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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9

       갈색의 여우가 저가 대단한 줄 알고 고개를 들고 자존심을 세우는 모습은 백화령의 마음 깊은 곳에 숨겨진 무언가를 건드렸다.

       

       무어냐.

       

       저 작고 귀여운 것은.

       

       말을 하는 것도 신기하고 도술을 다루는 것도 재밌다만 무엇보다 백화령의 흥미를 끄는 건 여우가 도망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짐승이고 신수고 간에 짐승이라면 응당 그녀를 보자마자 도주를 택하거늘 저 자그마한 것은 제 자리에 서서 자존심을 세우고 있지 않나.

       

       지닌 기운이 고강한 것으로 보아 평범한 짐승은 아닌 듯 한데 나중에 동의를 구하면 쓰다듬는 것도 가능할까?

       

       “본인이 아무리 세상 물정에 서투르다 하나 네 놈에 관하여 모를 정도는 아니다. 천마여.”

       

       이런. 이름이 너무 널리 퍼져 있는 것도 여러모로 귀찮은 일이구나.

       

       백화령은 가벼이 혀를 차면서 적의에 찬 여우의 얼굴을 살폈다.

       

       꽤나 오랫동안 속세와 떨어져 지냈기에 슬슬 본인의 얼굴이 잊혀질 때도 되었다 생각했다만 아무래도 여태 보낸 세월이 본인의 업보에 비하면 모자랐던 모양이야.

       

       “그대의 손으로 멸했던 이 화산에 손님으로 찾아왔다니. 그 말을 믿으란 소리냐?”

       

       이를 어찌해야 한담.

       

       곰방대의 연기 너머로 여우를 바라보던 백화령은 귀찮은데 적당히 기절을 시켜둘까 생각을 하다가 저 귀여운 것에게 손을 대긴 그렇다 싶어 일단 설득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여기서 험악한 일을 저질렀다가 미움을 사 쓰다듬을 기회를 날려버리면 곤란하지 않나.

       

       “당시 본좌가 화산을 멸한 이유는 어디까지나 복수 때문이었다. 복수해야 할 이들이 모두 사라진 이 곳을 본좌가 적대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느냐.”

       “믿을 수 없다.”

       “애초에 말이다. 본좌가 정말 이 곳을 부술 생각이었다면 이리 대화를 하고 있었겠느냐?”

       

       백화령이 슬며시 자신의 내기를 주변에 풀자 여우가 몸을 낮추면서 경계를 보였다.

       

       천마신공의 내기가 가진 패악스러움은 저 먼 곳에서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험악했던 것이다.

       

       “그럼 묻겠다. 이 곳에 왜 방문하러 하는가.”

       “말하지 않았느냐. 손님으로써 찾아왔다고. 이 곳에 민가라는 아해가 천마신공을 사용한다 하기에 한 번 만나러 왔다.”

       “민가를?”

       “그래. 화산을 무너트리고 무림맹을 부수어 버린 그 아해와 한 번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말이다.”

       

       민가라는 이름을 언급한 순간부터 여우가 지닌 경계의 기색이 옅어졌다.

       

       “그렇담 민가를 만나고 나면 돌아갈 것이냐?”

       “그럴 생각이다.”

       

       백화령은 경우에 따라 무를 나눌 가능성은 있어도 먼저 공격할 생각은 없었다.

       

       만일 그런 일을 저질렀다가는 그녀의 제자가 기함을 할 것이 분명했기에.

       

       안 그래도 일을 떠맡기는 바람에 기분이 상해있을 녀석에게 또 다시 안 좋은 소식을 가져다 주었다가는 속앓이를 하다 기절해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백화령은 제자의 뼈와 근육을 상하게 만들지언정 그의 속을 해하고 싶진 않았다.

       

       “지금 화산에 민가는 없다.”

       “기다리도록 하마.”

       “화산은 재건된 지 얼마 안 되어 제대로 된 손님대접을 할 수 없다만.”

       “괜찮다. 곰방대를 피우며 달구경을 하면 그만이니.”

       

       몇 번인가 대화를 나눈 후 갈색의 여우는 백화령에게서 시선을 떼어내고는 허공으로 폴짝 뛰었다.

       

       그러자 여우를 중심으로 연기가 나더니 그것이 걷혔을 때에는 그 곳에 여우의 귀와 꼬리를 지닌 소녀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둔갑술인가.

       

       백화령은 방금 전 참으로 귀엽던 여우가 사라졌음에 아쉬워했지만 이것도 나름대로 나쁘지 않다 생각을 했다.

       

       머리 위에서 쫑긋거리는 귀나 살랑고리는 꼬리는 여전했으니까.

       

       “따라오거라.”

       

       여우를 따라서 계단을 오른다.

       

       자그마한 아이의 발소리의 뒤를 분명 걷고 있음에도 뒤따르지 않는 발소리가 잇는다.

       

       “여우야. 네가 생각하기에 민가라는 자는 어떤 사람이더냐.”

       

       그러던 중에 심심했던 백화령이 문득 그런 물음을 던지자 여우는 발을 멈추지도 않고 답을 꺼냈다.

       

       “종잡을 수 없는 인간이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선하면서 악하고, 바보 같으면서도 멋지지. 그래서 재미난 아해이니라.”

       

       명확하지 않은 답이었으나 여우가 민가라는 아해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는 대답이었다.

       

       그 이름을 꺼낼 때에 여우의 꼬리가 살랑거리고 있었기에.

       

       아무래도 민가라는 녀석은 저 여우에게 신용을 받고 있는 모양이구나.

       

       부러운 일이다.

       

       본좌도 저런 복슬거리는 것들에게 사랑을 받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서 화산의 부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화산파와 바깥을 가르는 문도.

       

       그 너머에 세워진 여러 개의 건물도. 바닥도.

       

       백화령이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도 멀쩡했다.

       

       “신기한 일이구나. 이전에 화산이 멸할 때 부지가 완전히 가루가 되었다 들었거늘 어찌 모든 게 그대로인 것인가.”

       

       화산의 입구에서 부지를 둘러보던 백화령이 의문을 표하자 여우가 무심하게 대답을 돌려주었다.

       

       “본인이 복원했다.”

       “그대가?”

       

       가루가 된 것들을 본 상태로 되돌렸다는 건가?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인가.

       

       백화령은 여태까지 여러 도술사들을 만나서 쓰러트렸지만 그런 기적을 쓰는 이는 본 적이 없었다.

       

       언제라도 잡아 죽일 수 있을 것처럼 무방비하여서 얕잡아 보았다만 평범한 도술사는 아닌 모양이로구나.

       

       여우의 뒤를 따라 화산의 부지를 걷던 백화령은 이 곳이 옛 화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천마신공을 익힌 자가 새롭게 화산을 세웠다기에 무언가 바뀐 부분이 있을 줄 알았다마는 이래서야 멸문한 화산이 새로이 세워진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본좌는 좀 더 모독적인 풍경을 기대했다마는 이것은 좀 아쉽구나.

       

       그 민가라는 녀석은 생각보다 온건한 녀석일 지도 모르겠어.

       

       그러던 중에 백화령은 수련장에서 무공의 수련을 하고 있는 아해를 발견했다.

       

       그녀가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 화산의 무공이었다.

       

       분명 저 무공의 이름은 화산검이라 했었지.

       

       화산 그 자체를 형상화 한 검이니 뭐니 하고 화산의 무인이 떠들었던 것을 백화령은 기억했다.

       

       “여우야. 한 가지를 물어도 되겠느냐?”

       “무어냐.”

       “이 곳에서는 화산의 무공을 가르치는 것이야?”

       “그럼 화산에서 화산의 무공을 가르치지 다른 것을 가르치겠느냐.”

       “그 민가라는 녀석이 직접 가르치느냐?”

       “다른 이에게 맡길 때도 있다만 민가가 가르치기도 한다.”

       

       지금 저 아해가 펼치는 화산의 무공은 결코 어설픈 것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가닥을 잡고서 누군가가 가르친 결과물이었다.

       

       아직 저 아해는 화산의 무공을 다루는 데에 서투름을 보였지만 그를 가르친 자는 분명 화산의 무공을 일정이상 대성한 자였다.

       

       무림맹을 무너트릴 정도의 수준을 지닌 천마신공을 다룰 줄 암과 동시에 화산의 무공을 대성하기까지 했단 소리더냐.

       

       그 민가라는 자는 도대체 정체가 무엇인가.

       

       그 정도면 외부인 중에서 대단하니 뭐니하는 게 아니라 무림 전체를 뒤져서 비교를 해보아야 할 재능이지 않은가.

       

       “바루님. 그 분은 누구신가요?”

       

       수련에 집중을 하던 아해가 백화령의 존재를 눈치챈 듯 목검을 내리고 둘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어라. 이 분은.”

       

       아해의 눈을 마주한 순간 백화령은 그녀의 눈에 새겨진 광신의 씨앗을 보았다.

       

       너무도 희미하여 쉬이 알아차릴 순 없었지만 백화령의 눈을 속일 순 없었다.

       

       광신의 곁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녀가 어찌 그를 모르겠는가.

       

       허나 기이한 것은 그 광신이 그녀를 향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광신은 잠시나마 백화령을 스쳤으나 이내 흥미를 잃어버리고 말았으니 아해가 광신하는 것은 그녀와 비슷하나 다른 존재일 것이다.

       

       이 아해가 화산파에 속해 있는 것을 보면,

       

       그리고 이 밤늦은 시간에 벌벌 떨리는 손으로 수련을 반복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자가 믿는 것은 그 민가라는 자일까.

       

       내 살다살다 나 말고도 광신의 대상이 되는 자를 만나게 될 줄이야.

       

       민가라는 녀석도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겠구나.

       

       “나설아.”

       “네”

       “민가에게 연락을 해 보거라. 그대를 찾는 사람이 왔으니 빨리 돌아오라고.”

       

       … 이 녀석도 외부인이었느냐?

       

       외부인이 외부인을 광신하고 있다고?

       

       그럴 수도 있는 것인가?

       

       여태 외부인을 많이 만나보지 못한 백화령은 나설을 보며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다.

       

       천마신교로 오는 길이 워낙에 험난한데다가 신교가 워낙에 외부인에게 폐쇄적인 곳이라 그렇지.

       

       만일 신교에서 적극적으로 외부인을 수용했더라면 우리의 신자 중에서도 외부인이 있을 수 있었을까.

       

       “지금 들어오시는 중일 걸요?”

       “미리 연락을 했느냐?”

       “저 말고 다른 사람이요.”

       “흐음. 그렇담 얼마 걸리지 않겠구나. 민가가 들어오면 손님을 모시는 곳으로 전해다오.”

       “알겠습니다.”

       

       나설이라는 아이와 헤어지고서 여우의 뒤를 따라가던 백화령이 도착한 곳은 하늘에 떠 있는 달이 너무도 잘 보이는 방이었다.

       

       훤히 열린 문 너머로 보이는 자그마한 호수가 있는 정원과 산과 화산파를 가르는 벽.

       

       그리고 그 위로 보이는 별이 가득한 밤하늘과 그 하늘의 가운데를 지키고 있는 달.

       

       운치가 있는 장소였다.

       

       백화령은 이전에 이런 장소를 본 일이 있었다.

       

       지금은 오래되어 흐릿해졌으나 여전히 잊을 수 없는 기억의 안에 있는 장소 중 하나였다.

       

       기이한 일이구나.

       

       척박한 화산의 부지에 어찌하야 빙궁을 떠올리게 만드는 장소가 있는 것일까.

       

       “민가. 그대는 빙궁에 가본 일이 있는가?”

       

       백화령은 가만 호수를 쳐다보면서 말을 꺼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뒤에서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지.”

       “모순되는 대답이구나.”

       “그럼 어찌 하겠느냐. 이게 사실인 것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서 일부러 내는 발소리가 자신의 옆에 도달했을 때 백화령이 고개를 돌렸다.

       

       반만 묶어서 넘긴 검은 색의 머리카락과 세상을 무심히 바라보는 검정의 눈동자.

       

       입고 있는 검은 색의 무복과 정 반대되는 새하얀 피부.

       

       거기에 서 있는 것은 자신과 한없이 닮아있는 누군가였다.

       

       저 자가 외부인이 아니었더라면 어머님이나 아버님에게 숨겨진 자식이 있었던 것 아닐까라는 의심을 품었을 정도로.

       

       “그대는 누구지?”

       “네가 찾던 민가다마는.”

       “본좌가 물은 것이 그것이 아님을 알 터인데?”

       

       백화령이 되묻자 민가가 웃음을 흘리더니 허공을 툭툭 건드렸다.

       

       이전에 자신의 제자가 비슷한 일을 여러 번 했던 것을 기억하는 백화령은 지금 민가라는 자가 기능이라는 걸 건드리고 있음을 알았다.

       

       “본인에게 대답을 바라나?”

       “그래.”

       “그대는 신교에서 나고 자란 이일터니 내가 어떤 대답을 할 지도 알 것이라 믿는다.”

       

       신교를 저리 언급하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하나의 의미밖에 지니지 않는다.

       

       천마신교의 사람이라면 언제나 마음속에 품고 있어야 하는 하나의 원칙.

       

       강자존.

       

       “대답을 구하려면 니 놈을 이기란 소리더냐?”

       “그래.”

       

       백화령은 그 말을 듣고서 눈을 끔뻑이다가 미소와 함께 곰방대의 불을 끄고 품 안에 집어넣었다.

       

       민가가 그녀에게 손을 내민 순간 백화령은 한치 망설임 없이 그 손을 붙잡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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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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