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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

        

        여긴 또 어디일까.

         

        거대 노래기에게 쫓기고 쫓긴 탓에 이곳이 어디인지도 모르게 됐다.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친 덕분에 놈은 흥미를 잃고 다시 돌아간 듯했다.

         

        하지만 난 돌아갈 수 없었다.

         

        길 잃은 어린 도마뱀이 되었다.

         

        춥고 배고프고 어둡다.

         

        몸이 으슬으슬 시려왔다.

         

        그동안 온도를 조절하려고 한 적이 없었다. 끽해봐야 나뭇잎으로 이불을 만들어서 덮는 정도였을까.

         

        그렇게만 해도 활동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는데 지금은 달랐다.

         

        부상을 당한 탓일까, 내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휴식을 취해도 HP가 회복되기는커녕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었다.

         

        “게에엑….”

         

        병든 도마뱀의 소리를 내며 주변을 배회했다.

         

        배에 뭐라도 넣으면 좀 회복할 수 있을 거 같은데….

         

        툭.

         

        발에 무언가가 채었다.

         

        혹시나 먹이인가 싶어 자세히 봤지만, 살아 있는 생명체는 아니었다.

         

        갈색, 혹은 검은색으로 추정되는 작은 구의 형태.

         

        크기는 꼭 내단만 했다.

         

        가만, 또 내단이야?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숙였다.

         

        내단은 귀한 거다. 그러나 지금의 내겐 아무런 가치가 없는 물건이었다.

         

        배를 불릴 수 있는 작은 귀뚜라미 하나 보다 못하다.

         

        내단이면 뭐해.

         

        그걸 소화할 힘도 없는데.

         

        그래도 배에 뭐라도 채워 놓는 게 나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눈에 힘을 주었다.

         

        내 앞에 있는 저게 무엇인지 정확히 판별하기 위해서.

         

        그런데, 야생의 눈에는 아무런 정보가 뜨지 않았다.

         

        저게 내단이 아니라고?

         

        만약 내단이었다면 야생의 눈이 감지했을 거다.

         

        내단 조각만 해도 알아차릴 수 있는데, 완전한 구의 형태를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럼 이것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먹을 수 있는 건가.

         

        다른 동물의 알이라도 되는 걸까?

         

        아니, 그런 거면 진작에 알아봤겠지.

         

        씁.

         

        혀를 날름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오묘하다.

         

        여기 와서 맡아본 적 없는 냄새가 났다.

         

        고소하면서도 입에 침이 절로 고이는 냄새.

         

        그래, 이건 곡물의 냄새였다.

         

        내가 잊고 있는 향기였다.

         

        게다가 곡물 사이에서 은은하게 나는 이 달콤한 향기는 꿀의 그것과 같지 않던가.

         

        곡물과 꿀.

         

        냉철한 도마뱀이라면 그게 왜 여기 있는지 의심부터 할 거다.

         

        하지만 배고픈 도마뱀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텁.

         

        꿀꺽.

         

        바삭거리는 식감이 너무 만족스러웠다.

         

        거미 표 특제 벌레 고치를 먹을 때와 비교도 안 되는 식감.

         

        입안 가득 퍼지는 곡물과 꿀의 맛.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미숫가루를 뭉쳐서 만든 경단을 먹는 거 같다고 해야 할까.

         

        이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몰라도 된다.

         

        맛있다. 그것도 너무 맛있다.

         

        내가 육식 도마뱀이라는 걸 망각할 정도로.

         

        금세 경단을 다 먹고 아쉬운 마음에 혀를 날름거렸다.

         

        그러자, 내가 먹은 것과 똑같은 냄새가 사방에서 나는 거 아니겠나.

         

        이 수수께끼의 경단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니었다.

         

        정신없이 바닥을 돌아다니면서 경단을 주워 먹었다.

         

        텁.

         

        꿀꺽.

         

        텁.

         

        바사삭.

         

        행복하다.

         

        어떤 것은 곡물의 고소한 맛이 일품이었고 어떤 것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꿀의 달콤함이 느껴졌다.

         

        실시간으로 살이 찌고 있다는 기분이 들 정도로 이 경단에 든 열량은 엄청났다.

       

       게다가 미식의 레벨도 많이 올랐다.

       

       이게 미식이 아니면 뭐가 미식일까.

       

       텁.

         

        먹어둘 수 있을 때 먹어두자.

         

        그렇게 한참이나 경단을 먹어 치운 후, 통통하게 살이 오른 배를 톡톡 두드렸다.

         

        이제야 정신이 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역시 당이 들어와야 머리가 굴러간다니까.

         

        찌뿌둥한 허리를 펴고 두 발로 섰다.

         

        네발짐승이 아닌, 두 발 도마뱀으로 돌아갈 때였다.

         

        단 걸 먹어서 그런가 시야가 더 밝아진 거 같네.

         

        가만, 그냥 주변이 밝아진 거 같은데?

         

        이게 무슨 일인가 해서 고개를 들어보니, 벽면에 녹색 수정이 박혀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수정은 놀랍게도 스스로 빛을 내고 있었다.

         

        뭔가 되게 인위적이었다. 녹색 옥처럼 생긴 저 수정의 배치는 굉장히 수상했다.

         

        일정한 간격으로 여러 개가 배치되어 있었다. 누가 일부러 설치한 것처럼.

         

        이게 무슨 일이야.

         

        시야를 넓게 썼다.

         

        녹색 빛이 비치는 곳으로 시야를 옮겼다.

         

        커다란 바위가 하나 있었다.

         

        여태까지 봤던 동굴의 바위와는 사뭇 다른 모양새였다.

         

        약간의 보랏빛이 감돌았다. 겉보기만 해도 그 경도와 강도가 일반적인 바위와 궤를 달리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누군가의 흔적이 새겨져 있었다.

         

        곰 같은 짐승이 마구잡이로 할퀸 건가.

         

        아니, 그렇다기엔 너무 아름다웠다.

         

        수많은 직선과 곡선이 물 흐르듯이 이어져 있었다.

         

        마치 어떤 동작의 연속처럼.

         

        대체 저게 무엇인지 깨닫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저 흔적 옆에, 알아보기 쉬운 그림 몇 개를 발견했으니까.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그래. 이건 벽화였다.

         

        그냥 벽화가 아닌 사람이 무공을 쓰는 모습을 그린 벽화.

         

        인간의 흔적을 발견했다.

         

         

        *

         

         

        “좌호법. 좀 늦으셨네요.”

       

        제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천마신교의 호법에게 이런 말을 하지 않을 거다.

         

        호법은 교주 직속의 무인을 가리키는 말이며 천마신교의 칼이라고 불리는 존재들이었다.

         

        천마신교의 장로나 원로라 하더라도 호법에게 명령을 내릴 권한은 없다.

         

        상호존중. 그것이 원칙이었으며 상황에 따라 호법이 그들을 처벌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그러나 좌호법 우진운은 눈앞의 여성에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해결할 일이 남아 있어서 좀 늦었습니다. 신녀님,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그녀는 천마신교의 신녀, 백설화였으니까.

         

        좌호법은 바싹 긴장한 상태였다. 그녀가 자신을 찾은 이유를 알고 있었기에.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좌호법. 교주님이 어디로 가셨는지 알고 계세요?”

         

        우진운은 난감해했다.

         

        제아무리 자신 앞에 있는 자가 본교의 신녀라고 해도, 교주의 위치를 함부로 말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러나 천마신교의 신도 중 그 누구라도 이 상황에 의문을 갖지 못할 거다.

         

        신녀에게는 교주와 같은 피가 흘렀으니까.

         

        “알고 계시는 눈치군요.”

        “그게….”

         

        좌호법은 침을 꼴깍 삼켰다.

         

        마치 교주가 눈앞에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얼굴도 분간이 안 갈 정도로 흡사했다.

         

        다른 것이라곤 신녀 쪽의 체형이 더 굼떠 보인다는 거?

         

        그리고 눈물점의 위치가 서로 반대라는 것과 머리카락의 색이 살짝 밝다는 것뿐이었다.

         

        “좌호법. 제가 언제 섭섭하게 해드린 적이 있던가요?”

         

        우진운은 미칠 지경이었다.

         

        이 자리에 없는 대호법과 우호법이 괜스레 미워졌다.

         

        좌호법의 본분을 다해 입을 다물면, 이 미친 신녀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고 또 사실대로 말해버리면 깐깐한 대호법의 설교를 듣고 말 거다. 교주의 진노를 사게 되는 건 덤이고.

         

        한참이나 마음속에서 저울질하던 우진운은 시선을 내리깔았다.

         

        “은룡굴에 가셨습니다….”

        “네? 은룡굴이라고 하셨어요?”

         

        은룡굴.

         

        베일에 감싸진 천마신교의 시설 중 하나로, 오직 수련만을 위해 만들어진 인공적인 지하 동굴을 말한다. 십만대산의 한 가운데 있어 당분간 출입을 하지 말라는 교주의 명이 내려진 곳이기도 했다.

         

        “하, 어이가 없네요. 거긴 왜 갔대요?”

        “꿈을 꿨다고 하셔서….”

        “꿈이라뇨?”

         

        백설화는 어이가 없었다.

         

        본교의 신녀는 바로 자신이었다.

         

        아무리 교주라 해도 그렇지, 꿈에 관한 건 자신의 영역이었다.

         

        게다가 스스로가 봉쇄령을 내린 곳에 몰래 출입하다니. 천마신교의 신도들에게 귀감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아니, 신녀를 냅두고 이게 뭐 하는 짓이래요? 자기가 예지몽이라도 꾼다는 거예요? 좌호법은 안 말리고 뭐 하셨어요?”

         

        우진운은 억울할 따름이었다. 교주에 대한 분노가 왜 자신에게 돌아오는가.

         

        좌호법이 할 수 있는 건 하나였다.

         

        “저도 우호법에게 들은 것이라….”

         

        이 자리에 없으니, 이 정도 모함은 해도 괜찮으리라 생각한 우진운이었다.

         

        가장 어려운 일을 자신에게 맡기고 도망간 우호법에 대한 복수기도 했다.

         

        후.

         

        한숨을 쉰 백설화가 다리를 꼬았다.

         

        신녀가 하면 안 되는 행동이지만, 이 자리엔 좌호법과 신녀밖에 없었다.

         

        좌호법만 입을 다물면 문제없다는 거다.

         

        그리고 좌호법이 이걸 바깥에 발설한 위인도, 상황도 아니었고.

         

        “그래서 무슨 꿈을 꿨다는데요?”

         

        우진운은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용을 봤답니다.”

        “용이요?”

        “예. 아주 거대한 녹색 거룡이 대지를 집어삼키는 꿈을 꾸셨답니다.”

         

        백설화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꿈 때문에 벽곡단을 바리바리 싸 들고 은룡굴에 갔다는 말이네요?”

        “예.”

        “아이고, 두야….”

         

        설화는 자신의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교주가 없어졌다는 건, 자신이 한동안 교주 대리를 맡아야 한다는 거다.

         

        교주 대리를 맡는 건 그렇다 쳤다.

         

        교주와 얼굴이 같으니, 신녀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자신에게 말을 하지 않는가.

         

        자신에게 들키지 않고 몰래 일을 끝내고 오겠다는 거 아니던가.

         

        자신이 알아차려서 다행이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외부의 손님이 온다면 혼란이 일어날 거다.

         

        “내가 어디 갈 때는 꼭 말하라고 했을 텐데….”

         

        백설화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좌호법. 당신.”

         

        어느샌가 좌호법이 보이지 않았다.

         

        음영보. 그림자 같은 발걸음으로 건물을 빠져나간 지 오래였다.

         

        “이익….”

         

        분노를 터트릴 상대가 사라졌다.

         

        사실 좌호법의 잘못이라고 하긴 힘들지만, 이른 나이에 신녀의 자리에 오른 백설화는 누군가의 탓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없지 않아 있었다.

         

        참자, 참아.

         

        좌호법이 무슨 잘못이 있겠어.

         

        교주가 이러는 것도 한두 번이 아니고.

         

        “후우.”

         

        백설화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유사시를 대비해, 교주의 분장을 할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랍을 뒤지던 중, 설화의 눈에 자개가 박힌 멋들어진 문양의 작은 통이 들어왔다.

         

        신녀는 화가 난 것도 잊고 잠시 작게 미소 지었다.

         

        귀하디귀하다는 옥봉의 꿀을 넣어 만든 경단이 들어 있는 통이었다.

         

        그 맛을 기억하기만 하더라도 얼굴이 헤실헤실해졌다.

         

        하나만 먹을까.

         

        설화는 갈등하기 시작했다.

         

        분명 맛있을 거다.

         

        아니, 엄청나게 맛있을 거다.

         

        하지만 비싸다.

         

        안 그래도 자금이 슬슬 부족해지는 시기인데, 본교의 신녀씩이나 되는 인물이 사치를 부릴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분노는 옥봉의 꿀이 아니라면 해결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이 분노의 원인은 교주다.

         

        그렇다면 교주에게 비용을 달아두면 해결되는 일 아니던가.

         

        설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논리적으로 틀린 말이 아니었다.

         

        문제해결이다.

         

        이제 남은 건, 분노를 식히기 위한 정당한 보상이었다.

         

        경건한 마음으로 통의 뚜껑을 열었다.

         

        내용물을 확인한 설화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분명 가득 들어 있어야 할 경단이 하나도 남긴 없이 사라졌으니까.

         

        “이…. 이….”

         

        이런 짓을 할 건 천마신교에 오직 한 사람밖에 없었다.

         

        “백연영!!!”

         

        설화는 이미 은룡굴에 들어간 교주의 이름을 발악하듯 불렀다.

         

        당연히 그녀가 들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너, 돌아오기만 해봐.”

         

        소중한 간식을 훔쳐 간 자신의 언니에게 복수를 다짐한 천마신교의 신녀였다.

         

        물론 그 소중한 간식은 교주가 아니라 작고 귀여운 한 마리의 도마뱀이 전부 꿀꺽해 버렸지만, 설화가 그 사실을 알 방법은 없었다.

       


           


I Became an Evolving Liz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n Evolving Liz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진화하는 도마뱀이 되었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reincarnated as a lizard in a martial arts world. “Roar!” “He’s using the lion’s roar!” “To deflect the Ten-Star Power Plum Blossom Sword Technique! Truly indestructible as they say!” “This is… the Heavenly Demon Overlord Technique! It’s a Heavenly Demon, the Heavenly Demon has appeared!” It seems they’re mistaking me for something el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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