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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번에는 그래도 쓸 만한 정보가 있지 않을까 기대했건만, 아니나 다를까.

         

         

       이 글귀를 새기는 외신은 분명 초록색과 하얀색 얼룩으로 이루어져 모자라게 생긴 외신일 것이다.

         

         

       “탄튼 씨!”

         

         

       글귀를 보며 화를 삭이고 있으니 무연이 달려와서는 자신의 품에서 꺼낸 종이 같은 걸로 내 몸을 문질렀다.

         

         

       “무, 무연 씨?”

         

       “보, 보지 말라고 했는데… 말했는데…!”

         

         

       무연이 눈물이 잔뜩 맺힌 눈으로 나를 보면서 말했다.

         

       아니, 내가 영향을 받지 않는 다는 걸 모른다고 해도 울 정도인가 싶은데.

         

         

       “어… 이게 뭔가요?”

         

       “호, 호신부라는 거에요. 외신에 대한 간섭을 어느 정도 막아줘요.”

         

         

       뭐, 호신부?

         

       외신에 대한 간섭을 막아준다니, 그런 아이템도 있었단 말이야?

       

       내 정신에 영향을 주진 않았지만 호신부가 작용은 하는 지 끝 부분이 조금씩 가루가 되어 떨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중요한 거라면 보급품 주실 때 하나 주시지.”

         

       “…이건, 만들기 힘든 거라 귀한 거라고요. 그리고 상식적으로 기록자가 쓴 글을 읽는 사람은 없고요.”

         

         

       그래도 필요할 때 써주긴 하는구나.

         

       …본 지 얼마 안 되고, 심지어 범죄자 신분인 자신을 이 정도로 걱정해주다니.

         

       왜 커뮤니티에서 무연이 그렇게 평가가 좋았는지 직접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코가 찡한 기분이 들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다신 벽면에 있는 글 읽지 마세요. 그거 뒷감당하려고 하면… 그, 죽이는 것보다 힘드니까요….”

         

         

       뒷말을 듣기 전까지는.

         

         

       내가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게 무서운 본인에 대해서 걱정한 거였어?

         

       그리고 당사자를 앞에 두고 죽인다는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거는 또 뭔데?!

         

       방금까지 진심으로 감동하고 있던 내 마음 책임져!

         

         

       “….”

         

       “아, 아니! 그러니까, 이게… 으으으… 아무튼 함부로 보면 안 된다고요! 다음에 이런 짓을 하면 억압할 테니까 조심하세요.”

         

         

       이미 하고 싶은 말 다 해놓고 수습하려고 하니 막막하지?

         

         

       하긴 범죄자가 자신의 말도 안 듣고 멋대로 행동하다가 자살보다 더한 행동을 하려고 하는데, 어떤 사람이 화가 안 나겠어.

         

       나 같아도 일단 걷어차고 시작했을 것 같긴 하다.

         

         

       “죄송해요. 예전부터 이런 글귀 읽는 게 익숙해서 그만….”

         

       “읽는 게 익숙하다고요…? 이게 무슨 내용인지 읽힌다는 뜻인가요?”

         

         

       무연이 당황하면서 말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시, 신비 학자? 이력에는 그런 게 적혀 있지 않은데…. 만약 그렇다면 글을 읽을 수 있는 거랑 그 비정상적인 성적 취향도 이해가 가긴 하네요.”

         

         

       어….

         

       그래 뭐, 정신병자보다야 신비 학자가 낫겠다마는.

         

         

         

         

         

       아니, 근데 신비 학자들은 대체 뭔 짓거리를 했길래 이해하게 하는 거야.

         

         

         

       …상상 이상으로 쉽지 않은 녀석들인 모양이네.

         

         

         

       일단 신비학자라고 오해하게 내버려 둘까.

         

       무연은 사냥꾼처럼 냄새를 맡아서 거짓말을 알아채는 신박한 능력을 갖추고 있진 않은 듯하니까.

         

         

       “어…크흠, 글을 읽을 수 있긴 합니다.”

         

       “여, 역시 그렇군요. 그래서 감시자를 쓰러뜨릴 수 있었구나.”

         

       “감시자가 그렇게 위험한 외신인가요?”

         

       “…네, 맞아요. 기사단에서 정한 외신의 계위가 있는데, 측정된 결과로는 감시자는 대외신급, 신비 학자시면 알고 계시겠지만, 이 글을 쓴 기록자도 마찬가지로 그에 속해요.

         

       그 언어를 이해하는 순간 미쳐버리는 거고요.”

         

         

       대외신이라.

         

       소외신도 그렇고 외신에 급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단어가 직접 언급되는 건 처음이네.

         

         

       “그래서 감시자를 물리치신 사실을 황녀님께서 높게 평가하신 것이고요.”

         

         

       초반 억까 보스답게 감시자도 역시 최고 계위였구나.

         

       애초에 사냥꾼이 못 이겨낼 정도로 강한 외신이었다는 거에서 증명하긴 했다.

         

         

       “그리고 저희가 쓰러뜨리러 가는 정원사는… 산림지대를 점거할 뿐, 왜곡 현상도 일어나지 않아 평외신들 중 하위로 평가되고 있어요.”

         

       “그런데 왜 처리가 되지 않은 거죠?”

         

       “어, 말해도 되나? 으음… 이 정도면… 론단은 가장 큰 화로가 있는 곳, 그만큼 외신도 많이 간섭을 해오니까 다른 외신에 비해 우선순위가 떨어진 거죠. 만약 기사단장님이 오셨다면 금방 처리되었을 거에요.”

         

         

       무연은 기사단장은 바쁘셔서 이런 자잘한 일에는 참여할 수 없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기사단장이라.

         

       커뮤니티에서도 반기지 않는 눈치긴 했는데.

         

       평가와는 달리 이름값만큼의 실력을 갖추고 있는 건가.

         

         

       “그렇게 하위급 외신이라면 저희 둘이서도 해결 가능한 수준인가요?”

         

       “어… 단신으로 처리하는 기사들도 있으니 괜찮을 거에요.”

         

         

       음.

         

       그러면 괜찮겠지.

         

       카더라 통신 수준이라 못 미덥긴 하지만 어찌 되었건 해야 하는 일이다.

         

         

       “아, 참… 어쨌든, 진짜 괜찮으신 건가요?”

         

       “네, 뭐. 일단은요.”

         

         

       ‘역시 신비학자….’ 라고 중얼대는 무연을 보고 있으니 양심이 조금 쑤셔오긴 했지만, 외신박이나 정신병자라고 불리고 싶진 않았기에 잠자코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이제 들어갈게요?”

         

         

       무연이 정문으로 다가가 문을 열지 못하게 하려고 걸어둔 자물쇠를 풀고는 열자, 오랜 기간 아무도 들어가지 않아서인지 끼이익, 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졌다.

         

       안으로 들어서려고 하니 줄기 나무들이 빼곡하게 차 있는 탓에 통행이 쉽지 않아 보였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무연이 양손으로 도끼를 쥐고는 그 나무들을 베어내기 위해 이리저리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저, 저게 맞나?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무슨 충격파 같은 것이 경로를 따라서 나무들을 죄다 없애고 있었다.

         

       …진짜 장난감으로 보일 뿐 물리력은 그대로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한참 휘두르고 나서야 무연이 가쁜 숨을 내쉬며 돌아보았다.

         

         

       “후우, 다 됐어요…. 이제 들어갈까요?”

         

       “넵.”

         

       

       이게 커뮤니티에서 거론되던 기사단 멤버의 저력인가.

         

       …웬만하면 나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무연이 먼저 앞장서고, 내가 그 뒤를 따라 들어가니 사방팔방에 아름다운 꽃들이 가득 피어 있었다.

         

       무슨 꽃인지는 모르겠지만, 싱그러운 향이 느껴지는 것이 외신이 있는 곳 치고는 제법 아름다운 곳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정원사라는 이명에 맞게 꽤 예쁜 화단이었다.

         

         

       그렇게 꽃을 바라보다 무연을 바라보니 그녀는 겁에 질려 있었다.

         

         

       “…히, 히익.”

         

         

       아, 역시 이것들 겁쟁이 모드로 치환된 거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무연 씨…?”

         

       “시, 시체가… 사방팔방에….”

         

         

       자, 잠깐.

         

       뭐라고?

         

       이 아름다운 꽃들이 전부 시체들이란 말이야?

         

         

       설명이 없었으면 혼자 이상한 소리 하는 사람이 될 뻔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조금 관련 있는 걸로 바뀌어야지, 꽃으로 바뀌는 거는 너무 뜬금없잖아.

         

         

       “아, 아아. 네. 너무 충격적인 장면이라 순간 멍해졌네요….”

         

         

       일단은 자연스럽게 시체를 본 척, 허탈한 표정을 지으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제야 무연이 의심스러운 표정을 거두었다.

         

         

       “그런데 여기에 시체가 왜 이렇게 많이 있는 거죠?”

         

       “복장을 보아하니, 캔들이네요. 으으.”

         

       “캔들?”

         

       “모, 모르시나요? 설산에 있는 외신 때문에 눈보라를 막아주는 게 화로인 건 알고 계실 테고, 그 밖에 살아가는 인간들을 캔들이라고 불러요.

         

         

       론단 바깥으로 사람이 살기에 척박한 곳에 장작을 두고 하루하루 겨우 연명하며 사는 집단.

         

         

         

       화로에 있는 장작을 훔쳐가는 역적들이죠. 가끔 이렇게 쥐구멍을 이용하는 자들도 있어요.

         

       물론….”

         

         

       무연은 꽃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길을 잘못 들어 처참한 꼴로 죽었지만요….”

         

         

       꽃의 수가 매우 많은 것을 보니, 그만큼 시체가 많다는 것을 뜻하는 거겠지.

         

       도둑질 하려던 사람들이기는 했다고 하지만, 어쨌거나 죽은 사람들이니 명복을 빌어주었다.

         

         

       다음 생에는 이런 짓을 하지 않더라도 살 수 있는 행복한 사람들이 되기를.

         

         

       “…으, 우욱, 안 돼.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

         

         

       자기 최면을 걸고 있는 모습이 정말 애처롭기 그지없었다.

         

       나 같아도 만약 이 꽃들이 전부 시체로 보인다면 무연보다 더 심한 반응을 보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행히 시체로 보이지 않으니까, 뭐.

         

         

       “일단 들어가 볼까요?”

         

       “자, 잠깐만요!”

         

         

       언제까지고 시간 끌 셈이야.

         

       빨리빨리 끝내고 돌아가야 무서운 것도 반감이 되는 법이지.

         

         

       “도망치면 안 돼, 도망치면 안 돼, 도망치면 안 돼….”

         

         

       이제 슬슬 움직이려고 하는 것인지, 자기 최면을 걸기 시작한 무연을 두고 먼저 걸어 들어갔다.

         

         

       생각보다 외신들이라고 하는 것들은 말만 통하면 그렇게 위험하지 않은 존재들일지도 몰랐다.

         

       당장 적어놓은 글귀들을 읽어보아도 어이없는 것들뿐이었고, 감시자도 조금 놀아주니까 좋다고 ‘헥헥’ 대지 않던가.

         

         

       게다가 호주머니에 있는 소외신은 심지어 나 좋다고 따라오기까지 했고.

         

         

       정원사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최대한 꽃을 밟지 않기 위해서 길처럼 트여 있는 곳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계세요?”

         

       “아, 안 돼요! 그렇게 큰소리 내시면…!”

         

         

       거 참.

         

       일단은 불러내야 때려죽이든, 대화하든 뭘 할 수 있을 거 아니여.

         

       그리고 위험하면 밖으로 다시 나갈 수 있다고 했고.

         

       벽에 적힌 글귀는 감시자 전 때도 그렇고 틀린 정보는 주지 않았기에 신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참을 돌아다니며 불러보아도 그 어떤 것도 튀어나오지도, 반응하지도 않았다.

         

       수풀이 우거진 곳에서 무언가 튀어나올까 봐 경계했지만, 의미 없는 짓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그렇게 점점 안으로 들어가다가 무연을 향해 물었다.

         

         

       “여기 있는 거 맞아요?”

         

         

       그러나 뒤에 있는 무연은 아무런 말도 없었다.

         

         

       “무연 씨?”

         

         

       다시 한 번 더 물어보았지만 대답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아무리 무서워한다 해도 대답을 안 하진 않을 것이라는 생각해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봤지만 따라오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무연은 어느새 부턴가 형체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어, 어라?

       

       


           


Dark Fantasy: Super Coward Mode

Dark Fantasy: Super Coward Mode

슈퍼 겁쟁이 모드 다크 판타지
Score 8.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The super cowardly me installed Super Coward Mode, and the terrifying extraterrestrials started to look cute. “Eating the flesh of an extraterrestrial deity? You’re not human! Ew!” “Even withstanding mental manipulation? What kind of monster are you!” “Enslaving an extraterrestrial deity? You must be out of your mind.” …And then, the reactions around me became str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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