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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9

        

         

       [ 사흘, 말씀이신지요? ]

       “그렇다.”

         

       진성은 묘하게 들뜬 듯한 리세의 되물음에 답했다.

         

       그러자 리세는 무언가 결의를 한 듯한 얼굴로 진성에게 말했다.

         

       [ 알겠습니다. 그때까지 신주님께 내보일 수 있도록, 훌륭히 후임을 교육해놓도록 하겠습니다. ]

         

       나루미를 ‘철저하게’ 교육하겠다는 리세의 말에 진성은 흡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 그러면 이만 끊도록 하겠느니.”

       [ 알겠습니다. 신주님께서 방문하실 날만을 고대하고 또 고대하며 기다리겠습니다. ]

         

       그렇게 리세와의 통화가 끝을 맺었다.

         

       진성은 스마트폰을 무선 충전기 위에 잘 올려놓은 뒤 창문으로 향해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곰보처럼 울룩불룩한 자국이 가득한 달이 노랗게 빛나고 있었다.

         

       진성은 노란 달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방을 분주히 돌아다니며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축지를 사용해 공항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독일.

         

       저번과 같이, ‘우회’를 해서 일본에 들어가기 위해서였다.

         

         

         

        * * *

         

         

         

       누군가는 별의 운행을 읽었을, 누군가는 자신의 후임 될 자를 쥐 잡듯 잡았을, 누군가는 부정에서 간신히 벗어나 요동치는 마음을 추슬렀을 밤이 지났다.

         

       아침이 밝고 사람들이 활동할 시간이 되었고, 저택은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기척과 함께 향긋한 음식의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음식 때에 맞춰 손님과 주인들이 자리를 메우기 시작했다.

         

       “아-샤. 오늘도 즐거운 식사 예절 교습 시간이 왔단다.”

       “즐겁지 않아요….”

         

       넓은 식당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아침 식사를 주문해 먹고 있었다.

         

       “캬아! 역시 이 맛이야! 러시아에서 야생의 베어메이트와 마시던 맥주가 그리웠다니까.”

       “허세 부리지 마, 멍청아…. 그, 그거 무알코올이야….”

         

       아나스타시아는 아그네스의 옆자리에 강제로 앉혀서 식사 예절을 실시간으로 배우고 있었고, 그 근처에선 이아린이 무알코올 맥주를 마시며 천상에라도 다녀온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이세린은 표면에 대문짝만하게 0.00%라고 적혀있는 맥주를 들고 허세를 부리는 이아린을 타박했다.

         

       하지만 이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도 평소와 다른 점이 있었다.

         

       모두가 눈치채지 못하지만, 오직 단 한 명, 이세린만이 인식할 수 있는 달라진 점이 말이다.

         

       그것은 바로 항상 이세린의 옆에 껌딱지처럼 달라붙어 있던 그레모리의 모습이 평소보다 훨씬 작아져 있었다.

         

       악마는 마치 살점을 뭉텅 덜어내기라도 한 듯, 혹은 시간을 되감아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기라도 한 듯 몸을 작게 바꾼 채 이세린의 무릎 위에 올라가 있었다. 그리곤 이세린의 품에 얌전히 안긴 채 혀를 날름날름 움직이며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레모리의 초점이 잡히지 않은 눈동자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바라보았고, 그 허공에서 무언가를 찾아 눈동자에 비추고 있었다.

         

       [ 흐음. ]

         

       무언가를 찾는 듯 그레모리의 눈동자는 이곳저곳 움직였다.

       그리고 그 움직임에 따라 눈동자에 맺히는 상의 형상이 바뀌고, 식당의 모습이 아닌 복도의 모습을, 방의 모습을, 정원의 모습을 비춰주었다. 그리고 그 모든 장소가 여러 시간으로 분할되고 겹치는 것을 반복하였고, 거기서 있었던 일들이 마치 비디오를 되감듯 영상의 형태로 그레모리의 머릿속에 담겼다.

         

       그레모리의 눈에는 모든 것이 보였다.

         

       진성이 정원에서 했던 아브라함 계통 종교의 주술 의식을 뒤틀어서 한 기괴한 의식도.

       진성이 지붕 위에 올라가서 중얼거렸던 혼잣말도.

       이양훈이 군대 쪽 인맥과 이북 지역에 관한 주제로 이야기를 한 것도.

         

       그 모든 것들이 CCTV로 녹화를 한 것처럼 선명하게 보였으며, 음성마저 생생하게 들렸다.

         

       하지만 단 하나.

       저택에 머무르는 주술사이자, 계약자의 피가 섞이지 않은 오빠인 진성의 방 안에서 있었던 일만큼은 쉽게 훔쳐볼 수가 없었다.

         

       마치 뿌연 연기에 휩싸인 것처럼, 혹은 CCTV에 알 수 없는 이유로 노이즈가 가득 껴서 제대로 알아볼 수 없게 된 것처럼, 그레모리의 권능을 이리저리 비틀고 왜곡하는 기괴한 힘이 머무르고 있었다.

         

       물론 못 뚫을 것은 아니었다.

       계약자를 통해서만 힘을 투사할 수 있는 제약 때문에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것뿐이지, 계약자인 이세린을 통해서 권능을 끌어올린다면 진성의 방에서 있었던 일 역시 생생하게 훔쳐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

       진성의 방 안을 꿰뚫어 보지 않아도, 말도 없이 저택을 나갔다는 것은 알 수 있었으니까.

         

       [ 계약자야, 나의 귀여운 계약자야. 경복궁 국립민속박물관에 사인참사검이 전시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피가 이어지지 않은 오빠를 데리고 가려고 했던 마음씨 좋고 귀여운 나의 계약자야. 안타깝게도 네 오빠는 말도 없이 또 어디론가 가버리고 말았구나. ]

         

       악마는 이세린의 품에서 빠져나와 식탁의 옆쪽에 섰다. 그리곤 저택 곳곳에 퍼뜨려놨던 자신의 ‘눈’을 다시 권능으로 풀어서 자기 몸에 흡수했다.

         

       그러자 이세린의 품 안에 안길 정도로 작게 변했던 몸이 점차 불어났고, 평소와 같은 커다란 크기로 변했다.

         

       ‘그, 그래…?’

         

       이세린은 그레모리의 매몰찬 말을 듣고 슬쩍 시선을 돌렸다.

         

       “흠. 당신이 만든 요리는 너무 매워서 아침에 겪는 피로와 졸음이 싹 가셔버리는 느낌이에요.”

         

       그녀가 시선을 돌린 곳에는 대마녀가 있었다.

       대마녀는 몸에 쫙 달라붙는 드레스를 입은 채 언제나처럼 욕인지 칭찬인지 모를 말을 셰프에게 내뱉고 있었다.

         

       “가, 감사합니다.”

       “그럼요. 감사해야겠지요. 아침부터 제 혀를 불로 지져버리는 듯한 이런 느낌은 쉽게 맛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죄, 죄송합니다….”

       “제 말은, 한국의 특징을 그대로 담은 음식답다는 이야기였어요.”

       “감사합니다.”

       “물론 맵기만 한 게 한국 음식이 가진 특징이라면 말이에요!”

       “죄송합니다!”

       “그게 나쁘다는 것은 아니에요. 멕시코 음식도 그렇잖아요?”

       “그, 그렇습니까?”

       “물론 저는 멕시코 음식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지만 말이죠!”

         

       대마녀는 띄웠다가 내던지기를 반복하며 셰프를 갈궜고, 셰프는 도저히 어느 장단에 춤춰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혼란스러워했다.

         

       [ 점차 까칠해지는 것이 참 볼만하구나. 그나마 진상은 부리지 않고, 그냥 까칠한 정도에서 그치는 것으로 그치긴 하는데….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이 조만간 일을 벌일 것 같기도 하니 참. ]

       ‘오, 오빠가 있으면 얌전해질 텐데….’

         

       이세린은 까칠하기 짝이 없는 오딜리아의 모습에 한숨을 쉬었다.

         

       ‘사인참사검이면 관심을 가질 것 같았는데, 대체 어디를 갔을까…?’

         

         

         

        * * *

         

         

         

       그분은 별을 심어 놓으셨네(Er hat euch die Gestirne gesetzt)

       땅과 바다의 인도자(Als Leiter zu Land und See)

       그대들이 기뻐하면서(Damit ihr euch daran ergotzt,)

       항상 하늘을 바라볼 수 있도록(Stets blickend in die Hoh)

         

       진성은 인천 공항에서 프랑크푸르트 암마인 국제공항으로, 프랑크푸르트 암마인 국제공항에서 가고시마 공항으로 비행기를 타고 이동했다.

         

       그는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신을 찬미하는 코랄 풍의 반주에 가만히 정신을 맡겼고, 자그마한 소리로 그려내는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정신을 조용히 가라앉혔다. 고요한 수면 속에서 춤을 추는 모래가 그 힘을 잃고 바닥에 가라앉는 것처럼, 흙과 함께 물이 맑게 변하고 그 아래에까지 태양이 쏘는 빛이 닿을 수 있게 하는 것처럼.

         

       그는 음악이 그려내는 침묵 속에서 정신을 가다듬고 있었다.

         

       미몽이 저를 어지럽게 하여도(Mich verwirren will das Irren;)

       당신은 저를 거기에서 품어 주십니다(Doch du weißt mich zu entwirren).

       제가 행동할 때나 시를 쓸 때에도(Wenn ich handle, wenn ich dichte,)

       당신은 제게 올바른 길을 알려 주십니다(Gib du meinem Weg die Richte).

         

       진성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빵 한 점, 물 한 모금 하지 않은 채 오직 음악에 미친 사람처럼 눈을 감고 한 자세를 유지한 채 계속해서 음악만을 들었고, 이러한 기행은 가고시마 공항에 비행기가 무사히 착륙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후우.”

         

       가고시마 공항에 도착한 진성은 화장실로 이동해서 가슴과 어깨를 쫙 펴고 마치 몸을 부풀리려는 듯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그것을 천천히 뱉었고, 다시 아까와 같이 몸을 부풀리듯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이러한 행위를 몇 번 반복하자 진성의 몸에 힘이 저절로 빠지고 근육이 이완되었다.

       진성은 적당히 힘이 빠진 몸을 이끌고 천천히 공항으로 나와 버스를 타고, 주술사를 잡기 위해 일본이 편집증적으로 설치한 감시망을 유유히 빠져나왔다.

         

       그리고 빠져나오기 무섭게 그는 연달아 축지를 사용해 이동했다.

         

       그가 일본에 만들어놓은 거점을 향해.

       사이고 리세가 기다리고 있을 신사를 향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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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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