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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

     아버지와 어머니는 선남선녀다.

     취향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지금도 왕국 내에서 미남미녀의 줄을 세우면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사람들이다.

     전성기 시절에는 당연히 1위였고.

     냉혈미남 변경백.

     순수한 해바라기 같은 미녀.

     

     세인트 지오 왕세자나 카르멘 공녀 등 당대 최고의 미인들이 있었으나, 그들의 앞에는 항상 둘이 있었다.

     그것도 벌써 내가 태어나기 10년도 전의 이야기.

     사교계의 비공식 순위지만, 현재 어머니는 1위의 자리에서 3위로 내려왔다.

     한 남자의 여자가 되어서?

     

     아니다.

     무능왕이 노리는 것처럼, 여전히 어머니는 아름답다.

     아이를 낳고 몸이 망가져서?

     아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임신과 육아를 옆에서 전력으로 도왔고.

     아버지의 헌신은 뭇 많은 왕국 여인들의 부러움과 질시의 대상이 되었다.

     정답은 누구나 안다.

     나이.

     사람은 늙기 마련이고, 아름다운 꽃도 점차 시들어가기 마련.

     사교계에는 계속 새로운 꽃들이 유입되고, 그중에는 10년 전의 어머니만큼이나 예쁘다면서 자신을 어필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한 세대 전의 미녀와 미모 경쟁이라니. 여자로서 자존심 엄청나게 긁히겠지.’

     반대로 이야기를 하자면 15살가량 어린 소녀들과의 미모 경쟁에서 크게 밀리지 않는다는 건, 어머니도 굉장한 사람이라는 것.

     그러나 어머니는 신체 단련을 거의 하지 않는 사람이다.

     타고난 신체의 축복 덕분에 여전히 아름답지만, 세월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소드 마스터는 예외다.

     아버지는 30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지만 마나의 축복으로 여전히 20대 때의 외모를 유지하고 있다.

     소드 마스터의 재능.

     소드 마스터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미모를 유지하고 있는 자.

     공교롭게도, 아직 이 둘을 노리는 이들은 차고 넘친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미혼이었다면 분명 아직도 결혼 시장에서 우량매물이었을 것이다.

     특히 아버지.

     막말을 좀 섞어서 표현하자면.

     어머니는 이미 아이를 셋이나 낳고 나이가 들어가는 지는 꽃이지만.

     아버지는 소드 마스터이기 때문에, 10대 후반은 좀 그렇더라도 20대 초반의 영애들에게는 여전히 결혼하고 싶은 귀족 1위로 꼽히는 존재다.

     7살, 자기네 부친의 손을 잡고 참가한 파티에서 마주친 아버지를 보고 첫사랑에 빠진 이들은 한둘이 아니다.

     그런 이들이 왕도에 가득하다.

     왕도뿐만 아니라, 기회만 된다면 지브롤터에 오려고 온갖 핑계를 다 대고 있다.

     초대장이라는 명목으로.

     그리고 어머니가 이런 방면으로 가문에서 주로 하는 일은-

     “초대장을 계속 불태우면 자원 낭비입니다. 차라리 물에 불리고 갈아서 재활용하시지요.”

     “그게 좋겠구나. 답장을 쓸 때마다 양피지 소모되는 걸 생각하면.”

     매번 지브롤터 저택으로 오는 수많은 귀족의 초대장에 ‘거절’을 담아 답장하고, 그 초대장을 폐기하는 것.

     “네 아버지는 이런 게 도착하면 뜯지도 않고 버려버리시지.”

     어머니는 편지 봉투 하나를 들었다.

     제법 두툼하여, 안에 무언가가 들어있다는 부피감이 역력했다.

     “백작님께 처음 초대를 받은 날, 공녀…카르멘 왕비가 직접 쓴 초대장이 마침 저택에 도착했단다. 그때 백작님께서 뭐라고 하셨는지 아니?”

     “태워라.”

     “아니야. 아무 말도 없었어. 편지를 뜯지도 않고, 편지 봉투를 잡고는 그대로 난로에 던지셨단다.”

     “어머니 앞이라서 그랬을 겁니다. 평소라면 그냥 서랍 안에 처박아두셨겠죠.”

     “그것도 있기는 했겠지만….”

     어머니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사람 성향 자체가 이런 친교 쪽으로는 신경을 전혀 쓰시지 않으니, 나라도 이렇게 답장해야겠더구나.”

     “지브롤터의 안주인으로서 충분히 많은 일을 하고 계십니다.”

     아버지는 좋은 말로도, 사교적인 행위를 거의 하지 않는다.

     “어머니 덕분에 아버지가 결혼식이나 장례식, 그 외에 여러 가문의 행사에 의례적으로라도 귀족의 예의를 갖추고 계시니까요.”

     전부 어머니의 몫이다.

     결혼에 대한 축하로 화환을 보낸다거나.

     장례식에 가문의 대리인-귀족 출신의 봉신 기사 중 한 명을 보내서 고인의 명복을 빈다거나.

     나이 든 귀족의 60살 축하연에 선물을 보낸다거나.

     “지브롤터의 격언, 무엇인지 알고 있지?”

     “안 되면 되게 하라.”

     “그래. 소드 마스터의 이야기였지만, 나도 그렇게 백작님의 아내에서 지브롤터의 안주인이 되었단다.”

     어머니는 가운데가 부풀어 오른 편지 봉투를 직접 뜯은 다음, 그대로 탁자에 거꾸로 부었다.

     툭.

     “브로치군요. 세공 상태를 보아하니, 왕도에서 제작된 물건인 것 같습니다.”

     “하르마니아 자작가라고 알고 있니?”

     “…아니오?”

     안다.

     왜 모를까.

     “하르마니아 자작에게는 딸이 하나 있단다. 이제 16살인가. 새롭게 피어나는 수선화 같은 소녀라고 칭송이 자자하지.”

     앞으로 10년 뒤에는 왕국 최고 미녀로 이름을 널리 알릴 여인-

     “샤를로테 하르마니아.”

     “어머니의 이름과 비슷하군요.”

     “부끄럽지만, 당시에 나와 백작님의 이름을 비슷하게 지은 아이들이 많이 태어나고는 했지.”

     샤를로트.

     샤를로테.

     한 글자 차이지만, 이 이름으로 태어나는 여아들에게는 미의 여신이 축복을 내려주기라도 하는 걸까.

     “혹시 들어본 적이 있니?”

     “왕도에 갔을 때 얼핏 들어본 것 같기는 합니다.”

     “그래. 그럼 그 아이가….”

     어머니는 눈썹을 찌푸리며 보석이 박힌 브로치를 만지작거렸다.

     “네 아버지를 노리고 있다는 것도, 이제는 알아야겠구나.”

     “첩의 자리를 노리는 겁니까?”

     “그런 셈이지.”

     “16살의 영애가 무엇이 아쉬워서, 자기보다 두 배는 훨씬 넘는 나이의 남자를.”

     “50대에 배불뚝이 대머리 노인네의 후처로 들어갈 바에는, 차라리 겉으로 보면 오빠 동생 사이로 보이는 소드 마스터의 첩이 더 낫지 않겠니?”

     “…….”

     나는 대답 대신 차를 마시는 걸로 답을 대신했다.

     “네 아버지를 노리는 여자들은 많단다. 아이를 셋이나 낳아 하자가 생긴 나와 달리, 백작님은 여전히 활기가 넘치시니까.”

     “본인 스스로 하자가 있다고 말씀하시면 아들인 제가 뭐가 됩니까?”

     “누구보다도 내 하자를 잘 알고 있잖니.”

     “…….”

     “백작님을 한 번 배신한, 부정을 탄 더러운 여인이다. 내게 남은 건 너희들의 어머니로서,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야. 설령 언젠가….”

     어머니가 편지를 손으로 구겨버렸다.

     “백작님께 버림받는다고 해도.”

     “10살 아들에게 못 하는 말이 없으시군요.”

     “네가 그냥 10살이니? 왕국에는 대대로 어린 나이부터 어른만큼이나, 어른보다 더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천재들이 많았단다.”

     검의 천재인 아버지라거나.

     사교계의 거물인 카르멘 왕비라거나.

     “너처럼 이런 쪽으로 비상한 머리를 가진 아이는 드물었지만.”

     “있었을 겁니다. 대외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면 안 된다고 자각했기에, 어른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두각을 드러낸 것일 테고요.”

     “너는?”

     “그러기에는 제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아서.”

     10년.

     내가 성인이 되어 백작위를 물려받는 날, 지브롤터 변경백이 반역을 저지르기로 했다.

     설령 백작 개인이 폭주를 저질러, 아들인 내가 반역자가 된 그의 심장에 칼을 찌르는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런 의미에서 이거, 승인해주셨으면 합니다.”

     “…….”

     “아버지를 유혹하려는 젊은 여자들에 대해서는 어머니께서 알아서 다 대응해주시리라 믿고 있습니다.”

     “나보고 그 어린 것들과 드잡이질하라는 거구나.”

     “백작 부인의 자리를 지키셔야죠. 아버지를 위해서, 자식들을 위해서.”

     “…그래. 내가 네 말을 안 들을 수가 있겠니.”

     어머니는 내가 건넨 계획서에 잠시 손을 올려둔 뒤, 고개를 푹 떨구었다.

     “…그런데, 명심하렴. 이들이 노리는 건 네 아버지만 있는 게 아닐 거란다.”

     어머니가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너를 노리는 이들도 있을 거야. 너는….”

     “정치적으로 버림받은 후계자이기 때문입니까?”

     “…….”

     “괜찮습니다. 그런 모욕이야, 얼마든지 환영이죠. 그 대신.”

     나는 어머니의 앞에 늘어진 수많은 편지 중, 눈에 익은 봉투 몇 개를 집어 들었다.

     “이들은 반드시 초대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들은….”

     “혹시 이들이 누군지 아십니까?”

     “…번번이 편지는 보내지만, 내가 직접 답장을 보내서 거절하는 이들이지.”

     “어머니.”

     “…돌려 말하지 말라는 거구나.”

     어머니는 이미 알고 있다.

     10년 넘게 백작 부인으로서 수많은 이들과 정치적 교류하며, 그녀는 변경백을 향한 악의의 실체를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시험을 해보겠다. 어디 한 번, 말해보렴. 내 추측과 일치한다면, 이들 또한-”

     “제국의 협력자들.”

     “…….”

     “제국과 내통한, 혹은 제국의 자산으로 형성된, 가문 내에 제국과 혼인한 이가 있는 제국주의자들.”

     어머니는 책상에 엎드려버리고 말았다.

     “오크 3천 소탕에 대한 승전 파티를 여시죠. 온갖 파리가 들끓게.”

     * * *

     서재.

     “고작 오크 3천을 죽인 걸로 무슨 파티냐.

     아버지는 스승맞이를 위한 내 계획에 대하여, 그 명목에 코웃음을 쳤다.

     “오크 3천을 도륙 내셨습니다.”

     “차라리 네 동생이 쪽지 시험에서 100점을 받았다는 걸로 파티를 하겠다는 게 더 낫겠구나.”

     “그게 더 굉장한 성과라는 겁니까?”

     “그럼 아니고?”

     “인정합니다.”

     “하.”

     아버지는 어머니의 도장이 찍힌 ‘승전축하연 계획서’를 만지작거렸다.

     “별 같잖은 호박들이 또 온갖 분을 칠한 채 이곳에 오겠군.”

     일단 한 가지 못을 박고 들어가자면, 아버지는 어머니 일편단심이다.

     “내게 첫눈에 반했다느니 뭐니, 재잘거리는 그 입을 날려버릴 수도 없고.”

     그래서 그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지만, 상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해하십시오. 그들에게 있어 아버지는, 아버지가 생각하는 어머니일 수도 있잖습니까.”

     “그렇기에 지금까지 지브롤터에서 축하연을 연 적이 거의 없었다. 그들과 얼굴을 마주할 일조차 없게 하려면.”

     “왕가의 수호자였다면 모를까.”

     “그래. 저지르기로 한 이상, 확실하게 해야지.”

     아버지는 내가 직접 가져온 편지 봉투를 움켜쥐었다.

     “이들이 앞으로 우리가 접선해야 할 자들이라는 말이냐?”

     “예.”

     “…한 번, 진지하게 물어보자꾸나.”

     아버지가 다리를 꼬며 자세를 바로잡는다.

     “너는 어찌 이들이 제국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느냐?”

     “저를 취조하시는 겁니까?”

     “아들이 카르멘에게 인정받은 천재지략가의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과 별개로, 이런 것까지 알려면-”

     “카르멘 왕비로부터 언질을 받은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대놓고 아버지의 말을 자르고 들어가자, 아버지가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카르멘 왕비에게 빚을 져서, 왕비께서 그걸 핑계 삼아 아버지와의 시간을 만들어낼까 봐 걱정되십니까?”

     “그리고 그렇게 되어 셜롯이 신경을 쓸까 걱정이 되기도 하고. 안 그래도 파티를 열면 그 발랑 까진 어린 것들이 분내를 풍기며 달려들 텐데.”

     “걱정하지 마십시오. 왕비의, 모르가니아의 정보조직을 통해 얻은 정보는 아닙니다.”

     모르가니아와 손을 잡기로 했지만, 그들을 이용한 건 아니다.

     “소드 마스터하면 아버지. 첩보하면 모르가니아. 그들이 떠오르는 게 당연하겠지만, 그들만큼 잔머리가 잘 돌아가는 제가 이제 여기 있지 않습니까.”

     “누가 들으면 네가 카르멘의 아들인 줄 알겠구나.”

     “혹시 왕비를 상대로 외탁을-윽.”

     퍼ㅡ억.

     “호오. 때리기도 전에 반응했어? 너, 그냥 내일부터 나와 함께 연무장으로 가자.”

     “싫습니다. 그리고 이건 일방적인 폭력입니다. 아들을 때리십니까?”

     “선을 넘은 건 너다. 입조심을 하거라. 한 번만 더 그딴 소리를 지껄인다면, 내일 연무장에서 검을 드는 건 누아르가 아니라 네가 될 것이다. 무조건.”

     “예.”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농담 한 번 하려고 했다고 아들이고 뭐고 냅다 주먹을 쥐는 남자다.

     아들이니까 주먹이지-

     “타인이었으면 어깨에 칼침 한 번은 놓았을 거다.”

     “목이 안 날아가서 다행이군요. 흠흠. 그럼, 왜 이들인가. 사실 100% 확신은 하지 못합니다.”

     사실 한다.

     미래의 정보는 완벽하고, 편지의 귀족들은 나와 부정부패를 저질렀던 이들이니까.

     매국노리스트.

     하지만 그건 미래로부터 가져온 결과.

     “제 나름대로, 이들이 제국과 관련이 있다는 걸 추측해봤을 뿐입니다.”

     “확증은 아니고?”

     “예. 공통점이 있다면 다들 귀족의 작위를 사들인 이들이고, 그 자본의 출처가 상당히 수상하다는 정도겠죠.”

     “…그걸 모르가니아가 눈치를 채지 못했을 리가 없잖느냐.”

     “아버지. 제가 왜 다른 걸 다 제쳐두고, 모르가니아와 손을 잡아야 한다고 한지 아십니까?”

     “…….”

     아버지가 자세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

     약간 자괴감 섞인 한숨을 내쉬며, 서재의 벽에 걸린 역대 지브롤터 변경백들의 초상화를 향해 짧게 고개를 숙였다.

     “모르가니아와 같은 꼴이 되다니.”

     “이용하려는 건 전부 이용하려고 할 뿐인 거죠. 제국산 물건들,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니고요.”

     편지의 당사자들은 수상할 정도로 제국산 유통망과 긴밀하게 연결된 자들이다.

     “아버지. 이들의 호위로 오는 이들 중, 제법 강해 보이는 이가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아마, 여자일 가능성이 큽니다.”

     “어째서?”

     “그야 당연히, 그게 지브롤터 백작가에 심어두기 딱 좋은 명분이니까요? 만일 제가 제국이었다면, 지브롤터에 어떻게 수작을 부릴 거라면 말입니다.”

     나는 아버지를 향해 잔을 들었다.

     “아버지의 첩이 되고 싶어 하는 여인을 보낼 겁니다. 남자라면 한 번은 안고 싶어 할, 그런 매력적인 여인으로.”

     그리고 그 여인은 품에 독을 가지고 있을 테지.

     “하. 내가 당할 것 같으냐?”

     

     아버지는 코웃음을 쳤지만, 나는 그저 잔에 든 탄산수를 마시는 걸로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삼켰다.

     ‘아들내미는 당하던데.’

     제국의 경우는 아니지만.

     누아르 지브롤터.

     소드 마스터가 되었으나, 그는 공주가 이끄는 혁명군에 의해 살해당했다.

     허니트랩.

     사인은, 매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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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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