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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

       “회장님께 보고했나요?”

       

       방금 얘가 회장님이라고 한 건가?

       

       신소희는 그 말을 듣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족 없는 어리고 예쁜 아이’인 사라와 ‘회장’이라는 단어가 합쳐지자, 몹시 꺼림칙한 분위기가 났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가족이 없는 아이가 고아원에 가지 않고 이런 저택에 살고 있는 것부터가 이상하긴 했다. 아무리 상속을 많이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 미성년자가 사용할 수 있는 재산에는 한계가 있지 않던가? 사실 성적 지향을 제외하면 다른 평범한 십 대 아이들과 다를 것이 없는 신소희는 법적인 것은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재산적인 것은 잘 몰라도, ‘회장님’이라는 단어의 어감이 ‘십 대 여고생’이라는 단어와 만났을 때 얼마나 추악한 분위기를 내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신소희도, 신소희 주변의 친구들도 ‘회장님’이나 ‘사장님’, 혹은 ‘오빠’를 만나러 다니는 일은 없긴 했지만, 뉴스나 건너 듣는 이야기로는 종종 그런 이야기들이 들려오긴 했다.

       

       ……예를 들어 이른바 ‘스폰’이라던가.

       

       거기까지 떠오른 신소희는 순간 기분이 팍 상하는 것을 느꼈다.

       

       왜?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 ‘회장’이라는 존재가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는 몰라도, 결코 정상인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고작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가 보겠다고 차 타는 것을 굳이 거부하고 담을 넘고 있던 저 소녀의 마음이, 소희는 이제야 조금씩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정확히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사라라는 소녀는 ‘회장’이라는 자에게 잡혀있는 인형 같은 존재가 아니겠는가.

       

       이렇게 큰 집에서 혼자 생활하는 것도, 아마 그 ‘회장’의 재력 덕분일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큰 집에, 그렇게 철저한 감시하에 사라가 혼자 지내는 것도—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람.

       

       신소희는 남들 모르게 한숨을 푹 쉬었다. 생각을 남에게 들킨 것은 아니었지만, 얼굴이 화끈거렸다.

       

       망상도 이 정도면 병이다. 심지어 당사자를 앞에 두고 무슨 요상한 상상이란 말인가.

       

       수양딸이라도 아직 정이 들지 않았다면 회장이라고 부를 수도 있는 거고, 그 회장 친구의 자식이라거나 먼 친척이라는 등, 제대로 생각해보면 논리적으로 설명할만한 구석이 많았는데도 그런…… 엄한 상상을 한 자기 뒤통수를 한 대 때려주고 싶어질 정도였다.

       

       “옷을 받아드리겠습니다.”

       

       결국, 신소희는 메이드가 그렇게 말하며 카디건을 받아 갈 때까지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혼자 수치심을 느끼고 있었다.

       

       덕분에 본의 아니게 메이드가 옷을 받아 갈 때 “아, 으…….”하는 쪽팔린 소리까지 내고 말았다.

       

       저택은 확실히 화려했다. 한 세기 전에는 백화점으로 쓰였던 건물이라고 했던가? 요즘 백화점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건물보다야 훨씬 작긴 했지만, 그래도 개인이 살기에는 차고 넘치다 못해 안 쓰는 공간이 더 많을 것 같은 규모의 저택이었다.

       

       내부는 화려하긴 했지만 지나치지 않았다. 사람이 없어서 다소 휑해 보이기는 했지만, 솔직히 이런 곳에 초대받은 것으로도 몇 년 정도는 자랑거리로 삼아도 될 것 같은 대단한 건물이었다.

       

       “…….”

       

       그런 곳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뽐내도 이상한 것이 없는데, 저 바깥에서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이런저런 헛소리를 하고, 표정을 이리저리 마구 바꾸던 사라는 저택 안으로 들어온 시점에서부터 쭉 무표정이었다. 사용인들을 향해 존댓말로 말을 걸 때는 아까 다퉜을 때와는 다르게 다소 차가운 분위기까지 느꼈을 정도다.

       

       그런 태도나 표정만 보더라도, 사라가 이 공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 것 같았다.

       

       ……다시 아까의 별로 기분 좋지 못한 망상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

       

       유하늘은 스스로가 꽤 똑똑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데는 근거가 있었다. 중학생 내내 열심히 공부한 결과, 어떻게든 화영 고등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할 수 있었으니까. 솔직히 입학이 대단히 어려운 학교라는 이미지는 없었다. 돈만 있다면 어떻게든 입학은 가능한 학교였으니까.

       

       하지만 그 ‘돈 많은 학생들’ 사이에서 1등을 하는 것은 의외로 쉽지 않은 일이다. 자기 부모의 재산만 믿고 별다른 공부를 하지 않는 경우도 많기는 했지만, 반대로 화영 고등학교의 최상위 학생들은 부모가 돈을 퍼부어서 온갖 학원과 과외수업을 붙여주는 학생들이 득시글했다. 온갖 예습과 족집게 과외로 사실상 문제를 미리 본 거나 다름없는 아이들 사이에서 유하늘은 1등으로 입학한 것이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이걸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상관없다. 앞으로도 계속, 노력에 노력을 더해 자신을 깔보는 아이들을 이겨 보일 생각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유하늘이었기에, 예사라에 대한 정보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사라와 친분을 쌓은 그 날, 집으로 돌아와 사라의 이름을 인터넷에 검색해봤으니까. 화영 고등학교의 학생들이 정말로 대한민국 재계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집안의 사람들이라면 사라의 이름도 인터넷 어딘가에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맞는 생각이었다.

       

       사라 개인에 대한 정보가 많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어린 시절에 찍은 몇 개의 사진이 인터넷에서 떠돌면서 ‘대한민국 재계 미모 상위 1%’ 같은 내용이 붙어있을 뿐이었다. 지금까지는 왜 그렇게 정보가 적은 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 겪어보고 나서야 알았다. 사라의 정보가 인터넷상에 별로 없는 것은, 아마도 사라가 말한 그 ‘회장’이라는 사람이 통제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사라의 정보를 많이 찾아볼 수는 없었지만, 그 ‘회장’의 정보는 꽤 많이 봐서 알고 있다. 세계 시총 1위의 유진 그룹을 손 위에 올려두고 있는 최나경 회장.

       

       전 회장이자 사라의 아버지였던 분과 재혼한 뒤, 그대로 회장의 소유였던 유진 전자의 지분을 상속받아 회장이 된 사람이었다.

       

       ……또 다른 상속자인 사라를 괴롭히고 있는 걸까?

       

       사라가 오늘 담을 넘은 것도, 숨 막히게 조여오는 감시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유하늘은 한 번 상상해 보았다. 이렇게 넓은 세상에서, 오로지 회장이 선택한 사람들에 둘러싸여 그 사람들의 얼굴만 보고 살아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마저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처지고…… 믿을 수 있는 존재라곤 학교 친구 몇 명뿐인 삶을.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이렇게 넓어 보이는 저택마저 좁디좁은 새장같이 느껴졌다.

       

       “옷을 받아드리겠습니다.”

       

       생각에 잠겨있는데, 뒤에서 누군가 불쑥 그렇게 말을 걸었다. 돌아보니 차가운 인상에 메이드복을 입은 여인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왼팔에 사라가 입고 있었던 코트를 곱게 건 채로 공손하게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기분 탓인지 그 눈매까지 공손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마치, 자신을 의심하고 있는 것 같은 눈빛.

       

       유하늘은 종종 살아오면서 이런 기분을 받는 순간이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의 눈에서, 문득 찌릿, 하는 기분을 받는 것이다. 유하늘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보이는 부정적인 감정을 쉽게 눈치채는 경우가 많았다. 그 빈도는 다소 불규칙하긴 했지만, 그 직감을 따라 행동해서 틀렸다고 느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앗, 저기, 저 혼자서도……”

       

       누군가가 자기 옷을 받아주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었던 유하늘은 순간 그렇게 반응했지만,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메이드를 보고는 조용히 뒤로 돌아섰다.

       

       일단 이 안에서는 규칙에 따르는 것이 제일 좋을듯싶었다. 내부에 친근하게 느낄 수 있는 사람의 수는 극히 적었으니까. 메이드뿐만이 아니라, 식당 문 앞에서 기다리는 사람들도, 저택의 입구에서 이쪽을 살피고 있는 검은 양복의 사내들도, 모두 찌릿찌릿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사라는 이런 살얼음판 같은 곳에서 계속 살아온 것일까.

       

       유하늘은 얼핏 봐선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는 사라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언젠가, 사라가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직접 말해주기만 하면, 자신의 미약한 힘이라도 반드시 빌려줘야겠다고.

       

       *

       

       ‘동경’이라는 것은 ‘모른다’라는 사실에서 나온다.

       

       소방관을 동경하고 소방관이 되고자 하는 어린아이는 소방관의 사망률이나 소방관들이 받는 대우에 대해서 모르는 경우가 많다. 대기업에서 일하는 것을 동경하는 이들은 월급을 부러워하긴 해도 그곳에서 당하는 온갖 사회적인 부조리는 잘 모르기도 한다. 검사나 판사가 되어 법의 집행자가 되고자 하는 이들은, 막상 그 직장을 얻고 나서 알게 되는 온갖 추악한 사실들에 경악한다.

       

       돈도 마찬가지다. 가지지 못한 이들은 가진 이들을 동경하지만, 돈이 많아서 오는 부작용에 대해서는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이수아도 마찬가지였다.

       

       예사라라는 아이의 뒤에서 어떤 추악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쉽게 알아차릴 만하다. 당장 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만으로도 사라가 말한 그 ‘회장’이라는 사람이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지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

       

       물론 그 이유에 대해서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어른들은 그 이상으로 심각하고 적나라한 이야기를 굳이 자신들의 자식 앞에서 늘어놓을 생각이 없어 보였고, 그건 이수아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아이들도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그 ‘돈 많은’ 쪽의 어른들 아래에서 자라다 보면 그 어른들이 흘리는 ‘덜 적나라하고 덜 자극적인’이야기들만으로도 대충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눈치채게 되는 법이다.

       

       그러니까…… 뭐, 이쪽 판의 문제가 거의 다 그렇듯, 사라가 겪는 문제도 돈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회장과 재혼한 뒤, 회장이 사망했다. 재산은 그 딸과 부인에게 나누어져 간다. 딸은 아직 미성년자고, 미성년자는 자신이 상속받은 재산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다. 그러니 그걸 누군가 관리해야 한다.

       

       그런 순서대로 따라가면, 유진 그룹의 최나경 회장은 아마 자기 수양딸인 예사라의 재산을 노리고 움직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소리다.

       

       그 움직임이 어째서 개인의 고립으로 향했는지 알지는 못했지만.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상황만 두고 보면 그 계획은 완전한 실패였다.

       

       사라는 그런 상황에서조차 자신감을 완전히 잃어버리지 않았다. 언제나 행동하는데 당당했다. 오히려 자신을 따돌리는 다른 아이들에게 관심조차 없다는 듯 굴었다.

       

       게다가, 벌써 사라의 주변에 쌓여있던 장벽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물론 그 장벽을 다 무너뜨릴 수 있을지, 아니면 결국 조금 넓어져 주변에 겨우 생긴 몇 안 되는 사람들마저 집어삼킨 채 더 견고하게 솟아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그 장벽 안에는 이수아 자신도 함께 갇혀버릴지 모르는 일이다. 사실, 이미 이수아가 사라와 함께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중학생 때부터 알던 친구들과의 관계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아직 모르시는 것 같지만, 아마 계속해서 사라와 다니다 보면 중학생 때 그랬던 것 같이 또 이수아를 불러서 경고를 할지 모른다.

       

       ……동경이라는 것은 원래 무지에서부터 시작되는 법이다.

       

       이수아는 아직 사라가 겪어온 일들이 얼마나 모질고 거친 일인지 알지 못했다. 이렇게 큰 저택에 혼자 산다는 것이 얼마나 외로운 일인지, 아직 정확하게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런 삶을 살면서도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은 사라를 동경했다.

       

       어른들의 말 몇 마디에 겁먹고 한 아이를 외톨이로 만드는 것에 동의했던 자신과는 다르게 언제나 두려움 앞에 당당하게 맞서는 그 모습은, 이수아가 보기에 너무나 멋진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조금만 더 동경해보기로 한다. 따라가 보기로 한다.

       

       “옷을 받아드리겠습니다.”

       

       사라처럼 자연스럽지는 않지만, 이수아는 사라가 했던 것을 따라 최대한 당당하게 옷을 벗어 건넸다.

       

       메이드의 시선이 힐끔, 얼굴을 훑는 것이 느껴졌다.

       

       긴장한 표정일까? 아마 긴장한 표정일 것이다.

       

       아마 사라처럼 담담해지려면 훨씬 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솔직히, 언제까지 저 등을 따라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마 중간에, 사라가 겪은 현실의 반의 반만 겪어도 도망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수아는 소망했다.

       

       언젠가 자신도 사라처럼 저렇게 당당한 모습, 당당한 태도로, 그녀 앞에 자신이 저지른 짓을 참회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소망했다.

       

       지금 이 순간, 표정 없이 메이드의 뒤를 따르는 사라는 대체 어떤 심정일까?

       

       *

       

       아, 오늘은 힘을 너무 많이 썼다. 운동에, 담까지 넘고. 길을 잃어서 한참 돌아다니고.

       

       예사라의 몸으로 겪기에는 너무 부담이 많은 하루였다.

       

       ……어쩌면 배고픈 만큼 오늘은 스테이크 한 조각은 더 먹을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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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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