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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9

       

       

       

       

       

       “끙차! 드디어 도착했다!”

       

       마차에서 내린 나는 기지개를 쭉 켰다. 

       

       “쀼우!”

       

       아르는 말랑콩떡 모드로 변해 내 어깨에 올라탔다. 

       

       내가 아르 인형을 선물해 준 이후로, 인형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게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뭐, 딸내미 모드든 말랑콩떡 모드든 간에 귀여우면 장땡이지.’

       

       가끔 인형과 같은 모습을 하고 인형 옆에 앉아서 똑같은 포즈를 취할 때면 실비아 씨가 ‘후후, 정말 누가 인형인지 모르겠네’ 같은 말을 해 주는데, 그럴 때마다 아르는 기분이 좋은지 활짝 웃었다. 

       

       ‘안 그래도 지금부터는 와이번 모드로 있는 게 미래를 생각하면 좀 더 나은 판단이야.’

       

       우리가 지금 도착한 곳은 투호르반이라는 대륙 동남쪽에 있는 도시다. 

       

       이 도시에서 그간 마차를 타고 움직이며 쌓인 여독을 좀 풀고, 이제 레키온이 활동 중인 동부로 완전히 넘어갈 생각이었다. 

       

       ‘흐음. 스토리 진행 상 지금쯤 레키온이 어디서 활동을 하고 있으려나.’

       

       원래 스토리대로라면 아직은 일반적인 정식 기사로 이런저런 전장에서 구르며 내부에서 유망주로 떠오르고 있어야 할 타이밍이긴 하지만.

       

       내가 스토리 흐름을 바꿔 버림으로써 이미 레키온은 하무트교를 잡고 성장에 가속이 붙었으며, 이제는 하무트교가 악마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다는 증거를 잡고 공식적으로 마왕군 토벌대장으로 황제에게 임명을 받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벌써 작은 기사단의 단장으로 임명 받고 파메라 성이나 매그론더 성에서 근무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아직 레키온을 어떻게 찾아가서 어떻게 만날 것인가는 고민을 해 봐야겠지만, 어쨌든 멀지 않은 미래에 만나게 된다면 아르는 지금부터 말랑콩떡 모드로 있는 것이 낫다. 

       

       ‘이곳에서 딸내미 모드로 있다가 나중에 레키온이 혹시 근처 도시에 들러서 아르에 대한 소문 같은 걸 듣게 되면 곤란해질 수 있으니까.’

       

       -이봐, 레온. 지난번에 내가 듣기로는 와이번이 아니라 아르라는 이름의 딸을 데리고 다녔다고 하던데?

       -어? 그, 그게….

       -수상하군. 혹시 드래곤이라서 폴리모프라도 한 거 아니야? 그걸 숨기고 나에게 접근한 걸 보니 역시 불순한 의도가 있었어. 죽어랏!

       -으아악!

       -삐유우!

       

       …뭐, 이렇게까지 되진 않겠지만 어쨌든 의심을 사서 좋을 건 없다.

       

       지금부터 말랑콩떡 모드로 눈도장을 찍어 놓는 게 안전한 방법이다.

       

       ‘이전에 딸내미 모드로 활동했던 도시들이 있긴 하지만, 그거야 거리가 있으니 둘러대긴 쉽지.’

       

       딸이 있지만 우리가 앞으로 해야 할 위험한 싸움에 데리고 다닐 수 없어 안전한 곳에 두고 왔다고 해도 되고, 둘러댈 거리는 많다. 

       

       ‘여튼.’

       

       지금은 말랑콩떡 아르를 데리고 다니며 휴식을 좀 취해야 할 타이밍.

       

       마차의 짐을 전부 아공간에 넣고 빈 마차를 맡겨 놓은 뒤, 우리는 거리를 걸으며 뭘 먹을지 행복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쀼우!”

       

       그때 어깨에 앉아 있던 아르가 저 앞을 가리켰다. 

       

       “오오, 뭐야. 빵집인가?”

       

       그곳엔 커다란 건물이 하나 있었는데, 마치 갓 만든 식빵처럼 옆으로 넓고 위쪽 지붕이 곡선으로 되어 있었다.

       

       ‘진짜 말 그대로 빵집이네. 빵처럼 생긴 집.’

       

       다가가서 대충 안쪽을 슥 보니, 사람들은 한창 안에서 빵을 골라 줄을 서서 계산을 하고 있었다. 

       

       “사람이 엄청 많네요.”

       “쀼우!”

       

       아르는 ‘유명한 빵집인가 바! 맛있게따!’라며 침을 꼴깍 삼켰다. 

       

       ‘빵집에 이렇게 사람이 많다니…. 아, 잠깐만. 투호르반이면….’

       

       나는 그제서야 「레키온 사가」를 했던 기억 속 투호르반을 떠올렸다. 

       

       ‘그야말로 빵의 성지라고 불리는 곳이었지.’

       

       이 컨셉에 잡아먹힌 듯한 식빵 모양의 가게도, 「레키온 사가」에서 본 기억이 있었다.

       

       내가 이제서야 그 사실을 떠올린 이유는 간단했다.

       

       ‘어차피 빵은 내 캐릭터가 먹는 거였으니까….’

       

       다른 고급 음식들이 그랬듯이, 투호르반의 빵은 맛있다는 소문만 자자할 뿐 게임을 플레이하는 나에게 이득이 되는 게 전혀 없었다.

       

       딱히 체력이 많이 회복되는 편도 아니었기도 하고.

       

       ‘오히려 아이템 설명마다 맛있다는 묘사만 가득 해 놔서 군침을 흘리게 했지.’

       

       <소금빵>

       가격 : 10쿠퍼

       효과 : HP 소량 회복, 600초 동안 힘+1 (동일 계열 음식 효과는 가장 높은 것 하나만 적용됩니다.)

       -투호르반의 빵집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스테디 셀러 중 하나. 첫맛은 평범하고 심심한 빵 맛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씹으면 씹을수록 입 안에 퍼지는 진한 버터 향과 질리지 않는 담백한 맛, 그리고 부드럽고 폭신한 식감으로, 먹다 보면 왜 사람들이 소금빵을 열렬히 찾게 되는지 깨닫게 된다.

       

       가장 기본적인 빵인 소금빵조차도 저렇게 설명을 달아 놓으니, 다른 빵은 얼마나 심하겠는가.

       

       게임을 하다 말고 일어나서 진짜 빵집에 갔다 오게 만드는 고약한 곳이라 한 번 가고는 다시 쳐다보지도 않았던 도시가 바로 투호르반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제는 나도 데이터 쪼가리가 아닌 진짜 빵을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흐흐. 그래, 얼마나 맛있나 나도 한번 직접 먹어 보자.’

       

       나는 곧바로 실비아 씨와 아르를 데리고 빵집으로 들어갔다. 

       

       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엄청나게 많은 빵이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우리를 맞이했다.

       

       “우와…. 진짜 눈에 보이는 게 다 빵이네요.”

       “그러게요. 종류가 엄청 많아요.”

       “쀼웃!”

       

       아르도 이제 냄새까지 맡으니 못 참겠는지 조금 흥분한 쀼 소리를 냈다. 

       

       그때 옆에서 직원으로 보이는 누군가가 집게로 빵을 정리하다가 우리에게 급히 다가왔다.

       

       “엇, 고객님. 혹시 테이머십니까?”

       “그런데요…?”

       “그게, 출입 금지까지는 아닙니다만…. 혹시라도 사역마가 빵을 조금이라도 건드릴 경우엔 반드시 구매를 하셔야 한다는 점 미리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직원은 방금 들어온 손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게 굉장히 죄송스럽다는 듯 연신 고개를 숙였다. 

       

       “아아, 물론이죠. 건드린 빵 사는 거야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감사합니다!”

       “그렇게까지 감사할 건 아닌데…. 혹시 전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직원은 잠시 망설이더니 솔직히 털어놓았다. 

       

       “사실은 이전에 어떤 손님이 조금 작은 레드 보어를 끌고 가게까지 들어오셨다가, 빵 냄새에 흥분한 레드 보어가 빵이 놓인 큰 테이블 하나를 통째로 엎어 버리는 바람에….”

       “저런.”

       “심지어 그때 소란을 틈타 레드 보어가 코로 이것저것 빵을 건드려서 의심 가는 건 전부 다 폐기 처리해야 했었습니다.”

       “보상은 받았나요?”

       “테이블 엎은 건 보상을 받았지만, 코로 건드린 건 극구 부인하면서 돈을 안 내려고 하셔서…. 어쩔 수 없이 그냥 보내 드렸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렇다면 이런 반응도 이해가 간다. 

       오히려 히파르 온천 때처럼 아예 출입 금지를 시키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

       

       “걱정 마세요. 저희 아르는 굉장히 똑똑하고 순해서 똑바로 원하는 빵만 골라 가져갈 테니까요.”

       “쀼웃!”

       

       아르가 맡겨 달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직원의 표정도 안심한 듯 풀어졌다. 

       

       “정말 그래 보이네요. 사역마가 참 귀엽습니다.”

       “저기에 있는 쟁반이랑 집게 이용하는 거 맞죠? 아르야, 저기 집게로 아르가 먹고 싶은 거 집어 가지고 쟁반에 놓으면 돼.”

       “쀼우, 쀼!”

       

       우리는 즉시 쇼핑을 시작했다. 

       

       실비아가 가장 커다란 쟁반을 골라 들고, 아르는 내 품에 안긴 채 양손으로 집게 양쪽을 야물딱지게 잡은 상태로 먹고 싶은 빵을 찾기 위해 반짝이는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뀨우.”

       

       그리고 먹어 보고 싶은 빵이 있으면 집게를 뻗어 집은 다음 실비아가 들고 있는 쟁반에 척, 하고 옮겼다. 

       

       “뀨웃. 뀨.”

       

       내가 아르를 빵이 있는 곳으로 안아 데리고 가고, 아르는 집게로 빵을 집어서 실비아가 들고 있는 쟁반에 놓는다. 

       

       이 완벽한 호흡으로 빵을 척척 담아 내자, 처음에는 우릴 보면서 ‘저러다가 또 사역마가 일 내는 거 아니냐’, ‘아직 어려 보이는데 아무 빵이나 손으로 막 만지고 찌르면 어떡해’ 하면서 수군거렸던 손님들도 어느새 아르의 집게 솜씨에 감탄을 했다. 

       

       “어머나, 어린 사역마가 아주 야무지게 집게로 빵을 집네.”

       “어쩜 저렇게 똑똑한지…. 말도 다 알아듣는 거 같어.”

       “작게 뀨 소리 내는 것 좀 봐. 너무 귀엽다….”

       “저 앙증맞은 손으로 빵 잡고 냠냠거리면서 먹는 거 생각하니까 더 귀여워.”

       

       그중에는 다가와서 아르에게 빵을 사 주겠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얘야, 내가 빵 사줄까? 응? 맛있게 먹는 거 보고 싶어서 그래.”

       “쀼, 쀼우…?”

       “하하, 괜찮습니다. 안 그래도 이따가 계산 하고 나서 먹을 거니까 그때 보세요.”

       “정말요? 야호!”

       

       심지어 개중에는 아르의 계약자인 나에게 호감을 사서 아르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저기요, 혹시 용병이시면 이따 저랑 술 한 잔 안 하실…. 히익!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

       

       별안간 무슨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화들짝 놀라 사라지길래 뒤를 돌아보았지만, 그곳에는 실비아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서 있을 뿐이었다. 

       

       ‘…뭐였지?’

       

       여튼, 우리가 빵집을 한 바퀴 쭉 돌았을 때는 쟁반에 빵이 잔뜩 쌓여 있었고.

       

       “이거 계산해주세요!”

       “쀼웃!”

       

       우리는 빵을 한가득 계산했다. 

       

       ***

       

       레키온과 알렉스의 만남은 생각보다 빨리 이루어졌다. 

       

       “하무트교의 추가 움직임에 대한 정황을 포착했어. 계속 추적해서 숨겨진 지부 위치를 특정해 볼게.”

       “항상 고마워, 알렉스. 진짜 네 공이 컸어. 네 신분만 아니었으면 만천하에 너의 실력을 자랑했을 텐데.”

       

       알렉스는 그 말에 피식 웃었다.

       

       “하하. 됐어. 그런 걸 원했으면 정보부 같은 덴 안 들어갔겠지. 그나저나 너는 잘 지내고 있냐? 데비랑은 잘 돼가?”

       “그럼. 잘 되어가고 있지. 항상 합을 잘 맞춰서 하무트교를 토벌하고 있으니까. 게다가 이번엔 데비가 무려 하무트교와 악마 사이의 관계를 입증할 증거를 확보하는 데에 큰 공을 세웠다고.”

       

       레키온의 흥분한 표정에, 알렉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됐다. 그럼 그렇지. 데비가 불쌍하다, 데비가 불쌍해.”

       “불쌍하긴 하지. 괜히 나 때문에 위험하게 둘이 임무도 다니고 이게 무슨 고생이야. 그래서 이번에 휴가도 줬어. 할머니한테 좀 갔다 오라고.”

       “…….”

       

       알렉스는 한 번 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럼 나는 다시….”

       “아, 잠깐만. 알렉스.”

       “왜?”

       

       레키온은 잠시 허리를 숙이더니 아르 인형을 꺼냈다. 

       

       “그건 또 뭐야? 네가 딱 좋아하게 생겼네.”

       “그치? 이번에 데비가 휴가 갔다가 사온 건데, 이거 실제 모델이 있대. 어떤 손님의 아르라는 사역마인 모양이야.”

       

       레키온은 헤벌쭉 벌어진 표정으로 아르 인형에 뺨을 한 번 비빈 후, 알렉스를 보며 입을 열었다. 

       

       “진짜 이건 개인적인 부탁인데, 혹시 이 아르를 좀 찾아줄 수 없을까? 나 진짜 실물 한 번만 보고 싶어.”

       “…….”

       

       알렉스는 세 번째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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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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