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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

   EP.17

     

   띠링.

     

   [탑의 1층에 입장하였습니다.]

     

   드디어 도착한 탑의 1층.

   평범하게 문을 통과한다는 기분도 잠시, 알 수 없는 해방감에 눈을 뜨자 나는 완전히 새로운 공간에 도착해 있었다.

     

   “……무슨 중세 도시 같네.”

     

   햇빛이 쨍쨍하게 드는 도시의 광장.

   멀리 보이는 거대한 벽과 성을 바라보니 이곳이 현대가 아님을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중세스런 복장을 한 사람들이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 사람들 사이에 나와 함께 탑에 들어온 동료들이 없었다는 것.

     

   그렇게 내가 상황 파악을 끝내기도 전에 시스템의 알림 하나가 나의 눈앞에 떠올랐다.

     

   띠링.

     

   [새로운 임무가 도착했습니다.]

     

   —

   『1층 – 꿈같은 시간』

     

   주제 : 정보수집과 휴식

   난이도 : D+

     

   설명 : 아름다운 중세의 도시. 이곳은 성좌들이 만든 탑의 1층입니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십시오. 2층으로 향하는 길을 찾으십시오. 길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을 것입니다.

     

   임무 : 2층으로 향하는 길 발견

     

   제한 시간 : 7일

     

   보상 : ???

   실패 페널티 : 제한 시간 안에 방법을 찾지 못할 시, 능력치가 영구적으로 하락합니다.

   —

     

   “이거… 내용이 너무 부실한데?”

     

   새로운 정보에 반가운 것도 잠시, 임무의 내용을 읽어 내려갈수록 나의 미간이 조금씩 찌푸려졌다.

   처음 튜토리얼이 발생했을 때 받았던 임무들은 그 자체로 난이도가 높았어도 내용 자체는 아주 단순했다.

     

   제한 시간까지 생존해라.

   괴물을 사냥해라.

   탑의 영역에 들어서라.

     

   그런데 무작정 2층으로 향하는 길을 찾으라니… 아무리 봐도 막연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뭔가 도움을 받을 만한…… 응?’

     

   하지만 그때, 어디선가 말발굽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다그닥. 다그닥.

     

   멀리서부터 나를 향해 다가오는 한 무리의 병사들. 그리고 그들의 선두에 서서 나를 바라보는 기마병 하나.

   그리고 내 앞까지 다가온 기사는 말에서 내리지 않은 채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대가 이번에 탑에 들어온 플레이어가 맞는가?”

     

   그의 말에 나는 경계를 풀지 않은 채, 가만히 눈을 굴려 퇴로를 확인했다.

   하지만 나의 의도를 알아차린 듯 기사는 안심하라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걱정하지 말게 해치려는 게 아니니. 나는 그저 안내자일 뿐이야.”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설명을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탑의 1층은 튜토리얼을 완료한 도전자들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라네. 그러니 안심해도 괜찮아.”

     

   내가 허리에 걸친 검을 만지작거리며 대꾸하자 그는 정성스럽게 상황에 대한 설명을 이어 나갔다.

   병사를 대동한 이유는 가끔 탑에 들어온 외부인이 시민들을 공격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라는 그의 말.

     

   무장한 병사를 잔뜩 끌고 와서 경계를 풀라고 하니 안심할 수는 없었지만 그의 말은 충분히 납득이 되는 부분이었다.

     

   “나는 ‘폰 그레고리’라고 하네. 이곳의 치안을 담당하는 기사지. 조금 전 내가 안내자라 소개했던 것은 그대를 성으로 안내하라는 명을 받고 자네를 찾아왔기 때문이야.”

     

   “저기 있는 성 말씀입니까?”

     

   도시의 끝에 보이는 거대하고 화려한 건축물이 나의 눈에 들어왔다.

   처음 내가 임무를 받았을 때, 2층으로 가는 입구가 있을 것이라 가장 의심이 됐던 장소.

     

   “만약 거절한다면 어떻게 됩니까?”

     

   “그게 자네의 선택이라면 나는 한 번쯤은 말리겠네. 우리는 왕의 명령에 따라 명을 집행하는 신하들이니. 그분의 말을 따라야 하거든.”

     

   “딱히 선택지가 없겠군요.”

     

   나는 검에서 손을 떼며 그의 눈을 바라봤다.

   왕의 명령을 받은 기사… 내가 기사도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그를 따라가지 않는다고 말해서 그가 나를 순순히 놓아줄 것 같지는 않았다.

     

   뭐, 싸우다가 끌려가는 것보다야. 내 발로 따라가는 게 맞지.

     

   “잘 생각했네. 그간 고생을 했을 터이니 여독을 푼다고 생각하고 가서 쉬도록 하게.”

     

   자신을 폰이라 소개한 기사는 그렇게 말을 끝마친 이후, 다시 말에 올랐다.

   그렇게 나는 병사들의 안내를 받아 작은 마차에 탑승했고 마차는 포장된 도로를 따라 거대한 성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

     

   그렇게 마차에 내린 나는 자연스럽게 기사를 따라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그곳의 병사들은 폰이라는 기사를 보면 검을 들어 경례했고 폰은 나름 지위가 높았던지 가볍게 그들의 경례를 받았다.

     

   그렇게 도착한 성의 내부.

   폰의 안내에 따라 화려한 복도를 걷던 나는 자연스럽게 그곳에 먼저 도착한 생존자 한 명을 마주칠 수 있었다.

     

   “아저씨?”

     

   또랑또랑한 목소리와 외국인인가 싶을 정도의 화려한 금발.

   내가 성에 도착해 처음으로 만난 사람은 한가민이었다.

     

   “너 그 옷…”

   “아아, 이거요?”

     

   한가민은 스카이게임즈 빌딩에서 만났던 것과는 달리 상당히 중세스러운 궁중 예복을 차려입고 있었다.

     

   “예쁘죠? 여기 오니까 피 묻은 옷은 찝찝할 거라면서 이걸로 갈아입혀 주더라고요.”

     

   한가민이 몸을 한 바퀴 돌리며 사랄라한 드레스를 나에게 자랑한다.

   금빛으로 반짝이는 머리카락 때문인지 무슨 이야기에 나올 법한 귀족 영애를 보는 것 같아 좀 신기한 기분이 든다.

     

   “아, 원래 옷은 세탁해서 돌려준다고 했어요.”

     

   그녀의 말에 나는 어이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봤다.

   아무런 경계도 없이 병사들을 따라왔을 걸 생각하니 나름 현명한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철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한가민과 대화를 나눈 이후, 나는 한 가지 의문이 피어올랐고 폰을 향해 곧장 질문을 던졌다.

     

   “저는 옷 따로 안 줍니까?”

   “으응? 자네도 옷이 필요하나?”

     

   예상 못 한 반응이었다. 옷이 필요하냐고? 그건 내가 묻기 전에 물어봤어야 하는 거 아닌가?

     

   “왕을 만나 뵈러 가는데 피 묻은 옷을 입고 갈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그의 말에 내가 반문하자 그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 질문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당황하는 눈빛. 하지만 이어진 답변에 당황한 건 오히려 나였다.

     

   “어? 자네는 옷을 권해도 거절할 거라던데?”

   “……누가요?”

   “……도우미 토끼가.”

     

   아아.

     

   나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그놈의 도우미. 도대체 언제 왔다 갔는지도 모르겠다.

   밸런스가 나 때문에 파괴된다며 쫑알거릴 때부터 나를 아니꼬워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치사하게 나올 줄이야.

     

   “흠흠, 그래도 내가 한 번 물어봤어야 했는데 미안하네.”

     

   그의 사과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괜찮다는 의사를 표했다.

   조금 뜬금없는 상황이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나름 얻게 된 정보가 있었으니 오히려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에게 악의가 없었다.

   우리가 그들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면 그들도 굳이 우리를 자극할 이유가 없다는 것.

     

   본심이 어떤지 명확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곳 주민들을 통해 정보를 모으는 것은 나름 수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도착했다네.”

     

   잠시 복도를 걷다 보니 우리의 앞에 화려한 보석이 세공된 큰 문과 함께 휘황찬란한 황금 갑옷을 입은 두 명의 경비병이 나타났다.

     

   우리를 안내한 기사가 문 앞으로 다가가자 문을 지키고 있던 경비들이 우리의 입장을 알렸고 이내 문이 열리며 방의 내부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웅성웅성-

     

   길게 늘어진 테이블과 그 위를 가득 채운 수많은 먹거리들.

   그리고 그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시끌벅적하게 떠들며 각자의 식사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거 거의 파티장인데요?”

     

   한가민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많은 음식과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음악.

   광화문에서 봤던 생존자들이 함께 자리에 앉아 식사하고 있었다.

     

   지금까지의 일들이 마치 꿈이라는 듯 평화롭기만 한 광경을 보고 있으니 오히려 현실감이 없어지기까지 한다.

     

   “이제 이곳에서 왕께서 오시길 기다리면 된다네.”

     

   기사 폰은 그렇게 말을 남기고는 유유히 파티장을 벗어났다.

     

   시끄러운 파티장의 내부. 너무나도 평화로운 장소였다.

   광화문에서 얼굴만 봤던 사람들도 이곳에서 그저 평화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고 원래 이곳의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들 또한 서로가 어울리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리고 잠시 동안 사람들을 둘러보고 있자니 나의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시인 씨! 여깁니다!”

     

   굵직한 남성의 목소리에 나는 곧장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박조철이 손을 흔들고 있었고 서세영과 남궁천호가 그 옆에서 얼떨떨하게 웃으며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가 다가가자 남궁천호가 나를 바라보며 운을 띄웠다.

   멀끔한 복장. 역시나 나를 제외하고 다들 꽤 고급스러운 귀족풍의 의복을 걸치고 있다.

     

   “오셨군요. 혹시나 안 오시면 어쩌나 싶었습니다.”

     

   “초대를 거절할 분위기는 아니었으니까요.”

     

   “그래도 김시인 씨는 늘 예상치 못한 모습을 자주 보여 주셔서 거절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그리고 여기 박조철 씨는…… 하하.”

     

   그의 허탈한 웃음에 나와 한가민이 박조철을 돌아봤다.

   역시나 깔끔한 복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남궁천호와 다른 점은.

     

   “…설마 병사들한테 덤볐어요?”

     

   “갑자기 따라오라는데 믿을 수가 있어야지.”

     

   한가민의 말에 박조철이 혀를 차며 뒷목을 살짝 쓸어냈다.

   바닥에 한 번 굴렀는지 상처가 남아 있는 뺨과 손등처럼 살이 드러난 곳에 보이는 푸르스름한 멍들.

   박조철이 투덜거리자 그 모습을 본 한가민이 어이가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병사도 많았는데 어떻게 도망칠 생각을 했대요? 너무 무모한 거 아닌가?”

     

   “모르는 사람이 따라오라고 하면 안 따라가는 게 국룰 아니야? 나는 사람들이 순순히 따라온 게 더 이해가 안 돼.”

     

   단호한 어조로 한가민을 질책하는 듯한 박조철.

   하지만 그의 말에 한가민은 반대로 본인이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애초에 적의가 있었으면 체포를 했겠죠. 초대가 아니라.”

     

   “아……??”

     

   “에휴……”

     

   그녀의 말에 박조철이 벙찐 얼굴을 하며 가만히 입을 닫았다.

   참 든든한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그를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이런 시시콜콜한 대화도 잠시.

   잔잔하게 울리던 음악이 꺼지며 누군가의 외침이 파티장 전체를 메아리쳤다.

     

   – 왕께서 입장하십니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입을 다물고는 왕의 입장을 기다렸다.

   그렇게 우리의 앞에 천천히 나타난 탑의 1층을 다스리는 왕.

     

   하지만 왕의 모습을 본 서세영의 감상은 아주 짧고 간결했다.

     

   “너무 평범한데요?”

   “평범하다고 말하기에는…… 좀 많이 늙었군요.”

     

   그랬다. 우리가 보게 된 왕은 그저 평범해 보이는 한 명의 노인.

   화려한 옷을 두르고 호위를 양옆으로 대동한 것이 아니었다면 그가 왕이라는 생각이 들 것 같지 않았다.

     

   왕은 노화가 많이 진행된 것인지 등이 살짝 굽어 있었고 얼굴에 핀 검버섯은 그의 나이를 더욱 가늠하기 힘들게 했다.

     

   “반갑소. 나는 탑 1층의 주인이오.”

     

   이곳을 지키는 병사들의 주인이자 이 성의 주인.

   그리고 자칭 탑 1층의 주인이라 말한 노인이 우리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몇몇 사람들은 나를 보며 왕이니 주군이니 떠들어대지만 그런 호칭은 부담스럽소. 그저 편하게 노야(老爺)라고 불러 주면 좋겠구려.”

     

   온화한 동네 할아버지 같은 인상.

   얼굴에 보이는 주름 때문인지 그의 외모에 알 수 없는 친근감이 생기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는 다른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비교적 판단력이 좋은 남궁천호도 그랬고 성격이 대단히 깐깐한 한가민 또한 편안한 얼굴로 ‘노야’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노야라…’

     

   늙은 남성을 높여 부르는 평범한 호칭.

   사실 사전적 의미가 그렇다는 것이지 할아버지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칭호를 들으니 괜히 더 긴밀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때.

     

   띠링.

     

   뜬금없는 타이밍에 익숙한 나의 스킬이 발동됐다.

     

   [‘빠른 납득(C-)’이 발동됩니다.]

   [상태이상 ‘세뇌(D)’에 저항합니다.]

     

   세뇌?

     

   갑작스럽게 떠오른 알림.

   그렇게 나의 정신은 천천히 맑아졌고 눈앞의 노인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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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To Climb The Tower?

Who Is Threatening You to Climb the Tower? 누가 탑 오르라고 협박함?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 sudden message arrived, heralding the end of humanity.

[Climb the tower. If you refuse, you will die.]

We are being threatened by a mysterious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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