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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

       죄란 무엇인가.

         

        누가 정의하고, 누가 판단하는가.

         

        자유가 약속된 곳에서 모두 함께 웃고 떠들던 시절의 추억을 뒤늦게 범죄라 낙인찍을 수 있는 것인가.

         

        50년 전 다 함께 수박밭을 서리하고 주인 아저씨에게 쫓기며 깔깔거리던 꼬맹이들이, 뒤늦게 그 중 한 명만을 콕 집어서 절도범이라 매도하는 것이 과연 정의로운가?

         

        그것도, 단순히 룰렛에 의해서 주목을 받았다는 이유로?

         

        그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법정에서 판사님께도 당당히 말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여긴 법정이 아니고, 내 죄는 판사님이 판단해주지 않는다.

         

       이건 한 명의 원님이 마음대로 처분을 정하는 원님재판이자,

        구경꾼들이 마음껏 돌을 던지며 여론을 조성하는 마녀재판이다.

         

        변호사의 도움조차 없이 이 가시밭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를 주장하면 안 받아주겠지?

         

        나는 복잡한 생각들을 뒤로 한 채, 원님에게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dam0729):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아이디 너무 긴데 줄여 불러도 될까요?》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dam0729): 네]

         

        《어떻게 줄이면 될까요? 따뜻한님? 괜찮나요?》

         

        잠시 망설였다.

         

        왠지 따뜻하게 작별할 것 같잖아. 저렇게 부르면.

         

        하지만 난 지금 이미 처형대에 목까지 올려놓고 있는 잠재적 죄인이다. 심기를 거슬러서는 안 된다.

         

        그 정도 사리분별은 있다.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dam0729): 네.]

         

        《일단 룰렛의 결과는 준엄한 거니까 시참 초대는 드리기는 할 건데…… 하실 건가요?》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dam0729): 제가 급한 일정이 있어서요]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dam0729): 혹시 사면권으로 트레이드 가능할까요]

         

        일단 준비한 변호 전략을 꺼내들었다.

         

        도댓 방송의 컨텐츠 중 하나, 사면권.

         

        죄질이 매우 나쁜, 극악무도한 짓을 저지른 자가 아니라면 영구밴조차도 해제받을 수 있는 권리다.

         

        사면권은 룰렛으로 얻는 것이고, 내 시참권도 룰렛으로 얻은 것이니, 응당 1:1 교환이 되어야 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내 기발한 전략에 대한 채팅창의 반응은 대개 비슷했다.

         

        『사면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도댓쌤 방에 사면권이 있었어?』

        『진짜 가끔 밴 풀어달라고 도게자한 놈들 한 번에 모아다가 룰렛 돌려서 1명 풀어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지도 밴 당할 건 이미 알고 있네 ㅋㅋㅋㅋㅋㅋㅋㅋ』

        『절대! 안 바꿔준다! 게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되겠냐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조롱하거나,

         

        -ㅇㅇ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선생님 저 놈 아크방에서 급한 일정 있다고 튀고는 여기서 방송 보고 있던 놈입니다 속지 마세요】

         

        고자질하거나,

         

        『그놈의 급한 일정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면권 같은 소리 하고 있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넌 나가라~』

         

        비웃었다.

         

        ……억울하다.

         

       그 때는 정말 급한 일정이었다. 지금은 아니긴 한데, 아무튼.

         

       도댓의 도적 1패쫑 방송은 중대사항이다.

         

        유일하게 도적을 최대 12판까지 연속으로 하는 컨텐츠인데, 부캐를 소모하는 컨텐츠다보니 자주 하지도 못한다고.

         

       그런 의미에서는 사전에 공지도 안 해줬으면서 갑자기 도적 1패쫑을 선언한 도댓에게도 과실이 있다고 생각한다. 차마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러고보니…… 아크한테는 치킨을 다 먹고 나서 인증샷을 보내며 사과 문자를 보내려 했는데, 언니가 집에 오면서 너무 정신이 없어서 순간적으로 잊어버렸다.

         

        머리 한 켠의 ‘사과할 일 목록’에 아크를 적어 두고 있는 사이, 도댓의 방송에서는 또다시 억울한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었다.

         

        《아크님? 따뜻한님, 아크님 방에서도 또 뭐 하셨어요?》

         

        -ㅇㅇ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뭘 안 했는지 묻는게 더 빠릅니다 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건 그래』

        『ㄹㅇ 안 한게 뭐냐』

        『ㄹㅇ 진짜 안 한게 뭐지……?』

        『안 한 게 없 어……!』

         

        아닌데. 안 한 거 많은데.

         

        생각만 하고 차마 못한 것도 많고.

         

        진짜 많은데.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dam0729): 억울해요]

         

        《음……일단 알겠습니다. 아크님 방에서 있었던 일은 아크님이 판단하실 문제니까요.》

         

        《그래도 사면권 트레이드는 안 되고요. 보니까 전과도 있으시네요……어디보자. 마지막에 도적 얼굴 단검 아스키아트 번갈아 보내신 걸로…… 7일 차단.》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dam0729): 사연이 있었어요]

         

        『사연 없는 범죄 없다』

        『범죄자들 레퍼토리는 어떻게 항상 똑같냐』

        『도적 얼굴이랑 단검을 도배하게 되는 사연은 대체 무슨 사연임……?』

        『도적이 집에 침입해서 목에 단검을 대고 협박했나?』

        『 ㅇㅎ 구조신호였구나』

        『구조신호였으면 인정이지』

         

        《음……》

         

        머리를 긁적거리며 고민에 빠지는 듯하던 도댓이, 이내 기기를 조작하여 음원재생 사이트로 들어갔다.

         

        안 돼.

         

        저거-

         

        《안타깝지만 죄는 죄니까요. 시참 한 번 하시고, 깔끔하게 졸업하시죠. 가시는 길 적적하지 않게 노래 한 곡 틀어드릴게요.》

         

        –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

        – 작별이란 웬 말인가 가야만 하는가

         

        도댓이 시청자를 졸업 시킬때마다 트는 음악이 들려왔다.

         

        『오랫동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또 한 명 이렇게 졸업하는구나』

        『멀리 안 나갈게 잘가~』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여』

        『잘~ 가시오 잘~ 있으오~ 축배를 든 손에~』

        『처형 노래 ON』

        『졸업 노래입니다~ 처형 아니에요~』

        『졸업(퇴학)』

         

        아이피 밴을 포함한 영구밴 처분이다.

         

       언젠가 우연에 기대어 사면권을 얻어내기 전까지는 절대로 해제되지 않는다.

         

       한 번 영구밴을 당한 시청자는, 부캐로 찾아와서 돈을 내며 풀어달라고 해도 그 아이디까지 밴을 당할 뿐이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나오나 스트리머는 하루에도 한 명씩 생겨나니 거의 무한하고,

        챌린저 스트리머도 손으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고,

        도적으로 예능하는 스트리머도 있기는 있지만,

         

        마스터에서 챌린저 사이 구간에서도 도적을 써주는 스트리머는 없다.

         

        도댓 하나다.

         

        정확히는, 전세계를 기준으로 도댓 외에 러시아 여자 스트리머가 한 명, 폴란드 남자 스트리머가 한 명 있다.

         

        그런데 얘네는 심지어 영어도 안 쓴다.

         

        채팅마저 다 러시아어 혹은 폴란드어다.

         

        그러니까,

         

        만약 도댓 방송에서 아이피 밴을 당하면, 나는 앞으로 도댓 방송에서 채팅을 치기 위해 이사를 가서라도 아이피를 바꿔야한다.

         

        아니면 러시아어나 폴란드어를 배우거나.

         

        아니, 그럴 순 없다. 그럴 리 없다.

         

        그렇게 되면 나, E사 혹은 N사의 VPN을 사버릴지도?

         

        아니, 분명 그럴 것이다.

         

        그리고 그 때는 지불한 값의 효용을 누리고자 최대한 노력하겠지.

         

        그러니 바라건대, 그대 역시 현명한 판단을 하기를.

         

        라는 말을 요약해서 하려고 하던 순간.

         

        벼락이 치듯 불현듯 떠올랐다.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dam0729):        ㅏㅈㅁ깐]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dam0729):        잠깐만요]

         

        《네.》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dam0729):        재판]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dam0729):        신청합니다]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dam0729):        결투재판]

         

        아무도 신청을 안 해서 잊혀져가고 있는, 도댓의 방송 규칙 중 하나.

         

        결투재판.

         

        3개월 이상 방송을 팔로우한 자는, 그 어떤 죄를 지어도 단 한번 도댓과 직접 결투해서 승리를 쟁취함으로써 무죄를 입증할 수 있다.

         

       본인도 잊고 있던 규칙이었는지, 흠칫 놀란 표정의 도댓이 클라이맥스를 향해 가던 노래를 꺼버리고는 카메라를 응시하며 말했다.

         

        《결투재판이요.》

         

        『???』

        『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걸 진짜 신청하는 사람이 있네』

        『결투(처형)』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도댓쌤한테 결투재판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임하게 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보자마자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 규칙이었다.

         

        -ㅇㅇ님이 1,000원을 후원하였습니다!-

        【아따먹아……어차피 졸업할 거 회초리라도 안 맞고 가는게 낫지 않겠냐…?】

         

        『ㄹㅇ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졸업식에 굳이 종아리를 걷고 회초리를 맞는ㅋㅋㅋㅋ』

         

       《결투재판 패소는 아이디, 아이피, 주민등록번호 영구밴이고, 특별사면 및 사면권 대상에서 제외되는 거 아시죠?》

         

        [따뜻한아메리카노먹고싶다(dam0729): 네]

         

        《아이디 보내세요.》

         

        강한 자가 옳다.

         

        상식이잖아?

         

        * * * *

         

        [작성자:ㅇㅇ]

        [제목: 도댓쌤 vs 아따먹 결투재판 ON ]

        [빨리 보러가라 선 1킬이라 금방 끝날거같음]

        –     ?? 누가 또 자살신청함?

        –     저번에 광질 턴 도적충

        –     ㄴㅋㅋㅋㅋ광질을 털었단다 ㅋㅋㅋㅋㅋ 1킬도 못 따고 버그인지 핵인지 써서 겨우 이겼는데 ㅋㅋㅋㅋㅋ

        –     ㄴ 응~ 느그 광질 개 털렸어~

        –     ㄴ 그것도 도적한테 털렸어~

        –     ㄴ 광전사로 도적한테 털리기 vs 알몸 도게자하기 뭐가 낳냐?

        –     ㄴ 둘 다 싫은데요

        –     ㄴ 착하구나 광질아 두 개 다 주마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씹

       

       [작성자: ㅇㅇ]

       [제목: 그러고보니 광질 알몸 도게자 왜 안 함?]

       [은근슬쩍 요즘 걍 안 보이네

       

       탈갤할 때 하더라도 알몸 도게자는 하고 가자 ~ 광하다 추질아~]

       –     너라면 하겠냐

       –     아따먹 눈나가 시키는 건데 포상이지 ㅋㅋㅋ 왜 안 함?

       –     ㄴ ㄹㅇ 나라면 지하빵 안 져도 함

       –     ㄴ 찾아가서 함

       –     ㄴ 앞에서 360도로 돌며 여러 각도의 도게자를 보여줄 수도 있음

       

       –     경찰에서 연락오면 그러려니 해라 니네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Acedia님, 15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가슴을 울리는 사연에 부득이하게 다음편을 앞당겨드렸습니다….만, 이번만입니다?

    * 도댓이 튼 노래는 이선희, 석별의 정입니다. 노래 취향도 그의 액면가와 비슷합니다.

    ** 이예나는 ip주소를 변경하면 이사를 가지 않아도 ip 밴을 피할 수 있다는 걸 모릅니다. 여태까진 밴당하면 쿨하게 다른 방에 둥지를 텄거든요.

    다음화 보기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It’s Not That Kind of Malicious Broadcast

그런 악질 방송 안ㅣ에요
Score 3.7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am a healthy skill-based broadcaster.

I don’t hate priests.

It’s not that kind of broadcast.

What?

Clarify the controversy that’s been posted on the community?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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