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7

       내 춤 스탯은 99.

         

       하지만 그런 어마무시한 스탯을 갖췄음에도 일반인이었던 내가 한 달 만에 정교한 디테일이 담긴 퍼포먼스를 보일 수는 없었다.

         

       이에 내가 대신하여 선택한 것이 바로 <24시간이 부족해>였다.

         

       <24시간이 부족해>는 춤 동작이 그리 어렵지 않았으니까. 춤 스탯 99로 한 달 만에 충분히 커버할 수 있었던 것이다.

         

       표현력만 충분하면 최소 효율로 최대의 파괴력을 보일 수 있으니 내게 있어서 아주 안성맞춤이기도 했다.

         

       그리고….

         

       워낙 독보적인 곡이니 내 캐릭터성을 돋보이고 분량을 제대로 챙길 수 있다 생각했다.

         

       “하아…, 이상입니다.”

         

       “…….”

         

       “…….”

         

       실제로 내가 무대를 마치고 앞을 보니…, 심사진들이 멍한 표정으로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딱히 크게 놀라운 반응은 아니었다.

         

       지난 한 달간 내게 춤을 가르쳐 준 지우 쌤도 종종 저런 표정을 짓긴 했으니까.

         

       “어…, 저…, 그….”

         

       길게 이어지던 정적을 깨고 먼저 마이크를 든 것은 보컬 트레이너였다.

         

       “…예린 양. 트레이닝 기간이 한 달밖에 되지 않는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마, 말도 안….”

         

       “잠깐만요.”

         

       보컬 트레이너가 방송인 것도 잊고 내 말을 부정하려 하자 댄스 트레이너가 그녀의 말을 끊고 대신 말했다.

         

       “…저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린 양이 춤을 그리 오래 배우지 않았다는 걸요.”

         

       “예에?! 그게 무슨 소리세요…? 어떻게 방금 무대를 보고….”

         

       “정확하게 말하면 춤을 못 췄다는 게 아니라 기성 느낌이 전혀 나지 않았다는 겁니다.”

         

       기성 느낌이 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지우 쌤에게 못이 박히도록 들은 소리였다.

         

       나도 처음 그 소리를 들었을 때는 내 춤 실력이 아직 많이 멀었다는 의미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보컬에 쿠세(나쁜 버릇)가 있듯이 춤에도 쿠세가 있습니다. 근데…, 예린 양의 춤에는 그게 전혀 없습니다. 겉멋이 들지 않았다고 할까요…, 이걸 굳이 설명하자면….”

         

       지우 쌤은 내 춤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춤 실력이 너무 깔끔합니다.”

         

       깔끔하다고. 부드럽다고.

         

       “디테일이나 감성이나…, 몸선이 너무 깔끔하게 보이네요…. 제가 부러울 정도로….”

         

       춤이 너무 깔끔해서 감정이 그대로 전달된다고.

         

       너무나도 생생해서 함께 춤을 추는 기분이라고.

         

       댄스 트레이너가 그리 말하며 황홀하게 나를 보다가 이내 눈에 쌍심지를 키고는 말했다.

         

       “…아직 춤을 배운지 얼마 안 돼서 어려운 기교를 펼치기 어려웠을 겁니다. 춤을 제대로 배운 뒤에는 어떤 무대를 펼칠 지 궁금하군요. 제가 꼭 가르치고 싶습니다.”

         

       댄스 트레이너는 정말 내가 탐났는지 침을 아주 질질 흘릴 기세였다.

         

       다른 이들의 심사평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입을 벌리면서 봤네요. 와…, 몰입감이 진짜….”

         

       “확실한 센터감이네요. 무대를 집중시킬 압도적인 무언가가 있어요.”

         

       “연습 기간이 짧아서 그런가 확실히 신선한 맛도 있었고요.”

         

       무대를 안 보고 이 부분만 봤으면 혹시 심사진들이 뒷돈 받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의 과도한 칭찬들.

         

       이에 도리어 당황한 것은 나였다.

         

       ‘그 정돈가….’

         

       나아아에서 좋은 성적을 내려면 처음에 무조건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를 쓰고 첫 무대를 열심히 준비 했다.

         

       하지만….

         

       ‘이건 내 예상보다도 평이 너무 좋은데….’

         

       처음에 너무나도 좋은 평가를 받으면 나중 무대에서 불리해진다.

         

       그렇기에 나는 칭찬이 이쯤에서 멈추기를 바랐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심사평이 남은 게 한시우 뿐이라는 것일까?

         

       그는 촬영 내내 차가운 표정을 고수하며 신랄한 비판을 이어갔으니까.

         

       지금의 칭찬 폭풍을 그가 어느 정도 잠재워 줄 터.

         

       “…그러면 제가 마지막으로 평가하겠습니다.”

         

       한시우가 평소 같은…, 아니 평소보다 더 차가운 무표정으로 마이크를 들었다.

         

       “예린 양, 연습 기간이 한 달 기간이라고 하셨죠. 연습 기간 한 달에 이 정도 퀄리티 무대라면….”

         

       그리고는 내가 바라던 대로 신랄한 비판을….

         

       “가히 천재적인 재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에?

         

       “확실히 예린 양의 춤과 노래에선 기교가 부족한 느낌이 듭니다. 이는 꾸준한 연습으로 해결할 수 있고요.”

         

       지금까지 찬물을 끼얹는 듯한 평가로 많은 연습생들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던졌던 한시우였다.

         

       하지만 지금 그는….

         

       “나중에 예린 양이 얼마나 더 성장할지 궁금해지는 무대였습니다. 제가 늘 응원하고 지켜보겠습니다.”

         

       찬물을 끼얹기는커녕 타오르는 불꽃에 석유통을 집어던지고 있었다.

         

       “자, 그러면 심사진들끼리 잠시 논의한 후 하예린 연습생 등급 부여하겠습니다.”

         

       논의한다고 하긴 했지만 분위기를 탄 이상 그 누구라도 내 등급을 예상할 수 있었다.

         

       심사진들은 그야말로 잠깐 논의하는 척만 했다가 바로 마이크를 들고 말했다.

         

       “형제기획 하예린 연습생의 등급은 A입니다.”

         

       형제기획 하예린 A.

         

       나아아 등급평가에서 처음으로 A를 수여받은 영광의 주인공은 바로 나였다.

         

       그때였다.

         

       [특성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특성 ‘천마(天魔)’를 획득합니다.]

         

       [특성 : 천마(天魔) – 당신은 연예계의 이단아, 아이돌계의 천마(天魔), 하늘이 내린 재능의 악마입니다. 당신이 나타난 순간 다른 이들은 모두 범부(凡夫)일 뿐. 부디 안일한 연예계를 평정하고 당신의 광신도들과 함께 대한민국을 당신의 이름으로 덮어 버리십시오.

         

       [특성 효과 : 천마재림(天魔再臨) 만마앙복(萬魔仰伏) – 팬덤 생성 속도 +30%]

         

       …뭔가 또 어마무시한 게 나왔다.

         

       나는 아이돌이 되려고 하는 것일 뿐인데 갑자기 특성이 천마(天魔)라니…, 너무 생뚱맞지 않는가?

         

       전생에서 무협지를 몇 편 읽어 봤었다.

         

       천마(天魔)는 압도적인 무위로 주인공을 압도하며 최종보스의 포스를 폴폴 풍기는 끝판왕같은 놈이다.

         

       그런데 내가 왜 천마….

         

       그때였다.

         

       ‘아.’

         

       나는 뒤를 돌고 다른 참가자들과 눈을 마주친 후에야 내가 왜 이 특성을 부여받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2위석의 서유진이었다.

         

       그녀는 뭔가 멍한 표정으로 무대를 바라보고 있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이익…!”

         

       눈을 부라리며 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참으로 일관성 있는 애였다.

         

       그리고 이제는 그녀의 표정이 귀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다른 참가자들의 눈에 담긴 감정들에 비해서 말이다.

         

       다른 참가자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담긴 여러 감정들.

         

       시기, 질투, 흥분, 존경, 부러움, 분노, 부끄러움, 흥미로움, 놀라움.

         

       그중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무력감.

         

       여기 참가자들이 대부분 몇 년 동안 연습생 생활을 하고도 평균적으로 E, D, F같은 낮은 등급을 받았다.

         

       그런데 겨우 한 달 연습한 내가 A를 받았으니…, 그들의 심정이 오죽하겠는가.

         

       특히 10년 동안 연습하고 C를 받은 연습생의 표정은 압권이었다.

         

       지금까지 뭐 했냐는 듯한 허망함과 스스로를 향한 자괴감.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있는 그녀의 얼굴은 너무나도 참혹했다.

         

       …내가 그녀의 마음을 꺾어 버린 것이다.

         

       ‘…미안합니다.’

         

       사실 굳이 따지자면 내 잘못은 아니었지만 나는 마음속으로 그녀에게 사과했다.

         

       상태창이 없었다면 나는 이 정도 수준의 무대를 보일 수 없었을 테니까.

         

       내가 지난 한 달 동안 피땀 흘려 노력하긴 했지만…, 그 노력도 10년이란 세월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니까.

         

       왠지 모르게 내가 그녀의 노력의 가치를 훼손시킨 것 같아서…,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이것으로 형제기획 하예린 연습생의 등급 평가를 마치겠습니다. 자리로 돌아가 주세요.”

         

       “…예, 감사합니다.”

         

       내가 자리로 돌아가는 내내 복잡한 감정의 시선들이 내게로 향해졌다.

         

       이는 내 마음에 알게 모르게 위압감을 주었지만…, 나는 마음을 독하게 먹기로 했다.

         

       내가 데뷔를 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그녀들의 마음을 짓밟아야 할 테니까.

         

       저들 중 한 명이 떨어져야 내가 끼어들 자리가 생기니까.

         

       ‘정신 차리자.’

         

       나도 이래 봬도 많은 걸 걸고 여기에 나왔다.

         

       남들을 동정할 틈은 없었다.

         

         

         

         

       **

         

         

         

         

       “언니-! 진짜 짱이었어요! 완전 최고!”

         

       나를 견제하거나 어려워하는 다른 참가자들과 달리 내 옆의 100위석 박유정은 처음과 같은 눈으로 나를 대했다.

         

       “…그래? 고마워.”

         

       “언니, 진짜 연습 한 달 받은 거 맞아요? 와…, 대박. 언니 진짜 천재인가 봐.”

         

       그리 말하는 박유정의 말에는 조금의 아부도 담겨 있었다.

         

       원래 눈에 띄는 사람 곁에는 그 사람의 기분을 맞춰주는 심복이 있는 법이다.

         

       아무래도 박유정은 그 심복을 자처하려는 듯싶었다.

         

       그래도 뭐…, 나도 박유정을 굳이 쳐 내려 하지는 않았다. 일단 친한 사람 한 명 있으면 좋으니까.

         

       그리고….

         

       ‘애는 진짜로 착한 것 같으니까.’

         

       박유정이 그렇다고 나쁜 애 같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키드쉽 이혜정 연습생의 등급은….”

         

       아, 참고로 이 와중에도 등급평가는 잘 진행되고 있었다. 아니, 이제는 거의 끝을 보이고 있달까.

         

       등급 평가가 후반으로 가면 갈수록 실력 있거나 특색 있는 참가자들도 많이 나왔다.

         

       물론….

         

       “…B입니다.”

         

       A가 쉽게 나오지는 않았다.

         

       “저 언니 노래 엄청 잘 불렀는데 결국 B네요.”

         

       “그러게….”

         

       지금 등급 평가를 받은 사람은 몇 년 전 오디션 프로그램인 K스타에서 7위까지 올라갔던 실력파 참가자였다.

         

       하지만 아직 미흡한 댄스 실력과 다른 요건이 발목에 잡혀 B를 받았다.

         

       그녀 외의 다른 실력자들도 어딘가에서 한 가지 지적을 받으며 B.

         

       결국 지금까지 A등급을 받은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이에 박유정은 해맑게 웃으며 내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혹시 언니 혼자만 A받고 끝나는 거 아니에요?”

         

       나는 그녀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거의 확실한 사람 아직 한 명 있잖아.”

         

       “확실한 사람이요? 누…, 아….”

         

       박유정은 그게 누군지 내게 물어보려다가 말았다.

         

       아직 저 위에 비대칭 전력이 하나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비대칭 전력은….

         

       “자, 이제 한 분 남았네요. 다음으로….”

         

       마치 주인공이라는 듯 마지막 순서에 배치되어 있었다.

         

       “JJ엔터테인먼트 유 설 연습생 나와주세요.”

         

       술렁술렁.

         

       그녀의 이름이 불리자 다시금 스테이지가 웅성거렸다.

         

       내 이름이 불렸을 때와 비슷한 관심도와 시선이었다.

         

       스윽-.

         

       그런데 정작 그녀는 이런 시선이 부담스럽지 않는지 웃으며 1위석에서 내려왔다.

         

       저벅-.

         

       이런 말…, 오버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그녀가 1위석에서 계단을 하나하나 내려오는 것부터 무언가 기품이 느껴졌다.

         

       그럴 만도 했다.

         

       유 설.

         

       그녀는…, 아이돌에 관심이 없던 나도 알 정도로 크게 성공할 운명이었으니까.

         

       ‘전생에서 나아아 우승은 유 설이었지.’

         

       심지어 듣기로는 압도적인 격차로 우승했다고 했던 것 같다.

         

       그런 그녀가 무슨 무대를 선보일지 궁금해서…, 나 또한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응?’

         

       계단에서 내려와 완전히 스테이지에 오른 그녀는 별안간 뒤를 돌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처음에 나를 보는 것이 아닌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정확히 내가 앉아 있는 99위석을 향해 있었고 심지어는 나와 눈을 마주치기도 했다.

         

       씨익.

         

       ‘…웃는다?’

         

       그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마치 정말 즐거운 것처럼 아이 같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우웅.

         

       …스테이지 밖 카메라가 고스란히 찍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그리고 그녀가 나를 보고 웃는 이유가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I Became an Idol to Pay Off My Debt

빚을 갚기 위해 아이돌이 되었습니다.
Status: Ongoing Author:
"What? How much is the debt?" To pay off the debt caused by my parents, I became an idol.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