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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9

   “던전 공략이라. 알른 백작 가문의 일을 도울 생각이시군요?”

   “호오. 루시 알른. 자네는 베네딕 경을 괴롭히기만 하는 딸이라 생각했다만 생각보다 기특한 구석이 있지 않나.”

   

   내가 던전 공략을 하러 간다고 이야기를 하자 페이비는 부드러운 웃음을 흘렸고 아서는 놀랍다는 기색을 보였다.

   

   이야기하는 걸 들어 보면 내가 베네딕을 도우며 경험을 쌓을 생각이라 여기는 듯 했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일반적인 귀족들은 다 그렇게 하니까.

   

   소울 아카데미 세계관에서 던전 공략이라는 건 귀족의 의무다.

   

   중세의 기사들이 여러 무력집단의 약탈에서 인민을 지켰던 것처럼 영지를 지닌 귀족은 던전을 공략함으로써 그 위협에서 인민을 지킬 필요가 있지.

   

   이걸 제대로 하지 못하면 다른 영지의 비난을 감수해야 하고, 일이 심각해지면 인민들이 들고 일어나는 걸 보게 될 테니.

   

   허나 던전 공략은 의무임과 동시에 권리이기도 하다.

   

   던전을 공략하게 되면 그 안에서 여러 희귀한 물건들을 얻을 수 있으니까.

   

   영지를 지닌 귀족들은 어지간해선 자기 영지에 존재하는 던전을 다른 이에게 넘기지 않는다.

   

   그 안에서 어떤 물건이 나올 줄 알고 그걸 다른 사람한테 줘? 운 좋으면 인생역전을 할 수 있을 지도 모르는데!

   

   상황이 이러하니 다른 영지에 존재하는 던전을 무단으로 공략하는 것은 보통 크나큰 무례다.

   

   물론 직위와 무력으로 찍어 누르는 게 가능하긴 하겠지만 자칫 잘못하면 반란이 일어난다고. 할배랑 같이 역사 공부를 하면서 배운 거지만 실제 사례도 몇 개가 있더라.

   

   소울 아카데미 주변의 던전을 무단 공략한 적 있지 않으냐고? 안 들켰잖아. 그럼 된 거야. 아무문제 없어. 꼬우면 지네가 먼저 공략하든가.

   

   어쨌든 보통 귀족 가문의 자식이 던전을 공략한다 그러면 자기 영지에 생겨난 던전을 공략한다는 이야기다. 보통은 말이다.

   

   ‘아뇨?’

   “제가 왜 영지의 던전을 공략해야 하죠? 그건 바보아버님이 알아서 할 일이에요.”

   

   하지만 난 아니다. 알른 가문 영지 인근의 던전을 공략해봐야 맛있는 걸 얻을 수 없는 걸.

   

   그 과정에서 포셀이랑 돌아다니면서 단련은 죽어라 하겠지만 방학 기간을 단련만으로 날리는 건 너무 아쉽잖아.

   

   이 기간에 얻을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허? 그럼 어느 던전을 공략하겠다는 이야기인가.”

   

   ‘메네스테일 던전이요.’

   “허접 모험가들이 모이는 메네스테일 던전에 갈 거에요.”

   

   앞에서 이야기했듯 대부분의 던전은 그 지역을 다스리는 귀족의 허락이 있어야지만 공략할 수 있다.

   

   허나 모든 던전이 그런 것은 아니다.

   

   내가 예전에 공략했었던 에반스의 던전 기억나?

   

   그 던전은 여타 던전과는 다르게 보스를 쓰러트린다 해서 사라지는 곳이 아니었다.

   

   주기적으로 기사들이 가서 던전 안의 몬스터를 쓸어버리고 돌아와야 했지.

   

   에반스의 던전이야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곳이라 이렇게 하더라도 문제 될 게 없었어.

   

   그런데 만약 에반스의 던전이 규모가 컸다면?

   

   매일 같이 그 안의 몬스터를 소탕하지 않으면 그 일대가 난장판이 되어버릴 수준이었다면?

   

   더욱이 그 안에서 나오는 몬스터도 훨씬 위협적이었다면?

   

   소울 아카데미에는 그런 던전이 몇 개나 존재한다.

   

   항시 그 안의 몬스터들을 토벌하지 않으면 주변을 초토화 시킬 정도의 위협을 지닌 장소가.

   

   일개 귀족 가문은커녕 하나의 나라조차도 감당하지 어려운 곳이.

   

   권리를 주장하다가는 던전의 위협에 휩쓸려 사라지게 될 재앙이.

   

   이는 백성들에게 위협이었지만 위정자들에게도 골칫거리였다.

   

   분명 그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가치는 크다.

   

   허나 그걸 모두 다 집어 삼키려하다가는 입을 벌리기도 전에 배가 터져서 죽을 터.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여러 나라의 왕들이 선택한 것은 던전의 완전 개방이었다.

   

   누구든 와서 이 던전을 공략하고 그 안의 재보를 취하라.

   

   그 대신 안에서 얻은 이득 중 일부를 나라에 바쳐라.

   

   영지를 지닌 귀족들은 이를 거들떠 볼 이유가 없었다.

   

   자기 영지에 나오는 던전을 관리하기도 바쁜데 무얼 하러 저 먼 곳에 있는 던전을 넘보겠는가.

   

   허나 모험가들에게는 달랐다. 여러 귀족들의 비위를 맞추며 공략 가능한 던전을 찾아 헤매던 그들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들어갈 수 있는 던전은 신천지라 불러 마땅했다.

   

   나라는 골칫거리를 해결하며 세금을 거둘 수 있어서 이득. 모험가들은 언제든 공략할 수 있는 던전을 얻어서 이득.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짐에 따라 대형 던전은 그 누구라도 공략할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내가 이야기하는 메네스테일 던전도 그렇다.

   

   마도 제국 노르타 영지 인근에 존재하는 이 던전은 영구히 존재하는 대형 던전이다.

   

   처음에는 마도 제국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해보려 했으나 결국 포기. 모험가에게 개방을 함으로써 해결을 본 케이스지.

   

   당연히 누구라도 공략할 수 있다는 조건이 달려 있다. 설령 타국의 귀족이라 하더라도.

   

   나는 그 곳에 갈 계획이다.

   

   알새틴에게 말을 해둔 게 있기도 하고, 뭣보다 허접 주신이 퀘스트를 내어 주었는걸.

   

   [GAME OVER]라는 무시무시한 문구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이상 이건 강제야.

   

   “메네스테일이요? 그렇게까지 멀리 가실 생각이신가요?!”

   

   내 말에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조이였다.

   

   그녀는 귀족 영애답지 않게 탁지를 내리치며 큰 소리를 내었다가 자신을 향하는 시선을 보곤 헛기침과 함께 자리에 앉았다.

   

   부채로 얼굴을 가리는 걸 보면 부끄러운 모양이다.

   

   “대형 던전을 공략하러 가실 생각이시라면 세이나블 던전에 가면 되잖아요?”

   “나도 똑같이 생각한다. 굳이 메네스테일까지 갈 필요가 있나? 왕국의 세이나블 던전에 간다면 그대에게 여러 편의를 제공해 줄 텐데?”

   

   으음. 그러니까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그냥 던전 공략 할 거라 그러고 말 걸 그랬나?

   

   할배에몽을 부를까 생각을 하던 중에 페이비가 슬며시 목소리를 냈다.

   

   “두 분. 알른 영애께서는 분명 뜻이 있으시겠죠. 여태까지도 그랬잖아요?”

   “그…랬죠.”

   “그건 그렇지.”

   

   나이스! 페이비! 내가 그런 말을 했으면 억지를 부린다는 느낌이 들었을 텐데 네가 이야기를 하니까 설득력이 다르네! 이게 평소 행실의 차이인가?!

   

   두 사람을 진정시킨 페이비는 다시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럼 방학 동안 계속 던전 공략만 하실 건가요?”

   

   ‘아뇨…’

   “아니? 그딴 허접 던전에 내 귀중한 시간을 쏟아 넣을 리 없잖아?”

   

   일단 던전 공략을 하러 갈거긴 하지만 그것만 할 순 없지. 이외에도 할 일이 여러 개 있으니까.

   

   뭣보다 알른 가문에도 얼굴을 비춰야해. 방학임에도 불구하고 딸을 못 보면 알른 가문의 딸바보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고.

   

   ‘근데 그건 왜요?’

   “근데 허접 성녀. 그런 건 왜 물어 봐?”

   

   “방학 때 권유 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무슨 일인가 했더니 지난번에 도와주었던 것에 대한 보답을 하고 싶다고 페이비가 말했다.

   

   이렇게까지 권유하는 데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싶어 고개를 끄덕였더니 그 옆에 있던 조이가 헛기침 소리를 냈다.

   

   뭐야? 갑자기?

   

   “알른 영애. 저에게도 시간을 주실 수 있을까요? 방학 끝나기 직전에 축제가 있어서.”

   

   …어?

   

   파트란 영지에서 열리는 축제에 초대하겠다고?

   

   진짜로?!

   

   ‘갈게요!’

   “뭐야. 얼빵 영애. 그렇게 나랑 놀고 싶었어? 어쩔 수 없네. 친구가 없는 외톨이 영애랑 놀아줄게.”

   

   가지!

   

   당연히 가야지!

   

   없는 시간을 만들어서라도 갈 거야!

   

   거기에서 볼 수 있는 조이의 컷신은 내가 소울 아카데미라는 게임에서 제일 좋아하던 장면이었다고!

   

   그걸 이 두 눈으로 담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칠 것 같아?!

   

   “정말이죠?”

   

   ‘네! 물론이에요!’

   “그렇대도? 왜 가지 말까?”

   

   “아뇨. 그럼 공식적으로 알른 가문에 편지를 보내두겠습니다.”

   

   흐헿. 흐헤헤헿. 모니터 너머로만 보던 이벤트에 참가해서 조이랑 노는 건 물론이고 그 컷신까지 볼 수 있다니.

   

   좋아. 방학을 알차게 보낼 의욕이 생겼어!

   

   다른 일정은 최대한 빠르게 정리하고 파트란 영지로 가야지!

   

   “무어냐. 조이. 나는 초대해주지 않는 것이냐?”

   

   조이와 함께 할 이벤트를 생각하고 있자니 아서가 퉁명스레 말을 꺼냈다.

   

   뭔데. 질투야? 친구를 빼앗기는 게 그렇게 아쉬워?

   

   완전 쪼잔 왕자네.

   

   “네? 왕자님께서 바라신다면 물론 초대를 드려야죠.”

   “조이. 저도 가고 싶어요.”

   

   지위에 밀려난 조이가 고개를 끄덕이기 무섭게 그 옆에 있던 페이비가 말을 꺼냈다.

   

   “페이비? 당신은 교회의 일 때문에 바쁜 것이.”

   “이번에 사정이 생겨서요. 휴식을 취하게 됐답니다.”

   

   저 휴식은 내가 권유한 것이다. 교회의 진실을 안 상황에서 그 중심부로 돌아간다 한들 마음앓이를 할 뿐이잖아.

   

   쓰잘데기 없이 몸도 마음도 고생할 바에야 쉬는 게 낫지.

   

   마침 잘 됐네. 안 그래도 아카데미 안에만 머물러 있으면 심심할 거 아냐.

   

   파트란 영지에 와서 즐겁게 놀면서 여러 스트레스도 풀면 좋잖아.

   

   “페이비가 바란다면이야 당연히 초대해드려야죠.”

   “나도. 나도 갈래.”

   

   그 대화의 마지막을 장식한 건 프레이였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볼을 가득 채우고 있던 녀석은 어느새 입 안에 들어있던 걸 모두 삼키고는 목소리를 냈다.

   

   이런 일에 전혀 관심이 없을 것 같은 녀석이 갑자기 왜 저런대? 남들 다 하니까 자기도 하고 싶었던 건가?

   

   “그… 그럼 켄트 가문에도 초대를 보낼게요.”

   

   겉으로는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지만 속은 여린 조이다.

   

   나름대로 가까운 사이인 프레이가 오고 싶다는 데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있나.

   

   그렇게 이 곳에 모여 있던 다섯 사람은 파트란 영지의 축제에서 다시금 뭉치게 되었다.

   

   *

   

   <루시! 그게 무슨 소리니!>

   

   그날 밤. 나는 의도적으로 미뤄두었던 일을 해결하기 위해 베네딕에게 연락을 걸었다.

   

   베네딕은 내가 먼저 연락을 걸었단 사실에 눈에 띄게 기뻐했지만 내가 용건을 꺼내자마자 눈을 부릅뜨더니 목소리를 드높였다.

   

   <알른 가문의 영지에 들리지도 않고 바로 메네스테일로 떠나겠다니?!>

   

   내가 꺼낸 이야기는 낮에 다른 애들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던전 공략의 경험을 쌓기 위해 바로 메네스테일로 떠나겠다는 것.

   

   <안 된다! 절대로 안 돼!>

   

   베네딕은 내 말을 듣자마자 기겁을 하며 결사반대를 외쳤다.

   

   당연한 일이었다. 대형 던전, 그것도 다른 나라에 있어 유사시 도움을 받기 어려운 곳을 공략하러 가겠다는 데 딸바보인 베네딕이 허락을 할 리가.

   

   그의 반대를 예상했던 나는 꼭 가야한다고 고집을 피웠지만 베네딕의 반대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집요했다.

   

   삐진 체를 해도. 화를 내도. 심지어는 어설프게나마 우는 연기를 해도. 베니딕은 메네스테일에 가는 걸 허락할 수 없다는 의견을 고수했다.

   

   역시 타국의 대형 던전에 가는 건 너무 위험해 보였나.

   

   <혹시나 싶어 말하겠지만 몰래 갈 생각은 하지도 말거라! 내 칼에게 명을 해 둘 터이니!>

   

   이래서야 몰래 빠져나가도 직접 행차하셔서 잡아가겠네.

   

   으으. 어쩔 수 없나.

   

   허접 주신이 기뻐할 게 뻔해서 이것만큼은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루시. 대답하거라.>

   “진짜 진짜 안 되는 거에요?♡ 쪼잔한 파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허접 주신 행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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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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