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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

       

       ‘드디어.’

       

       서연은 달력을 넘기며 감격에 젖었다.

       

       ‘일곱 살이 되었구나.’

       

       주서연 7살.

       유치원 1년 차. 

       

       사실, 7살이 된다고 해서 딱히 달라지는 건 없었다.

       전보다 몸의 성장이 빨라진 게 체감된다는 정도?

       

       내년부터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겠지.

       그리고…….

       

       ‘흐으음.’

       

       여러모로 고민되는 부분이 많았다.

       사실 대부분은 연기와 관련된 부분이다. 

       

       이게 본격적으로 연습을 하게 되니 스스로의 부족함이 많이 보이더라.

       그리고, 감정 연기라는 게 확실히 쉬운 게 아니라는 걸 느꼈다.

       

       ‘어지간한 건 감정 모사 선으로 그치지만.’

       

       배우들이라고 항상 전력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건 아니다.

       나로서도 그런 부분은 감정 모사하는 정도로 충분하다 생각한다.

       

       적어도, 이 부분에서 나는 성인 배우들과도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겠지.

       

       ‘그야, 뭐 나이를 생각하면…….’

       

       본래 감정 연기라는 건 살아온 경험에서 나온다.

       어릴수록 감정 연기가 서툴 수 밖에 없는 건 그 경험이 부족하니 당연한 일.

       

       하지만, 난 그 부분이 전생으로 채워진 셈이다.

       

       찰싹.

       

       나는 거울을 바라보며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쥐었다.

       

       ‘표정 연기는 비교적 자연스러운편.’

       

       다만 이게 연기를 공부할수록 다른 부분이 뒤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사소한 행동, 시선의 처리. 대사를 내뱉을 때 발성.

       

       그나마 발성 부분은 그간의 연습에 힘입어 5점 만점에 4점은 된다.

       

       ‘시간이 필요하네.’

       

       물론, 태숨달 촬영을 앞두고 무언가를 새롭게 익힐 시간은 없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나마 장점을 최대치로 발휘하는 것.

       

       예전에야, 버튜버 몰빵이었으니 아무래도 좋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가 누구? 대배우(진) 주서연.

       

       어쨌든 스스로 가진 바 재능을 낭비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전생으로 얻은 기연 같은 거니까.

       

       “후우우.”

       

       심호흡을 하며, 얼굴을 매만지던 손을 땐다.

       슬쩍 손바닥을 보면 이래저래 상처가 난 손바닥이 보였다.

       

       거울에 비친 내 눈은,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기분 탓인지 평소보다 더 붉어졌다.

       

       마치, 감정에 동요에 따라 변하는 것처럼.

       

       ‘……정말 그런가?’

       

       그렇다해도 막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것 같지는 않다만.

       아무튼 내 몸은 여러모로 특이한 부분이 많아서 이젠 그러려니 했다.

       이상한 근력도 그렇고, 눈도 그렇고.

       

       “좋아.”

       

       이제 어느 정도 마음도 추스른 것 같으니, 다시 연습할 시간이었다.

       7살이 된 주서연의 첫 진짜 감정 연기를 위해.

       

       ***

       

       아롱다롱 유치원에는 두 명의 스타가 있다.

       한 명은 이지연.

       

       나름 CF에서 열심히 출연 중인 기운찬 아이.

       성격도 매우 드세서, 유치원 내의 아이들 중 지연의 말을 거역할 수 있는 자는 없었다.

       단 한 명만 빼고.

       

       “서연이는 참 얌전하네요.”

       

       꽃님 반의 선생님인 현영은 서연을 부럽다는 듯 보았다.

       자신의 반 아이들도 서연 만큼만 얌전하면 좋았을 텐데.

       

       “얌전……은 하죠?”

       

       그리고 그런 서연이 속한 햇님 반 선생님인 민아는 애매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유치원에서 유명한 두 번째 스타.

       

       사실, 이지연에겐 미안한 이야기지만 상당히 큰 차이가 있었다.

       특히 이전에 방송된 태숨달 오디션 이후, 서연을 보러 유치원을 힐끗거리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지금이야 사라졌지만, 민아는 내심 섬뜩했다.

       만약 그럴 때 위험한 사고라도 터졌다면…….

       

       “얌전은 한데……. 묘한 아이라고 해야 되나.”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냐면, 잘 어울리긴 한다.

       근데 이게 뭐라고 해야 할까.

       

       또래의 아이들과 논다는 느낌이 아니라, ‘놀아준다’라는 감성에 가까웠다.

       심지어 돌보기도 잘 돌봐서 선생님으로서 복잡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드라마는 언제 방영이라고 했더라…….”

       

       서연이 출연할 드라마, ‘태양을 숨긴 달’의 방영날이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었다.

       그 날짜를 확인하기 위해 달력을 살피던 현영은 그 아래에 빨간색으로 표시된 날짜를 보았다.

       

       “아, 그러고 보니, 조금 있으면 학예회네요?”

       “그렇죠. 후훗.”

       “……왜 웃으세요?”

       “흐흣.”

       

       얄밉게 웃는 민아의 미소에 현영은 눈을 찌푸렸다.

       학예회는 나름 유치원 선생님들의 대리전쟁이었다.

       

       물론 전쟁이라고 해봐야, 1등한 반에게 간식이나 주는 게 전부였다.

       단, 그건 아이들간의 이야기.

       유치원 선생님들의 경우에는 조금 달랐다.

       1등한 반 선생님에겐 무려 휴가가 이틀! 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걸로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강요하거나 무리한 짓을 시키면, 도리어 징계를 먹을 수 있었다.

       유치원 원장 선생님의 엄격한 감시아래 이루어지는 선생님들의 진검승부.

       그것이 이 아롱다롱 유치원의 학예회였다.

       

       “이번에 제주도나 좀 다녀오려고요.”

       “……두고 봐요.”

       

       하지만 누가 그러던가. 

       두고 보라는 사람치고 무서운 사람 없다고.

       민아의 반에는 스타가 둘이나 있었다.

       

       삼국지로 치면, 와룡봉추가 한 곳에 있다는 뜻.

       참고로 봉추는 이지연이었다.

       

       ‘승부의 세계는 냉혹한 법이에요, 현영 쌤.

       

       가벼운 연극이라도 하나 준비하면 가볍게 압살할 자신이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태양을 숨긴 달의 주연 아역! 

       주서연이 자신의 반이었으니까.

       

       “주서연, 선생님이 또 너를 이상한 눈으로 보는데.”

       “너는 선생님에게 이상한 눈이 뭐야, 이상한 눈이.”

       “이상한 게 이상한 거지.”

       

       소곤거리는 이지연의 말에 서연은 힐끗 민아를 보았다.

       사실, 서연은 민아가 왜 저런 눈으로 자신을 보는지 대략 짐작하고 있었다.

       

       ‘……으음.’

       

       미안한 이야기지만, 서연은 딱히 학예회에서 뭔가를 할 생각이 없었다.

       당장 태양을 숨긴 달이 우선이기도 했고, 아이들의 학예회에 자신이나 이지연이 나가는 건, 좀 이상하지 않나 싶었기 때문이다.

       

       “아닌데, 난 학예회에서 공주님 할 건데?”

       “……하고 싶으면 해.”

       “하지 말라고 해도 할 거야.”

       

       물론 이지연은 할 마음이 가득인 모양이었다.

       

       ‘근데 이 정도로 의욕적인 애가, 나중에 뭐 했는지 왜 기억이 안 나지?’

       

       서연은 지연을 볼 때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이지연은 배우 욕심이 많은 아이다.

       

       지금 CF를 찍는 게 전부지만, 드라마 오디션을 보기 위해 준비도 꾸준히 하고 있었다.

       분명 재능도 있으니, 아역을 몇 개는 충분히 맡았을 만도 한데…….

       

       “그러고 보니, 너 소속된 곳이 어디야?”

       “나?”

       

       그런 서연의 말에 이지연은 경계 어린 눈으로 보았다.

       설마, 자신의 보금자리마저 침범하려는 건지 묻는 눈이다.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거야.”

       “흐응, 뭐어 그렇다면.”

       

       그리고 이어 이지연은 자신의 소속사를 내게 말해주었다.

       

       은하 엔터.

       그 말을 들은 후에야, 서연은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이지연이 이후, TV에 모습을 비추지 않은 이유를.

       

       ***

       

       태양을 숨긴 달의 촬영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서연의 문제로 한동안 버벅였던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벌써 2화 막바지 씬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사실상 3화까지 남은 촬영은 10회도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한동안 몰아찍은 것 같은데……, 서연 양 지친 기색도 없죠?”

       “그러게요. 조금 쉬엄쉬엄하면서 하려 했는데.”

       

       스태프들은 그런 대화를 나누며, 막 연기를 끝마친 서연을 보았다.

       밀린 회차를 쭉 몰아서 촬영했음에도 쌩쌩한 얼굴이다.

       

       도리어, 함께 촬영한 박정우가 더 피로해보였다.

       심지어 촬영 횟수를 생각하면, 서연이 박정우보다 많았음에도.

       

       “감독님, 조금 텀을 두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요즘 너무 몰아 찍는 느낌인데요?”

       

       공정태 감독은 카메라 감독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그도 최근 너무 서연과 관련된 장면을 몰아서 찍은 감이 있었다.

       

       “하지만, 이게…… 정작 당사자가 원하니.”

       “그거야, 뭐 그렇긴 하죠.”

       

       그러니까 이주 전인가.

       서연이 슬그머니 공정태에게 다가와서 우물쭈물 말을 꺼냈다.

       

       “저, 감독님.”

       “네, 말하세요, 서연 양.”

       “혹시, 다른 분들도 괜찮으시면…….”

       

       서연은 정말 죄송하다는 얼굴로 공정태에게 한 가지 말을 꺼냈다.

       대략 정리하면, 여태 밀린 화수를 빠르게 찍고 싶다는 뜻이다.

       

       참 기특한 말이었으나, 동시에 선을 넘은 말이기도 했다.

       배우가 감독에게, 그것도 아역이 이런 말을 제안하는 경우는 보통 없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서연이 괜한 부탁을 할 아이도 아닌 터라, 우선 공정태는 이유를 들어보기로 했다.

       

       그러자 서연은 차분리 설명을 시작했다.

       

       “대본을 보면, 조금 감정선이 진한 장면이 두 개, 있는 것 같아요.”

       “S#24와 S#32, 말하는 거죠?”

       “네.”

       

       또박또박 말하는 서연의 말을 들으며, 공정태는 새삼 이 아이가 일곱 살이 맞나 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에겐 아직 자식이 없었으나, 명절에 본 사촌 아이들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였으니까.

       

       태도적으로나 어휘적으로나.

       아무튼, 공정태는 서연의 말에 대략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서연 양, 설마…….”

       “그, 비밀이에요. 그래서 그때 다음 연기까지 좀 쉬어야 할 수도 있어서…….”

       

       우물쭈물하며 말하는 것이 본인도 잘못했다는 걸 아는 눈치다.

       특히 그중 한 장면은 정은선과 함께 찍는 부분.

       

       이전에 한번 큰 트러블이 있었던 만큼, 공정태로선 썩 내키지않았다.

       

       ‘그때 이후로, 뭐라 말하신 적은 없지만.’

       

       하기야, 이후에 서연이 곧잘 연기를 잘하는 것을 보고 괜찮다 생각한 건지도 모른다.

       얼굴에는 계속 미묘한 감정이 느껴졌지만, 따로 말은 하지 않았으니까.

       

       ‘옛날 사람들은 이래서 곤란해.’

       

       요 몇 년, 아역들의 취급이 좋아지긴 했지만 한동안 말이 많았다.

       촬영장이나, 공연장에서 아역들을 착취하거나, 막말을 하는 이들이 종종 있던 탓이다.

       

       그래서 샤프롱이니 뭐니 하면서, 아이들을 관리해주는 이들도 따로 있을 정도였고.

       물론 정은선이 그런 이들과 같다는 건 아니었지만, 그녀가 말재주가 좋지 않고 어투가 날카로워 아이를 훈육하기에는 알맞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안다.

       

       ‘그래도…….’

       

       당연히 서연의 제안은 거절하는 게 맞다.

       솔직히 굳이 무리해서 연기할 필요도 없이, 지금 서연의 연기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

       하지만, 이 아이가 이렇게까지 부탁할 정도면 대체 어떤 연기를 펼칠지 궁금한 부분도 있었다.

       

       “그럼, 한 번 보고 결정하죠.”

       “네?”

       “말하자면, 서연 양은 연기를 위해서…… 그런 말을 하는 거죠? 그러니, 그 연기가 어떤지 봐야 검토해볼 수 있다는 겁니다.”

       

       어차피 촬영 스케쥴을 잡는 건 자신.

       서연의 부탁이든 뭐든, 그것을 결정하게 되면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온다.

       

       그럼에도 공정태는 서연의 연기를 한번 보고 싶었다.

       

       “……알겠어요.”

       

       서연은 그런 공정태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호흡을 깊게 내쉬며 눈을 감았다.

       아직 감정을 잡는 것에는 시간이 걸렸으니까.

       

       그리고.

       

       “……허어.”

       

       이윽고 서연의 연기가 끝난 후.

       공정태는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한번 해볼만 하다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등록한 줄 알았는데, 제대로 등록이 안됐네요. 큰일 날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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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nt to Be a VTu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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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I definitely just wanted to be a VTuber... But when I came to my senses, I had become an a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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