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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

        

         개척시대 마냥 자경단원에 무법자 같은 게 실존하는 정착지에서 하인리히 할아버지와 인사를 나눈 게 불과 몇 십분 전인데. 고작 몇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여기는 또 완전히 분위기가 색달랐다.

         

         저벅… 저벅….

         

         새까만 제복과 방탄조끼, 이목구비를 알아볼 수 없도록 얼굴 하관까지 가리는 바이저 헬멧을 뒤집어쓴 일단의 무리가 운전석 쪽으로 접근해온다.

         

         솔직히… 빈말로라도 질서정연 하다거나, 합이 맞다고 칭찬할 만한 집단은 아니었다. 보란듯이 진압봉을 붕붕. 장비한 소총을 노골적으로 딸각거리는 놈들이 태반이었으니까.

         

         흑사회 잔당 같은 게 혹시 남아있었냐고…? 그건 절대 아니었다. 대충 검은 복색으로 위압감을 주는 건 비슷했지만, 여기 하베스트 플래닛으로 통하는 관문에서 국경 경비대 흉내 내는 이 인간들은 전부 도시소속 전투경찰.

         

         하지만 눈부신 탐조등 아래에서 꾸물거리는 그림자 같은 군세를 보고 있으려니… 도시 바깥 사람들에게는 그들이나 이들이나 별다를 바가 없는 양아치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똑똑똑…!!

         

         “…시민증 및 화물검사 진행하겠습니다. 트럭 후문을 개방해주시고, 천천히 내려서 절차에 협조해주신다면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로봇이 쓰는 음성 모듈보다도 더 기계처럼 느껴질 수준으로 심하게 변조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무리 미움 받는 직업이라지만, 비틀린 사회에 몇 안 남은 준공무원 직 종사자들이 자신들의 신변보호를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 걸 보니. 새삼 내가 어떤 세계속으로 발을 담그려는 건지… 오싹해졌다.

         

         “빨리 끝내주게. 이러다 열차 시간에 늦겠군…!”

         

         “쉿! 그러다 메리 깨겠어요.”

         

         앞자리에 앉아 계시던 슈나이더 씨와 실비아 씨가 문을 열고 트럭으로부터 태연하게 내리셨다.

         

         완전무장한 괴한들 한복판에 평상복 차림으로 우뚝 선 부부.

         남자 쪽이 이름 좀 날리던 용병이라는 걸 감안해도, 얼핏 보면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슈나이더 씨가 가족의 안전을 걸고 도박을 한 것일까? …그럴 리가 없었다.

         

         삐빅…!

         

         게이트에 설치된 스캐너가 작동한다.

         아까부터 지휘관 역할을 도맡아 하던 경찰이 내밀어진 팔의 임플란트와 바코드로부터 취합된 데이터를 읽어냈다.

         

         “…헤이롱 코퍼레이션에서 보증한 블루 등급 시민권자 슈나이더 맥퀸과 그 아내 실비아 맥퀸. 확인 완료되었습니다.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칫.”

         

         눈앞에 있는 게 누군지도 모르고 위협적인 자세를 유지하던 경찰들이 일제히 무기를 치운다. 정리된 이삿짐을 모조리 헤집어 놓을 기세로 다가가던 놈들도 얌전히 문을 닫고 물러섰다.

         

         그 와중에 아쉽다는 듯이 혀를 차는 놈은… 대체 밀입국자나 미등록자를 발견했으면 무슨 짓을 하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강약약강도 정도가 있지, 저건 경찰 안 했으면 벌써 감옥에 가 있었을 인재가 분명하다.

         

         “기록을 보니… 하베스트 플래닛에는 체류 계획이 전혀 없으신가 보군요. 네오 헤이븐까지 가시는 길에 더 귀찮은 일이 없도록, 열차 역에도 조회결과를 송신해도 되겠습니까?”

         

         “…흥! 마음대로 하게.”

         

         “…송신했습니다. 스캔 결과, 적재물품에 화기류가 굉장히 많은 것 같은데… 전부 판매목적은 없는 개인물품이라고 신고해도 괜찮습니까?”

         

         다른 동료들이 블루 등급 시민권에 쫄거나 말거나, 흥미를 잃었거나 말거나, 대장 경찰은 자기 할 일을 계속 진행했다.

         

         

         게임 네오 헤이븐의 시민권 시스템에는 크레딧 말고도 사람들에게 매기는 등급이 있었다.

         

         블랙은 각 메가 코프의 회장쯤은 되는 사람들이 가진 절대적인 권위.

         레드는 기업이 판단한, 이 사회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기관 혹은 자사의 핵심 인재들에게 주어지는 증명.

         블루는 기업에 정식으로 소속되어 있거나 보호받는 일부의 방패.

         그린은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일반 시민.

         옐로우는… 말그대로 도시 안에서 태어나기만 한 인간에게 겨우 붙여지는 딱지.

         

         메인 퀘스트와 시나리오를 무난하게 따르다 보면, 플레이어는 그린에서 시작해 레드까지 올라가는 뒤틀린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게 된다. ……뭐 거기서 체제를 그대로 박살 내버리는 엔딩도 있긴 한데 어쨌든.

         

         

         슈나이더 씨는 과거의 화려한 용병경력 덕분에 아직도 블루 등급이 유지되고 계셨나 보다. 자신감이 넘치시던 이유가 있었다. 다행이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슬하에는 자녀분이 한 명이라고 등록되어 있는데…. 그럼 저기, 뒷좌석에 탄 나머지 한 분과는 어떤 관계이신지요?”

         

         “…옆집에 살던 친딸 같은 아가씨일세. 이번 기회에 도시에서 살겠다고 하길래, 겸사겸사 함께 나왔지.”

         

         ……문제는 켕기는 게 시발 한두 가지가 아닌 나다. 이거 괜히 억지로 변호 해주시려다가 슈나이더 씨 가족에게까지 피해가 번지는 건 아닌가 걱정된다. 블루 등급 시민권이라고, 딱히 범죄에 대한 면책특권을 부여하는 건 아니니까.

         

         덜컹…!

         

         애매한 대답을 들은 경찰이 차 문을 연다. 더럽게 꼼꼼한 대장이 건수를 잡았다고 여겼는지, 자리만 지키고 있던 양아치들이 슬그머니 이쪽을 주시한다.

         

         “……팔을 밖으로 내밀어 주시겠습니까?”

         

         “…네.”

         

         그는 거동이 불편한 내 상태를 보고는, 데이터 스캐닝이 가능한 최소한의 협조만 요구했다.

         

         사실 지금이라도 문제가 생길 경우를 대비해, 메리나 슈나이더 씨, 실비아 씨와는 관련이 없는 척 거리를 벌리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단지 꼭두새벽에 일어났다가, 편안한 트럭의 진동속에 세상 모르게 잠든 그녀는 꼭 붙잡은 내 몸을 놔줄 생각이 없었고… 처음 겪어보는 불법입국자 체험에 긴장한 나도 메리를 더 가까이 끌어안아버렸으니 이제는… 할아버지의 솜씨만 믿을 뿐이다.

         

         스캐너로부터 뻗어 나온 광선이, 지이잉 하고 팔을 훑고 지나간다.

         

         “……무슨 문제 있나요?”

         

         “…….”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대장 경찰이 손에 든 홀로그램 패드를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최대한 자연스러운 척해본다고 입을 열었는데 오히려 의심만 키운 것 같기도 하다. 할 말 있으면 그냥 해라 좀! 사람 애간장 태우지 말고…!

         

         “우으으…. 아나스타샤 언니… 나 숨막혀….”

         

         “꺅…?! 미안해 메리!”

         

         힘이 너무 들어가, 어느새 가슴팍에 꽉 눌린 메리의 머리를 해방해주었다. 얼굴을 파묻은 채로 웅얼거리니 피부가 상상이상으로 간지러웠지만… 그래도 마침 잘 됐다.

         과한 긴장을 풀고 신원조회 결과에 응하면 된다. 따지고 보면 시민권 등록, 파라다이스 사의 부업은 더 많은 잠재적 고객을 내부로 끌어들이는 일인데 도시입구에서부터 문제가 생길 리 없었다.

         

         그러니까… 일단 메리부터 좀 옆에 떼어놓고 협조하면….

         

         꾸우우욱….

         

         협조하면…….

         

         “…메리?”

         

         “으으응… 왜 밀어내는 거야 언니…. 언니랑 같이 더 잘래….”

         

         아니, 나는 계속 깨 있었는데…?

         너무 답답한 것도 싫지만 또 그렇다고 떨어지는 거에 동의하는 것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육아의 고됨을 이런 식으로 체험해볼 줄은 몰랐다.

         

         “지금은 곤란하다니까…!”

         “그치마안…… 언니 품은 부드럽고… 따듯하고… 좋은 냄새도 나는 걸….”

         “…냄새?!”

         

         “……풉.”

         

         잡아당기면 벗어나려 하고, 밀어내면 파고든다. 제멋대로인 작은 공주님과 나의 꼼지락거리는 혈투를 지켜보던 경찰이 결국 실소를 터트렸다.

         

         처음부터 조회 결과에 이상이 없었는데 괜히 뜸을 들인 건지, 아니면 몽롱한 메리의 잠투정이 미약한 의심을 문질러 지워버린 건지는 알 방법이 없었다. 이 압박형 입국심사는 싱거울 정도로 가볍게 끝나버렸다.

         

         “메리 맥퀸과 그린 등급 시민권자 아나스타샤 발렌타인 확인 완료되었습니다. 사이버 엔지니어라니… 취직 걱정은 없으시겠군요. 하베스트 플래닛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내부 게이트 개방!! 나가는 거 보고, 다음 팀 들여보내. 또 사고치면 니들 연금도 끝인 줄 알아…!”

         

         철컹! 쿠구궁……!!

         

         트럭이 멋대로 박차고 나가지 못하도록 바퀴에 부착되었던 잠금 장치가 제거되고, 굉음과 함께 일행을 관문에 묶어 두던 정면 차단벽이 올라가자….

         

         “……와.”

         

         장벽너머에서 어렴풋이 보이던 거대 도시. 하베스트 플래닛의 위용이 드러났다.

         

       

       

         

         

         형형색색의 불빛이 많았지만, 가장 눈을 먼저 사로잡은 건 구조물 전체를 휘감은 불길하고도 요사스러운 보랏빛 조명. 여명과 뒤섞인 메트로폴리스의 새벽 야경은 참 존나게 아름다웠다.

         

         곳곳에 치솟은 마천루(Skyscraper)와 대형 안테나들이 특히나 인상적인 최첨단 미래도시는 가능한 여러 꿈과… 희망과… 찬란한 미래를 약속하는 것 같았지만, 네오 헤이븐을 이 잡듯이 누비고 퀘스트들을 수행했던 내 눈에는 그 이면이 살짝 보였다.

         

         지면과 가장 가까운 곳을 차지하는 곳에 남아있는 상당한 규모의 콘크리트 건물 숲.

         구시대의 잔재 같은 주거단지와 공장지대인데… 멀리서 보는데도, 안에 들어찬 사람들의 분주한 기색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왜 하베스트 플래닛이 모든 메트로폴리스 중에서도 최고의 생산력과 생산량을 자랑하는지.

         왜 철저하게 인구를 관리하는 척하면서, 뒤편으로는 사람들을 꾸역꾸역 받아들이고 있는지.

         

         ……값싸고 흘러 넘치는 노동력은 언제나 거대 자본의 식사거리였다.

         

         “……고개 들고 자신감을 좀 가지게. 아가씨 정도면 도시에서도 금방 자리잡고 성공할 테니. …물론, 마음이 너무 여린 건 조금 걱정되지만….”

         

         “어머? 아나스타샤 양의 성품을 칭찬하던 우리 바깥양반은 그새 어디로 가셨을까요…?”

         

         “……크흠. 다 걱정이 돼서 그러는 거지.”

         

         어느새 운전대를 다시 잡은 슈나이더 씨와 조수석에 탄 실비아 씨가 긴장한 내 기색을 알아차리곤 말을 걸어오셨다. …친절한 두 분은 내가 네오 헤이븐으로의 동행과 새로 오픈할 술집의 취업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한 뒤로 계속 이러셨다.

         

         “…통장에 열차표 구할 크레딧만 남으면 바로 달려갈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그리고… 나는 몰라도, 실비아나 메리에게는 꼭 자주 연락하게.”

         

         슈나이더 씨를 따라간다면, 네오 헤이븐의 원작이 움직이는 시기가 될 때까지 별 부족함없이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라는 존재가 아직 막이 올라가지도 않은 무대 근처에서 서성이다가 일으킬 변화와 왜곡을 고려한다면… 정말 필요한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이 하베스트 플래닛에서 숨을 죽인 채 발톱을 갈고 닦는 것이 맞으리라.

         

         부우웅…!

         

         트럭 엔진이 과로를 호소하며 하베스트 플래닛의 상층부, 열차 역으로 향하는 고가도로로 힘차게 진입했다.

         

         

         이별이 아니다. 도리어 새로운 시작이지. 심지어 눈 깜빡이는 걸로도 전화를 걸 수 있는 세상이니, 서로의 목소리도 언제든 들을 수 있고.

         

         “흐으응….”

         “…….”

         

         비비적비비적.

         왠지 심술이 나서 비몽사몽한 메리의 머리칼을 마구 헝클어뜨렸다. …더 쓰다듬어 달라고 졸라졌다. 그리고 앞자리 잉꼬부부는 그만 웃으시고, 이 찰거머리 공주님을 어떻게 나와 분리할지 슬슬 진지하게 고민하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 ☆ ★ ☆ ★

         

         

         

         

         “아~~ 음— 아, 아아!”

         

         달그락….

         

         혹여 화장실에 짱박힌 다른 경찰이 있을라, 슬쩍 내부를 살핀 대장은 지급된 홀로그램 패드를 세면대 옆에 내려놓고 음성 변조를 풀었다.

         

         입가가 여전히 마스크에 가려져 있어서 정확하진 않아도. 꽤 허스키하지만… 충분히 듣기 좋은 고음의 미성이 흘러나왔다.

         

         펼쳐진 사이버웨어 연락처의 페이지를 넘길 필요도 없었다. 찾는 대상은 어차피 제일 맨 위에 있었으니까.

         뚜르르… 하는 신호음이 가고 유일한… 아니, 유일했던 가족이 전화를 받자 그녀는 쾌활하게 외쳤다.

         

         

         “아, 할배!! 그렇게 예쁘고 귀여운 애는 대체 어디서 주워 온 거야? 응?! 내가 먼저 찾아가면 안 돼?? 진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서오세요! 무한한 자유와 낭만의 시대에!

    그런데… 플러스 심사는 언제쯤 끝나는 걸까요.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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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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