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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

       자, 상황을 정리해보자.

       

        몇명인지 모를 많은 사람들이 빌런, ‘꿈속을 걷는자’에게 붙잡혔다.

       

        거짓된 세계, 회색빛 도시엔 나를 비롯한 현실 세계의 주민들은 저마다의 ‘캐릭터’를 부여 받는다. 그 뒤로는 기억을 점차 잃어가고.

       

        꿈속의 나는 회색빛 도시에 살아가는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썩 특색 없는 심심한 역할을 담당한 셈이다.

       

        나조차 자아를 잃어가는 상황에서 큰 도움을 준 것은 수첩…… 그러니까 내가 쓴 ‘일기’다. 

       

        ……아마 나와 달리 다른 사람들은 속절없이 이 꿈속 세계에 ‘동화’되어가고 있겠지.

       

        중요한 건 이 다음이다.

       

        꿈을 나가기 위해선 ‘호스트’라는 꿈의 주체를 찾아, 빌런과의 동화를 해제한 뒤, 빌런 ‘꿈속을 걷는자’를 처치해야한다.

       

        참 빌어먹게 어려운 일이었다.

       

        “…….”

       

        꿈의 주체인 ‘호스트’를 찾는 건 둘째로 넘기더라도, 어떻게 빌런과의 연결을 끊으라는 건지. 적어도 그 방법이라도 알려주던가?

       

        거기다 최후엔 빌런을 쓰러트려야 이 회색빛 도시, 그러니까 꿈을 나갈수 있단다.

       

        문제는…….

       

        “빌런, 꿈속을 걷는자. 그놈이 과거의 Z급 히어로라는 것.”

       

        Z레벨의 히어로는 강하다.

       

        아니, 그냥하는 말이 아니다. 정말 바다를 가르고, 산을 두동강 내는 정신나간 힘을 지닌 이들이 바로 그 ‘랭커’니까.

       

        인도를 걷던 나는 슬쩍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회색빛 가득한 침침한 분위기의 세계다. 이런 하나의 ‘꿈속 세계’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그가 얼마나 강할지 잘 표현하는 장면이 아니겠나.

       

        “……물론,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사실대로 말하자면 히어로 아카데미는 물론, 나 역시 ‘꿈을 걷는자’에 대한 방비가 전무하던 상태다.

       

        왜냐고? 그놈은 원작을 기준으로 후반부는 되어야 온갖 떡밥과 함께 나타나는 놈이거든. 퍽 게으른 내가 벌써부터 준비를 했을리가.

       

        팔락.

       

        ‘과거’의 내가 남긴 수첩을 펼쳐보았다.

       

        나 역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놈의 능력에 당해 자아를 잃은 채로 이 회색빛 세계에 들어와있었다.

       

        이 수첩이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상황에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동아줄인 셈이다.

       

        [ 히어로 아카데미 종합 병원. ]

       

        “…….”

       

        깊은 고민과 함께 걸음을 옮기니 어느덧 새하얀 병원의 외벽이 시야에 밟혔다.

       

        히어로 아카데미 최대의 병원인 만큼, 이 회색빛 도시의 주민들이 아주 많이 보였다.

       

        [ D급의 <현상 거절> 임혜성. 즉 나는, 아내와 아이가 없다. ]

       

        “그 여자는 누구지?”

       

        상황을 인지하고 나니 이제는 내 아내라는 사람이 궁금해졌다.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마치 의식이 차단된 것처럼 희미하게 모자이크화 된 얼굴이 기억에 떠오를 뿐이다.

       

        수첩에 적힌 내용대로라면, 내 아내의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은 원작, <히사있>의 ‘등장인물’일 가능성이 아주 높아보였다.

       

        그런데 말이다.

       

        “분명 술을 먹지는 않았는데…… 나한테 ‘여보오—’ 하던 게 기억에 있는데.”

       

        며칠 전부터의 기억과 오늘 아침 있었던 일이 절로 생각났다.

       

        무슨 익숙한 부부처럼, 나름 자연스럽게 나를 ‘여보’라 부르던 건 ‘동화’의 영향일까, 아니면.

       

        “설마…… 애정결핍 환자는 아니겠지?”

       

        그리 중얼거리며 병원 내부로 진입했다.

       

        종합 병원의 응급실. 그곳에 내 ‘아내’라는 사람이 있었다.

       

        * * *

       

        와락!

       

        “여보! 어, 어떡해요? 어떻게 해야…… 우리 하늘이를!”

       

        한유리는 응급실에 나타난 남편에게 힘 없이 매달렸다.

       

        자신이 아이가 아프게 된 원인이라는 사실이 그녀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는 것만 같았다.

       

        “진정해. 여긴 병원이야.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곳이니 벌써 슬퍼할 필요는 없어.”

        “……!”

       

        나름 이성적이고, 현실을 직시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한유리의 귀에 천둥처럼 울렸다.

       

        그 지독하게 정 없는 말투에 한유리의 턱이 잘게 떨렸다.

       

        “다, 당신. 어떻게 그렇게 침착할 수가 있는 거에요? 네?”

       

        믿기지 않았다.

       

        그의 성격이 무뚝뚝하고, 표현이 서투를 뿐 그녀와 두 아이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찌 사람이 저런 말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덥썩!

       

        “……!”

       

        그런데, 얌전히 그녀를 응시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던 남자가 갑작스레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너 누구야?”

        “이, 이게 무슨 짓이에요? 부부 사이라고 해도, 최소한의 예의가……!”

       

        한유리는 낑낑대며 그의 손을 놓으려고 애썼다.

       

        이상했다. 조금 무미건조한 사람이라고 생각은 했는데, 이건 마치 그가 아니라 타인의 사건을 보는 ‘방관자’처럼 보이지 않나!

       

        “정신차리고 생각해. 너는 누구야? 네 이름은 뭐지?”

        “……그게 무슨 바보같은 소리에요!”

       

        답답하고, 믿을 수 없는 현실에 한유리가 빼액! 소리를 내질렀다.

       

        “당신의 아내이자, 하늘이와 소미의 엄마죠! 제 이름은……!”

       

        남편이라는 작자가…… 아픈 아이가 있는 응급실에 찾아와, 고작 묻는다는게 자신의 이름이라는 현실에 절로 눈물이 흘렀다.

       

        “제 이름은…….”

       

        그런데, 이상했다.

       

        모르겠다. 정말 문자그대로,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떠올릴 수 없었다.

       

        “이름… 내 이름……?”

       

        퍼뜩 정신이 들었다.

       

        이름을 모르겠다. 자신의 이름은 물론, 무얼하던 사람인지, 어째서 병원에서 만난 남편과 실랑이를 벌이는지도.

       

        “생각보다 ‘동화’의 진행도가 빨라. 생각하고 떠올려. 네가 원래 뭘하던 사람이고, 이름이 뭔지.”

        “……!”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한유리는 남편이 시키는대로 잠자코 고민했다.

       

        “나, 나는…….”

        “너는 누구지? 네게 진짜 소중한 사람이 누구지?”

        “소중한… 사람?”

       

        스윽.

       

        몸을 돌린 한유리가 피곤에 지쳐 잠에 든 두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하늘, -소미. 사랑스러운 그녀의 두 아이는 자신, 남편과 달리 곤히 자고있었다.

       

        “내게 소중한 사람은…… 가족이에요.”

        “하아.”

       

        한유리의 확신 가득한 대답에 그녀의 남편이 짙은 한숨을 내쉰다. 그 모습을 보니 너무 서럽고 슬퍼, 한유리는 먹먹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요. 두 아이도, 당신도. 너무 사랑하는…….”

       

        지금의 상황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건 변하지 않는 마음이었다.

       

        그녀는 남편과 아이들을 사랑한다.

       

        “네 마음은 잘 알아. 다시 묻겠어. 내 이름은 뭐지?”

        “당신의 이름?”

       

        눈물을 훔치던 한유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런 질문을 왜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답이 뻔한 질문이었다.

       

        그의 이름은…….

       

        “……아?”

       

        당연한 질문에 답을 할 수가 없다.

       

        한유리는 그 기괴하고 기묘한 감각에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숨이 턱 막히는 감각을 느낀 한유리가 멍한 얼굴을 하고 있는데, 다시 한번 그녀에게 질문이 날아들었다.

       

        “질문을 바꾸겠어. 네 아이, 아니… 우리 아이의 이름은?”

        “그건 당연하잖아요. 하늘이와 소미잖아요?”

        “그래. 그러면, 이 두 아이의 성은 뭐지?”

        “……성?”

       

        다시 한번 숨이 턱 막혔다.

       

        두려움 가득한 얼굴의 한유리는 남편을 바라보았다.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는 모자이크. 그 기이한 형상을 한 남자는 수첩을 들어 읽고있었다.

       

        수첩에 도대체 뭐가 적혀있길래……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하는걸까.

       

        “두 아이의 이름은 ‘임하늘’과 ‘임소미’. 그리고 내 이름은…… ‘임혜성’이다.”

        “……어라?”

       

        임혜성.

       

        마치 처음 듣는 것 같은 이름이 좀처럼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흐릿한 기억 속의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은 아주 고마운 사람이었다. 그녀의 소중한 친구를 구해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친구?

       

        “친구. 친구. 친구. 친구. 친구?”

       

        마치 고장 난 로봇처럼, 한유리가 넋이 나간 얼굴로 같은 단어를 반복해 중얼거렸다.

       

        “……?”

       

        그 광경이 퍽 무섭게 보여 임혜성이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는데.

       

        “소중한…… 친구. 내 소중한 친구인 송수아를 구해준 사람.”

        “……뭐?”

        “내, 이름. 내 이름은…….”

       

         마치 알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오려는 어린 병아리처럼.

       

        숨을 몰아 쉬던 한유리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한유리. 아카데미의 회장이자, ‘랭커’. 창조의 힘을 다루는 창조술사.”

        “한유리? 설마 내 아내를 자처하던 사람이 <재창조>의 한유리, 너라고?”

       

        황당함 가득한 임혜성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그와 동시에 흐릿한 ‘모자이크’가 일그러진다.

       

        한유리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녀가 진심으로 사랑하고, ‘여보’라는 닭살 돋는 호칭으로 부르던 남자가 누구였는지.

       

        또 흐릿한 모자이크 너머에 어떤 얼굴이 있고, 어떤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는지.

       

        “<현상 거절> 임혜성. 다, 당신…….”

       

        한유리의 턱이 덜덜 떨렸다.

       

        비단 모종의 ‘금제’가 풀려, 지난 며칠간의 기억이 마구 샘솟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한유리, 너였어. 모자이크가 걷혀서 이제 제대로 보인다.”

       

        그에게도 무언가 변화가 찾아온 건가?

       

        여유 가득한, 항상 뻔뻔하고 능글맞은 그의 미소가 자신을 향한다. 

       

        “이, 이게…… 뭐죠? 아니, 왜 기분이?”

       

        그 미소를 마주본 한유리는 난생처음 느껴보는 감각에 제정신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가슴이 고장이 난것처럼 쿵쾅거린다.

        호흡이 가파르고, 현기증이 인다.

       

        갑자기, 그녀는 왜…… 저 남자가 이토록 사랑스러워 미칠 것만 같은 거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은 연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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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iding My Power at Hero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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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Hero. Everyone admires them as they wield supernatural powers that defy the laws of physics. The ability I possess is to 'reject' those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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