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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

“환영하느니라. 마의 성지, 천마신교에 온 것을.”

분명 내가 앞장서서 걷고 있었는데.

목전에 다다르자, 아스트레아는 대뜸 달려 나가더니 문 앞에서 돌아서선. 그대로 자기 집인 양 맞이하는 투로 나왔다.

“어···들어가자.”

팔까지 활짝 벌리며 진심으로 환영해 오는 게. 뭐라 반응하기에도 어려워 도망치듯 입구로 걸어갔다.

타이밍 맞춰 번개라도 쳤으면 그나마 괜찮았겠다.

끼이익-

내부는 예상했던 거미줄로 판을 친 몰골과는 딴판이었다.

길게 이어진 테이블에, 가지런히 놓인 의자들. 거기에 랭커 길드답게 2층 구조와 여럿 배치된 간단한 생활 공간까지.

광이 나는 정도는 아니어도 전체적으로 말끔한 것이, 아스트레아가 최근에도 들르며 관리를 한 것 같았다.

[‘천마신교’ 길드에 가입하시겠습니까?]

감탄하는 도중 떠오른 상태창에 재빨리 일행을 살폈다.

아스트레아면 모를까, 마리아도 딱히 허공을 바라보는 기색은 아니다. 역시 이건 나한테만 뜬 모양.

[‘천마신교’ 길드에 가입하였습니다.]

‘끈질기게 권유할 때도 거절했었는데···어쩌다 보니 결국 하게 됐네.’

여러모로 이편이 수월할 것 같아 일단은 길드에 가입했다.

“어떠하느냐. 아해도 직접 보니 천마신교에 관심이 생기지 않더냐?”

“전혀. 마리아는 오빠 아니었으면 이런 데 절대로 안 왔어.”

“그럴 줄 알았느니라. 이 몸이 친히 천마신교의 교리와 위대함을 일깨워주겠노라!”

“···!! 오, 오빠아···!”

마리아가 아스트레아를 전담 마크하는 사이. 아무 의자에 앉아 길드 정보창을 열어봤다.

방금 막 가입한 나를 제외하고는 태근이 놈이 유일한 길드원.

그리 극성이던 아스트레아도 없는 명단에 몇 번이고 사절한 내 닉네임이 박힌 건 다소 아이러니했다.

저 98년 넘는 마지막 접속 기간이 어쩌면 다들 게임을 접은 날일까. 방대한 시간의 크기는 내가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졌는지를 실감케 해주었다.

‘원래 세계로 돌아가도···내가 살던 그 세계가 맞을까?’

고개를 저으며 창을 닫고.

사무라이의 팔 네 개로 귀를 막은 마리아와, 이에 아랑곳 않고 떠드는 아스트레아에게로 향했다.

“최초의 천마가 발을 내디디니 대지가 뒤흔들리고, 주먹을 뻗으니 하늘이 열린 것이니라!”

나한테는 단지 귀찮은 녀석 1이었던 게 저리 신격화되는 걸 보고 있자니 영 그렇다.

박수를 짝 하고 쳐 눈길을 끌었다. 마리아가 구세주를 발견한 무표정으로 내게 와 안겼다.

“오빠, 저거 말이 너무 많아···.”

“···고생했어.”

제아무리 마리아라지만 호칭이 ‘저거’라니. 그 짧은 새에 애한테 대체 뭔 짓을 한 건지.

마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으로 작게나마 공을 치하했다. 그걸론 부족하다고 앵기는 거에선 미안함마저 올라왔다.

“아스트레아. 네가 봤다는 최초의 천마 관련 내용들은 어딨어?”

“아아. 그거라면 따라오거라.”

그런 건 모르겠고. 원하던 주제가 나오자 아스트레아는 신이 나서 앞장섰다.

검은 무복의 배경 위로도 독보적인 존재감을 뽐내는 머릿결을 쫓아, 계단을 올랐다.

“여어니라. 바로 저기에, 천마신교의 모든 역사가 담겼느니라.”

아스트레아가 안내한 장소는 2층의 간부회의실. 아래에서 본 테이블보단 훨씬 작은 원형 탁자가 놓인 방이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킨 방향엔 한 벽면을 가득 차지한 스크린이. 사람이 온 것을 감지해 막 불이 켜지고 있었다.

“이를 조작하면 시간 순서대로 천마신교의 위업을, 역사를 확인 가능하니라.”

‘길드 게시판이네.’

그러면 그렇지. 이럴 줄 알고 애초에 거창한 무언가는 기대하지도 않았다.

라고는 해도 김이 새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이. 터벅터벅 다가가 게시판을 조작했다.

[길드레이드 관련 공지사항]

‘영입 제안을 시작한 계기도 첫 레이드가 실패해서였었지. 끝내 자기들끼리 해냈다면서 어찌나 으스대던지.’

[아이 영입 시즌 8번째 실패]

‘못 이기는 척 들어와 볼걸 그랬나···.’

[길드전 우승 기념 정모]

‘지금 생각해 봐도 어이가 없네. 나는 대체 여기 왜 부르려고 했던 거야?’

[길드장 PVP 랭킹 1위 달성!]

‘새끼, 나 없다고 아주 날라다녔구만.’

정신을 차렸을 땐 심히 몰입하는 중이었다.

직접 함께했던 건 아니지만. 풍문으로 소식을 듣고, 한 발짝 너머에서나마 지켜보지 않았던가.

‘천마 한번 해보겠다고, 마계에 몸을 던져서 암흑진화했을 적에는 뭐 하는 새낀가 싶었는데.’

컨셉에 잡아먹힌 플레이를 한다는 건 그만큼 게임을 재밌게, 열심히 즐겼다는 뜻.

그런 그들의 여정은. 한 소녀의 운명을 좌우하기에 충분했다고.

내가 정녕 게임을 제대로 즐긴 것이 맞는가, 그런 자문마저 하게 만들었다.

[길드 해체식]

“···.”

아스트레아는 팔짱은 낀 채, 그저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마리아는 멀뚱히 오빠의 손을 가지고 놀았다.

“아스트레아. 이걸 처음 접한 게 언제야?”

“흠, 딱 아해만 할 때였지. 정처 없이 거리를 떠돌다 우연히 여기를 발견했느니라.”

“마리아 머리에 손대지 마.”

뭐라 쉽사리 형언 못 할 감정들이 뭉쳐, 스크린 옆을 손가락으로 수차례 툭툭 건드렸다.

“두 사람 다, 나를 잠시 따라와 줄래?”

그러다 결심이 서. 소녀들을 데리고 길드 창고로 직행했다.

“뭐라도 챙길 생각이더냐?”

“뭐가 남아있다면 말이지.”

길드가 사라지는 게 아쉬워, 남들은 다 탈퇴해도 홀로 자리를 지킨 녀석이다.

어차피 접을 거라면. 템을 빼두지는 않았어도 추억을 기념할 물건을 남겨두지 않았을까. 그런 바람이었다.

“무리이니라. 이 몸도 진즉에 다 확인을 해봤으나, 전부 꿈쩍도 안 했···”

덜컥-

“을···터인데.”

단언하기가 무섭게 열린 상자를. 나는 멍하니, 아스트레아는 멋쩍게 내려다보았다.

‘몸만 와서 네 손으로 열기만 하면 된다고, 귀가 닳도록 알려준 비밀번호를 끝까지 그대로 걸어놨을 줄이야···.’

굳이 자동 가입 수락으로 바꿔놓은 것도 그렇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나를 내심 기다렸던 걸까.

말하고 나니 심한 자의식 과잉 같지만, 어디까지나 상상은 자유. 어차피 반박할 사람도 없었다.

“자, 이거 받아.”

길드 보관함에서 배지 하나를 꺼내 아스트레아에게 건네었다.

“이, 이건···?”

“천마신교의 일원임을 나타내는 증표야.”

용이 새겨진 진한 군청색의 휘장. 이를 받아 든 소녀 천마는 눈을 크게 뜨고선 잠시 말을 잃었다.

“오빠. 마리아는? 마리아는?”

“어, 마리아는···자.”

우리 꼬맹이에겐 천마신교의 마스코트인 용가리 인형을 안겨줬다.

“오빠의···선물···.”

엄밀히 말하면 내가 줬다고 하기 애매하긴 한데. 애가 좋아하면 그걸로 됐나.

외에도 보관함 안에는 사용은 못 하지만 값 꽤나 나갈 물건들로 즐비했다.

“건물을 철거하기라도 했으면 다 버려졌을 텐데, 어떻게 용케도 여태 남았네.”

“안 그래도 그게 큰 골칫거리라고들 하는 모양이니라.”

“골칫거리?”

“어찌 된 영문인지 건물은커녕 내부 구조조차 요지부동이어서. 주인도 없이 자리만 차지하는 이런 건물이 널린 것이니라.”

‘시스템의 가호가 수십 년 넘게 계속되어 온 거구나.’

그래서 길드원이 아닌 아스트레아는 보관함을 비밀번호는 고사하고 열어볼 시도조차 못 한 거겠지.

“그렇다면 말야. 갑자기 그 문제를 해결할 수만 있다면, 큰돈을 내서라도 해결하려고 들까?”

“뭐어, 얻을 이득을 생각하면 그렇지 않겠더냐? 천문학적인 금액만 아니라면야.”

길드장이 1달 넘게 접속을 안 하면 그 자리를 빼앗는 기능이 생긴다.

설마 직위 하나 지키자고 100년간 대를 이어서 접속한 또라이는 없을 테니. 시간과 노력만 들이면 이론상 모든 길드 건물을 평범하게 되돌릴 수 있을 터였다.

“그리고 이런 데가 한둘이 아니라 이 말이지?”

“그렇다고 들었느니라.”

“오빠 음흉하게 웃는다.”

“마리아. 사람은 누구나 원대한 계획 앞에선 음흉해지는 법이란다.”

“흐응.”

“아해야. 아무리 봐도 서로 생각하는 음흉함의 방향이 다른 거 같으니라.”

길을 나선 게 당장 오늘인데. 이번 생애에도 황실과는 긴밀히 엮일 운명인가 보다.

천마신교, 너희는 나한테 고마워해야 한다. 내 덕에 너희가 끝까지 살아남은 최후의 길드가 될 테니.

* * *

기사단장 유리는 경매장에서 벌인 돌발행동으로 인해 반성문, 이 아니라 시말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쓰면서, 왠지 모르게 자꾸 웃음이 나왔다.

본인에게 냅다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 사람이나, 남을 그렇게 골탕 먹여본 경험은 처음이어서.

“말투만 깍듯하셨지, 저를 불편하게 여기는 기색이 조금도 없어서 더 그랬던 걸까요.”

똑똑-

멀지 않은 과거 회상에 단편적인 웃음이 미소로 번지던 중.

흐름을 깨는 노크 소리에 유리는 현실로 돌아와 정면을 응시했다.

“단장님. 부단장입니다.”

“음. 으흠.”

유리는 목을 가다듬었다. 타이밍이 안 좋았단 티를 목소리로도 내면 안 된다.

안 그래도 데면데면했던 관계가, 이즈리 선배의 부단장 폭행 사건 이후 얼마나 더 서먹해졌던가.

“네. 들어오세요.”

“충성.”

딱딱하기 그지없는 인사를 받으니, 일전의 허수아비와 소녀가 벌써부터 얼마나 그리운지.

하다못해 몇 분 보지도 않았던 천마라는 여인과 더 다정한 얘기가 오갈 것만 같았다.

“손에 드신 그것들은?”

“단장님 앞으로 온 것들입니다.”

“저한테요?”

부단장이 가져온 것들은 편지와 웬 자루.

유리는 자루 안 금화 짤랑이는 소리에 설마 하고, 편지에 적힌 이름과 내용을 보고는 역시나 하였다.

[이걸로 제 지분이 80%입니다.]

“후후···다른 것도 아니고 그걸 마음을 두고 계셨군요.”

용무를 마친 부단장이 물러나고. 유리는 의자에 앉은 채 발을 앞뒤로 휘저으며, 마저 웃었다.

언젠가는 갚겠지, 라며. 골려줄 겸 반쯤 버리는 감각으로 빌려준 건데, 설마하니 이토록 빨리 갚을 줄이야.

“성녀님을 만나 뵐 추천장을 받았다고 하셨었죠.”

분명 이대로 조용히 끝나지는 않을 그들. 앞으로의 행보가, 어린 소녀 팬은 마냥 기대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우리 모두 빌린 돈은 빠르게 갚도록 해요. 저는 누군지 기억 안 나는 어느 채무자에게 여전히 500원의 빚을 무이자로 붙여두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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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ame a Tutorial Scarecrow

Became a Tutorial Scarecrow

튜토리얼 허수아비가 되었다
Status: Ongoing Author:
Due to lack of content, I died to a tutorial scarecrow. [Your character has died.] [Hidden Achievement Unlocked! ‘Lost to the Weakest Monster~♡︎’] And then, I possessed that 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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