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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69

    오래된 갱도처럼 나무로 된 기둥이 벽에 잔뜩 박혀있는 지하 공터, 간간이 걸려 있는 백열전구의 빛이 어둡고 습한 공터를 가까스로 밝히고 있었다.

    그 입구도 출구도 보이지 않는 공터에 수많은 사람이 널브러져 있었다.

    로키산맥 인근에서 납치된 사람들이었다.

    백열전구가 불길하게 깜박이며 어둡고 고요한 분위기를 품은 지하 공터에 조금씩 생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바닥에 널브러진 채 정신을 잃었던 사람들이 서서히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영문도 모른 채 깨어난 사람들은 여기가 어디인지, 혼란스러워했다.

    여기가 어디냐고 묻는 사람.

    제발 내보내달라고 소리치는 사람. 

    눈동자 교에 입교하려고 왔는데, 여기는 어디냐는 사람.

    온갖 사람들이 떠들자, 공터는 순식간에 소란스럽게 변해버렸다.

    공터 속에서 눈을 뜬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공터를 메우자, 공터 한 편에 마련된 높은 단상 같은 곳에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화려한 옷을 입은 멋들어진 턱수염을 기른 중년의 남자였다.

    하얀색과 검은색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었고, 황금으로 잔뜩 장식된 옷이었다.

    “육신은 영혼의 감옥이요. 고통을 통해서만 그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갑작스러운 커다란 목소리와 함께 화려한 옷을 입은 남자가 나타나자, 사람들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교주?”

    그 남자는 공터에 모인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

    눈동자 교의 교주.

    그러던 중, 한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교주에게 소리쳤다.

    이 모든 사태가 당신 때문에 일어난 거냐고. 

    그렇다면 빨리 내보내달라고 큰 소리로 따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교주는 경건한 표정으로 이상한 말을 되뇌면서, 천천히 소리친 남자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육신은 영혼의 감옥이요. 고통을 통해서만 그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그리고 남자 앞에 선 교주는 그대로 주먹을 휘둘렀다.

    가볍게 휘두른 것 같았지만, 그 결과는 절대 가볍지 않았다.

    처절한 비명 소리가 공터를 채웠고, 시끄러운 공터는 순식간에 조용해져 버렸다.

    주먹에 맞은 남자는 뼈가 부러진 것처럼 맞은 부위가 퉁퉁 부어오르기 시작했고, 바닥에 널브러진 채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조용한 공터에는 남자의 고통스러운 신음만이 작게 울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사실은 진작에 소리치고, 난리를 쳐야 정상이었지만 ‘교주’라는 남자가 몸에 두른 꺼림칙한 분위기가 사람들을 억제하고 있었다.

    수상쩍은 공터로 납치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교주가 두른 기묘한 분위기.

    교주는 쓰러진 남자에게 다가가서 그의 상처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아아아악!”

    뼈가 부러진 남자의 처절한 비명을 배경으로 교주의 참담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아, 안타깝구나. 악마의 피륙을 벗어 던지지 못하고, 아직도 미몽에 휩싸여 있다니!”

    그리고 그 남자를 주먹으로 마구 내려치기 시작했다.

    주먹이 남자의 몸에 닿을 때마다 뼈마디가 마구 부스러지는 섬뜩한 소리가 울렸다.

    남자는 이제 신음도 내지 않고, 죽은 것처럼 늘어져서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남자를 때리던 교주는 과장된 동작으로 양손을 벌리고, 슬픈 표정을 지었다.

    “어째서! 제 진심을 몰라주는 겁니까!”

    화려한 복장의 남자는 정신병이라도 있는 것처럼 갑자기 화를 내며 소리쳤다.

    구슬피 울었다가 화가 나서 소리쳤다.

    즐겁게 웃었다가 우울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리기도 했다.

    말투도 일정하지 않고 표정을 따라서 오락가락했다.

    그리고 다시 주먹을 들어 올리고 남자를 내려치려고 하는 순간.

    탕.

    닫힌 공터에 천지를 울리는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교주는 총성과 함께 그대로 땅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총알이 교주의 머리에 명중했고, 그대로 머리를 터트려 버린 것이다.

    “하, 하하.”

    권총을 쏜 여자는 건조한 웃음소리를 내면서, 굳은 표정으로 총을 꽉 움켜쥐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등 뒤로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웠다.

    “정말 슬픈 일입니다.”

    슬픈 표정의 교주가 갑자기 나타나서, 슬픈 표정으로 말을 건네고 있었다.

    “!”

    탕.탕.탕.

    죽은 사람이 부활한 것 같은 당황스러운 상황에 여자는 권총탄을 몇 발이나 발사했다.

    새롭게 나타난 교주도 복부에서 피를 잔뜩 흘리면서 쓰러졌다.

    “이게 도대체 무슨?”

    여자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앞뒤를 번갈아 가면서 살펴봤지만, 시체는 두 구.

    교주의 시체가 두 개가 되어버렸다.

    심상치 않은 사태에 굳어 있던 사람들도 공터에서 도망갈 길을 찾았지만, 통로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공터에서 묵직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정말로 슬픈 일입니다.”

    “정말로 슬픈 일입니다.”

    “정말로 슬픈 일입니다.”

    두 주먹을 움켜쥔 교주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갑자기 나타나서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아, 눈동자의 신이시여. 저를 용서하소서.”

    그 말과 함께 교주들은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하기 시작했다.

    ***

    세희 연구소 보안실에 푸른 사신이 슬픈 표정으로 숨어있었다.

    물론 보안실 직원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푸른 사신이 너무 슬퍼 보여서 애써 무시하는 중이었다.

    ‘애착 인간 없어졌어요.’

    그의 원룸에도 그의 직장에도, 그 어디에도 애착 인간의 모습이 눈에 띄지 않았다.

    <애착 인간은 제가 싫어진 걸까요?>

    허공에 문자열을 띄워보았지만, 푸른 사신의 마법은 답을 주지 않았다.

    우으, 울먹이는 표정으로 눈물이 그렁그렁한 푸른 사신은 하염없이 애착 인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푸른 사신의 모습을 보며, 보안실 직원들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푸른 사신이가 하루 종일 저기에 있네요. 도대체 무슨 일일까요?”

    “글쎄. 예상이 가기는 하는데, 확실하지는 않아. 아직 겨우 하루째잖아.”

    슬퍼 보이는 푸른 사신이 안타까운지 후배 직원은 선임 직원에게 다시 물었다.

    “혹시 예상이라도 가는 게 있으면 좀 알려주세요. 푸른 사신이 슬퍼하는데, 뭐라도 해야죠.”

    “나야 푸른 사신들 구분이 안 돼서 잘 모르겠지만, 저 푸른 사신이 쫓아다니던 녀석 있었잖아. 그 녀석이 실종되었다고 하더라고.”

    “어디 아파서 쉬는 줄 알았는데, 실종이었어요?”

    5조 4교대로 돌아가던 보안팀이라 업무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지만, 보안팀에서는 대충 알고 있던 내용이었다.

    “그래, 요즘 강동구 쪽에서 유행하는 사이비 종교에 동생이 빠졌다고 구하러 갔는데, 그대로 실종 돼버렸다고 하더라.”

    “아, 그래서 서아 부소장님이 바쁘게 협회랑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건가 보네요.”

    슬픔에 빠져 있던 푸른 사신의 감각에 관심이 가는 이야기가 느껴졌다.

    말을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황금 사신처럼 감정을 느끼고 약간의 정보를 느낄 수는 있었다.

    ‘동쪽에 애착 인간이 갔다. 사라졌어. 위험해?’

    명확하지는 않지만, 푸른 사신이 기다리던 애착 인간에 대한 정보였다.

    ‘애착 인간, 구해줘야 해!’

    애착 인간의 소식을 들은 푸른 사신은 다급한 표정으로 미니 사신 정원으로 돌아갔다. 

    ***

    격리실 안 커다란 냄비가 저절로 보글보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예린이가 준비해 준 초대형 냄비였다.

    냄비 테두리에는 폭신폭신한 수건을 두르고, 물이 찰랑찰랑 차올라 있었다.

    냄비 안에는 미니어처처럼 조그마한 나무바가지가 동동 떠다니고 있었다.

    “자, 다됐다!”

    예린이는 조그마한 수건을 이리저리 묶더니 양머리 수건 모자를 뚝딱 만들어 냈다.

    모자가 씌워진 황금 사신은 두 손을 번쩍 들어 ‘만세!’를 한 뒤 즐거운 표정으로 냄비 속으로 뛰어들었다.

    미니 사신 전용 온천이었다.

    TV에서 온천을 발견한 황금 사신의 부탁으로 만들어진 간이 온천이었다.

    이 냄비 온천을 본 세희는 ‘이거다! 지하에 온천 만들어야지!’라고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더니 사라져 버렸다.

    황금 사신과 검은 사신은 첨벙거리며 커다란 냄비 속을 마구 돌아다녔다.

    붉은 사신은 해맑은 표정으로 냄비 중앙에 대자로 누워 동동 떠다녔다.

    편안한 표정으로 냄비에 기대 누워있는 주황 사신, 그리고 그 주황 사신의 품에 안겨 새싹 사신은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주황 사신의 하얀 머리카락은 물속에서 잔뜩 퍼져나가며, 얼마나 머리카락이 길고 풍성한지 보여주고 있었다.

    붉은 사신은 가끔 불을 내뿜어, 자칫 식기 쉬운 냄비의 물을 끓여주었다.

    이상하게 푸른 사신은 보이지 않았다.

    푸른 사신이가 따로 모여서 뭔가를 하는 것 같던데, 전처럼 모여서 애착 인간 이야기라도 하는 건가?

    황금 사신은 따뜻한 냄비 속을 즐겁게 돌아다니다가, 내 손가락을 잡아끌며 자꾸 들어오라고 보챘다.

    ‘나는 냄비에 들어갈 정도로 작지 않아.’

    내 의견에 시무룩해진 황금 사신은 다시 검은 사신의 곁으로 첨벙거리며 돌아갔다.

    냄비에서 시선을 떼고, TV를 바라보자 여전히 사이비 종교 이야기로 시끄러웠다.

    예린이도 심각한 표정으로 TV를 보고 있었다.

    “요즘 저 사이비 때문에 서아 언니가 바쁘더라. 그래서 그런지 내가 해야 할 일이 늘었어.”

    예린이는 힝, 소리를 내면서 내 머리 위에 자기 머리를 얹었다.

    예린이가 TV에 정신이 팔린 틈을 타, 미리 준비해 둔 ‘건표고버섯’을 냄비 속에 동동 띄웠다.

    미니 사신들은 ‘이게 뭐지?’하는 표정으로 표고버섯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냄비에서 맛있는 냄새가 나기 시작하자, 진짜 미니 사신 찌개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히히.

    그나저나 TV에서 계속 나오는 눈 안에 눈동자가 5개나 들어있는 종교 상징.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신경 쓰였다.

    ***

    레이첼은 살금살금 수풀 속에 숨어서 움직였다.

    근처를 지나다니는 경찰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천천히.

    현재 레이첼의 부모님이 거주하던 마을은 완전히 봉쇄된 상태였다.

    어느 도로를 타고 내려가도 경찰들이 길을 막고 있었지만, 레이첼이 어린 시절을 보낸 마을이기에 소나무가 울창한 숲을 돌아서 천천히 다가가자, 마을 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떡하지, 진짜 큰 사건인가 봐.”

    레이첼은 나무 위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했다.

    현재 마을은 경찰에 의해 도로가 봉쇄되어 있었고, 마을 안에는 협회 소속 사람들이 잔뜩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을 안에는 마을 사람이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황금 사신을 천천히 쓰다듬자, 황금 사신은 오히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레이첼의 볼을 토닥였다.

    그리고 황금 사신은 양손을 번쩍 들고, 자신만 믿으라는 표정으로 마을을 향해 뛰쳐나갔다.

    “잠깐! 어디 가는 거야?”

    레이첼은 작은 목소리로 황금 사신을 불렀지만, 이미 황금 사신은 협회 소속 사람들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작된 혼돈.

    황금 사신이 온몸에서 빛을 뿜어내며 마을을 뛰어다니자, 협회 사람들은 난리가 났다.

    조사를 지속하려는 사람, 황금 사신을 쫓는 사람, 상부에 연락하는 사람.

    난장판이 된 상황 속에서 마을로 들어갈 수 있는 틈이 보였다.

    ‘고마워, 황금 사신아!’

    레이첼은 마음속으로 감사를 말하며 천천히 마을의 어둠 속으로 잠입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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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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