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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

       이런 걸 볼 줄 아는 걸 보면 눈이 그리 나쁜 건 아닌 것 같은데. 흠.

       

       “다시 덤벼 보거라. 창수의 기본을 알려주마.”

       “네!”

       

       이번에도 엔리는 돌진을 택했다.

       

       시작할 때 저 기술을 쓰는 게 버릇인 걸까.

       

       의도가 명확한 공격이었기에 그걸 차단하는 것도 쉬웠다. 나는 때를 재어 창대로 엔리의 허벅지를 내리 쳤다.

       

       넘어트리지 않고 충격만을 주어 동작을 멈출 수 있도록 절묘히 계산을 했다.

       

       “엔리. 지금 이 거리가 바로 창수의 거리다. 창수라면 이 거리를 목숨보다 중히 여겨야 한다.”

       

       창이라는 병기가 입문하기는 쉬우나 숙달하긴 어렵다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창은 그 길이가 긴만큼 동작 하나하나가 크고 느리다. 그렇기에 상대가 거리를 좁혀 압박하기 시작하면 그 속에서 빠져나오기란 어렵다.

       

       창을 다루는 이에 한해서 거리를 내어준다는 것은 패배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오늘 그대에게 알려줄 것은 이 거리를 유지하는 방법이다.”

       “겨우 그것만요?”

       

       겨우라니. 창수에게 가장 중요하면서도 심오한 이치가 담겨 있는 것이 바로 이 거리를 유지하는 방법이거늘.

       

       나조차도 전문적인 창수가 아니기에 이 모든 이치를 파악하지는 못하는데 이걸 겨우라고 말하다니.

       

       아마도 엔리가 무에 관해 무지해서 나온 말일 테지.

       

       뭐어. 직접 배워보면 절로 곡소리가 나올 것이다. 나도 이전에 그랬으니까.

       

       “기술 같은 건 안 알려 주세요?”

       “그럴 필요가 없다. 보정으로 펼치는 것이면 충분해.”

       

       지금 이상으로 정교한 기술을 가진다 한들 기본이 안 되어 있으면 없느니만 못하다. 갈고 닦아야 할 것은 기본이다.

       

       “그치만 보정으로 쓰는 기술은 뻔하잖아요.”

       

       엔리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해 잠시 굳었다.

       

       “무슨 소린지 풀어 말해주겠느냐?”

       “그러니까요.”

       

       보정 시스템이 사용하는 기술은 어디까지나 기록된 동작을 이행할 뿐이다.

       

       게임에 익숙해지면 상대가 보정으로 쓰는 기술의 전조만으로 모든 걸 파악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아피스를 하는 유저들은 모두 보정 시스템을 점차 줄여가며 보정 시스템 없이 기술을 펼치는 걸 최우선 목표로 삼는다고 엔리는 설명했다.

       

       내가 생각하기엔 참으로 장대한 헛소리였다. 아무리 무기를 갈고 닦아 봐라. 사용하는 인간이 별로면 무기도 별로가 되는 법이다.

       

       이 역시 말로 설명하기보단 보여주는 것이 낫겠지.

       

       “엔리. 내가 랭크 게임에서 상대와 싸우는 모습을 그대에게 보여줄 수 있나?”

       “가능해요. 친구 추가만 받아 주세요.”

       

       엔리의 부탁에 난 게임의 시스템에 관해 잘 모른다는 걸 시인해야 했다. 친구추가는 또 무엇이더냐.

       

       그으러니까. 알림창이라는 것을 들어가서. 허? 뭐 이리 나에게 온 것이 많더냐. 그것도 대개가 생전 처음 보는 이들이 보낸 것이다만.

       

       일단 나중에 확인을 해보자꾸나. 당장은 엔리를 가르치는 일이 시급하니.

       

       친구 추가를 받은 후 연습장에서 빠져나와 랭크게임을 돌리니 얼마 안 가 상대가 결정 되었다.

       

       상대는 붉은 피부를 한 권사였다. 거대한 체구에 비해 날렵한 몸놀림이 인상적인 자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매치가 준비되었습니다.]

       [용사냥꾼 VS 붉은 오크]

       [20초 뒤에 게임이 시작됩니다.]

       [20]

       

       “오? 혹시 천마하시는 화령님 맞으세요.”

       “맞다.”

       

       지난 번 데케이와 다툼을 한 이후로 내 이름을 보면 알아보는 이가 많아졌다.

       

       반응이 다양해서 재미가 있었지. 무림에선 나를 보면 죽이려 들거나 경외하거나 둘 중 하나였거든.

       

       “용사냥꾼도 하세요?”

       “처음 해보는 것이다. 연습하러 온 셈이지.”

       “아. 그렇구나.”

       

       권사의 눈에 의지가 생겨났다. 무슨 생각인지는 명백했다. 내 서투름을 이용해 나를 이기고자 하는 구나.

       

       그 의기는 본 받을 만 하다만. 그리 가능성 있는 이야기는 아니겠구나.

       

       [3]

       [2]

       [1]

       [경기 시작]

       

       시작과 동시에 권사가 발을 움직였다. 빠르게 거리를 좁히려는 속셈이었다. 옳고 효율적인 선택이다.

       

       다만 다급하구나. 빈틈투성이이지 않느냐.

       

       창대로 허벅지를 때리고자 마음먹으니 몸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돌진이 가로막힌 권사가 바닥을 굴렀다. 여전히 권사와 나의 거리는 그대로였다.

       

       자아. 엔리. 그대에게 보여주마. 그대가 뻔하다 했던 보정 시스템이 잘만 활용한다면 얼마나 지독한 날이 될 수 있는 지를.

       

       *

       

       또 다시 붉은 오크가 뒤로 물러났다.

       

       오크와 아라 사이의 거리는 일 분 가까운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대로였다. 오크의 표정에서 답답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비겁하게 이러깁니까!”

       “비겁하다라. 극찬이군. 고맙네.”

       

       아라가 웃자 오크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험한 말이 튀어나올 것 같은 걸 필사적으로 참는 게 훤히 보였다.

       

       엔리는 관전으로 아라가 싸우는 모습을 보다 감탄을 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아라는 보정 시스템을 끝까지 당긴 채로 붉은 오크를 농락하고 있었다.

       

       엔리가 용사냥꾼을 플레이 한 지도 몇 년이 흘렀다. 그래서 용사냥꾼이 보정 시스템을 사용했을 때 어떤 기술을 사용하는 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아마 붉은 오크도 용사냥꾼의 기술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 용사냥꾼은 쉽고 강한 직업이기에 인구가 많고 때문에 그 누구보다 파훼가 잘 되어 있으니까.

       

       플레티넘을 찍은 사람이니까 모든 기술을 알고 있겠지. 그런데도 붉은 오크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아라의 의도에 놀아나야만 했다.

       

       신기했다.

       

       당장 아라가 펼치는 기술들은 엔리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라처럼 싸울 수 있느냐 묻는다면 못하겠다고 대답해야 했다.

       

       같은 기술을 써도 그걸 어떻게 펼치냐에 따라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구나.

       

       머잖아 제한 시간이 끝났고 그 때까지 엔리는 단 한 번의 공격도 허용해주지 않았다.

       

       참패를 당한 붉은 오크가 화가 나선 길길이 날뛰었지만 아라는 칭찬해주어 고맙다고 말하고는 게임에서 빠져나왔다.

       

       “엔리. 어떠냐.”

       

       자신이 넘치다 못해 오만해 보이는 어투였지만 지금의 아라에게는 이런 어투가 어울렸다. 왜냐면 지금 그녀는 정말로 천마 같았으니까.

       

       캐릭터가 바뀌고, 겉모습이 바뀌었음에도 말이다.

       

       “지금도 기본보다 기술이 중요하다 생각하느냐?”

       

       엔리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눈앞에서 기본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보여줬는데 어떻게 부정을 하겠는가.

       

       “그럼 다시 강의를 시작하자꾸나.”

       

       *

       

       “엔리. 거리를 유지하는 방법. 그 첫 번째는 상대의 기동성을 빼앗는 것이다.”

       

       내 아피스의 랭크 게임을 돌리며 상대를 죽이는 데만 집중한 건 아니었다.

       

       처음엔 빠른 승리를 추구했으나 그러다보니 영 재미가 없어서 말이지. 심심풀이겸 아피스의 전투 시스템이 어찌 되어있나를 파악해보려 했다.

       

       아피스는 어디까지나 게임이다. 팔이 잘리거나. 다리가 날아가거나. 관절이 부서져 너덜거리거나 하는 일은 없다.

       

       현대를 사는 이들에게 그러한 광경은 너무도 자극적일 테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 부위에 충분한 데미지를 입히면 상대의 동작을 늦추는 게 가능하다.

       

       다리에 피해를 줌으로서 기동성을 빼앗는 게 가능해진다는 이야기였다.

       

       “거리를 좁히려 하는 상대의 동작은 한정되기 마련. 그 때 다리를 노려라. 움직임을 방해해라. 그대의 창을 의식하게 만들어라.”

       

       뻔해도 상관없다. 다리를 노린다는 걸 의식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그 때부터 상대는 과감한 동작을 할 수 없게 된다. 상대의 공격을 생각하게 된다. 그럼 생각없이 달려들 때보다 동작이 둔해지기 마련.

       

       “상대의 동작에 망설임이 생겼다면 이젠 자잘한 공격으로 괴롭힐 차례다. 장창의 거리를 유지하며 찔러 주거라.

       

       상대가 물러난다면 같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상대가 다가오길 기다려라. 먼저 가지 마라. 어디까지나 뚫어야 하는 건 상대다. 거리를 줄 이유는 없다.“

       

       비겁하고 치졸하게. 상대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새 나올 때까지.

       

       결코 조급해져서는 안 된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조급함은 좋은 결과를 낳지 못한다.

       

       “오늘 그대에게 가르칠 것은 이 두 개다.”

       

       이것만 제대로 익히면 금색의 아해들에게 질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곳의 녀석들은 나름 생각을 한다고 하지만 자신의 의도가 흐려지는 순간 제 발로 패배에 뛰어드는 불나방이 되니.

       

       “바꾸어 말하자면 이 두 개를 익히는 데만 오늘 하루를 다 쓰게 될 거란 소리다.”

       

       무얼. 내 천마로 살아오며 다른 이들에게 가르침을 준 일이 한 두 번 이겠느냐. 교육을 함에 있어 서투름은 없으니 안심해도 괜찮다.

       

       또한 제대로 배우지 못할 것 같단 불안도 필요 없다. 배우는 건 그대가 아니라 그대의 몸일 테니까.

       

       내가 미소를 짓자 어째서인지 엔리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왜 그러느냐. 방금 그것은 스승의 자비로운 웃음이었잖느냐.

       

       *

       

       백아라는 아예 종이 다른 사람 같았다.

       

       데케이를 제압하는 그녀를 볼 때만 해도 천마를 엄청 잘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달랐다. 그녀는 그저 싸움을 잘하는 것이었다.

       

       실력을 파악해야 하니 덤벼 보라는 말과 함께 시작된 10분의 대련 동안 아라는 발 한 자국 움직이지 않고 엔리의 공격에 대응했다.

       

       하나의 상처도 입지 않았음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상대를 하는 엔리는 그녀가 자신의 머릿 속에 들어와 모든 생각을 읽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더욱 엔리를 놀라게 만든 점은 그녀가 싸움의 실력만큼이나 뛰어난 교육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처음 아라가 기술을 알려주지 않겠다 말했을 때 엔리는 놀랐다. 이전에 엔리를 가르치던 사람들은 하나 같이 보정 시스템을 줄여나가는 것부터 시작하자고 했으니까.

       

       안타깝게도 엔리는 스스로 기술을 펼치는 데 재능이 없었다. 열심히는 했지만 사람들의 기대치에 미치진 못했다. 그렇게 같은 자리에서 지지부진하다 흩어진 가르침만 몇 개던가.

       

       허나 아라는 달랐다. 그녀는 기술보다 창수로서의 기본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술은 보정이면 충분하다고.

       

       처음엔 반신반의하던 엔리였지만 아라가 직접 눈앞에 결과물을 들이밀자 믿지 않을 수 없었다.

       

       문제는 그 기본이라는 게 너무도 어려웠다는 것이다.

       

       아라가 오늘 가르치겠다 호언한 것은 두 개. 실질적으로는 세 개였다.

       

       ‘창수의 거리’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상대의 기동성을 빼앗아라.’

       ‘상대가 굳으면 자잘한 공격으로 괴롭혀라.’

       

       얼핏 듣기에는 어렵잖아 보이는 일이었지만 몸으로 가르침을 받은 엔리는 이게 말처럼 간단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흐윽. 허억.”

       

       VR속 몸인데도 너무 힘들어서 죽을 것 같았다. 머리가 새하얗게 물들었다.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단지 아라의 동작을 따라가는 데 급급했다.

       

       “무얼 하느냐. 빨리 오거라.”

       “좀. 쉬면. 안 될까요?”

       “오지 않겠다면 내가 가마.”

       

       느긋이 다가오는 아라를 보던 엔리는 그녀가 악귀같다는 생각을 했다.

       

       가볍게 시작된 가르침은 밤이 늦을 때까지 이어졌고 겨우 아라가 엔리를 보내 주었을 때 엔리는 씻지도 않은 채 베개에 머리를 박았다.

       

       그리고 다음 날.

       

       [승리!]

       

       엔리는 아피스의 랭크게임에서 10연승을 거두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자분들에게 죄송할 따름입니다. 노력하는 작가가 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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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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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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