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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

       공작저의 멍멍이가 된 지 열흘하고도 3일이 지났다.

         

       눈보라가 불어닥치는 나날이 계속됐지만 저택 내부는 축사와는 달리 따듯한 편이었다. 최고급 시설에 최고급 난방을 두루 갖춘 공작의 집안이었으니 따듯하지 않은 게 이상하겠다만.

         

       새벽 다섯 시부터 일어나 플레어를 연구하고 있으면 하스펠트 교수가 아침 식사를 가져다준다.

         

       “신경쓰지 말고 하던 거에 집중하세요.”

         

       …뭔가 이상한데.

         

       2주 전 쇠목걸이까지 찰 정도로 진창 싸워댔던 것과는 달리 상상 이상으로 제재가 없다. 한 가지 제약이 있다고 한다면 하루종일 나를 자기 곁에 둔다는 점 정도.

         

       그 ‘종일’의 기준이 좀 엄격했다. 이렇게 식사할 때는 물론이고, 화장실을 갈 때나 잠자리에 들기까지도 계속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이쯤되면 소름 돋을 지경이다. 차라리 몇 대 때려라….

         

       하스펠트의 이상행동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취미인지는 모르겠는데, 나한테는 마도 연구를 하라고 지시해 놓고 정작 자신은 딴짓을 하고 앉아있었다.

         

       나는 곁눈질로 하스펠트가 읽고 있는 책 제목들을 스키밍했다.

         

       [귀족정과 군주정치]

       [군신관계를 올바르게 이끄는 101가지 방법]

       [화술 및 처세술 입문]

         

       드디어 미쳐버린 건가…?

         

       여태까지 행적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하스펠트가 저런 서적을 읽을 가능성은 0에 수렴했었다. 뼛속까지 이공계인 너드가 고전시가에 빠지기 어려운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라도 불었는지 매일같이 하던 스크롤 작성도 안 하고 교내 학술도서관에서 저런 자료만 찾아다가 읽어댔다.

         

       “지금 어디까지 했어요?”

       

        내 쪽을 이따금씩 흘끔거리던 하스펠트가 쓰고 있던 종이를 낚아챘다.

         

       오늘 업무 시작한 지 한 시간밖에 안 됐는데 뭘 이리 서두르려는 걸까.

         

       급하면 사람 얼굴에 티가 난다더니. 객관적으로 보기에도 요 며칠 새 하스펠트의 안색은 썩 좋지 않았다.

         

       나는 인사차 물었다.

         

       “잠 못 주무셨나요?”

       “드레이크 때문에.”

       “……?”

         

       내가 추가 설명을 요구하는 눈으로 기다리자 하스펠트가 이어서 대답했다.

         

       “3개월 전부터 아카데미 뒷산에서 불어나고 있는 아이언 드레이크 때문에 이사회 내부에서 파란이 있었어요. 그걸 처리하느라 며칠간 교수 회의가 소집되기도 해서, 조금 피곤해요.”

         

       이야, 그 이사회에 있는 사람들이랑 친해지고 싶네요.

         

       “정 문제가 된다면 그 산에 있는 중급 마수는 쓸어버리면 될 텐데요.”

       “당신이 신경 쓸 문제가 아니에요. 플레어 완성에나 집중하세요.”

         

       한시라도 빨리 최상급 화계마도를 완성하라는 걸 보면 급해 보이는 건 맞는데. 그럴 거면 자기도 손을 거들어주는 게 정상 아닌가?

         

       애당초 권위자인 자신도 완성을 못 해서 머리를 싸매고 있는 최상급 마도의 개발을 노예에게 명령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었다.

         

       앞으로 남은 기간은 최대 2주 정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인생이고 뭐고 지구로 돌아갈 난이도가 비약적으로 상승하게 된다. 그 사달이 나지 않도록 물 떠놓고 기도해야 할 판이었다.

         

       내가 말을 꺼내기 전까지 하스펠트는 황실에 날 매각하겠다고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내 기준에선 거짓말을 하는 것 이상으로 용서하기 힘든 태도였다.

         

       똑똑.

       

        “우편입니다.”

         

       하스펠트 교수의 턱짓에 나는 숟갈을 내려놓고 정문으로 향했다.

         

       우편을 받아드니 잔뜩 금칠이 된 편지였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본 편지 형식이다.

         

       드디어 올 게 왔다.

         

       금칠이 되었다는 건 황실이나 혹은 그에 준하는 기관에서 온 편지임을 의미한다. 나는 발신인을 확인할 필요도 없이 하스펠트에게로 호다닥 달려갔다.

         

       “황실에서 온 모양입니다.”

       “…황실에서요?”

         

       하스펠트의 눈동자가 절반은 결연함으로, 나머지 절반은 불안감으로 들어찼다.

         

       그녀가 편지를 뜯어 묵독하기 시작했다.

         

       눈썹이 활처럼 휘는 데에는 불과 몇 초면 충분했다.

         

       똑똑똑.

         

       “아침부터 손님이 많네요.”

         

       아, 진짜 똥개훈련 시키는 것도 아니고.

         

       다시 정문으로 돌아가 누구냐고 물어보니 건너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단박에 알아차린 나는 설레는 기분으로 문을 열어젖혔다.

         

       “안녕, 그동안 잘 지냈니?”

        “헤를라인 교수님!”

         

       짧은 대화였지만 그것만으로 하스펠트의 주의를 끌어오기에는 충분했다. 난데없는 동료 교수의 가정 방문에 하스펠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이쪽을 향해 걸어왔다.

         

       “휴일 아침부터 여긴 어쩐 일이에요?”

       “좋은 소식 가지러 왔지.”

       “그게 무슨 말이죠?”

         

       하스펠트의 물음에 헤를라인은 은은한 미소로 회답했다.

         

       그녀가 하스펠트의 손에 들려있는 금색 편지봉투를 보며 관심을 표한 건 그 직후였다.

         

       “어머, 황실에서 편지가 왔나 보네. 황제 폐하께서 귀족들에게 연말 인사라도 드리는 것일까?”

       “그런 거 아니에요.”

       “아니면 파티? 사교회나 다과회라면 나도 가고 싶은데.”

        “그런 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그나저나 여긴 어쩐 일이냐고 두 번 물었어요.”

       “뭐긴 뭐야. 사랑스러운 내 학생 보러 왔지.”

       “…내, 학생?”

         

       헤를라인의 그 말에 하스펠트의 얼굴이 멍청해졌다.

         

       갑자기 내 몸이 뒤로 젖혀졌다. 아주 잠깐 쇠목걸이가 철그럭거리는 소리가 났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뒤통수 너머로 푹신한 감각이 느껴졌다.

         

       헤를라인 교수가 내 어깨에 팔을 걸치며 구와 절을 연결했다.

         

       “여기 너랑 에테르 말고 또 누가 사는데? 당연히 얘 보러 왔지.”

       “그 아이는 제 전속 조수에요. 당신 학생을 찾으려거든 수업 시간에서나 찾도록 하세요.”

       “스승 제자 하는데 교실이 있고 없고가 뭐가 중요해? 배우는 사람과 배움을 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게 곧 사제관계고, 그 장소가 곧 교실이지.”

       “메리, 제아무리 당신이라고 해도 이런 행동은 무례해요. 갑자기 찾아와서 아무 맥락도 없이 무슨 말을 하는 건가요?”

         

       하스펠트는 헤를라인이 뒤에서 나를 도와줬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다. 애초에 세 명이서 이렇게 대면하는 것부터가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찌 됐건 주인 입장에서는 난감할 것이다.

         

       아니, 이제는 ‘전’ 주인인가.

         

       헤를라인 교수가 왜 여기 나타났는지 진작 눈치채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무언가 터질 것 같은 이 상황 속에서 오히려 안락함을 느끼는 건 그 때문이었다.

         

       두 교수의 우정에 금이 가는 장면은 안타까웠지만, 거기까진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니까. 조용히 팝콘이나 뜯고 있기로 했다.

         

       “그래. 무례하기 짝이 없지. 백작 따위가 사대공작저 앞에 이렇게 쳐들어온다는 것 자체가.”

        “그런 말이 아니라……!”

       “그리고 한때 평민…. 아니지. 노예만도 못한 부랑아 나부랭이가 아카데미 교수로 임용돼 자신과 똑같은 코스를 밟고 있다는 것도 무례하게 느껴질 거야.”

       “…메리가, 당신 뭔 말을 하고 싶은 거야.”

         

       헤를라인 교수의 말은 제삼자가 봤을 때 날이 서려 있는 듯했다.

         

       하지만 저건 헤를라인 특유의 화법에 불과하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감정적 동요는 하스펠트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구화란 단순히 글을 읽고 쓰는 것과는 달라서, 어조나 음량이 어떠한지에 따라 그 사람의 정신상태를 파악할 수 있기 마련이었다.

         

       그러니 헤를라인의 장난기 가득 서린 어조로부터 다음 대화를 유추하는 것도 가능했다. 머신러닝으로 모은 내 인생 빅데이터에 따르면 이제 헤를라인이 하스펠트 교수를 띄워줄 확률은 95퍼센트였다.

         

       “알아, 클라이스. 네가 그런 생각은 전혀 품지 않고 있다는 걸. 가끔가다 헛발질을 해서 그렇지, 본성 자체는 선한 사람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어. 널 10년 가까이 봐 왔으니까.”

       “…….”

       “근데 말이야, 다른 건 둘째 치더라도 대학원생은 잘 못 다루는 것 같아. 학생을 돌볼 때에는 실험장비를 다룬다고 생각하면 안 되지. 뭐하러 우리가 전선에서 물러나 교수 일을 하는 건데?”

       “에테르는 학생이 아니에요. 내 조수지.”

       “너에게 배운 화계마도만 팔백 개가 넘어갈 텐데 네 제자가 아니라고?”

       “더는 못 들어주겠네요. 빙빙 돌려서 말하지 말고 딱 용건만 말하세요.”

       “좋아. 여태까지의 인정을 생각해서 결례를 무릅쓰고 하나 알려줄게.”

         

       헤를라인이 나를 슬쩍 밀어내고는 소매에서 금칠이 된 편지봉투를 하나 꺼냈다. 하스펠트가 우체부에게 받았던 색과 같았지만 세부적인 디자인이 달랐다.

         

       특히 봉투 한가운데에는 학문을 상징하는 성화와 마도를 상징하는 스태프가 교차되어 있는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헤를라인이나 하스펠트의 로브에도 찍혀 있는 표식이었다.

         

       “틸레트 인장…?”

       “오늘 아침 내 앞으로 이게 왔더라.”

         

         

       ####

       [합격통지서]

         

       [성명 : 에테르]

       [수험번호 : 108128]

         

       [위 학생은 우리 학교에서 수학할 능력이 충분하다 판단하여 입학을 허가함.]

         

       [또한 이 통지서를 받는 즉시 틸레트 마도 아카데미의 1024기 입학생으로 선별되어 제3의 신분을 부여받고, 법제상 이전까지의 신분과 계급은 전무 무효 처리됨을 통지함.]

         

       [◇ 득점 : 440/500점 (필기 400, 실기 40) → 점수 문의가 있을 시 인재발굴처로 연락 바람.]

       [◆ 입학석차 고지 : 차석(次席) (첫 학기 반액장학금 지원 대상)]

         

       [틸레트 마도 아카데미 총장, 야코브 로베스피에르 (인)]

       ####

         

         

       “오.”

         

       합격통지서를 보면 기뻐서 방방 뛰어다닐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마음이 차분했다.

         

       역시 헤를라인 교수의 집 주소로 합격통지서를 발송하도록 원서에 기입한 게 정답이었다. 보호자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벌써 세 개에 달하는 배드 엔딩을 회피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3년 만에 노예 신분에서 벗어난 데다가 황실에 시종으로 팔려가지 않아도 되고, 무엇보다도 학위도 안 주는 박사과정을 중단할 수 있어서 기쁨의 눈물이라도 흘리는 게 맞겠지만….

         

       당장 나한테 집중할 여유는 없었다. 아니, 그럴 이유 자체가 없었다.

         

       “이, 이게 뭔…….”

       “생각해 봐. 너에게 받는 조막만 한 식비를 제외하면 돈 한 푼 벌어들이지 못하는 소녀가 어떻게 그 비싼 입시 전형료를 낼 수 있었을지를.”

       “설마 당신이 벌인 짓인가요? 메리가…!!”

         

       하스펠트 교수가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건 살아생전 처음 알았다. 마치 내가 치킨 닭다리를 두 개 다 가져갔을 때 우리 누나가 지었던 면상이랑 꼭 빼닮았는데.

         

       “그야말로 대박이었지. 설마 천 년 동안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던 필기시험 만점자가 이제야 모습을 드러낼 줄이야. 물론 실기는 상대적으로 부족했지만, 뭐 어때. 금안족이 과락점을 넘긴 것만 해도 보통 실력이 아니라는 소리인데. 이점에 대해선 가산점을 좀 줘야지.”

         

       속사포처럼 쪼아대는 일개 변경백 앞에서 사대공작가의 일축을 담당하고 있는 상대방은 맥없이 떨기만 했다.

         

       “무, 무얼…. 어, 어떻게……? 도대체 왜 당신이…?”

         

       어떤 말이라도 공기에 막혀 잘 나오지 않았다. 하스펠트는 입을 달싹이기만 할 뿐, 헤를라인의 이어지는 공세에 하나도 대처하지 못하는 모양새였다.

         

       지금쯤 머릿속이 바삐 돌아가고 있겠지.

         

       내가 아카데미에 지원한 건 알고 있었더라도, 그 후견인이 자신이 오랫동안 믿고 지냈던 친구라는 사실은 결코 받아들이기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래,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은 이거 하나야.”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실실 웃은 헤를라인이 낮은 목소리로 주문을 읊자 작은 열쇠 하나가 나타났다. 헤를라인은 그 열쇠를 내 목덜미 근처에 꽂고 돌렸다.

         

       덜컥, 하는 소리와 함께 쇠목걸이가 풀렸다. 맥없이 아가리를 벌린 목걸이는 내 어깨를 따라 힘없이 스러지다가 그대로 카펫 위로 굴러떨어졌다.

         

       하스펠트 교수의 분노 게이지는 이미 100퍼센트를 넘어서고 있었다. 이 이상 건드렸다간 뭔 일이 날 것 같은 얼굴이었지만 헤를라인 선생님은 아랑곳하지 않고 마지막 타격을 날리셨다.

         

       “클라이스, 니 조수 쩔더라?”

         

       오늘따라 저택 난방이 잘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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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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