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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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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덜컹,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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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을 닫기 무섭게, 어떠한 힘이 작용한 것처럼 문이 안쪽으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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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들어오고 뭐 해? 아! 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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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러져있는 도반을 툭툭 차보던 라니아가 헤실헤실 풀어진 표정으로 애교 섞인 목소리를 흘리며 다가와 주스를 받아 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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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꿀꺽,꿀꺽. 키야! 맛있다!”
    “미아님도 드세요. 저번에 사 오신 과일로 만들었어요.”
    “아,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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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아가 익숙하게 잔을 받아 주스를 홀짝거렸다. 입술에 묻은 주스를 핥아먹은 라니아가 미아의 맞은편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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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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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가 다리를 꼬자 속옷이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는 바지가 더욱 위로 올라갔다. 자신도 모르게 그쪽으로 향하는 시선을 겨우 단속한 후, 헛기침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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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아님 저 사람은 어쩔까요?”
    “아,글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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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아는 눈동자를 굴려 반쯤 기절한 도반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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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 같아선 죽이고 싶지만 그럴 수 없겠죠.”
    “왜? 그냥 죽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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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니아가 몇 개 남지 않은 쿠키 중 하나를 들어 입에 밀어 넣으며 말했다. 섹시하고 매력적인 라니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말랑말랑 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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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키가 정말 마음에 든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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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아, 저래 보여도 다른 사천왕님과 연이 있잖아요.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고 싶지 않아요.”
    “에이, 그냥 죽여.”
    “그 사천왕이 에르보안님인데도요?”
    “음…? 저 녀석이 에르보안이랑 아는 사이란 말이야?”
    “정확히는 에르보안님의 측근과 아는 사이죠.”
    “애매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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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르보안,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하기로 유명한 사천왕 중 하나였다. 마왕군 내에선 참모 역할을 하는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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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에게 잘못 걸리면 귀찮은 일이 수 없이 쏟아질 터였다. 그와 아는 사이라면 피하는 게 맞지만 에르보안의 측근과 아는 사이라면 묘하게 애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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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같이 본격적으로 전쟁이 이뤄지는 상황에 괜한 싸움을 만들면 귀찮잖아요.”
   “그럼 어뎌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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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니아가 행복한 표정으로 볼을 씰룩거렸다. 쿠키를 열심히 구운 요리사로서 뿌듯한 기분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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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소님 쪽에 중개를 맡기려고요.”
    “꿀꺽, 좋은 생각이네. 꽤 악마적인 생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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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소, 그는 광란의 투기장을 운영하는 사천왕 중 하나였다. 그 외에도 사채와 마약 등 인간들이 말하는 끔찍한 일은 대다수 다루는 사천왕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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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소에게 중개를 맡긴다는 건, 지소가 미아가 입은 피해를 판단해 강제로 도반에게 ‘합리적인 가격’만큼 돈을 뺏어오는 걸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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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분한 돈이 있다면 별문제 없지만 돈이 부족하다면 몸과 영혼까지 전부 뜯어가는 게 지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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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우겨우 보상금을 지불한다고 해도 지소는 ‘수수료’라는 이름으로 남은 돈까지 싹 뜯어간다. 라니아가 ‘악마’를 운운한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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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소가 직접 움직인다면 적어도 귀찮은 보복도 없고, 최대한 많은 걸 뜯어낼 수 있을 터였다. 거기다 도반을 나락으로 보내기까지 할 수 있으니 최고의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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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이건 풀어준다?”
    “아, 제약을 걸고요.”
    “하긴 그냥 풀어주면 귀찮게 할 게 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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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아는 읽고 있던 책을 탁하고 덮은 후 자리에서 일어나 도반에게 다가갔다. 그는 라니아에게 온갖 마법으로 괴롭힘을 당한 탓에 엉망인 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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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ψπΝδΦ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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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아가 무어라 중얼중얼 내뱉자 도반의 몸 위로 마법진이 떠오르더니 이내 그의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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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정도면 되겠네요.”
    “그럼 이건 치운다?”
    “네, 그렇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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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니아는 가볍게 손가락을 휘저어 도반을 허공에 띄웠다. 그리고는 응접실 한쪽에 놓인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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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 보자, 좌표가….여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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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거울에 남아있는 마법의 흔적을 추적해, 도반이 넘어왔던 장소를 알아낸 후 거울을 작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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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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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울의 표면이 또다시 울렁울렁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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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고 싶으면 또 찾아와. 재미있게 놀아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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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니아는 매혹적인 웃음을 입가에 걸친 채 허공에 띄어진 도반을 거울로 날려 보냈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도반은 잔상만을 남기고 거울 너머로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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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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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니아는 제 손으로 직접 던져넣은 것처럼 가볍게 손을 털어내더니 제 자리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나는 슬쩍 눈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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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미아님 보안에 관해 이야기해 드리고 싶은게 있는데…”
   “아.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건물에 보안 마법을 전체적으로 깔아둘 생각이니까요.”
    “앗!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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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곧바로 고개를 팍 숙이며 인사를 건넨 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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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전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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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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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안이 방을 빠져나가자 조금은 가벼웠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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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엽네. 역시 내가 데려갈 걸 그랬나?”
    “스승님께선 노예를 제대로 챙기시지 않잖아요. 또 방치하다가 굶겨 죽이실걸요?”
    “그래도 쟤는 알아서 요리도 하잖아.”
    “그것도 재료가 있어야 하죠.”
    “그건 그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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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람은 실없는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이내 본론을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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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스승님께서 이 바쁜 와중에 찾아오신 이유가 뭔가요?”
   “아,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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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니아는 가슴 안쪽에 손을 쑥 밀어 넣더니 안쪽에서 검은색 편지 봉투를 꺼내 들었다. 테두리에 금박이 새겨져 있어 꽤 화려한 편지 봉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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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거 받아. 마왕님께서 직접 보내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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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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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니아의 손가락을 빠져나온 편지 봉투가 가벼운 마기의 흐름을 타고 미아의 허벅지 위에 떨어졌다. 미아는 곧바로 편지 봉투를 열어 내용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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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머아고 서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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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니아는 입에 쿠키를 밀어 넣으며 편지 내용에 대해 질문했다. 그러자 미미하게 미간을 찌푸리고 있던 미아가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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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옆 왕국을 밀어버리는데 손을 보태달라고 쓰여 있네요.”
   “잘됐네. 쉽게 작위를 얻을 기회잖아. 응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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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니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미아가 편지를 봉투에 밀어 넣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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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그런 거에 별 관심 없다는 거 알잖아요. 뭣보다 제가 거기 참가하면 여긴 누가 지키죠? 스승님께서 노예를 성인까지 맡아달라고 하셨잖아요.”
   “뭐, 보안 마법 강하게 걸어두면 되는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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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니아의 태연한 말에 미아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편지 봉투를 내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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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경 써야 할게 보안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헤에 -.. 그래도 꽤 잘 지내나 보네? 난 전처럼 귀찮다고 싹 다 버려버릴 줄 알았는데.”
   “…스승님께서 직접 부탁하셔서 그런 거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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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아가 답지 않게 고개를 팩 돌린 채 중얼거리자, 라니아가 입맛을 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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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끙, 전쟁만 아니었으면 내가 데려갔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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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빈번한 전쟁으로 인해 사천왕인 그녀는 여러 전장을 뛰어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렇다 보니 쉽사리 새로운 식구를 데려올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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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이 얼추 끝나면 그때 납치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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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탐욕스러운 마왕군의 위대한 사천왕 중 하나였다. 가지고 싶은 게 있으면 반드시 가져야 하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반드시 실행해야 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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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였다면 상황이 어떠하든 리안을 납치해 제 옆구리에 끼고 다녔겠지만, 이번 상황은 특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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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아는 그녀의 제자이다. 그 말은 곧, 미아는 라니아의 것이라는 말과 같았다. 그녀는 제 영역에 들어온 모든 것에 자비로운 편이었다. 그렇기에 쉽게 리안에 대한 집착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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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승님 지금 이상한 생각 했죠?”
    “으응? 아니? 내가? 그럴 리가?”
    “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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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냥에 나서기 전 짐승 같은 표정을 짓는 제 스승을 보며 미아가 눈을 번뜩였지만, 라니아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순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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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우, 어쨌든 편지 전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래서, 갈 거야?”
    “가야죠. 마왕님께서 직접 청하신 건데.”
    “하긴 안 간다고 했으면 에르보안이 별 지랄을 다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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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니아는 마지막 남은 쿠키를 손에든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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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그렇게 전달한다?”
    “제가 지금 바로 답신을 -…”
    “에이, 그런 게 왜 필요해? 내가 직접 전달하면 되지.”
    “잠…스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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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아가 그녀를 붙잡기도 전에 그녀를 순식간에 마법으로 사라져버렸다. 미아는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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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안 마법이나 걸어둬야겠네. 그리고 출발하기 전에 기초적인 실험도 마무리해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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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아는 떠나기 전에 리안에 대한 기본적인 실험을 마무리해야겠다 생각하며 응접실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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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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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천천히 먹어. 뜨거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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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은 점심시간, 아이들이 그릇을 들고 리안의 앞에 주르륵 줄을 섰다. 피아는 익숙한 장면을 시선에 담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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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해.”
    “감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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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말이 서투른 아이들은 혀짧은 소리를 내며 음식을 받아 갔다. 리안에게 한 번이라도 시선을 받고자 초롱초롱한 시선으로 그를 올려다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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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는 왠지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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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레기 같은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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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는 리안이 싫었다. 그 이유가 리안이 과거에 아이들에게 모질게 대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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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을 이용하고 있을 뿐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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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혹한 마왕의 땅에서 살아남은 피아의 눈에는 보였다. 굶주리지 않기 위해, 실험당하지 않기 위해 강한 자에게 빌붙고자 하는 아이들의 몸부림이. 그리고 그런 몸부림을 느긋하게 즐기는 리안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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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족이나 다를 바 없는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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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는 알량한 권력 앞에 바닥을 기며 재롱을 부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리안이 즐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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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됐어, 난 동생만 지키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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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하게 가라앉은 피아의 시선에 줄을 서서 음식을 받는 릴리의 모습이 담겼다. 동시에 그녀의 눈동자 위로 광기가 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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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놈이 릴리에게 손을 대면 그때, 죽여버리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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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투베론님 후원감사합니다! 연재 열심히 하겠습니다 😀

어제 어떤분이 아이들이 너무 쉽게 리안을 따르는게 이상하다는? 질문을 봤던거 같은데 오늘 보니까 없네요!

아이들은 피아가 말한 것처럼 생존 본능 + 애정결핍 + 스톡홀름 증후군 등으로 리안에게 친근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팔려갈 때까지 숨을 죽인 채 (시끄럽게 떠들거나 울면 맞아 죽기때문) 살아남은 눈치 빠른 아이들이기 때문에 더 그런편이죠.
거기다 부모도 없이 귀가 트일 정도로 똑똑하고 눈치가 빠른 아이들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물론 리안의 다정한 태도에 진심으로 마음을 열고있지만 피아의 눈에는 리안이 그저 쓰레기로 보일 뿐입니다.

(후기가 너무 길어져서 잘랐습니다.)

그럼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작과 추천은 사랑입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다음화 보기

덜컹,후욱!

문을 닫기 무섭게, 어떠한 힘이 작용한 것처럼 문이 안쪽으로 열렸다.

“안 들어오고 뭐 해? 아! 주스!”

쓰러져있는 도반을 툭툭 차보던 라니아가 헤실헤실 풀어진 표정으로 애교 섞인 목소리를 흘리며 다가와 주스를 받아 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꿀꺽,꿀꺽. 키야! 맛있다!”

“미아님도 드세요. 저번에 사 오신 과일로 만들었어요.”

“아, 고마워요.”

미아가 익숙하게 잔을 받아 주스를 홀짝거렸다. 입술에 묻은 주스를 핥아먹은 라니아가 미아의 맞은편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오우..’

그녀가 다리를 꼬자 속옷이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는 바지가 더욱 위로 올라갔다. 자신도 모르게 그쪽으로 향하는 시선을 겨우 단속한 후, 헛기침하며 말했다.

“미아님 저 사람은 어쩔까요?”

“아,글쎄요.”

미아는 눈동자를 굴려 반쯤 기절한 도반을 바라보았다.

“마음 같아선 죽이고 싶지만 그럴 수 없겠죠.”

“왜? 그냥 죽이지?”

라니아가 몇 개 남지 않은 쿠키 중 하나를 들어 입에 밀어 넣으며 말했다. 섹시하고 매력적인 라니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말랑말랑 풀어졌다.

쿠키가 정말 마음에 든 듯했다.

“하아, 저래 보여도 다른 사천왕님과 연이 있잖아요.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고 싶지 않아요.”

“에이, 그냥 죽여.”

“그 사천왕이 에르보안님인데도요?”

“음…? 저 녀석이 에르보안이랑 아는 사이란 말이야?”

“정확히는 에르보안님의 측근과 아는 사이죠.”

“애매하네.”

에르보안,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하기로 유명한 사천왕 중 하나였다. 마왕군 내에선 참모 역할을 하는 남자다.

그에게 잘못 걸리면 귀찮은 일이 수 없이 쏟아질 터였다. 그와 아는 사이라면 피하는 게 맞지만 에르보안의 측근과 아는 사이라면 묘하게 애매했다.

“지금같이 본격적으로 전쟁이 이뤄지는 상황에 괜한 싸움을 만들면 귀찮잖아요.”

“그럼 어뎌게에?”

라니아가 행복한 표정으로 볼을 씰룩거렸다. 쿠키를 열심히 구운 요리사로서 뿌듯한 기분이 올라왔다.

“지소님 쪽에 중개를 맡기려고요.”

“꿀꺽, 좋은 생각이네. 꽤 악마적인 생각이야.”

지소, 그는 광란의 투기장을 운영하는 사천왕 중 하나였다. 그 외에도 사채와 마약 등 인간들이 말하는 끔찍한 일은 대다수 다루는 사천왕 중 하나였다.

지소에게 중개를 맡긴다는 건, 지소가 미아가 입은 피해를 판단해 강제로 도반에게 ‘합리적인 가격’만큼 돈을 뺏어오는 걸 말했다.

충분한 돈이 있다면 별문제 없지만 돈이 부족하다면 몸과 영혼까지 전부 뜯어가는 게 지소다.

겨우겨우 보상금을 지불한다고 해도 지소는 ‘수수료’라는 이름으로 남은 돈까지 싹 뜯어간다. 라니아가 ‘악마’를 운운한 이유가 있었다.

지소가 직접 움직인다면 적어도 귀찮은 보복도 없고, 최대한 많은 걸 뜯어낼 수 있을 터였다. 거기다 도반을 나락으로 보내기까지 할 수 있으니 최고의 선택이었다.

“그럼 이건 풀어준다?”

“아, 제약을 걸고요.”

“하긴 그냥 풀어주면 귀찮게 할 게 뻔하니까.”

미아는 읽고 있던 책을 탁하고 덮은 후 자리에서 일어나 도반에게 다가갔다. 그는 라니아에게 온갖 마법으로 괴롭힘을 당한 탓에 엉망인 꼴이었다.

“…ψπΝδΦΩ”
“…ψπΝδΦΩ”

미아가 무어라 중얼중얼 내뱉자 도반의 몸 위로 마법진이 떠오르더니 이내 그의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이 정도면 되겠네요.”

“그럼 이건 치운다?”

“네, 그렇게 해주세요.”

라니아는 가볍게 손가락을 휘저어 도반을 허공에 띄웠다. 그리고는 응접실 한쪽에 놓인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어디 보자, 좌표가….여기네.”

그녀는 거울에 남아있는 마법의 흔적을 추적해, 도반이 넘어왔던 장소를 알아낸 후 거울을 작동시켰다.

우웅.

거울의 표면이 또다시 울렁울렁 흔들렸다.

“죽고 싶으면 또 찾아와. 재미있게 놀아줄 테니까.”

라니아는 매혹적인 웃음을 입가에 걸친 채 허공에 띄어진 도반을 거울로 날려 보냈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도반은 잔상만을 남기고 거울 너머로 사라져버렸다.

탁탁.

라니아는 제 손으로 직접 던져넣은 것처럼 가볍게 손을 털어내더니 제 자리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나는 슬쩍 눈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저, 미아님 보안에 관해 이야기해 드리고 싶은게 있는데…”

“아.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건물에 보안 마법을 전체적으로 깔아둘 생각이니까요.”

“앗! 감사합니다!”

나는 곧바로 고개를 팍 숙이며 인사를 건넨 후 말했다.

“그럼 전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

리안이 방을 빠져나가자 조금은 가벼웠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귀엽네. 역시 내가 데려갈 걸 그랬나?”

“스승님께선 노예를 제대로 챙기시지 않잖아요. 또 방치하다가 굶겨 죽이실걸요?”

“그래도 쟤는 알아서 요리도 하잖아.”

“그것도 재료가 있어야 하죠.”

“그건 그러네.”

두 사람은 실없는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이내 본론을 꺼내 들었다.

“그래서…스승님께서 이 바쁜 와중에 찾아오신 이유가 뭔가요?”

“아,맞다.”

라니아는 가슴 안쪽에 손을 쑥 밀어 넣더니 안쪽에서 검은색 편지 봉투를 꺼내 들었다. 테두리에 금박이 새겨져 있어 꽤 화려한 편지 봉투였다.

“이거 받아. 마왕님께서 직접 보내신 거야.”

스륵.

라니아의 손가락을 빠져나온 편지 봉투가 가벼운 마기의 흐름을 타고 미아의 허벅지 위에 떨어졌다. 미아는 곧바로 편지 봉투를 열어 내용을 확인했다.

“…!”

“머아고 서이서?”

라니아는 입에 쿠키를 밀어 넣으며 편지 내용에 대해 질문했다. 그러자 미미하게 미간을 찌푸리고 있던 미아가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옆 왕국을 밀어버리는데 손을 보태달라고 쓰여 있네요.”

“잘됐네. 쉽게 작위를 얻을 기회잖아. 응응.”

라니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미아가 편지를 봉투에 밀어 넣으며 말했다.

“저는 그런 거에 별 관심 없다는 거 알잖아요. 뭣보다 제가 거기 참가하면 여긴 누가 지키죠? 스승님께서 노예를 성인까지 맡아달라고 하셨잖아요.”

“뭐, 보안 마법 강하게 걸어두면 되는 거 아니야?”

라니아의 태연한 말에 미아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편지 봉투를 내려다보았다.

“신경 써야 할게 보안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헤에 -.. 그래도 꽤 잘 지내나 보네? 난 전처럼 귀찮다고 싹 다 버려버릴 줄 알았는데.”

“…스승님께서 직접 부탁하셔서 그런 거 뿐이에요.”

미아가 답지 않게 고개를 팩 돌린 채 중얼거리자, 라니아가 입맛을 다셨다.

‘끙, 전쟁만 아니었으면 내가 데려갔을 텐데.’

빈번한 전쟁으로 인해 사천왕인 그녀는 여러 전장을 뛰어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렇다 보니 쉽사리 새로운 식구를 데려올 수는 없었다.

‘전쟁이 얼추 끝나면 그때 납치하지 뭐.’

그녀는 탐욕스러운 마왕군의 위대한 사천왕 중 하나였다. 가지고 싶은 게 있으면 반드시 가져야 하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반드시 실행해야 하는 사람이다.

평소였다면 상황이 어떠하든 리안을 납치해 제 옆구리에 끼고 다녔겠지만, 이번 상황은 특수했다.

미아는 그녀의 제자이다. 그 말은 곧, 미아는 라니아의 것이라는 말과 같았다. 그녀는 제 영역에 들어온 모든 것에 자비로운 편이었다. 그렇기에 쉽게 리안에 대한 집착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다.

“스승님 지금 이상한 생각 했죠?”

“으응? 아니? 내가? 그럴 리가?”

“흐음….”

사냥에 나서기 전 짐승 같은 표정을 짓는 제 스승을 보며 미아가 눈을 번뜩였지만, 라니아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순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후우, 어쨌든 편지 전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래서, 갈 거야?”

“가야죠. 마왕님께서 직접 청하신 건데.”

“하긴 안 간다고 했으면 에르보안이 별 지랄을 다했을 거야.”

라니아는 마지막 남은 쿠키를 손에든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그렇게 전달한다?”

“제가 지금 바로 답신을 -…”

“에이, 그런 게 왜 필요해? 내가 직접 전달하면 되지.”

“잠…스승님!”

미아가 그녀를 붙잡기도 전에 그녀를 순식간에 마법으로 사라져버렸다. 미아는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안 마법이나 걸어둬야겠네. 그리고 출발하기 전에 기초적인 실험도 마무리해놓고.”

미아는 떠나기 전에 리안에 대한 기본적인 실험을 마무리해야겠다 생각하며 응접실을 빠져나왔다.

***

“자, 천천히 먹어. 뜨거우니까.”

늦은 점심시간, 아이들이 그릇을 들고 리안의 앞에 주르륵 줄을 섰다. 피아는 익숙한 장면을 시선에 담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감사,해.”

“감시아.”

아직 말이 서투른 아이들은 혀짧은 소리를 내며 음식을 받아 갔다. 리안에게 한 번이라도 시선을 받고자 초롱초롱한 시선으로 그를 올려다보기도 했다.

피아는 왠지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쓰레기 같은 놈.’

피아는 리안이 싫었다. 그 이유가 리안이 과거에 아이들에게 모질게 대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이들을 이용하고 있을 뿐이잖아.’

잔혹한 마왕의 땅에서 살아남은 피아의 눈에는 보였다. 굶주리지 않기 위해, 실험당하지 않기 위해 강한 자에게 빌붙고자 하는 아이들의 몸부림이. 그리고 그런 몸부림을 느긋하게 즐기는 리안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보였다.

‘마족이나 다를 바 없는 인간.’

피아는 알량한 권력 앞에 바닥을 기며 재롱을 부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리안이 즐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됐어, 난 동생만 지키면 되니까.’

탁하게 가라앉은 피아의 시선에 줄을 서서 음식을 받는 릴리의 모습이 담겼다. 동시에 그녀의 눈동자 위로 광기가 서렸다.

‘저놈이 릴리에게 손을 대면 그때, 죽여버리면 돼.’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I’m the Only One With a Different Genre

나 혼자 장르가 다르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n the world of comedy anime, I was living an ordinary life until I became possessed by a dark fantasy novel I was reading before falling asleep. ‘Hahaha! Don’t hold a grudge -..!’ ‘Ugh, cough cough…seriously…my clothes are ruined.’ ‘…!?’ Though I was stabbed in the stomach, I calmly stood up and pulled out the spear. Originally, residents of the comedy world are a race that can be torn into 100 pieces and still come back to life the next day. ‘Stop it! Stop now! How long do you plan to sacrifice me?’ ‘No…I mean..’ ‘I’ve become strong to protect you…what have I become?’ Residents in the comedy world are just a race that vomits blood even if they stub their toe. I never made any sacrifices..but my delusion deepens and my obsession grows. One day, while I was half-imprisoned and taking care of some pitiful kids… ‘Are you the boss?’ ‘Excuse me?’ Before I knew it, I had become the behind-the-scenes boss of a huge underworld organ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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