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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

한낱 가상의 시험을 치르는 것치고 소녀의 행동은 과했다.
     
   부모의 원수라도 갚겠다는 듯이 제 안위는 등한시한 채 달려드는 꼴에 강조야 강사조차 압도된 채 지켜볼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심지어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미아와의 약속조차 잊고 제 몸을 불사르기 시작하니.
     
     
   …뭐야? 갑자기 왜 이런 통증이 느껴지는 거지?
     
   평온한 사찰 생활로 잠들어 있던 미아의 정신이 깨어난다.
     
   동시에 용광로 속으로 손을 집어넣은 것만 같은 엄청난 작열감과 통증을 느꼈다.
     
   통증에 익숙한 미아조차 순간 뇌리가 새하얘지는, 신음이 절로 나오는 끔찍한 수준.
     
   [야! 정신 차려!]
     
   곧장 상황을 파악한 미야는 군말 없이 소녀의 몸을 억지로 차지했다.
     
     
   ‘으윽… 진짜! 이 멍청한 새끼가!’
     
   이미 소녀와 동화된 몸을 조종하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니다.
     
   아무리 대단한 미아라고 해도 의식이 흐트러질 정도로 집중해야만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 소녀의 심층 의식이 굳건하게 남아 있다는 점이었다.
     
   ‘악마, 악마는 불타 죽어야 해.’
   ‘미아의 몸을 다치게 해선 안 되는데….’
   ‘하지만, 악마를 죽여야 해.’
     
   미아는 바로 그 점을 파고들었다.
     
   소녀의 취약점을 이용해 억지로 ‘소원’의 힘을 흐트러트리고.
     
   “꺼져!”
     
   상황을 이렇게 만든 목각 인형을 주먹 한 방에 박살 내 버린다.
     
   파스스- 완전히 가루가 되어 흩날리는 위력에 지켜보던 모두가 입을 쩍 벌렸다.
     
     
   결과는?
     
   [5단계 100점!]
     
     
   만점.
     
   1단계부터 5단계까지의 퍼펙트 클리어였다.
     
   현역 각성자들과 비교하면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라 해도, 그 말은 소녀의 능력이 현역 각성자와 비슷한 수준이란 것.
     
   “…수, 수고했어요. 몸에 이상은 없겠지만, 뒤로 가서 푹 쉬고 있어요.”
     
   어, 이걸 어떻게 보고해야 하지?
     
   예상치도 못했던 점수에 강사의 고민이 깊어졌다.
     
   본 걸 그대로 전한다 한들 길드장님이 믿어주시긴 할까?
     
   소녀가 RPG와 재블린이라는 현대 무기를 소환해 인형을 슥삭내고, 가장 어려운 다섯 번째는 육체 각성자들처럼 주먹으로 끝장내버렸다는 말을?
     
     
   강사부터 학생들까지.
     
   모두가 술에 취하기라도 한 듯 정신을 못 차리고 멍하니 있는 상황.
     
   […너 이번엔 진짜 각오해.]
     
   미아는 시선을 피해 슬그머니 한적한 구석으로 향했다.
     
   “선생님! 저, 저도 5단계 시험 볼래요!”
     
   그녀가 사라진 뒤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딴 덴 관심이 없었다.
     
     
   건물의 뒤편.
     
   미아는 벽에 등을 기대앉으며 무릎을 모아 앉았다.
     
   무릎에 이마를 기대자 사라락- 흘러내린 푸른 머릿결이 커튼처럼 흘러 내린다.
     
   여태 몇 번이나 거울로 봐 오며 놀랐던 거지만….
     
   ‘동화가 제대로 됐나 보네. 이제 누가 봐도 내 몸이 아니야.’
     
   소녀의 소원이 제대로 먹힌 듯, 이 몸에선 더 이상 미아의 잔재를 찾아볼 수 없었다.
     
   겉모습만 보면 마치 과거 소년의 쌍둥이 여동생이 아닐지 싶은 정도였다.
     
   그러나 미아는 굳이 그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소녀가… 이 몸을 미아의 것으로 알고 있어야 아껴주리라는 걸 알고 있기에.
     
   미아는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우리가 교단에서 처음 만났던 날 기억나?”
     
   혼잣말임과 동시에 소녀를 향한 속삭임이었다.
     
     
   “곱상하게 생겨서 머리도 길고, 하는 짓도 나보다 더 여자 같아서 난 처음에 네가 여자애인 줄 알았거든?”
     
   사실, 막 의식이 깨어났을 때는 소녀에게 쓴소리할 마음 만반이었다.
     
   하지만… 미아는 이내 마음을 추슬렀다.
     
     
   “그런데 속세의 더러움을 씻어준다고, 다들 홀딱 벗겨놓고 얼음물로 씻겨줄 때. 난 그제야 네가 남자인 걸 알았어.”
     
   조금 전의 행동이 소녀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도움을 받아 제대로 세뇌가 끝나기 전에 도망칠 수 있었던 미아와 달리, 소녀는 수년이 흐르는 동안에도 그 쓰레기들에게 붙잡혀 있지 않았던가.
     
   미아는 가만히 눈을 감고 과거의 한순간을 회상했다.
     
     
   소녀와 미아의 첫 만남은 교단의 교열 본부에서였다.
     
   자의든 타의든 갓 잡혀 온 싱싱한 교인들을 위한 곳이자.
     
   죽을 때까지 한시도 잊을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곳.
     
   첫 ‘교열’은 소년 소녀들의 저항심을 꺾기 위한 길들이기였다.
     
     
   “밥을 먹고 싶다면 자존심을 버려라. 너흰 모두 죄인이다.”
     
   목줄에 메인 채 바닥을 기며, 개밥그릇에 든 음식을 퍼먹어야 했다.
     
   애당초 그게 음식이긴 했을까?
     
   누군가 토해 놓은 것처럼 걸쭉한 갈색 덩어리를 보고는 당연하게도 미아는 그 말도 안 되는 요구를 거절했다.
     
   “싫어! 내가 왜?!”
     
   아직 어릴 적이었음에도 그들의 요구를 들어준 순간 더한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탓이었다.
     
   하지만….
     
   “그래? 그럼, 어디 한 번 끝까지 버텨봐라. 네 안의 악마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나 보자.”
     
   그런 반항이야말로 저들이 기다리던 것이었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시간이 흘러도 미아는 밥알 하나, 물 한 모금조차 먹을 수 없었다.
     
   그저 그렇게 방치됐다.
     
   저 스스로 의지를 꺾고 포기할 수밖에 없도록 말이다.
     
   그때 나타난 게 바로 소녀였다.
     
   “…배 안 고파?”
     
   자존심이라고는 조금도 없는지, 사제들이 보는 앞에서 발발거리며 잘만 기어다니던 꼬마.
     
   녀석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슬그머니 다가와 뭔가를 슬쩍 건네왔다.
     
   “뭐야.”
   “영양제….”
     
   “어쩌라고.”
   “먹을래…?”
     
   그때는 그가 어디서 뭘 훔쳐 왔다거나 사제들에게 받아 온 건 줄로만 알았다.
     
   설마하니 계속 굶는 미아가 불쌍하다고 제 피를 소모해서 그런 약을 만들어 왔을 줄은….
     
     
   “하…. 하기야 넌 항상 그렇게 멍청했지.”
     
   미아가 애써 고개를 흔들어 기억을 털어냈다.
     
   좋을 거 하나 없는 기억을 괜히 되살려내봤자 기억만 더러워질 뿐이다.
     
   애당초 소녀가 이렇게 된 건, 미아가 탈출한 뒤에 이뤄진 세뇌 과정에서였다.
     
   그간 여러 교인을 구출해 내며 들은 바에 따르면 정말 같은 인간이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을 정도로 끔찍한 짓거리들이 일어난 모양이었으니.
     
     
   “씨발. 몸을 옮기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너무 안일했다.
     
   놈들의 세뇌가 정말로 영혼에까지 새겨진 거라면 해결책을 찾아야만 했다.
     
   미아가 치유의 힘을 모아 엉망이 된 손과 손톱을 빠르게 치료해 나갔다.
     
   소녀의 세뇌가 남아 있다는 건, 어쩌면 놈들 역시 소녀의 생존을 눈치챌 수 있다는 뜻.
     
   교단의 힘을 생각해 보면 벌써 소녀를 찾아 나섰을지도 몰랐다.
     
     
   “멍청아, 잘 들어.”
     
   손의 치료가 끝나 통증이 어느 정도 가라앉은 뒤.
     
   미아는 육체의 통제권을 다시금 소녀에게 되돌려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너 또 끌려가고 싶지 않으면 앞으로 강의 잘 듣고, 네 능력을 활용할 방법을 찾아.]
     
   아직 몽롱한 정신.
     
   그러나, 소녀는 반사적으로 미아의 이야기에 대답한다.
     
   “왜에…?”
     
     
   축 늘어지는 목소리에조차 미아는 단호했다.
     
   [이거 내 몸인 건 알고 있지?]
     
   “으응….”
     
   [내 몸으로 악마에게 붙잡히면 어떻게 될 것 같아?]
     
   미아는 일부러 ‘악마’가 교단이란 사실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당장 그렇게 이야기해 봤자 이해할 리 없고, 받아들일 리도 없었으니.
     
     
   [색욕. 네가 교육받았던 걸 생각해. 이 몸으로 어떤 꼴을 당하게 될지 잘 알 거야.]
     
   “……!!”
     
   미아의 적나라한 이야기에 소녀가 그제야 퍼뜩 고개를 들어 올린다.
     
   교단에서 교육받았던 7대 죄악.
     
   그 끔찍한 참상이 미아의 몸에 일어날 걸 생각하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올랐다.
     
   목각 인형을 상대하던 때처럼 좁혀진 동공으로부터 형형한 살기가 터져 나왔다.
     
   “내가, 그렇게 두지 않을 거야.”
     
   [겨우 가짜 인형 하나 잡다가 제 손 다 불태워 먹은 네가?]
     
   그러나, 그렇게 전능 신의 검으로 길러진 소녀조차 미아의 쓴소리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 이번엔 오랜만의 싸움이라 조금 흥분해서 그런 거니까.”
     
   [두 번 흥분하면 내 몸도 병신되겠네?]
     
   “아, 알았어. 조심할게….”
     
   히잉- 시무룩하게 툭 떨어지는 소녀의 고개.
     
     
   당장은 이걸로 충분하다.
     
   앞으로 세뇌를 풀 방법을 찾을 때까진 말이다.
     
   [강사가 찾는 것 같네. 어서 가 봐.]
     
   “응.”
     
   그렇게 소녀가 벌떡 일어나 후다닥 떠나간 뒤.
     
     
   지직- 치지직-
     
     
   시간이 멈추며 세상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 현실 같던 세상이 자그마한 구슬이 되어 누군가의 손아귀로 되돌아갔을 때.
     
   “길드장님. 끝나셨습니까?”
   “그래. 바쁜 시간 내줘서 고맙다.”
     
   그 너머, 시험 과정을 빠짐없이 꼼꼼히 지켜보던 길드장이 슬그머니 담배를 들어 올렸다.
     
   “길드장님? 금연하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맞은편의 사내가 기겁함에도 치익- 끝내 담배 연기가 피어올랐다.
     
   담배….
     
   그래. 백해무익하고 아이들 앞에선 필 수도 없는 거라 끊는 게 좋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이 기억을 본 뒤로는 도무지 담배를 참을 수 없었다.
     
   “…미안하지만, 이 기록은 완전히 파쇄했으면 좋겠군.”
     
     
   이건 남들이 봐서는 안 되는 기억이다.
     
   소녀가 무언가를 ‘창조’해 내는 엄청난 능력이 드러날까 봐?
     
   소녀가 정신병에 걸린 듯, 여러 개의 자아를 가진 것처럼 행동해서?
     
   둘 다 남들에게 밝힐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교단… 교단이라….’
     
   교단의 등장은 그 자체만으로도 문제였다.
     
   과거엔 극단주의 이슬람 테러 단체가 문제였다면.
     
   게이트 사태가 터진 작금에는 ‘전능 신’이라는 걸 따르는 사이비들이 문제가 되었으니.
     
   한국에서야 대대적인 소탕 작전을 통해 완전히 밀어냈지만, 아직 전 세계 곳곳에는 그들의 힘이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바티칸의 붕괴, 메카 대폭발, 사르나트 폭격….
     
   그런데 그런 놈들이 국내에 남아 있었다고?
     
     
   가능성은 두 개다.
     
   하나는 소탕 작전에서 살아남은 놈들이 바퀴벌레처럼 꾸역꾸역 살아남았다는 가능성.
     
   이쪽이라면 차라리 다행이다.
     
   아무리 잘 숨어있다더라도 결국 얼마 없는 것들을 찾아서 죽이면 되는 것 아닌가.
     
     
   문제는 두 번째 가능성이었다.
     
   ‘소탕 작전으로도 건들지 못한 진짜 배후가 남아 있을 가능성.’
     
   후자의 경우라면 이미 한국의 재력가, 권력가들조차 교단의 일원일 수도 있었다.
     
   소탕을 주도한 대통령과 3대 길드장들을 가짜 교단으로 유인했다는 뜻이니.
     
   정말 최악에는 다른 길드장들의, 대통령의 배신일지도 몰랐다.
     
     
   “남은 건 꼬마를 직접 만나봐야 알겠군.”
     
   길드장이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툭, 툭 양복을 털어 냄새를 흩어내며.
     
   “은평구청장을 더 확실히 감시하도록. 필요하다면 직접 손을 써도 좋다.”
     
   혹시나 소녀의 곁을 맴돌던 구청장이 교단의 일원은 아닐까, 미리 손을 써 두었다.
     
   그리고.
     
   “아, 열 살 정도 되는 여자아이가 좋아할 만한 선물도 준비해 두도록.”
     
   빈손으로 갈 수는 없었기에 두툼한 봉투를 준비했다.
     
     
   그로서는 심각한 일에 대처하는 것이었지만.
     
   “길드장님이 애가 생기셨나…?”
     
   비서들이 듣기엔 그냥 놀러 가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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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낱 가상의 시험을 치르는 것치고 소녀의 행동은 과했다.

부모의 원수라도 갚겠다는 듯이 제 안위는 등한시한 채 달려드는 꼴에 강조야 강사조차 압도된 채 지켜볼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심지어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미아와의 약속조차 잊고 제 몸을 불사르기 시작하니.

…뭐야? 갑자기 왜 이런 통증이 느껴지는 거지?

평온한 사찰 생활로 잠들어 있던 미아의 정신이 깨어난다.

동시에 용광로 속으로 손을 집어넣은 것만 같은 엄청난 작열감과 통증을 느꼈다.

통증에 익숙한 미아조차 순간 뇌리가 새하얘지는, 신음이 절로 나오는 끔찍한 수준.

[야! 정신 차려!]

곧장 상황을 파악한 미야는 군말 없이 소녀의 몸을 억지로 차지했다.

‘으윽… 진짜! 이 멍청한 새끼가!’

이미 소녀와 동화된 몸을 조종하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니다.

아무리 대단한 미아라고 해도 의식이 흐트러질 정도로 집중해야만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 소녀의 심층 의식이 굳건하게 남아 있다는 점이었다.

‘악마, 악마는 불타 죽어야 해.’

‘미아의 몸을 다치게 해선 안 되는데….’

‘하지만, 악마를 죽여야 해.’

미아는 바로 그 점을 파고들었다.

소녀의 취약점을 이용해 억지로 ‘소원’의 힘을 흐트러트리고.

“꺼져!”

상황을 이렇게 만든 목각 인형을 주먹 한 방에 박살 내 버린다.

파스스- 완전히 가루가 되어 흩날리는 위력에 지켜보던 모두가 입을 쩍 벌렸다.

결과는?

[5단계 100점!]

만점.

1단계부터 5단계까지의 퍼펙트 클리어였다.

현역 각성자들과 비교하면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라 해도, 그 말은 소녀의 능력이 현역 각성자와 비슷한 수준이란 것.

“…수, 수고했어요. 몸에 이상은 없겠지만, 뒤로 가서 푹 쉬고 있어요.”

어, 이걸 어떻게 보고해야 하지?

예상치도 못했던 점수에 강사의 고민이 깊어졌다.

본 걸 그대로 전한다 한들 길드장님이 믿어주시긴 할까?

소녀가 RPG와 재블린이라는 현대 무기를 소환해 인형을 슥삭내고, 가장 어려운 다섯 번째는 육체 각성자들처럼 주먹으로 끝장내버렸다는 말을?

강사부터 학생들까지.

모두가 술에 취하기라도 한 듯 정신을 못 차리고 멍하니 있는 상황.

[…너 이번엔 진짜 각오해.]

미아는 시선을 피해 슬그머니 한적한 구석으로 향했다.

“선생님! 저, 저도 5단계 시험 볼래요!”

그녀가 사라진 뒤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딴 덴 관심이 없었다.

건물의 뒤편.

미아는 벽에 등을 기대앉으며 무릎을 모아 앉았다.

무릎에 이마를 기대자 사라락- 흘러내린 푸른 머릿결이 커튼처럼 흘러 내린다.

여태 몇 번이나 거울로 봐 오며 놀랐던 거지만….

‘동화가 제대로 됐나 보네. 이제 누가 봐도 내 몸이 아니야.’

소녀의 소원이 제대로 먹힌 듯, 이 몸에선 더 이상 미아의 잔재를 찾아볼 수 없었다.

겉모습만 보면 마치 과거 소년의 쌍둥이 여동생이 아닐지 싶은 정도였다.

그러나 미아는 굳이 그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소녀가… 이 몸을 미아의 것으로 알고 있어야 아껴주리라는 걸 알고 있기에.

미아는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우리가 교단에서 처음 만났던 날 기억나?”

혼잣말임과 동시에 소녀를 향한 속삭임이었다.

“곱상하게 생겨서 머리도 길고, 하는 짓도 나보다 더 여자 같아서 난 처음에 네가 여자애인 줄 알았거든?”

사실, 막 의식이 깨어났을 때는 소녀에게 쓴소리할 마음 만반이었다.

하지만… 미아는 이내 마음을 추슬렀다.

“그런데 속세의 더러움을 씻어준다고, 다들 홀딱 벗겨놓고 얼음물로 씻겨줄 때. 난 그제야 네가 남자인 걸 알았어.”

조금 전의 행동이 소녀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도움을 받아 제대로 세뇌가 끝나기 전에 도망칠 수 있었던 미아와 달리, 소녀는 수년이 흐르는 동안에도 그 쓰레기들에게 붙잡혀 있지 않았던가.

미아는 가만히 눈을 감고 과거의 한순간을 회상했다.

소녀와 미아의 첫 만남은 교단의 교열 본부에서였다.

자의든 타의든 갓 잡혀 온 싱싱한 교인들을 위한 곳이자.

죽을 때까지 한시도 잊을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곳.

첫 ‘교열’은 소년 소녀들의 저항심을 꺾기 위한 길들이기였다.

“밥을 먹고 싶다면 자존심을 버려라. 너흰 모두 죄인이다.”

목줄에 메인 채 바닥을 기며, 개밥그릇에 든 음식을 퍼먹어야 했다.

애당초 그게 음식이긴 했을까?

누군가 토해 놓은 것처럼 걸쭉한 갈색 덩어리를 보고는 당연하게도 미아는 그 말도 안 되는 요구를 거절했다.

“싫어! 내가 왜?!”

아직 어릴 적이었음에도 그들의 요구를 들어준 순간 더한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탓이었다.

하지만….

“그래? 그럼, 어디 한 번 끝까지 버텨봐라. 네 안의 악마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나 보자.”

그런 반항이야말로 저들이 기다리던 것이었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시간이 흘러도 미아는 밥알 하나, 물 한 모금조차 먹을 수 없었다.

그저 그렇게 방치됐다.

저 스스로 의지를 꺾고 포기할 수밖에 없도록 말이다.

그때 나타난 게 바로 소녀였다.

“…배 안 고파?”

자존심이라고는 조금도 없는지, 사제들이 보는 앞에서 발발거리며 잘만 기어다니던 꼬마.

녀석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슬그머니 다가와 뭔가를 슬쩍 건네왔다.

“뭐야.”

“영양제….”

“어쩌라고.”

“먹을래…?”

그때는 그가 어디서 뭘 훔쳐 왔다거나 사제들에게 받아 온 건 줄로만 알았다.

설마하니 계속 굶는 미아가 불쌍하다고 제 피를 소모해서 그런 약을 만들어 왔을 줄은….

“하…. 하기야 넌 항상 그렇게 멍청했지.”

미아가 애써 고개를 흔들어 기억을 털어냈다.

좋을 거 하나 없는 기억을 괜히 되살려내봤자 기억만 더러워질 뿐이다.

애당초 소녀가 이렇게 된 건, 미아가 탈출한 뒤에 이뤄진 세뇌 과정에서였다.

그간 여러 교인을 구출해 내며 들은 바에 따르면 정말 같은 인간이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을 정도로 끔찍한 짓거리들이 일어난 모양이었으니.

“씨발. 몸을 옮기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너무 안일했다.

놈들의 세뇌가 정말로 영혼에까지 새겨진 거라면 해결책을 찾아야만 했다.

미아가 치유의 힘을 모아 엉망이 된 손과 손톱을 빠르게 치료해 나갔다.

소녀의 세뇌가 남아 있다는 건, 어쩌면 놈들 역시 소녀의 생존을 눈치챌 수 있다는 뜻.

교단의 힘을 생각해 보면 벌써 소녀를 찾아 나섰을지도 몰랐다.

“멍청아, 잘 들어.”

손의 치료가 끝나 통증이 어느 정도 가라앉은 뒤.

미아는 육체의 통제권을 다시금 소녀에게 되돌려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너 또 끌려가고 싶지 않으면 앞으로 강의 잘 듣고, 네 능력을 활용할 방법을 찾아.]

아직 몽롱한 정신.

그러나, 소녀는 반사적으로 미아의 이야기에 대답한다.

“왜에…?”

축 늘어지는 목소리에조차 미아는 단호했다.

[이거 내 몸인 건 알고 있지?]

“으응….”

[내 몸으로 악마에게 붙잡히면 어떻게 될 것 같아?]

미아는 일부러 ‘악마’가 교단이란 사실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당장 그렇게 이야기해 봤자 이해할 리 없고, 받아들일 리도 없었으니.

[색욕. 네가 교육받았던 걸 생각해. 이 몸으로 어떤 꼴을 당하게 될지 잘 알 거야.]

“……!!”

미아의 적나라한 이야기에 소녀가 그제야 퍼뜩 고개를 들어 올린다.

교단에서 교육받았던 7대 죄악.

그 끔찍한 참상이 미아의 몸에 일어날 걸 생각하자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올랐다.

목각 인형을 상대하던 때처럼 좁혀진 동공으로부터 형형한 살기가 터져 나왔다.

“내가, 그렇게 두지 않을 거야.”

[겨우 가짜 인형 하나 잡다가 제 손 다 불태워 먹은 네가?]

그러나, 그렇게 전능 신의 검으로 길러진 소녀조차 미아의 쓴소리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 이번엔 오랜만의 싸움이라 조금 흥분해서 그런 거니까.”

[두 번 흥분하면 내 몸도 병신되겠네?]

“아, 알았어. 조심할게….”

히잉- 시무룩하게 툭 떨어지는 소녀의 고개.

당장은 이걸로 충분하다.

앞으로 세뇌를 풀 방법을 찾을 때까진 말이다.

[강사가 찾는 것 같네. 어서 가 봐.]

“응.”

그렇게 소녀가 벌떡 일어나 후다닥 떠나간 뒤.

지직- 치지직-

시간이 멈추며 세상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 현실 같던 세상이 자그마한 구슬이 되어 누군가의 손아귀로 되돌아갔을 때.

“길드장님. 끝나셨습니까?”

“그래. 바쁜 시간 내줘서 고맙다.”

그 너머, 시험 과정을 빠짐없이 꼼꼼히 지켜보던 길드장이 슬그머니 담배를 들어 올렸다.

“길드장님? 금연하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맞은편의 사내가 기겁함에도 치익- 끝내 담배 연기가 피어올랐다.

담배….

그래. 백해무익하고 아이들 앞에선 필 수도 없는 거라 끊는 게 좋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이 기억을 본 뒤로는 도무지 담배를 참을 수 없었다.

“…미안하지만, 이 기록은 완전히 파쇄했으면 좋겠군.”

이건 남들이 봐서는 안 되는 기억이다.

소녀가 무언가를 ‘창조’해 내는 엄청난 능력이 드러날까 봐?

소녀가 정신병에 걸린 듯, 여러 개의 자아를 가진 것처럼 행동해서?

둘 다 남들에게 밝힐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교단… 교단이라….’

교단의 등장은 그 자체만으로도 문제였다.

과거엔 극단주의 이슬람 테러 단체가 문제였다면.

게이트 사태가 터진 작금에는 ‘전능 신’이라는 걸 따르는 사이비들이 문제가 되었으니.

한국에서야 대대적인 소탕 작전을 통해 완전히 밀어냈지만, 아직 전 세계 곳곳에는 그들의 힘이 엄청난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다.

바티칸의 붕괴, 메카 대폭발, 사르나트 폭격….

그런데 그런 놈들이 국내에 남아 있었다고?

가능성은 두 개다.

하나는 소탕 작전에서 살아남은 놈들이 바퀴벌레처럼 꾸역꾸역 살아남았다는 가능성.

이쪽이라면 차라리 다행이다.

아무리 잘 숨어있다더라도 결국 얼마 없는 것들을 찾아서 죽이면 되는 것 아닌가.

문제는 두 번째 가능성이었다.

‘소탕 작전으로도 건들지 못한 진짜 배후가 남아 있을 가능성.’

후자의 경우라면 이미 한국의 재력가, 권력가들조차 교단의 일원일 수도 있었다.

소탕을 주도한 대통령과 3대 길드장들을 가짜 교단으로 유인했다는 뜻이니.

정말 최악에는 다른 길드장들의, 대통령의 배신일지도 몰랐다.

“남은 건 꼬마를 직접 만나봐야 알겠군.”

길드장이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툭, 툭 양복을 털어 냄새를 흩어내며.

“은평구청장을 더 확실히 감시하도록. 필요하다면 직접 손을 써도 좋다.”

혹시나 소녀의 곁을 맴돌던 구청장이 교단의 일원은 아닐까, 미리 손을 써 두었다.

그리고.

“아, 열 살 정도 되는 여자아이가 좋아할 만한 선물도 준비해 두도록.”

빈손으로 갈 수는 없었기에 두툼한 봉투를 준비했다.

그로서는 심각한 일에 대처하는 것이었지만.

“길드장님이 애가 생기셨나…?”

비서들이 듣기엔 그냥 놀러 가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Don’t Die, It’s Not Your Body

Don’t Die, It’s Not Your Body

죽지 마, 네 몸이 아니야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Don’t worry, you deserve to be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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