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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

    <17 – 그들의 사명감>

     

    얼른 도망치자며 재촉하는 제시.

    창밖에서는 의사들이 마도통신기기를 들고 이쪽을 힐끔거리며 어디론가 연락하고 있다.

     

    “어서!”

     

    조나랑 리프는 나쁜 사람이 아닌데.

     

    “내가 숨을 곳을 알아!”

     

    그치만 ‘숨는다’라는 말이 내 안의 스위치를 켰다.

    기능숙련작.

    숨기 기능.

    평상시에는 쉽게 찾을 수 없는 비공정.

    이거 숙련도 떡상 찬스 아닌가?

     

    “음… 그래. 리프가 너무 걱정하면 곤란하니까, 딱 한 시간만이다?”

     

    타협을 하려고하자 제시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멍청한 소리를 하는 딸의 등짝을 플스윙으로 갈기려는 억척스러운 엄마 같은 표정을 하는 제시.

    그 표정에 흠칫하고 놀라는 그때, 응급실 문이 열리며 간호사 둘이 다가왔다.

     

    “자, 보호자분이 올 때까지 아줌마들이랑 사탕이나 먹자.”

    “무슨 맛이에요?”

    “딸기맛이란다~”

    “오크노디! 무슨 바보 같은 소릴 하고 있는 거야!”

    “자~ 자~ 그쪽의 친구도 밤늦게까지 친구랑 놀고 그러면 못써요. 보호자분이 걱정하잖니. 응?”

     

    그 보호자를 못 믿겠다고요.

    표독스레 간호사 아줌마들을 노려보던 제시가 갑자기 손목시계의 버튼을 눌렀다.

     

    뾱뾱.

     

    앙증맞은 소리와 함께 날아드는 작은 침.

    놀란 눈의 간호사들이 힘이 풀려서는 주저앉아 병원침대에 기대며 잠이 들었다.

     

    “이리로 와, 어서!”

     

    뒷문으로 잡아끌며 앞장서는 제시.

    그 대담한 행동에는 전직 플레이어인 오크노디도 깜짝 놀랐다.

     

    “너 혹시 플레이어블 캐릭터니?”

    “자꾸 이상한 소리 할래? 여기로 들어가!”

     

    제시가 등을 떠미는 통에 세탁물을 담은 운반카트에 들어가니, 의사와 간호사들의 긴박한 발걸음들이 우리를 지나쳤다.

     

    “아까 그거 뭐야?”

    “수면마법이 부여된 침이야. 귀족가의 딸은 아무리 한미한 남작이라도 언제 이상한 사람들이 납치를 하려 들지 모른다고 아빠가 사주셨어.”

    “헤에. 호신용품이구나.”

    “엄청 비싸대.”

    “몬스터한테도 통할까?”

    “힘들지 않을까? 몬스터는 동물보다도 덩치가 커서 약물이 안 통하는 경우도 잦은데.”

    “치. 그럼 안 살래.”

     

    몬스터한테 안 통하는 건 몬스터를 가뿐히 때려잡을 수 있는 사람들한테도 안 통한다.

     

    [세탁물 운반키트에 친구와 함께 몸을 숨겨 추적을 따돌렸습니다.]

    [숨기 경험치+3]

     

    [1분간 세탁물 운반키트를 움직여 경비들을 속이며 이동했습니다.]

    [숨기 경험치+3]

    [은신 경험치+1]

    [잠행 경험치+1]

     

    [1분간 친구와 함께 판촉용 인형탈 속에 숨어 경비들을 따돌렸습니다.]

    [숨기 경험치+3]

    [속임수 경험치+1]

     

    [인형탈을 쓴 채 대놓고 경비들의 옆을 지나갔습니다.]

    [속임수 경험치+3]

    [대담함 경험치+1]

     

    성장부스터 캐쉬템이라도 지른 것처럼 무서운 속도로 오르는 기능 숙련치.

     

    “제시, 너 배짱이 장난 아니다.”

    “오크노디도 엄청 힘이 센 걸? 나 같으면 누굴 목마 태우면서 인형탈 속에서 걷진 못할 거야.”

    “헤헤. 멀 이 정도가지고.”

     

    키도 작은 주제에 효율 나쁘게 신체관련 능력치만 높다고 투덜거리던 것이 엊그제 같건만, 막상 이렇게 도움이 되니 보람이 느껴진다.

    효율이야 어쨌건 역시 능력치는 높고 볼 일이지. 부지런히 수련한 보람이 있어.

     

    “자, 여기 긴급탈출포트를 가동하면 비공정 밖으로 벗어날 수 있어.”

     

    경비들을 따돌리며 정말로 탈출 성공직전까지 도달해버린 제시와 나.

    그러나 탈출포트 옆의 그늘에서 기다렸다는 것처럼 한 사람이 나타났다.

     

    “여흥은 충분히 즐기셨습니까, 아가씨?”

    “조나.”

     

    인상 험악한 마피아 느낌이 물씬 풍기는 만능집사.

    한동안 데면데면하게 지냈던 조나 와이히엠하이가 출구 앞을 가로막았다.

     

     

    * *

     

     

    제시는 보았다.

    오크노디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을.

     

    “자, 이리로 오십시오, 아가씨. 작은 소동이었지만 제 손을 잡는다면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날 별 거 아닌 일입니다.”

    “미안해, 제시. 나 말이야, 집사를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아.”

    “안 돼, 오크노디! 저런 나쁜 사람들에게 굴복하면 네 미래는 더 불행해질 거야!”

     

    만 5세 이상이라면 평민가정에서도 자발적으로 등록하고, 이름을 속여 가며 또 한 번 검사를 받으려 할 정도로 인기가 많은 국제신원등록마법.

    보육원의 고아들에게도 허락되는 마법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나쁜 목적을 지니고 아이의 정체를 세상으로부터 감추려는 경우밖에 없다.

     

    범죄에 써먹을 목적으로 범죄조직에서 쓰고 버리는 아이들.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점을 악용하고자 창관에 팔아치울 여아들의 신원등록을 막는 포주들.

    세금을 내지 않고자 아이를 키우지 않는 척 의도적으로 등록을 하지 않는 찢어지게 가난한 평민들.

    아동학대를 목적으로 아이에게 마땅히 허락된 권리를 없애려 하거나 혹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아이를 노예로 팔려는 글러먹은 부모들.

    심지어는 그런 아이들을 구해다가 비밀병기로 육성하고자 하는 귀족가까지.

     

    ‘오크노디는 그런 귀족가의 아이가 틀림없어!’

     

    한미한 남작가의 여식이라도 제시는 엄연한 귀족가의 말예. 귀족들의 더러운 추문에 대한 소문 정도는 들어본 적이 있다.

    첩이나 노리개로 써먹으려고 길러지는 아이는 아닐 것이다.

    도망치면 곤란한 노리개에게 굳이 수련을 시켜가며 또래답지 않게 힘이 세고 몸이 날래게 만들어줄 이유가 없으니까.

    그런 아이를 세계제일의 아카데미 입학시험에 투입하여 우수한 인재로 탈바꿈하고, 가문의 뜻대로 사용하기 위해 배후에서 조종한다.

    한 사람의 인생을 어린 시절부터 어른이 된 뒤에도 조종하는 두려울 정도로 치밀한 수작이다.

     

    “오크노디. 귀족가의 여자아이는 손이 부르터지도록 수련을 하지 않아도 돼. 남의 목적을 위해 고되게 살지 않아도 된다고!”

    “제시. 고마워.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나, 이렇게 어린 친구가 생긴 건 처음이거든.”

     

    제시의 얼굴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어째서 그런 약한 소리를 하는 거야?

    그렇게나 힘이 세고, 몸도 날래면서.

    마음만 먹으면 당장 캡슐포트에 들어갈 수 있으면서.

    문득, 제시는 깨달았다.

    무서운 눈을 한 집사.

    집사의 탈을 쓴 훈련받은 감시자.

    저 위험인물이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으니까.

    오크노디가 도망치려 든다면, 그녀는 몰라도 자신은 도망칠 수 없을 테니까.

    제시를 지키기 위해 오크노디는 탈출을 포기했다.

    진실이야 어떻든, 그녀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그러니까 솔직하게 말할게.”

     

    오크노디는 캡슐의 문을 여는 대신, 제시의 머리를 어루만져주었다.

     

    “나는 아카데미에 입학할 거야. 조나도, 리프도. 모두 날 돕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어. 그런 시간을 멋대로 도망치며 헛되이 만들고 싶지 않아.”

    “오크노디는 그걸로 괜찮아…? 나쁜 사람들 때문에 아이답게 살지도 못하고, 훌쩍. 고되고 힘든 수련 때문에 손도 이렇게나 거칠어지고……”

    “전부 내가 바라던 거야. 아카데미에 입학하지 않으면 나 같은 건 분명 불행하게 살 수밖에 없어. 음식도 마음껏 수집하지 못하고, 능력치도 구릴 거야.”

    “모르겠어…. 흐윽. 오크노디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아카데미만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면 돼. 그러면 다 괜찮아질 거야.”

     

    오크노디는 제시의 손을 놓았다.

    착잡하다는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집사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붙잡았다.

     

    “가요, 조나. 리프가 많이 걱정하고 있을 거예요.”

    “그걸 아시는 분이 이런 소동을 벌이셨습니까.”

    “미안해요. 조금 장난삼아 숨어다녔을 뿐인데, 경비들이 이렇게까지 무능할 줄은 몰랐어요.”

     

    오크노디는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어째서 자신의 신원을 등록하지 않았는지.

    자신을 아카데미에 입학시키고자 하는지.

    조나는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녀가 묻지 않은 것들을.

    그녀가 묻지 않는 이유를.

    그래도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잡고 걷는다.

    경비들에게 단순한 아이들의 장난이었음을 알리고, 사죄의 의미로 진땀을 흘린 경비들에게 소정의 수고비를 건네줄 뿐.

     

    “제시! 너희 부모님이 엄청 걱정하고 있어. 이런 곳에서 혼자 뭘 하고 있었던 거야?”

     

    또래친구 막스가 달려와 묻는 말에 제시는 소매로 눈가를 훔쳐내며 대답했다.

     

    “막스. 나, 결심했어.”

    “뭘. 가출청소년이 되겠다고?”

    “오크노디. 저 불쌍한 애를 도와줄 거야.”

     

    오크노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제시.

    이야기를 들은 막스의 눈에도 제시의 눈에 떠오른 것과 같은 결연함이 번뜩였다.

     

    “너네 누나도 아카데미에 있지?”

    “응.”

    “방학이 되면 말하자. 너네 누나한테. 나도 우리 형한테 말할게.”

     

    의지할 곳 하나 없는 불행한 아이.

    다시금 귀족가의 어둠 속으로 되돌아가는 신원조차 등록되지 않은, 법으로 보호받지 못하며 법적으로는 존재하지도 않는 미등록자.

    가엾은 오크노디가 입학하거든, 부디 그들이 저 아이에게 힘이 되어달라고.

     

    “우리 막내한테 머리를 쥐어뜯기고도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않았어. 그런 착한 녀석이 못된 어른들한테 잡혀서 심한 꼴을 당하는 꼴은 못 봐!”

    “맞아. 말 잘했어, 막스. 우리 힘으로 어떻게든 오크노디를 구해주는 거야. 지금은 힘이 부족해서 무리지만, 어떻게 해서든. 언젠가는, 반드시!”

     

    “이건 부당해. 오크노디는 이보다 나은 삶을 살 자격이 있어.”

    “기특한 아이들이군요.”

     

    제시가 히에엑, 하고 기겁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혹시나 그 살벌한 집사가 돌아온 건 아닌지 긴장했지만 다행히도 나타난 이는 그가 아니었다.

    근사한 턱수염을 기르고 친절해 보이는 미소가 어울리는 잘생긴 청년.

     

    “오크노디를 돕고 싶은 사람은 여러분뿐만이 아니랍니다. 저도 마찬가지이죠.”

    “아저씨는 누구세요?”

    “티켓사냥꾼의 우두머리. 티켓암상인. 뒷세계에서는 흔히들 만물상 지젤이라고 부르는 사람이랍니다.”

     

    남작가의 아이들.

    몽블랑가의 막스 몽블랑.

    밀푀유가의 제시 밀푀유.

    그들 개인은 별 볼일 없지만, 그들의 형제자매는 좋은 부모 밑에서 교육 받고 자란 덕분에 뛰어난 재능을 자랑하고 있다.

    세계최고의 교육기관으로 손꼽히는 기프트 아카데미에 이미 재학 중이거나, 입학을 진지하게 노릴 정도로 말이다.

     

    올해면 아카데미 2학년이 되는 제시 밀푀유의 언니, 제시카 밀푀유.

    올해에 아카데미 입학을 노리는 막스 몽블랑의 형, 막시무스 몽블랑.

     

    오크노디를 도울 포석으로 사용하기에는 동기도 출신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제시카 양이 다음 방학이 될 때까지 기다리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죠. 막시무스 군도 반드시 입학을 한다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그건 그렇지만…”

    “언니한테 연락할 다른 방법이 있어요?”

    “제가 도와드리죠. 막시무스 군의 입학도. 제시카 양에게 여러분의 친필편지를 전달하는 것도.”

     

    아이들의 표정이 환해졌다.

    지젤의 입가에 어린 미소도 함께 환해졌다.

    그러나 그 눈만큼은 웃지 않았다.

     

    ‘이건 어디까지나 작은 포석 중의 하나. 오크노디양을 구하기에는 어림도 없지.’

     

    그럼에도 분명히 미래에 도움이 될 포석 중의 하나.

    지젤은 생각했다.

    이 한 걸음은, 제시라는 소녀의 용감한 행동이 만들어낸 틈은, 그 틈을 살려 이루어낸 이들과의 접선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헛되이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언제나 그렇듯 제 3 자의 시점이 가혹한 오크노디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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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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