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7

       

       

       

       

       가게 밖으로 나왔을 때, 이미 해는 떨어져 있었다. 

       

       상점가에 있는 상점들은 하나둘씩 문을 닫았고, 우리는 여관이 모여 있는 거리로 나갔다. 

       

       거리에는 낮의 분주함과는 사뭇 다른 밤의 분주함이 자리잡고 있었다. 

       

       일이 끝나고 한 잔 걸치러 온 사람들이 옹기종기 가게 앞에 모여 웃으며 잔을 부딪혔고, 반대편에서는 고함 소리와 그릇 깨지는 소리가 들려 왔다. 

       

       나는 스미스 씨에게 받은 빳빳한 새 옷을 입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들어갈 만한 여관을 찾았다. 

       

       ‘주머니가 워낙 든든하니 발걸음이 가볍네.’

       

       지금 거리에 보이는 아무 가게에나 들어가서, 가장 비싼 메뉴를 가격표를 보지도 않고 주문해도 될 만큼 지금 내 자금 사정은 든든했다. 

       

       ‘무려 20골드가 넘는 돈을 한번에 손에 넣게 될 줄은 정말 몰랐는데.’

       

       지난 며칠 동안 거추장스러운 발광석을 ‘반드시 환전한다’는 일념으로 주머니에 주렁주렁 달고 다녔던 고생을 한 번에 보상 받는 기분이었다. 

       

       ‘스미스 잡화점이 역시 정답이었어.’

       

       주인공으로 서부 파견 루트에서 자주 이용하던 양심적인 상점이라서 선택한 거였는데, 상상 이상의 수확을 거뒀다. 

       

       ‘물론 그렇다고 앞으로 돈은 안 벌고 띵가띵가 놀면서 재산을 탕진하면 안 되겠지만.’

       

       어쨌거나 지금 가진 돈은 내가 열심히 뭔갈 이루어서 번 돈이 아니라, 요행으로 얻게 된 돈이다. 

       

       놀고먹다가 밑천이 똑 떨어지면 결국 내 능력으로 돈을 벌어야 하는데, 그때 가서 일을 찾으려 하면 때는 늦다.

       

       ‘미리 용병 길드에 등록을 해 놓고, 가능한 의뢰들을 하나씩 하면서 등급을 올려 둬야 나중에 편하지.’

       

       용병 길드에 정식으로 용병 등록을 하면 길드에서 의뢰를 넘겨 받아 수행할 수 있는데, 이때 용병 등급에 따라 수주할 수 있는 의뢰의 범위가 달라진다. 

       

       그래서 레키온 사가를 플레이할 때는 추후 기사단에 들어갈 게 아니라면 미리 미리 용병 길드에 등록을 해서 낮은 등급의 의뢰를 클리어해 두는 것이 정석이었다. 

       

       물론 실력이 압도적이라면 별도의 증명 절차를 거쳐서 한 번에 등급을 올리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렇게 올릴 수 있는 등급의 단계에도 어차피 한계가 있다.

       그렇게 절차를 무시하면 용병들 사이에서의 평판 관리에도 별로 좋지 않고.

       

       ‘흐음. 의뢰라.’

       

       커먼 울프 소탕 같은 하위 등급의 의뢰라면 해츨링의 힘으로 쓱싹 해 버리면 그만이지만.

       

       ‘누군가와 함께 해야 할 가능성이 높은 호위 의뢰 같은 거라도 맡게 되면, 해츨링의 힘을 맘대로 쓸 수 없으니 나 역시 무기가 필요해.’

       

       와이번 새끼가 플레임 캐논을 쏘는 장면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말이다.

       

       ‘내일은 살 수 있는 마법서가 있는지도 한번 찾아 봐야겠군.’

       

       마법서를 구매하면 자금 출혈이 좀 있겠지만, 어쩌겠는가. 

       장기적으로 보면 해츨링 없이도 혼자 의뢰를 수행할 수 있도록 실력을 쌓아 두는 게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미래를 생각하던 나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오늘만큼은 그런 생각은 치워 두고 편히 쉬어야지.’

       

       어쨌든 거금이 손에 들어온 날이 아닌가.

       

       ‘기분 낼 땐 내 보자고.’

       

       나는 작게 콧노래를 부르며 거리 한쪽의 고급 여관을 찾았다. 

       

       딱 봐도 건물이 깨끗했고, 다른 곳에 비해 소란스럽지도 않은 차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해츨링도 가방에 오래 있으면 답답할 테니 빨리 들어가는 게 낫겠지.’

       

       꿈틀.

       

       그런 내 생각이라도 읽은 것인지, 해츨링이 가방 속에서 꼼지락거리는 게 느껴졌다.

        

       “어서 옵쇼!”

       

       들어가자마자 여관 주인이 우렁찬 목소리로 맞이해 주었다.

       

       “방 큰 거 하나에, 욕실도 쓸 거고요. 식사는 2인분으로 방 앞에 가져다 놔 주실 수 있나요?”

       “큰 방이 8실버, 욕실 추가하시면 10실버 되시고, 식사 2인분은 1실버 60쿠퍼입니다.”

       

       나는 곧바로 주머니에서 12실버를 내밀었다. 

       

       “거스름돈은 안 주셔도 돼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여기 열쇠 가지고 가시고, 식사는 준비되는 대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혹시 일행분이 있으시면 1인분은 그분 오실 때 따로 가져다 드릴까요?”

       “아, 아뇨. 제가 다 먹을 거라.”

       “알겠습니다! 편안한 시간 되시고 필요한 거 있으시면 바로 불러 주십시오.”

       

       다소 영업용 하이톤이었던 여관 주인의 목소리가, 거스름돈은 안 줘도 된다는 말에 묘하게 부드러워졌다. 

       입가에도 어느새 미소가 걸려 있었다. 

       

       ‘크으. 이 맛이지.’

       

       빙의 전에는 백 원짜리 하나도 꼼꼼하게 챙겨야 했던 내가 ‘잔돈은 됐어요’를 직접 써 보다니.

       

       나는 열쇠를 받아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가방을 열어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해츨링을 꺼내 주었다. 

       

       “쀼웃!”

       

       해츨링은 가방 안에서 가만히 있던 게 답답했는지, 곧바로 방 안을 도도도 뛰어 다니면서 구경했다. 

       

       ‘이 정도면 방 퀄리티도 꽤 괜찮은데?’

       

       솔직히 게임할 땐 캐릭터가 싼 여관에 묵나, 비싼 여관에 묵나 유저 입장에서 달라지는 게 피로도 회복 수치밖에 없었기에 웬만하면 싼 여관을 이용했었는데….

       

       괜히 내가 키웠던 캐릭터들에게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쀼우웃!”

       “그게 내가 아까 말했던 ‘침대’라는 거야. 어때, 푹신하지?”

       “쀼우우!”

       

       해츨링은 이렇게 푹신한 건 처음 본다는 듯 침대 위에 올라가서 방방 뛰어 보다가, 그다음엔 몸을 뉘인 채 부드러운 이불의 촉감을 즐기며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얘야, 너 그러다 떨어지….”

       

       쿠웅!

       

       “쀽…!”

       “…….”

       

       나는 침대에서 떨어져 바닥에 코를 부딪힌 해츨링을 데려와 무릎에 앉혔다.

       

       “이 사고뭉치 녀석….”

       “뀨우….”

       

       나는 피식 웃으며 통증이 가라앉을 때까지 녀석의 코를 문질러 주었다. 

       

       “식사 나왔습니다! 여기에다 두고 가겠습니다!”

       “아아, 네! 감사합니다.”

       “손님?”

       “네?”

       “방금 쿵 소리가 났는데 어디 다치신 건 아니지요?”

       “…아, 네. 괜찮습니다.”

       

       여관 주인은 손수 식사를 가져와 문앞에 두고, 욕실 물도 받아 놓을 테니 식사하고 천천히 목욕을 하라고 일러 주었다. 

       

       식사는 생각보다 푸짐했다. 

       

       야채 베이스에 고기를 조금 썰어 넣은 걸쭉한 스튜, 그리고 구운 돼지고기에 샐러드가 함께 제공됐다.

       

       “스튜는 뜨거우니까 고기 먼저 먹으렴. 내가 조금 이따가 떠 줄게.”

       “쀼웃!”

       

       해츨링은 먹으라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먹기 좋게 잘라진 돼지고기를 한 점씩 야무지게 입에 넣고 씹었다.

       

       “쀼우우….”

       “맛있니?”

       “쀼우…!”

       

       누가 성장기 아니랄까 봐, 해츨링은 고개를 주억거리면서도 행복한 얼굴로 끊임없이 고기를 입에 집어넣었다.

       

       ‘진짜 맛있게 먹네.’

       

       저렇게 먹을 때마다 복스럽게 먹으니, 내 고기라도 하나 더 주고 싶어진다.

       

       나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해츨링의 템포를 천천히 따라 고기와 샐러드를 먹었다. 

       

       그리고 스튜가 적당히 식었을 때쯤, 해츨링을 무릎에 앉히고 숟가락으로 스튜를 떠서 해츨링의 입에 넣어 주었다. 

       

       “뀨우우…!”

       

       해츨링은 얌전히 앉아 마치 어미새가 물어다 주는 모이를 기다리는 아기새처럼 입을 벌리고 스튜를 받아 먹었다. 

       

       그리고 잠시 후.

       

       “아, 배부르다.”

       “뀨우….”

       

       해츨링에게 스튜를 다 먹이고 나도 그릇 밑바닥까지 스튜를 싹싹 긁어먹고 나자, 푸짐했던 접시가 텅 비었다. 

       

       배부르게 먹고 나니 식곤증이 몰려왔지만, 나는 꾹 참고 해츨링을 데리고 욕실로 들어갔다. 

       

       “오늘 같은 날 제대로 씻어야지.”

       

       야생에서 차디찬 개울물만으로 몸을 씻어야 했던 끔찍한 시간은 이제 끝이다. 

       

       나는 따뜻하게 데워진 물에 몸을 푹 담갔다.

       몸을 담그자마자 내 입에서 자동으로 구수한 리액션이 나왔다.

       

       “아으, 좋다! 시워어언하다.”

       “쀼우?”

       “아, 여기서 시원하다는 건 차갑다는 의미가 아니라 몸이 잘 풀어진다, 그런 뜻이야.”

       “쀼우!”

       

       해츨링이 새로운 걸 배웠다는 듯 오른쪽 앞발을 쥐어 왼손바닥에 대고 톡, 쳤다. 

       

       “하아…. 온탕이 최고야….”

       

       나는 온몸을 감싸는 황홀한 따스함에 반쯤 취한 목소리로 해츨링을 불렀다.

       

       “아아, 진짜 살 것 같아…. 얘야, 너도 들어올래?”

       “쀼우!”

       

       탓!

       

       나는 다짜고짜 물에 뛰어들려고 점프한 해츨링을,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공중에서 탁 잡았다. 

       

       “읏차.”

       

       내가 씨익 웃었다.

       

       “내 그럴 줄 알았지. 처음엔 뜨거우니까 천천히 들어와야 한단다. 그렇게 뛰어들면 다쳐.”

       

       그리고 해츨링을 잡은 채 천천히 따뜻한 물에 담가 주었다. 

       

       “뀨우우….”

       

       처음에는 조금 뜨거워하는 것 같던 해츨링은, 곧 나처럼 따뜻한 물에 모든 걸 맡기고 풀린 눈으로 누워서 이따금씩 뀨우 소리를 냈다. 

       

       한동안 온욕을 즐기던 우리는 탕에서 나와 비누로 몸을 씻고, 다시 한번 따뜻한 물을 몸에 부어 마무리했다. 

       

       방으로 돌아온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침대에 몸을 던졌다. 

       

       푹신한 베개에 머리를 대자, 이대로 눈을 감으면 30초 안에 잠들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으음, 잘 자렴.”

       

       나는 평소처럼 내 품에 파고든 해츨링을 습관적으로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그리고 내가 점점 잠에 빠져들 때쯤.

       

       “쀼! 나, 궁금한 거 이써!”

       “으응?”

       

       해츨링이 이불 밖으로 고개를 쏙 내밀고, 웬일로 반짝거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음성화를 사용했다. 

       

       “뭔데?”

       

       음성화까지 사용할 정도로 궁금한 거면 대답해 줘야지.

       

       내 말에 해츨링은 최대한 짧게 질문할 수 있는 문장을 찾는 듯하더니 곧 눈을 빛내며 다시 물었다. 

       

       “사역마, 무슨 뜻이야?”

       “아아, 그거.”

       

       아무래도 아까 잡화점에서 스미스 씨와 나눴던 이야기의 내용이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마을에 들어오기 전에 미리 해츨링에게는 ‘네 존재를 들키면 와이번이라고 변명할 거고,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눈치껏 동조하면 된다’라고 말해 두긴 했지만, 사역마 얘기 등 디테일한 시나리오는 알려주지 않았었다. 

       

       나는 간단하게 그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인간이랑 마물이 영혼의 계약을 맺고 일종의 파트너가 되는 거라고 생각하면 돼. 사역마 계약을 하면 둘의 존재가 밀접하게 맺어지고, 구속력이 생기기 때문에 테이머들은 강한 마물과 계약하고 싶어하지.”

       “구속력?”

       “응. 영혼 계약이니까.”

       

       나는 대충 이쯤에서 설명을 끝내려다가, 워낙 해츨링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듣고 있어 추가 설명을 해 주었다.

       

       “한 번 계약하면 웬만해서는 끊어내기 힘들고, 서로 같이 다녀야 하기 때문에 강한 마물이랑 한 번 계약에 성공하면 어느 정도 안전도 보장받을 수 있고, 힘도 빌려 쓸 수 있으니 테이머 입장에선 장점이 뚜렷하긴 해. 다만 한쪽이 죽으면 파트너의 목숨도 위험해지는 등 리스크가 있기도 하고…. 여러모로 보편적인 계약은 아니지.”

       “끊기 힘들고, 같이 다닐 수 이써?”

       “어, 뭐…. 그렇긴 하지. 하아암…. 얘야, 나 너무 졸려. 그만 자도 될까? 나머지도 궁금하면 내일 얘기해 줄게.”

       “우응! 충분해! 자도 대!”

       

       겨우 겨우 눈꺼풀에 힘을 주고 버티고 있던 나는, 그대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내 눈앞에 떠 있는 상태창을 발견하고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Lv.3 「해츨링」과 사역마使役魔 계약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영혼의 밀접도에 따라 사역마의 정보를 열람할 수 있습니다.]

       [고유 특성을 개방할 수 있습니다.]

       [고유 특성 :  「신뢰의 계약」이 개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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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I Picked Up a Hatchling

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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