     

    “흐아아앙-!”

     

    방울진 눈물이 마침내 턱을 타고 흘러내리며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디아나, 정말 그렇게 아팠어? 어떡해, 이마가 빨갛네.”

     

    예르나가 디아나의 이마를 어루만지며 다이튼을 쏘아보았다.

     

    “아니, 난 그렇게 세게 안 때렸…….”

     

    다이튼은 억울했다.

    그냥 정신 좀 차리라고 살짝, 평소에 장난치던 강도로 때렸을 뿐이다.

    저렇게 울어버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변명하기엔 이미 디아나는 울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견디기 어려운 것은 저 예르나의 나쁜 사람을 보는 듯 한 눈빛.

    다이튼은 속으로 나는 나쁘지 않아, 라고 절망하면서 겉으로는 어떻게든 디아나를 달래기 위해 사과를 쥐어짜낸다.

     

    아비규환.

     

    몇 분 전만해도 편안했던 비행기는 이제는 거의 전쟁터가 되었다.

     

    여기서 가장 태평한 것은 파이리스 뿐이었다.

    소파에 앉아서 졸린 눈을 뜬 채 디아나가 우는 것을 달래는 모습을 관망하듯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으니까.

     

    그 때, 이 상황을 도저히 보고만 있을 수 없던 루크가 나서서는 디아나의 이마를 쓰다듬어주며 타이르듯 말했다.

     

    “디아나, 원래 결혼이란 것은 서로 고려해야 하는 것이 많단다.”

     

    “……흑, 윽……고려……?”

     

    자신의 마음속을 알아챈 것 같은 루크의 다정한 목소리에 디아나는 드디어 울음을 그쳤고, 다이튼과 예르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아이가 우는 건 언제 겪더라도 정말 어려운 일이다.

     

    루크는 디아나가 조금 진정한 듯 보이자, 조금 더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래, 서로의 생각과 성격, 그리고 마음…….”

     

    그것 말고도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지금 당장 디아나에게 설명한다고 해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아 일단은 생략하기로 했다.

     

    “결혼은 단순히 결정할 게 아니란다.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 중 하나지. 섣부르고 잘못된 결혼은 신랑과 신부 모두에게 불행이 되고 말거든.”

     

    “음…….”

     

    디아나는 금세 납득했다.

    정령소녀인 루크 언니가 해주는 말이니 그것은 무조건 옳은 것이리라, 이미 디아나의 마음속에서는 그것이 참이었고 진리였다.

    그렇기에 디아나는 답을 구하기 위해 묻는다.

     

    “그럼 어떻게 해?”

     

    “우선은 서로가 서로를 알고, 친해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지.”

     

    “…….”

     

    디아나는 자신의 오빠에게 얻어맞은 이마를 문지르며 곰곰히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디아나를 바라보면, 시루드는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갑작스레 조용해진 비행기 내부의 분위기는 이제 서서히 진정되어가는 듯 했으나, 시루드는 아직도 무슨 말을 꺼내야 할 지 정하지 못했다.

     

    이런 소리를 전에는 들어본 적이 없다 보니 어떻게 대꾸를 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는 느낌이라고 할까?

    뭐, 그렇다고 기분이 영 불쾌한 것은 아니었지만, 또 마냥 좋지도 않은, 불편한 느낌이었다.

    물론 진지한 청혼이었다면 거절을 하겠지, 시루드도 어리긴 하지만 보통의 아이는 아니다.

    어린아이가 내뱉은 모든 말에 일일이 의미부여를 하지 않을 정도의 분별력은 갖고 있었으니.

     

    단지 대놓고 거절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랬다가 또 울어버릴까봐서였다.

    그런 의미에서, 루크가 아이를 잘 중재해준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디아나가 해맑은 표정으로 제안했다.

     

    “그럼, 오빠. 우리 친구 해!”

     

    “그래. 뭐, 그 정도쯤은…….”

     

    결혼보다는 훨씬 나았다.

     

    ——-

     

    다음 날, 예르나의 집.

     

    디아나는 자신의 목표에 첫번째 발걸음을 내딛기 위해 곧장 루크의 집을 찾았다.

     

    똑똑.

     

    “루크 언니, 나 왔어!”

     

    “아, 벌써 왔느냐? 잠시만 기다리거라.”

     

    이내 문이 열리고, 루크가 마중을 나왔다.

    다이튼은 그 모습을 보고 디아나를 건네며 입을 열었다.

     

    “자, 오늘 하루 잘 부탁한다.”

     

    다이튼은 며칠씩이나 되는 긴 휴가를 쓴 대가로, 당분간은 예르나와 함께 당직을 서야 하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디아나를 당분간 맡겨둘 곳을 찾아야 했는데, 디아나가 평소 맡기던 보육시설에 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바람에 루크에게 맡기는 것이 그나마 가장 이상적이었다.

     

    “너무 걱정 말거라. 내 잘 데리고 있을 테니.”

     

    “잘 부탁해! 루크 언니!”

     

    “그래, 사고치지 말고…….”

     

    사고뭉치 둘을 한 곳에 묶어놓으려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긴 하다.

    루크도 저래보여도 꽤 사고를 치는 아이였으니까.

    하지만, 또 집안에서는 나름대로 똑 부러지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의지가 되는 모습이 없는 건 아니라서 다이튼의 마음속에서 루크에 대한 걱정과 신뢰는 정확히 반을 이루고 있었다.

     

    “만약 디아나를 도저히 못 다루겠다거나 일이 생기면 꼭 전화해. 알겠지?”

    “그래, 루크. 혼자서 아이 둘을 돌보려면 힘들텐데…….”

     

    출근준비를 마친 예르나도 걱정을 담아 이야기했다.

    루크는 주먹을 가볍게 쥐고서 가슴께를 툭툭 두드리며 미소지으며 말했다.

     

    “아이들이야 다뤄본 경험이 많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거라, 예르나.”

     

    “그러니?”

     

    예르나는 루크가 ‘시설’에서 맏언니 노릇을 했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기특함에 머리를 몇번 쓰다듬고는 마침내 나갈 채비를 했다.

     

    “자, 그럼 가자. 다이튼.”

    “아, 응.”

     

    ——–

     

    그렇게 보호자들이 자리를 비우자, 아직도 자고 있는 파이리스를 제외하면 루크와 디아나만이 남았다.

     

    “루크 언니, 이제 시작하는거야?”

    “그래, 이제 시작하는 게다.”

     

    도대체 무엇을 시작하느냐, 그것은 바로 신부수업이었다.

     

    이는 사실 루크가 먼저 제안한 것이었다.

    과거 여자가 주로 자신의 신분을 상승시킬 수 있는 수단은 귀족과의 결혼이었으며, 그런 관점에서 디아나가 떠올린 발상은 루크에게는 상당히 친숙한 개념이었으니까.

     

    오히려 그토록 어린 나이에 자신의 신분을 상승시킬 생각을 했다는 사실이 내심 놀라웠다고 할까?

    현대 사회는 대놓고 보이는 작위는 없지만, 그렇다고 아예 신분의 격차가 없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그런 면에서, 디아나가 꽤 재산이 있는 편인 시루드와 맺어지고 싶다는 생각을 품는 것은 루크의 입장에선 전혀 나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니 아이의 목표를 돕지 않을 수 있나? 디아나가 훌륭한 신붓감이 된다면 시루드에게도 그닥 나쁜 것은 아닐 것이다.

    딱히 시루드가 결혼 상대가 아니라고 해도, 자신의 신부수업을 통해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여성이 된다면 디아나에게도 나쁠 것은 전혀 없지 않은가?

     

    그야말로 이득뿐이다.

    하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었으니 하는 것이 옳다.

    만약 디아나가 하고자 한다는 의지만 있다면.

     

    “꽤 힘들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겠지?”

    “괜찮아!”

     

    디아나의 의지는 일견 확고했다.

     

    “좋아.”

     

    그렇게 루크는 거실 한켠에 서서 자세를 잡았고, 디아나는 거실에 앉아서 루크를 향해 눈을 빛내고 있었다.

     

    “자, 그럼 디아나, 신부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음…….”

     

    디아나에겐 질문이 너무 어려웠으려나, 루크는 길게 끌지 않고 곧장 입을 열었다.

     

    “바로, 요리다.”

     

    “요리?”

     

    자신이 들은 것이 맞냐는 듯, 디아나는 프라이팬에 뭔가를 볶는 듯 한 동작을 흉내내며 말꼬리를 높였다.

     

    “그래, 요리.”

     

    루크는 그게 맞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설명을 이었다.

     

    “예로부터, 맛 좋은 음식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고 하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요리는 당연히 이성의 마음도 사로잡을 수 있게 되는 법이란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실제로, 다이튼의 요리를 처음 맛 본 자신이 어땠던가?

    그것은 음식에 매료당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만약 자신이 정말로 ‘감수성이 넘치는 사춘기 소녀’였다면 다이튼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품지 않았을까?

    물론 자신은 그런 감정은 정말 ‘조금도’ 들지 않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루크의 가슴속에서 사람 대 사람으로 다이튼에게 호감을 품게 된 것에는 그의 꼬치요리가 커다란 의미를 차지하고 있기는 했다.

     

    “그러니, 요리다. 하지만 시루드는 일반적인 엘프가 아닌 하이엘프, 조금의 동물성 재료도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니 어려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루크의 말을 경청하던 디아나가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나 엘프식 요리, 할 줄 아라!”

     

    “오, 정말인가?”

     

    “응, 오빠한테 불 안 쓰는 거 몇 개 배웠어!”

     

    “그거, 흥미롭군. 바로 해보지.”

     

    “응!”

     

    ———

     

    “…….”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디아나가 냉장고에 보관해둔 마력초를 이름도 잘 모르면서 마구 집어 들었을 때?

    아니면, 중간부터 뭔가 미묘한 느낌이 들었지만 디아나의 ‘괜찮아! 원래 이런 요리야!’라는 말에 속아 가만히 내버려두었을 때?

    그것도 아니라면, 디아나가 다이튼에게 배운 요리를 정말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때였을까?

     

    자신은 요리에 경험이 부족하다보니 단지 레시피를 정확히 따라할 뿐이었기에, 중간부터 이상해지는 요리를 보고도 그저 ‘다이튼의 레시피’일 것이라 으레짐작해 내버려둔 것이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그 과정을 거쳐 루크의 앞에 놓여진 접시, 그 위에는 도무지 형체를 알 수 없는 미묘한 물질이 얹어져 있었다.

     

    “대체 이게 뭔가.”

     

    마력초를 그냥 통째로 써서 그런지, 이것은 음식이라기보다는 그저 마력덩어리였다.

    그것도 딱히 집중하지 않은 마력시에도 쉽게 검출될 정도로 풍부한.

     

    “어때? 베리튼식 샐러드야. 머거봐!”

     

    디아나는 당당한 모습으로 맛 평가를 부탁했다.

    그러나 이 새카만 물질은 도저히 사람이 먹을 수 없을 것 같은데…….

    향도 미묘한 데다, 식감과 맛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어, 그렇군. 그런데말이다…….”

     

    어떤 식으로 거절해야 아이가 상처받지 않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하던 순간이었다.

     

    “흐아암…….”

     

    파이리스가 눈을 비비며 방에서 어기적어기적 걸어나왔다.

    그리고, 거실 테이블에 놓여진 미묘한 검은색 물질을 보고는 곧장 감탄성을 내뱉는 것이 아닌가?

    파이리스는 곧장 달려와 테이블 위에 놓여진 디아나의 요리앞에 앉으며 외쳤다.

     

    “와! 맛있겠다! 나 이거 먹어도 돼?”

     

    “……파이리스, 그대. 진심인가?”

     

    “응!!”

     

    “……그.”

     

    본인이 먹고 싶다면야, 딱히 말리고 싶지는 않았다.

    고대의 정령이 불량식품을 좀 먹는다고해서 당장 소멸하지는 않을 테니…….

    루크는 하고자했던 말들을 그냥 잊어버리기로 했다.

     

    “맘대로 하거라.”

     

    “와!! 정말!?”

     

    파이리스는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곧장 얼굴을 접시에 처박고 ‘흡입’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저 흉몰스러운 물질의 어디에서 먹음직스러운 부분을 느낀 것인지 도저히 모르겠지만, 정령이라서 느낄 수 있는 초감각적인 무언가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것은 후에 자세히 연구해보도록 할까.

    일단은 현재의 상황에 집중하도록 하자.

     

    “히히히, 그렇게 맛있어?”

     

    디아나는 부끄럽다는 듯 뒷통수를 문지르기 시작했지만, 루크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이마를 짚었다.

     

    만약 누군가에게 저 식사를 내보낸다면, 그것은 분명 자신을 싫어한다는 오해를 부르기 딱 좋아보인다.

    그것은 상대방이나 디아나에게 절대 바람직한 결과가 아니었다.

     

    “디아나, 다음 레시피는 내가 알려주는 대로 만들어 보자꾸나. 아마 그것이 더 시루드의 입맛에 맞을 게다.”

     

    “응! 알겠어!”

     

    그렇게 디아나는 다음 요리부터는 루크의 명령에 철저히 따랐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루크에게 신부수업받는 디아나였습니다!
    근데 그냥 어린애들 소꿉장난 하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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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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