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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9

       분명, 바라 마지않던 상황이었다.

        

       야심차게 준비한 강의의 필요성은 깔끔하게 사라졌고- 도적이 큐마다 넘쳐나다 못해, 사람들이 서로 도적을 하겠다고 싸우고 있었으니.

        

       게다가 그 모든 건 그동안 한 땀 한 땀 쌓아온 성과의 집합 덕분 아닌가.

        

       준비해둔 방대한 컨텐츠…… ‘도적을 고르는 방법’부터 시작해서 ‘티배깅 심화과정’까지 3시간은 족히 이어졌을 특제 불 붙이는 방법 강의 계획이 어그러지기는 했지만. 그거야 뭐 아무렴 어때.

        

       오늘 셔터 내린다고 선언하며 파티를 열어도 이상할 것 하나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가슴에 무언가가 얹힌 기분이 드는 이유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하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마음 속을 조금만 살펴보아도……아직도 타협도 수용도 못하고 있기에, 속 시원히 기뻐하지도 못하는 내 자신이 느껴지더라.

        

       정말이지, 참 피곤한 사람 아닌가.

        

       옅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이어서 연결동작마냥 능숙하게 뻗은 손에 막상 잡히는 것이 없어, 뒤늦게 눈을 돌려 확인하니-

        

       아……소주잔. 선물했었지.

        

       갈 곳을 잃은 채 헤매던 시선은 이내 화면의 채팅창, 그리고 접속중인 시청자수를 나타내는 숫자에 안착했다. 늘상 느끼지만, 잘 납득이 되지 않는- 비현실적인 숫자다.

        

       저 많은 사람들이 어쩌다 여기에 이렇게 모인 건지.

        

       저 많은- 그리고, 고마운- 사람들에게 나는 뭘 줄 수 있는 건지.

        

       그리 고민을 하며 침묵에 빠진 동안, 채팅창과 도네이션에서는 여러 아이디어와 제안들이 난무하고 있었다.

        

       ……고민의 종류를 오해한 것 같기는 한데. 평소 내 행실을 생각하면 납득은 가서, 고개를 절로 끄덕일 수밖에 없더라.

        

       그동안 함께 합을 맞춰온 시청자들이 많은 덕분일까. 제법 괜찮은 생각들도 눈에 띄었다. 골드 시청자를 추첨해서 교육방송을 하라는 아이디어나, 골드부터 다이아까지 뇌대리 플레이를 하자는 제안처럼.

        

       특히 후자는……지금 상황에서 최적인 것 같은데. 도적 픽에 이미 성공한 사람들 화면만 보면, 픽이 꼬이는 문제도 없고.

        

       지금 제일 큰 문제는 ‘하위 티어에서 도적 안 먹히니까 할 줄도 모르면서 도적 고르지 마라’라고 선언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니, 더욱 좋은 아이디어 같았다. 현지인 도적도 오더 조금만 받으면 캐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면, 저런 사람들과 싸울 때 쉽게들 인용할 수 있는 반례가 되지 않을까. 운영 외워왔으니까 골라도 된다……같은 느낌으로.

        

       심지어 골드보다 더 낮은 티어에서 시작해도 좋을 것 같았다. 운영 조금만 배우면, 한국어가 통하지 않는 티어가 대충 휘적거리는 피지컬로 플레이 해도 이길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건, 괜찮은 그림같은데.

        

       겸사겸사, 미뤄왔던 전반적인 운영 강의도 될 거고.

        

       응.

        

       도적 유저들에게도 도움이 될 거고, 무엇보다……대세가 도적이 되도록 만드는 데에는 정말 큰 도움이 될 것 같은 것이. 좋은, 분명 좋은 아이디어인데…….

        

       여기 모인 사람들이 정말 보고 싶은 방송이려나.

        

       잘 모르겠지만, 아닐 것 같았고-

        

       오늘따라 그게 참 싫었다.

        

       “집단지성을 모아볼까요. 도적2지하가 정답인 건 이제 다들 알 텐데. 솔랭에서 분쟁이 생기는 이유가 뭘까요.”

        

       슬쩍 말을 던져두고, 책상 옆 박스에서 VR기기를 꺼내 들었다. 속옷부터 갈아입고.

        

       이거……이게, 왼팔이었던가. 파츠가 한두개도 아닌데, 아무리 봐도 너무 헷갈리게 만들어 뒀어. 다음엔 이름표라도 붙여놔야지.

        

       음……아, 이건 복부. 기억나네. 그리고, 이게……아니, 이건 대체 뭐야.

        

       별포크랑 통화 끊지 말 걸, 이라고 후회하며 홀로 세팅을 마칠 때까지 시간이 다소 걸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전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니까.

        

       조용히 있었는데도 눈치챈 사람도 없는 것 같고.

        

       잠시 채팅창을 보고 있자니, 의견은 대충 정리되고 있었다. 물어봐놓고 정작 확인은 안 한 건 조금……조금, 미안하긴 한데.

        

       지금이라도 요약을 하면-

        

       “그러니까, 프로팀은 프로팀이고 솔랭은 솔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고, 급조된 팀에서 도적을 믿고 운영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드물다……이런 거니까.”

        

       ……이렇게 보니, 역시 뇌대리가 정답인 것 같기는 한데.

        

       아니, 역시 아니다.

        

       분명 그걸 신청하는 사람은 나름 이 방송이, 도적이, 그리고 어쩌면 내가……좋아서 보던 사람일 텐데. 보나마나 뭐 하나 미스하면 이 많은 사람들한테 온갖 조리돌림을 받을 거고.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다.

        

       도적부흥운동도 슬슬 막바지 아닌가. 어쩌면 이미 끝났을 지도 모르고. 무언가가 남았다고 해봐야, 정말로 마무리……완성된 제품에 리본 하나 다는, 그런 느낌이니까.

        

       스타트업이 상장을 앞두고 여기저기에 분칠하듯이, 사회운동도 과실을 수확하기 직전 즈음부터는 슬슬 얼룩진 곳을 지워야 하는 법이다.

        

       그리고-

        

       [증명]

        

       원래, 언젠간 보여주려 했었다.

        

       커뮤니티에서, 별 실력도 쓰레기 같은 여스를 빨다 못해 프로를 가르쳤다고 빠네 어쩌네, 그런 공격이 참 많았더랬다.

        

       불쾌하기야 했지만, 그러려니 했는데. 그걸 일일이 싸우며 키배를 벌이는 시청자들을 위해서라도 계속 손을 놓고 있을 순 없겠더라.

        

       그리고 티어가 곧 마패이고 신분인 게임 속 세계에서, 실력에 관한 논쟁을 잠재우는 방법은 단 하나 뿐인 고로,

        

       “솔랭에서도 증명하면 되는 거 아닌가.”

        

       더 이상 미루지 않고, 오늘 시작해야겠더라.

        

       도적부흥운동에 제일 효율적인 방법이 무엇인지는……잠시, 접어두고.

        

       * * * *

        

       -또옥. 또옥.

        

       갑갑한 지하의 통로가 더욱 좁아지는 구역. 조금씩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천둥처럼 울려 퍼지는 구불구불한 미로는 시커먼 어둠으로 가득했다.

        

       조금 보이는가 하면, 다시 꺾여 들어가는 길의 반복. 보이는 거라고는 축축한 회갈색 벽돌이 쌓인 벽과, 시야가 멎는 곳을 메우는 어둠 뿐이다.

        

       따라서 바로 몇 걸음 앞에 있는 저 모퉁이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알고 싶다면, 직접 몸을 들이밀어야만 한다. 벽돌을 투시하는 재주가 없는 이상에야.

        

       그리 제한된 시야는 공포감으로 이어졌다.

        

       저 벽의 너머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지. 저 어둠 속에서 포식자가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러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바삐 걸음을 내딛어야 하는 급박한 전장에서, 공포감에 움츠러들 틈은 없었다.

        

       하지만 결코 무시해서도 안 될 일이다.

        

       어둠과 미지에서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는 인간들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가 있으니.

        

       물론,

        

       -절그럭.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도 있는 법이었다.

        

       묵직한 갑옷소리와 함께 어둠을 헤치고 등장한 기사는, 동네 마실이라도 나온 듯이 앞으로 걸어 나갔다. 오른쪽 어깨에 비스듬히 걸친 대검이 흡사 개나리봇짐마냥 보이는 자세와 태도.

        

       세상 물정을 몰라 두려움도 없는 어린아이와도 같은 걸음걸이였더랬다. 보고 있노라면, 흘러 넘치는 안일함이 육안으로 보일 듯한. 자신의 목숨으로 그러한 안일함의 대가를 치를 머저리라고 단언할 수밖에 없는-

        

       그러나 피와 칼이 흐드러지는 전장의 한복판에 갑자기 나타난 머저리를 상대로 방심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그곳까지 도달하는데 성공한 이유가 있을 터 아닌가.

        

       어둠 속에 몸을 숨긴 도적은 그리 생각했다.

        

       나름 손에 꼽히는 이들만 모인 전장이다.

        

       의도가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터.

        

       그러니 도적은 숨을 죽인 채 기다렸다. 무심을 넘어 무식해보이는 저 기사가 자신을 지나쳐, 오크들이 무리지은 방에 향할 때까지.

        

       그리고, 추격.

        

       오크와 전투가 개시되는 순간 뒤통수에 칼을 꽂아주면 되겠지. 손에 잡힌 단검은 아직 익숙하지 않았으나, 어찌 사용해야 하는지는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열등하다 생각하여 들지 않았던 무기일 뿐이다.

        

       ‘이게 뭐가 또 그렇게 어렵다고, 호들갑은 진짜-’

        

       공략 강의만 몇 차례 보아도 그 운영법은 뻔했다. 도망다니면서 보물상자나 좀 열다가, 비열하게 뒤통수를 칠 수 있을 땐 단검 좀 휘두르면 끝 아닌가.

        

       ‘어차피 키워주는 보모나 하나 붙이고 다니면서 상자 좀 열다가, 운이 트이면 게임 쉽게 이기는 직업이니까. 상자를 세 개 이상 열 때부터 튀어나오는 보상이 과하여 주목을 받고 있을 뿐이지, 이딴 거. 호쾌한, 도끼에 의지해서 남자답게 전장을 개척하는 광전사에 비하면…….’

        

       달콤한 냄새를 맡고 나도 꿀 한입 하자고 달려들어 단검을 쥔 주제에 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그리 특이할 것도 없었다. 최근 도적의 후드를 뒤집어쓰고 전장으로 달려온 이들의 생각이 대개 그러했으니.

        

       그나마 ‘속보! 월즈에서 대활약한 오소독스의 도적 전격 분석!’ 따위의 지튜브 영상이라도 나름 열심히 보는 성의가 있었다는 점에서, 상위 50%에는 해당하는 도적이었다.

        

       그러니, 추격할 때 다섯 걸음 어치 안전 거리를 확보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기사의 공격에서 언제든지 벗어날 수 있게끔.

        

       천천히. 저 기사가 오크팩과 교전을 시작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뒤를 치면 되리라. 앞으로 세 걸음. 두 걸음. 한 걸음-

        

       《저런.》

        

       그러나 마지막 걸음이 내딛어지는 일은 없었다. 차분히 걸어 나가던 기사가 급작스럽게 회전하듯 돌아서는 것을 보고 얼어붙은 도적의 귀에,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드러운, 그리고, 어째서인지 실망한 듯한-

        

       ‘어? 무슨-’

        

       《그렇게 숨으면 보여요.》

        

       -콰앙!

        

       땅을 박차는 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도적의 시야를 거대한 검이 가득 메웠다. 내리찍듯 휘둘러지는 대검.

        

       일단 피해야 후일을 도모할 수 있겠으나- 대체 어디로 움직인단 말인가. 뒤로는 피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저 리치의 끝이 어디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기에.

        

       ‘좁아서-!’

        

       그러나 옆으로 피하기엔 이미 늦었고- 지형이 좋지 않다. 가뜩이나 좁은 통로가 더욱 좁혀지는 지역. 단검이 활약하기 좋은 위치라고 생각해서 잡았던 자리가 역으로 목을 조르고 있었다.

        

       그렇게 대검에 머리가 짓이겨지기 직전. 기겁하며 시전한 회피기에, 도적의 신형이 흩어지듯 사라졌다가 세 걸음 뒤에서 나타났으나-

         

       후일을 도모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기사의 첫 공격은 이미 캔슬된지 오래. 그리고 멈출 생각 따위 조금도 없이 관성을 이용한 돌진을 계속한 기사에게 세 걸음은 1초도 안 되어 좁힐 수 있는 거리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기사는 도적이 다시 나타날 위치를 조금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알고 있다는 듯이, 이미 허공을 향해 검을 휘두르고 있었더랬다.

        

       그러니 도적이 다시 나타났을 땐, 이미 머리와 대검이 맞닿아 있었다.

        

       《그리고 그거 돌진기니까……앞으론 그렇게 쓰지 마세요.》

        

       시야가 어둡게 물들기 전, 마지막으로 주어진 충고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민시홍 님, 1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업로드가 늦어져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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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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