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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

   

    여인의 눈을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새끼 칼 들고 달려드는 거 아니야?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 건지 모르겠다. 무릎으로 얼굴을 찍어버리긴 했지만 그게 이렇게 반응할 정도인가?

   

    “저기요.”

    “…….”

    “내가 뭐 잘못한 거 있어요? 둘 다 같은 피해자였는데 왜 이러실까.”

    “잘못? 하, 잘못. 그걸 말이라고 해?”

   

    표독한 눈이 서준을 노려본다. 여인은 제 옷깃을 잡더니 그대로 아래로 끌어내렸다.

   

    드러나는 하얀 피부에 서준이 순간 멈칫했지만, 이내 그 위로 새겨져있는 푸르고 붉은 멍들에 눈썹을 치켜올렸다.

   

    딱 봐도 구타당한 흔적이다. 그냥 어지간히 쳐맞은 정도가 아니었다. 조금만 더 세게 맞았으면 그대로 죽지 않았을까 싶은 짙은 멍들이다.

   

    “네가 내 얼굴을 뭉개놔서…! 다리 힘줄은 그대로 잘려나가고, 싸구려 창기들이나 받을 법한 손님들을 줄줄이 받았어! 구멍은 헐고 얼굴과 몸은 작살이 났다고! 너만 아니었으면…! 내 얼굴만 멀쩡했어도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 텐데!”

   

    당연하다면 당연한 말이지만 뒷골목 기루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미모다.

   

    얼굴이 예쁘면 같은 기녀여도 대우가 달라진다.

   

    이 기루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소문이 자자한 매월만 봐도 그렇다. 그녀는 다리 힘줄이 끊기지 않았다. 대신 감시가 조금 심할 뿐이다.

   

    미색이 뛰어난 상급 상품을 훼손하는 것보다 아랫것들이 좀 고생하는 게 훨씬 나으니까.

   

    그렇다고 그 감시가 나쁜 것만도 아니다. 감시가 엄중하다는 건 지켜보는 사람이 많다는 거고, 그건 곧 호위와도 같다.

   

    애초에 미색이 뛰어난 기녀들은 손님을 어느 정도 가려받을 뿐더러, 행여 손님이 난폭한 짓을 하면 즉각 호위들이 제지하기까지 한다.

   

    여인의 상황과는 정반대였다. 다리 힘줄이 끊겨 제대로 걷기도 힘든 건 물론이요, 난폭한 손님을 제지하긴커녕 추가 요금을 받고 오히려 부추긴다.

   

    그런 주제에 정작 여인에게 떨어지는 돈은 얼마 없었다. 입에 풀칠이나 하면 다행이지, 이대로라면 얼마 못 가 죽을 게 뻔했다.

   

    “그래놓고 뭐? 잘못한 게 있냐고?”

   

    찢어죽일 듯 노려보는 여인의 시선에 서준이 머리를 긁적였다.

   

    “어…, 그렇게 세게는 안 쳤는데.”

   

    솔직히 뭉개졌다는 건 과장이고, 얼굴이 좀 붓긴 했을 거다. 

   

    “애초에 그쪽 얼굴이 원래도 딱히 예쁘진 않았는데요? 예뻤으면 걔네도 얼굴 나을 때까지 기다렸지.”

    “…뭐?”

   

    순간 정적이 흘렀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얘기를 듣고 있던 매월도 눈을 깜빡이며 입을 틀어막을 정도였다.

   

    “아니, 그리고 뭐라 할 거면 흑호문 친구들한테 뭐라 하지 왜 나한테 그래요? 난 배때지가 갈라졌구만.”

    “너, 너 지금 말 다 했어!?”

    “넹.”

   

    고개를 끄덕이자 여인의 얼굴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안 그래도 울그락불그락 하던 얼굴인데, 이제는 뭐 진짜 터지기 일보직전이다.

    

    여인이 눈을 부릅 뜨며 서준에게 성큼 다가오던 찰나, 그 앞을 춘봉이 막아섰다.

   

    “그만. 분노할 대상을 착각치 말라.”

    “하, 하하…. 이건 또 뭐야?”

   

    헛웃음을 짓는 여인의 눈이 번들거린다. 진짜 곧 칼부림이라도 날 것 같은 눈이다.

   

    하지만 춘봉이 겁을 먹을 리도 없었다. 그녀가 검을 뽑아들어 여인의 목에 겨눴다. 그냥 겨눈 것도 아니고 목이 살짝 베여 핏방울이 맺힐 정도다.

   

    “주제를 알도록. 이 사람은 네까짓 게 함부로 대할 사람이 아니야. 책임을 떠넘기는 것도 정도가 있어.”

    “이게….”

   

    주륵-

   

    조금 더 깊게 파고든 검에 피가 흐른다. 춘봉이의 눈이 날카롭다. 생각보다 격한 반응에 서준이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야, 야. 괜찮아. 어차피 신경 안 써.”

   

    애초에 저 여인을 찾아온 건 딱히 미안해서 그런 게 아니라 순전히 어떻게 됐나 궁금해서다.

   

    나를 원망하건 말건 알 게 뭔가. 칼 들고 덤비면 그때 조지면 될 뿐이다.

   

    “우리 춘봉이 착하지?”

    “…이 새끼는 편을 들어줘도 지랄이야.”

   

    흥, 콧김을 내쉰 춘봉이가 검을 거뒀다. 서준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뒤편에 가만히 서있던 매월을 바라보았다.

   

    “거 나중에 또 봅시다.”

    “어머? 후후, 그때는 극진히 모시겠나이다.”

   

    교태로운 몸짓이 영 부담스럽다. 서준은 슬쩍 춘봉이를 앞세우며 매월과 안전거리를 확보했다.

   

    “예, 뭐.”

   

    떠나는 그들의 등을 멍투성이의 여인이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

   

   

    집으로 돌아가는 길. 살짝 뾰로통해진 춘봉이의 화를 풀어주기 위해 강제로 목마를 태웠다.

   

    “좀! 좀! 하지 좀 말라고!”

   

    말은 저래도 좋아하는 거 다 안다. 

   

    기어코 목마를 태운 채 집까지 돌아온 서준이 춘봉을 방에 내려주었다.

   

    “아이고 우리 춘봉이, 꽤 묵직해졌네.”

    “…뒤진다.”

    “앗, 죄송.”

   

    손을 내저으며 방바닥에 퍼질러 앉은 서준이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춘봉 역시 지지 않고 서준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느닷없이 시작된 눈싸움. 승자는 서준이었다.

   

    “으윽…. 비겁한 새끼. 눈싸움 하는 데 내공을 써?”

    “꼬우면 니도 쓰든가.”

   

    서준이 낄낄 웃으며 손 위로 황금빛 내공을 덧씌웠다. 황운신공 특유의 내공이다. 

   

    아직 무공을 몇 개 보지도 못한 서준이지만, 황운신공이 꽤 특색이 있는 무공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아까랑 이어지는 얘긴데 말이야. 남의 무공 티나게 베껴서 쓰면 좆되는 건 알겠어.”

    “근데.”

    “어. 근데 이건 써도 되냐? 황운신공.”

   

    얼핏 듣기에는 헛소리였지만, 찰떡 같이 알아들은 춘봉이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안 되지. 밖에서는.”

    “밖? 뒷골목 밖 말하는 거야?”

    “어. 솔직히 이 근처는 상관 없어. 신검금가 자체가 외부 활동이 별로 없었어서 봐봤자 아는 사람도 거의 없거든.”

   

    하지만 만약 이곳을 벗어나 주요 도시에 가게 된다면 얘기가 다르다.

   

    “우리 가문 사람들을 몇 번 본 사람들은 딱 보면 알 거야.”

    “그렇단 말이지….”

   

    서준이 고민에 잠겼다. 

    

    황운신공을 다른 사람이 알아보면 곤란해지는 이유는 별게 아니다. 신검금가를 멸한 세력이 어디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이 신검금가의 생존자를 발견했을 때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이상, 가능한 한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생각에 잠긴 서준을 유심히 바라보던 춘봉이 입을 열었다.

   

    “전에 신검금가를 멸한 놈들이 정파 놈들일 수도 있다 하긴 했는데, 정확히 말하면 그건 아니야.”

    “엉? 뭔 소리야?”

    “사기邪氣가 느껴졌거든. 아마 사파 쪽 놈들이겠지.”

   

    춘봉이와 눈이 마주쳤다. 말은 사파 놈들이 범인이라 하고 있는데, 그녀의 눈에는 여전히 의심의 기색이 짙었다.

   

    이제 춘봉이의 반응으로 어느 정도 생각을 유추할 수 있게 된 만큼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이 더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어쩐지 기운이 없어 보이는 그녀를 덥썩 집어들어 다리 사이에 등을 보고 앉혔다. 

   

    진짜 기운이 없긴 없는지 반항도 안 한다.

   

    그게 안쓰러워서 가만히 말랑말랑한 볼을 문질러주고 있으니 그녀가 말을 이었다.

   

    “우믐…, 근데 정파 놈들도 수상한 건 마찬가지긴 해. 그 사파 놈들…, 신검금가의 사정을 너무 잘 알고 있었어. 무엇보다 분명 지원을 오고도 남을 시간이었는데 누구 하나 코빼기도 비추질 않았고.”

    “간자가 있다는 거야?”

    “그렇겠지. 그게 신검금가 내부인지, 무림맹 내부인지는 몰라도. 아니면 그냥 우리 가문이 아니꼬웠을 수도 있고.”

   

    삭힌 분노와 짙은 체념. 품에 쏙 들어오는 꼬맹이가 품기에는 너무 가시가 많은 감정들이다.

   

    그녀의 등에 기대듯 몸을 앞으로 기울인 채 자그마한 정수리에 턱을 얹었다. 무겁다며 찡찡대지만 싫어하는 기색은 없다.

   

    어쩐지 애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은근히 잘 따른다 싶더라니. 가시를 세울 힘도 없이 지쳐있을 때 운명처럼 서로를 마주쳤나 보다.

   

    “난 그래서 그 새끼들도 싫어. 무림맹이야 간자가 연락을 지연시키든 했을지도 모르지만 주변에 있던 문파들은 몰랐을 리가 없잖아. 평소에는 간이고 쓸개고 다 내줄 것처럼 굴더니 막상 그럴 때는 모른 척이나 해대고. 씨발년들이. 군자 행세는 잘만 해대면서 실상은 사익만 좇는 소인배 새끼들이 따로 없어.”

    “그거 씹새끼들이네.”

    “그렇지? 개새끼들. 싹 다 그냥 조져버려야 되는데.”

    “그거 좋지. 오빠가 다 조져줄까?”

    “됐어. 내 손으로 목을 따버릴 거야.”

   

    픽 웃은 춘봉이가 몸을 뒤로 기대온다. 하여간 하는 짓이 귀엽다니까. 

   

    정수리에 얹은 턱을 열었다 닫으며 괴롭히자 앙탈을 부리는 게 꼭 치와와 같다. 생긴 건 꼭 햄스터처럼 생긴 게. 

   

    “뭐 아무튼…, 그러면 내일은 청류문이나 한 번 들러볼까?”

    “청류문? 청하문 아니었어?”

    “아, 맞네. 청하문.”

   

    청류 뭐시기는 검법 이름이었구나. 

   

    “청하문은 왜? 가면 무조건 싸움날 텐데.”

    “생각이 좀 있어서.”

   

    아, 생각이라 하니 잊고 있던 게 하나 떠올랐다. 갑자기 이것저것 일이 생겨서 까맣게 잊고 있었네.

   

    “아니다. 청하문 전에 흑호문 거기부터 들르자.”

    “거긴 또 왜.”

    “이사해야지.”

    “거기로? 시체랑은 어쩌게. 그리고 거기 너무 넓다니까?”

    “어허, 오빠가 다 생각이 있어요.”

   

    시체는 뭐 아무 흑도 문파 하나 쳐들어가서 인력 수급을 하면 되고, 다른 건 마침 해보고 싶은 것도 있었다.

   

    “우리 춘봉이, 그러면 이제 슬슬 잘까?”

    “…그 말투는 좀 어떻게 안 돼? 징그러운데.”

    “허허, 우리 춘봉이 좀 안고 자야겠다.”

    “더워. 싫어.”

   

    매정한 것.

   

   

    *

   

   

    아침에 일어나니 춘봉이가 품에 안겨있었다.

   

    다람쥐처럼 몸을 말고 쏙 안겨있는 게 영락없는 꼬맹이다. 일어나려 하니 잠결에 투정을 부리길래 다시 꼭 끌어안고 잠들기 전 하던 생각을 이어갔다.

   

    ‘황운신공을 대체할 무공.’

   

    춘봉이가 여기서는 상관없다 하긴 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른다. 준비해둬서 나쁠 것도 없고.

   

    그리고 황운신공을 쓰지 않는다 해서 그걸 익히며 얻은 깨달음들이 날아가는 것도 아니라 아주 큰 손해도 아니다.

    

    ‘일단 토대 자체는 황운신공으로 두고….’

   

    그 위로 청운신공을 섞는다. 애초에 경지가 올라가면 태극을 이루며 음양이 조화를 이루는 무공인 만큼, 황운신공과 청운신공은 한 쌍이라 할 수 있는 무공이다. 섞는 게 어렵진 않았다.

   

    ‘청류검의 심상에…, 검법 스타일도 좀 가져올까.’

   

    청류검은 의외로 강검强劍이다. 흐르는 강의 부드러움보다는 거세게 흐르는 폭류를 닮았다.

   

    거세게 흐르는 강과, 밝고 어둡기를 반복하는 하늘. 

   

    아직 듬성듬성 빠진 게 많지만 어느 정도 감은 잡았다.

   

    ‘어차피 나중에 다른 무공들도 보고 익히면 되니까. 괜찮아 보이는 거 다 섞다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본래라면 미친짓이지만, 그는 자신이 있었다.

   

    그게 어떤 무공이라 해도 기氣와 관련된 부분만큼은 뜻대로 이루어낼 수 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언젠가 완성될 나만의 무공. 아직 너무 이른 감이 있지만 그래도 이름을 지어보자면…,

   

    ‘혼원신공混元神功.’

   

    그 이름이 좋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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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무공 뭐 별거 없더라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fell into a phony martial world. But they say martial arts are so hard? Hmm… is that all there is t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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