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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9

       “으헥!?”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켜보니, 밤이었다.

        

       주변이 아주 깜깜하지는 않았다. 저 커튼 너머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이 보였고, 이 안에도 약하게 불이 켜져 있었으니까.

        

       눈을 두어 번 깜빡이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래도 여기는 병원인 모양이다.

        

       ……이쪽 세상으로 온 지 이제 반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그동안 병원을 몇 번이나 오는 건지.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는 이렇게 병원에 올 일이 별로 없었는데.

        

       “…….”

        

       ……음, 현실도피는 그만하자.

        

       그래, 도피는 그만해. 키스 당하고 도망가버린 쫄보.

        

       “…….”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울리는 것은 반가웠지만—

        

       아니, 나도 일어나고 싶어서 일어난 건 아니거든?

        

       아무튼 충격받아 깨어난 건 맞잖아.

        

       “…….”

        

       젠장, 반박할 수가 없다.

        

       그것도 어쩔 수가 없다. 나는 그 순간에 사라와 키스를 나누게 될 줄은 전혀 몰랐으니까.

        

       아니, 얼굴을 들이댄 건 내가 맞기는 한데, 내 볼을 잡은 건 사라였잖아. 게다가 내가 한 게 아니라 당한 거였고.

        

       솔직히 당황해도 이상할 게 전혀 없는 상황이 아닌가?

        

       전생에 키스 한 번 못 해봤어?

        

       ……젠장, 다시 한번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래, 나는 키스 한 번 못 해봤다.

        

       애초에 여자친구가 있어야 키스고 뭐고 해볼 게 아닌가. 전생 내내 솔로였던 나에게는 사실 여자친구는 둘째치고 여자인 친구도 없었다.

        

       …….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데, 나를 열심히 놀리던 사라가 갑자기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동시에 내 가슴 깊은 곳을 스쳐 지나가는 감정은—

        

       아, 아니거든!

        

       —내가 그 감정을 뭐라고 단정 짓기도 전에, 사라가 그렇게 외쳤다.

        

       아니야! 아니야!

        

       ……뭐가 아닌데?

        

       아무튼 아니야!

        

       아니, 입은 본인이 맞춰놓고 인제 와서 이런 말을 하니까 뭐라고 할 말이 없네.

        

       나는 괜스레 머리를 긁적인 뒤, 다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보아하니 응급실은 아닌 모양이다. 응급실은 그 시간이 몇 시이건 불이 켜져 있으니까. 아마 응급실에 왔다가 다시 일반 병실로 올려졌을지도.

        

       팔이 살짝 거추장스러워서 시선을 내려보니, 왼팔에 링거줄이 꽂혀 있었다. 그 선을 따라 시선을 올려보니 팩이 거의 비어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여기로 온 지 꽤 시간이 흐른 모양이다.

        

       ……하긴, 밖이 컴컴한 걸 보면 그럴 수밖에. 내가 최나경에게 잡혀갔던 시간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때는 적어도 하늘이 파랬다. 딱히 저녁인 것 같지도 않았었고.

        

       “으응…….”

        

       누가 앓는 소리를 내서 그 소리를 따라 시선을 내려다보니, 그곳에는 하늘이가 있었다.

        

       병원 침대 옆의 보호자용 보조 침대를 펼치고, 거기 앉아 침대 위로 엎드린 채 잠들어 있었다. 뭔가 안 좋은 꿈이라도 꾸는 듯, 미간을 잔뜩 찡그리고 끙끙 앓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저 누워있는 것이 아니라 굳이 그렇게 앉아있는 이유가 조금 궁금해지려던 차에, 그 옆에 있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하늘이 옆에는 소희가 앉아있었다. 메이드 복 차림은 아니었다. 학교에서 바로 따라 나온 듯 교복 차림이었다.

        

       소희는 하늘이와 똑같은 자세로 엎드려서 끙끙 앓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는 수아가 똑같은 자세로 있었고.

        

       ……이러니 누워 있을 수 있을 리가 있나.

        

       엄청나게 불편해보이는 자세로 잘도 저러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만큼 나를, 그리고 ‘사라’를 생각했기에 이렇게 있을 수 있는 거겠지.

        

       나에게서 가장 가까운 곳에 엎드린 하늘이의 옆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는데, 가슴 속에 따뜻한 감정이 퍼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평소에 내가 다른 아이들과 친밀하게 지내면 대놓고 언짢은 감정을 내뿜는 사라였는데, 아마도 스스로 몸을 움직이던 시간 동안 이 아이들과 정이 많이 들었던 모양이다.

        

       아, 아니거든!?

        

       누가 뭐라니. 아니면 말고.

        

       의식 깊은 곳에서 사라가 이를 박박 가는 것이 느껴졌지만, 나는 그저 쓰게 웃으며 어깨를 한번 으쓱일 뿐이었다.

        

       사라도 그걸 느꼈는지,

        

       돌아오기만 해봐…….

        

       라고 중얼거렸다.

        

       무섭기도 하지.

        

       사라의 그 투정을 받아주면서, 나는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 보니, 그때 한 명이 더 있었을 텐데.

        

       그러니까……

        

       “흐힉!”

        

       그래, 양혜인.

        

       여전히 검은 옷으로 몸을 감싸고 침대 왼쪽 구석에 서 있는 그 모습을 발견하고, 나는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 그런 소리를 내고 말았다.

        

       안 그래도 어두침침한 상황인데 구석에 저러고 서 있으니 호러가 따로 없었다.

        

       귀신 나오는 영화 말고.

        

       집에 누가 찾아오는 종류의 스릴러물.

        

       게다가 양혜인은 그 자세 그대로 서서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어…….”

        

       “일어나셨습니까, 아가씨.”

        

       “네.”

        

       왠지 대답을 꼭 해야 할 것 같아서 나는 얼른 대답했다.

        

       그리고 다소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언제부터 그러고 있었어요?”

        

       하고 물었다.

        

       “제가 여기 돌아온 뒤부터입니다.”

        

       ……그러니까 그게 몇 시부터냐고.

        

       그리고 돌아오다니, 어디 다녀오기라도 한 건가?

        

       나는 양혜인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머리에 검은 모자를 쓰고, 온몸을 검은 옷으로 둘둘 두른 채로 한 손에 장도리를 들고 차 안으로 기어들어 오던 모습.

        

       그때는 엄청나게 반갑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생각해보니 무지막지하게 무서운 모습이었다. 게다가 차 창문을 깼던 것도 양혜인 본인이고.

        

       ……설마 최나경 뒤를 쫓아서 그 목숨을 확실하게 끊어버렸다거나 한 건 아니겠지?

        

       “……괜찮아요?”

        

       당연히 차마 그렇게는 물어보지, 못하고, 나는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물었다.

        

       “예, 다친 곳은 없습니다. 그보다, 아가씨는 괜찮으신지요.”

        

       “저는…….”

        

       음, 솔직하게 말하자면 별로 괜찮지 않았다.

        

       여전히 다리와 팔이 아팠다. 입고 있는 옷은 교복이고, 하반신에는 이불이 덮여 있어 상처가 났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여전히 아팠다. 최나경이 어지간히 세게 묶었던 모양이다. 확실히, 그때는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가 고역일 정도였으니까.

        

       게다가, 차 창문에 열심히 박아댄 머리도 아팠고.

        

       ……이쪽은 아직 보지 못했어도, 확실하게 멍이 들었다고 생각한다. 욱신거리는 것이 심상치가 않았다.

        

       아무래도, 내가 사라의 몸을 지나치게 거칠게 다뤘던 모양이다.

        

       뭔 헛소리야.

        

       ……응?

        

       이제 평생 같이 있을 거라며. 그럼 이 몸은 너의 몸이기도 하잖아. 위기에서 도망치려고 하다가 조금 다친 건데, 그런 거로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어.

        

       아니, 그래도—

        

       괜찮다고. 원래 주인인 내가 괜찮다잖아.

        

       “…….”

        

       자꾸 미안하다고 했다간 또 사라가 짜증을 낼 것 같아서, 나는 그냥 그런 것으로 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회장님은요?”

        

       내가 그렇게 물어보자, 양혜인은 곧장 내 쪽으로 허리를 푹 숙이면서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최나경 회장은 그 자리에서 바로 도주했습니다.”

        

       ……차가 또 한 대 있었나? 아, 양혜인이 몰고 온 차를 타고 도망가기라도 했나?

        

       “지나가던 차에 몸을 의탁했습니다.”

        

       “…….”

        

       어…….

        

       그 상황에서 히치하이크를 해주는 차가 있다는 건가?

        

       “경찰은 우연히 지나가던 차라고 보고 있지만, 일단 추적 중입니다.”

        

       “경찰도 왔나요?”

        

       “예, 그 직후에 저희가 경찰을 불렀습니다.”

        

       음…….

        

       하긴, 이번 일은 확실히 경찰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무리 뇌물을 먹이더라도 이렇게까지 사건이 확실하게 벌어졌으면 경찰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겠지. 집안 내에서 끝나버리면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아동학대와는 다르게, 이번 건은 무려 납치였으니까.

        

       게다가, 딸의 몸을 노린 납치.

        

       “…….”

        

       괜찮겠어?

        

       아무리 그래도, 사라의 엄마였다. 물론 나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그런 사람이 ‘엄마가 아니다’라고 해버리면, 행복했던 사라의 어린 시절은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사라가 그 사람을 어머님이라고 부르며 사랑했던 이유는, 그 어린 시절을 잊지 못했기 때문인데.

        

       그래서, 나는 사라에게 물었다.

        

       정말로 이대로 일을 진행해서, 최나경을 단죄하는 것이 괜찮은지.

        

       ……괜찮아.

        

       사라는 그저 그렇게만 대답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목소리 안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일은 그대로 진행되도록 내버려 두자. 경찰이 협조를 요청하면 확실하게 협조하기로 하고.

        

       “으응……?

        

       우리 둘의 말소리가 조금 컸던 걸까?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자고 있던 하늘이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났다.

        

       조금 힘들게 고개를 들고, 손으로 눈을 비비던 하늘이와 나의 눈이 딱 마주쳤다.

        

       “……사라?”

        

       “응.”

        

       나는 그런 하늘이에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주며 말했다.

        

       “돌아왔어.”

        

       “……사라야!”

        

       하지만, 하늘이는 나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고, 그대로 나에게 달려들어 내 목을 꽉 끌어안았다.

        

       “사라……!”

        

       그리고, 그 뒤로 말을 잇지 못하고 그저 그렇게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어엉……?”

        

       “으으…….”

        

       그리고 그 소리를 뒤이어서 소희와 수아도 거의 동시에 잠에서 깨어나고,

        

       “사라야!”

        

       “……사라……!”

        

       둘 다 그렇게 소리쳤다.

        

       다들, 말하는 법을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 내 이름을 몇 번이나 부르면서 나에게 달려든 탓에, 나는 세 사람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뒤로 넘어가 버렸다.

        

       하지만, 그 무게감은 기분 좋은 무게감이었다.

        

       ……아, 돌아왔구나.

        

       그 행복한 무게감을 느끼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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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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