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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9

   EP.169

     

   “이게 뭐지?”

   “두루마리의 뒷부분.”

   “지금 내가 그걸 묻는 게 아니라는 걸 알 텐데? 왜 내용이 없냐고.”

     

   장막 뒤의 감시자가 건넨 두루마리의 나머지 반절. 당황스럽게도 그 거칠거칠한 섬유 재질의 종이에는 아무런 글자가 적혀 있지 않았다.

     

   “하핫! 원래 두루마리에 뒷내용 같은 건 없었다네.”

   “……”

   “생각을 해보게. 무려 백 년이 더 지난 일인데 량이 이곳에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래 맞는 말이군. 처맞는 말.”

     

   단전에서부터 서서히 끌어오르던 울화통이 터지며 억누르고 있던 마력이 스멀스멀 밖으로 흘러나왔다.

     

   하지만 놈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분 나쁜 미소와 함께 다시 운을 띄웠을 뿐.

     

   “미안하군. 하지만 너무 화내지 말게. 원래 이것도 임무의 일부이니. 일단 여기에서 나가세나. 천천히 하나씩 설명해주도록 하겠네.”

     

   그의 차분한 말에 나는 마력을 거두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장막 뒤의 감시자가 나를 속인 것과는 별개로 내가 11층 임무를 진행하며 배운 것도 한두 가지는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빠져나가게 된 도산검림의 비고. 입구에 쓰러져 있어야 할 두 명의 무인은 어딘가로 사라진 상태였고 녀석은 그저 흐뭇하게 웃으며 걸음을 재촉했다.

     

   ***

     

   그렇게 걸은 것이 한참. 싱싱한 풀이 발치에 밟히는 한적한 공터가 나왔을 때쯤 장막 뒤의 감시자는 걸음을 멈췄다.

     

   “여긴 어디지?”

     

   나의 물음에 그가 추억을 감상하듯 숨을 크게 들이쉰다. 일반적인 무림과는 달리 공기 중에 있는 마력의 농도가 묘하게 진한 곳.

     

   잠시 뜸을 들였던 그가 고개를 돌렸고 이내 이 의문에 장소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량이 무공을 수련했던 장소라네.”

     

   자유로운 공간. 폐관 수련을 했다기에 골방에 틀어박혀 검을 휘두르고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그는 자연을 만끽하며 내공을 증진시켰던 모양이었다.

     

   “왜? 이상하나?”

   “그냥 좀 의외여서.”

   “하하. 보통은 그렇지. 폐관 수련이라는 것이 외부의 모든 것을 단절하고 수련을 정진하는 것을 의미하니 그렇게 어울리는 장소가 아니긴 해.”

     

   주위를 둘러봤다.

     

   사람의 발자취가 느껴지지 않는 곳. 누군가가 수련을 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너무나도 평화로운 장소였다.

     

   보통 보법을 수련한다면 주변의 땅에 망가진 흔적이 생기고 검기를 다루게 되면 주변의 환경에는 자연스러운 손상이 발생한다.

     

   하지만 이곳에는 그런 위협적인 행동을 가한 어떠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자네는 무엇이 보이나?”

     

   갑작스러운 그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 마력이 풍부하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육안으로 확인되는 특이점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잘…… 모르겠군.”

     

   장막 뒤의 감시자가 미소를 지었다. 그가 입은 흰 도복과 금빛 장삼이 바람에 나풀거리고 어디선가 날아온 흙냄새가 나의 코를 자극한다.

     

   “자세히 보게.”

     

   뭘 보라는 것일까.

     

   “이곳에서 천하제일인이 수련을 했다네.”

     

   수련의 흔적. 량은 이곳에서 무공을 익힌 것이 아니었다. 그저 비급을 읽고 그곳에 담긴 전대 고수들의 심상을 이해하려 노력했을 뿐.

     

   그리고 그가 무엇을 보았을지 떠올린다면 그의 일생을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흙이 보이는군.”

     

   그래서 나는 고개를 숙여 가장 낮은 곳을 보았다.

     

   “그곳에 뿌리를 단단히 내린 풀이 보이는군. 자잘하게 뿌려진 조약돌과 바위, 그 위로 솟은 나무가 만들어 낸 그림자도.”

     

   천하제일인은 무언가 특별한 것을 얻기 위해 이곳에서 수련을 한 것이 아니었다.

   가장 평범한 곳,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가장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을 뿐.

     

   “바람에 날리는 꽃잎이 있군, 나무가 있고 그 위에 앉아서 여길 바라보는 작은 새도.”

     

   그 위로는 창공을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큰 새들이 있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뻥하고 뚫어 줄 푸름이 그곳에 있었고 그곳을 유영하는 백색의 구름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중심에 세상을 비추는 하나의 태양이 있었다.

     

   “꽤 아름답지 않나?”

     

   장막 뒤의 감시자가 나를 보며 싱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손을 들어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다면 신경 쓰지 못했을 한 공간을 가리켰다.

     

   “저기 보이나?”

   “동굴?”

   “그래, 내가 처음 6층에 올랐을 때 임무를 받은 곳이지.”

     

   그곳에는 사람 하나가 겨우 통과할 만한 작은 동굴의 입구가 있었다.

     

   “처음 이곳에 떨어진 나는 어떤 임무를 받았네. 아마도 자네가 겪었던 과정과 비슷하겠지만 미묘하게 달랐어.”

   “어떻게?

   “자네도 알다시피 이곳이 지금은 평화롭지만 처음에는 당연히 그렇지 않았다네.”

     

   도산검림의 비고에서 읽었던 기록들만 떠올려도 이곳이 얼마나 평화와 거리가 먼 장소였는지는 알 수 있었다.

     

   “탑이 나더러 갑자기 제자를 찾으라더군. 정확히는 화신을 찾으라는 이야기였지만 그들을 돌보고 가르치는 것 또한 나의 몫이었네.”

     

   나 또한 겪었던 임무였다. 화신을 선택하고 그들과 함께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 하지만 그가 화신을 받아들인 조건은 부탁을 들어 주는 것이 아닌 그들을 성장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아주 많이 찾았네. 능력도 좋고 싸움도 잘하는 그럭저럭 괜찮은 놈으로다가.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일단 가르쳐보고 쓸 만한 놈들만 화신으로 만들기로 했지.”

     

   항상 가벼운 모습을 보여주던 그의 눈동자가 말이 이어지며 차갑게 가라앉았다.

     

   서글서글하고 장난기가 물씬 풍기는 그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느낌. 나는 가만히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그들을 선별했네. 내가 알고 있는 검과 무공을 가르치고 길들였지. 하지만 자네가 자네의 세상에서 느꼈듯이 성좌가 되기 위해 탑을 오르던 나에게 도산검림의 존재들은 별 볼일 없는 약자에 불과했다네.”

     

   성좌는 강했다. 폭발적인 성장을 하고 비정상적인 능력을 지닌다.

   그렇기에 성좌가 아무리 빈약해도 그들보다는 강했다. 그리고 탑을 오르는 것에 급급해진 플레이어라면 열에 아홉은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

     

   “그래서 버렸네.”

     

   함께 할 사람만 데려간다. 그들은 나의 등을 믿고 맡길 수 있는 강자를 바랐기에 그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무기와 힘을 쥐여 주고 사람을 죽이는 방법을 가르친 이후, 그 괴물들을 약자 사이에 풀어 버렸다는 사실을.

     

   “그땐 아무런 생각이 없었네. 결국 가장 강한 한 놈을 찾아서 6층의 임무였던 ‘화신 찾기’를 완수할 수 있었으니 ‘나도 할 땐 할 수 있는 놈이구나.’ 착각하며 마냥 뿌듯해 했지.”

     

   그리고 그가 받게 된 다음 임무는 세력을 만드는 것.

     

   그는 그의 정수를 전수한 한 화신을 통해 문파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문파를 기점으로 계속해서 제자들과 강자들을 양성했다.

     

   “그야말로 파죽지세였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화신이 나의 아래에 있었고 가장 강한 조직이 나의 손아귀에 있었으니 뭐가 그리 무서웠겠나.”

     

   강한 힘을 얻고 세상을 내려다보는 감각. 하지만 그것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마지막 임무를 받은 순간이었다.

     

   “10층의 임무는 전쟁을 종식시키라는 내용이었네. 하지만 여기에서 가장 웃긴 점이 뭔지 아나? 내가 이 세상에 전쟁이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네. 아니,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는 점이었지.”

     

   그저 앞만 보고 달려왔던 그.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무시한 강자의 말로는 그야말로 비참함 그 자체였다.

     

   “전쟁은 처음 내가 이 세상에 왔을 때보다 훨씬 심각했네. 그저 힘을 갈망하는 미치광이들이 판을 치고 무와 협이라는 이름으로 욕망을 채우려는 개백정들이 검을 들고 약자들을 쓸고 다녔지.”

     

   그는 자신이 만든 세력을 활용해 전쟁을 종식시키려 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오만이자 환상에 불과했던 것.

     

   “내가 가르치고 버렸던 자들이 나의 발목을 잡았네. 나의 무공과 나의 힘으로 가르침을 받은 자들이 내가 일구어낸 문파를 초전박살을 내버렸지.”

     

   장막 뒤의 감시자가 버린 자들은 그가 화신을 만드는 것에 정신이 팔린 틈에 나름의 세력을 만든 상태였다. 게다가 그 규모 또한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방대한 상태였고.

     

   장막 뒤의 감시자가 선택한 자들은 강했다. 하지만 뜻이 없는 강함은 또 다른 강함에 의해 부러지는 법.

     

   강해지는 것 외에 아무런 생각이 없던 쭉정이들은 그날 모두 죽음을 맞이했다.

     

   “그날부터 전쟁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네. 나에게 대항하려 만들어진 그 조직도 결국에는 힘에 도취되어 파멸하게 되었고 강한 힘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을 본 모든 무인들은 ‘힘이 세상의 전부’라는 어그러진 신념을 가지기 시작했지.”

     

   힘을 갈망한 자들의 전쟁은 피와 파멸뿐이었다.

     

   강자를 죽여 강자로 인정받는다. 약자를 지배하는 것으로 세상에 자신을 알렸고 그 과정에서 죽어 간 약자들은 그저 침묵으로 세상을 원망했다.

     

   하지만 그때.

     

   “그때 그 아이가 나타났네.”

     

   량悢

     

   가장 밑바닥에서 시작했으나 가장 높은 곳을 바라본 자. 그리고 정점에 섰을 때, 다시 가장 낮은 곳을 바라본 자.

     

   후대에 천하제일인이 될 남자의 이름이었다.

     

   “그래서……”

     

   풀밭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을 하는 량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때도 오늘과 같은 하늘이 있었을 것이다.

   오늘과 같은 땅이 있었을 거고 오늘과 같은 바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량을 찾아간 건가?”

   “자네는 역시 눈치가 빠르군.”

     

   량의 기록에 나오는 아이들 중 유일하게 그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존재.

   세상을 부정하는 고독한 자에게 ‘슬픔’이라는 이름을 지어 준 아이.

     

   “나의 이름은 ‘영影’. 도산검림이라는 세상을 망칠 뻔하고 뻔뻔스럽게도 가장 낮은 자에게 책임을 전가한 겁쟁이 장막 뒤의 감시자라네.”

     

   량悢이라는 이름에는 여러 의미가 있었다.

     

   하나는 슬픔.

   다른 하나는 돌봄.

     

   슬픔을 아는 자에게 주어진 세상을 돌볼 자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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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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