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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

       터벅터벅―

       

       익숙한 발걸음이다.

       

       당연하다.

       

       자신의 발이 터벅터벅 움직이는 건데 안 익숙할 리가 있겠는가.

       

       하지만 마하나는 오늘따라 유난히 제 발이 무겁다고 생각하였다.

       

       쌓인 피로와 스멀스멀 몰라오는 육신의 고통 때문에 그런 걸까?

       

       아니, 아닐 것이다.

       오늘 이상으로 상처를 입었던 날도 없었던 건 아니었으니까.

       

       ‘……춥다.’

       

       마하나는 밤공기가 싸늘하다고 생각했다.

       

       묘인족인 그녀는 평범한 사람보다 체온이 높고 열 보존율이 높다.

       

       당연히 지금도 생체 난로처럼 후끈후끈할 텐데 유독 춥다고 여겨졌다.

       

       ‘…보고 싶다.’

       

       원래도 그랬지만 유독 그리웠다.

       다시 한번 냄새를 맡고 있었다.

       돌아가신 소중한 아빠를…말이다.

       

       ‘…아버지라고 말해야 하려나.’

       

       잘 익숙해지지 않는다.

       항상 아빠-! 라고만 불렀으니까.

       그래도 더는 아이도 아니니까 아버지라고 부르는 걸 연습해 보기로 한다.

       

       마하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어린 시절의 추억으로 서서히 빠져들었다.

       

       기억도 안 나는 갓난아기 시절.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편부 가장에서 자란 그녀는 항상 아버지의 등을 보고 자랐다.

       

       ‘…대단하셨지.’

       

       아버지는 길드에서도 알아주는 뛰어난 탱커셨다.

       

       클래스는 【중기사】.

       

       메인 탱커로서 최고라 평가받는 【가디언】의 하위호환이라는 말을 듣는 마이너 클래스지만.

       

       포기하지 않은 아버지는 끊임없는 노력 끝에 남자라는 한계를 벗어나셨다.

       

       그렇게 모두가 인정하는 A급 헌터로서 명성을 떨쳤다.

       

       ‘…비록 천외천의 영역인 S급은 가지 못하셨지만.’

       

       모두가 아버지를 신뢰하였고, 좋아하였다.

       

       마하나 또한 그런 아버지를 동경하였고 언젠간 그처럼 든든하게 방패를 내세워 모두를 지키는……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소망했다.

       

       따라서 그녀가 【가디언】의 업(클래스)를 선사 받은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마하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교단’에서 가디언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부리나케 달려와 아버지에게 행복한 목소리로 외쳤던 그 순간을.

       

       ‘…그리고…’

       

       아주 잠깐이지만 너무나도 서글퍼하셨던 아버지의 얼굴을.

       

       아마 아셨던 걸 거다.

       

       자신에게는 탱커의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몇 년 뒤.

       

       아버지는 병마로 돌아가셨다.

       

       장례를 마친 마하나는 살아생전 아버지가 골라주셨던 방패를 들고 속으로 다짐하였다.

       

       이 작디작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파티원을 지키는 방패가 되겠다고.

       

       하지만 현실의 냉혹함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터벅터벅―

       

       ‘…미련했지.’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작은 체구와 빠른 속도에 어울리는 <암살자> 계통 클래스가 나왔더라면 어쩌면 지금보다는 좀 더 상황이 좋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피식.

       

       “…바보 같아.”

       

       어리석은 생각이다.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녀가 지금까지 노력했던 근원은 아버지에 대한 동경이다.

       

       탱커에 대한 소망이자 바람이다.

       

       만약, 천운이 내려와 다른 길이 생겼더라도 필시 무너졌을 거다.

       

       ‘어라. 그러면 피차 똑같네.’

       

       결국, 자신의 결말은 처음부터 정해진 모양이다.

       

       그저 던전에서 씁쓸하게 죽느냐…아니면 꿈을 포기하고 삶을 연명하느냐.

       

       뚝. 뚝.

       

       마하나는 본인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다.

       

       아집이었다.

       오랜 망집이었다.

       

       ‘…바보…등신…머저리…’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재능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의 꿈만을 위해 어떻게든 다른 이들에게 빌붙었던 거다.

       

       처음에는 웃으며 반겨주던 파티원들의 시선이 경멸과 분노로 변하는 그 얼굴을 보면서도 자신은 계속 매달렸다.

       

       ‘…하지만…’

       

       더는 그럴 수 없다.

       

       문보라.

       

       오늘 처음 만난 그녀는 실망했던 다른 이들과 다르게 손찌검이나 욕설 같은 건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그 어떤 이들보다 아팠다.

       

       ―지금은 도저히 당신의 등을 보고 따라갈 수 없을 것 같네요.

       ―나쁜 말은 하지 않을게요. 마하나씨.

       ―방패…내려놓으세요.

       

       그냥 듣기에는 비난의 말 같지만, 마하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문보라의 눈에 담긴 뜻을.

       바로 자신의 목숨을 걱정하던 따스함이었다.

       

       그리고 그 따스함이 무엇보다 아프게 가슴을 헤집어놓았다.

       

       오늘 처음 본 상대에게 동정받았다.

       

       그 동정이 결코 값싼 동정이 아닌, 진심으로 우러나오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자신은 탱커로서 실격이다.

       

       ‘…아니…’

       

       헌터로서 자격 실격이다.

       

       그러니 내려놓기로 마음먹은 거다.

       오랜 세월 지박령처럼 붙어있던 욕망을 떨치기로 마음먹은 거다.

       

       그걸 위해서 직원 언니에게 말을 걸었다.

       공적치가 올랐음에도, 브레이크 아웃이라는 재앙조차 막아내 영웅 대접을 받을 수 있음에도 조용히 떠난 이유가 그거였다.

       

       ‘…내 목숨을 위해서가 아니라.’

       

       문보라.

       

       그리고 오늘 하루, 조금의 실망 없이 자신을 믿고 따라와 주었던 유세하라는 남자의 목숨을 위해서다.

       

       

       * * *

       

       

       딸랑딸랑―.

       

       가게 문틈에 달린 방울이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호탕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어서 옵쇼~! 혜자 같은 마음의…음?”

       

       목소리의 주인은 태양 빛에 잘 그을린 구릿빛의 피부를 가진 적색 머리의 여성이었다.

       

       한쪽 눈에 안대를 찬 여성은 나르던 짐을 내려놓고 들어온 손님을 확인하자 바로 화색을 띠었다.

       

       “이거 므냥이잖아!”

       “…안녕. 마스터.”

       

       손님의 정체는 바로 마하나.

       

       집으로 돌아가려던 그녀는 방향을 꺾어 이곳 대장간으로 향한 것이다.

       

       여성은 마하나를 보자마자 쓰고 있던 안대를 내려놓았다.

       

       눈에 상처가 있다거나 특이한 동공을 한다던가 없이 그저 패션으로 끼고 있던 안대였다.

       

       지켜보던 마하나도 ‘이건 좀…’ 거리며 떨떠름하게 바라보았다.

       

       “…마스터. 그 중2병 안대…아직도 차?”

       

       “어허! 중2병 안대라니! 이게 얼마나 간지나는데. 이걸로 멋지다고 졸졸 따라다니는 녀석들이 한 트럭이었다고!”

       

       “……”

       

       “어허! 므냥아. 그런 똥 씹은 표정 지으면 못써!”

       

       호탕하게 웃던 여자는 곧 마하나에게 달려갔다.

       

       그것을 본 마하나.

       

       놀란 고양이처럼 움찔거리며 뒤로 한 발짝 빼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와락―!

       

       그대로 붙잡힌 채 강제로 볼 부비부비 처벌을 당하고 말았다.

       

       “아이고 볼따구 말랑하네!”

       “…마, 마스터…숨, 숨 막혀…”

       “엄살은! 그리고 마스터가 아니라 혜자 언니라고 부르라니까!”

       “므아아아…”

       

       짧게 비명을 내지른 마하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눈앞에 보이는 30대 초반의 여성.

       

       이름 임혜자.

       

       이곳 대장간의 주인이다.

       

       동시에 마하나에게 있어 유일하게 남아있는 가족이라고 말할법한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동료였던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만나온 사이였고, 돌아가신 이후로도 계속해서 챙겨주는 고마운 인연이었다.

       

       여기에 정을 떠나 능력만 봐도 대단한 사람이다. 차기 마스터의 자리를 노릴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감도는 사람이니까.

       

       임혜자의 클래스는 무려 【블랙스미스】로 생산계 직업 중 귀족이라고 부를만한 좋은 클래스였다.

       

       여기에 황금 같은 재능을 가졌으니 성공하지 않는 게 더 이상하겠지.

       

       ‘…마치 오늘 본 별빛 같은 남자. 유세하처럼…’

       

       하지만 신은 공평하다고.

       

       임혜자는 장사에 지지리도 소질이 없어서 가게에 언제나 파리가 날렸다.

       

       본인은 단골은 꾸준히 다녀주니까 매출 자체는 괜찮다고는 하는데…마하나 입장에서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물론 내가 그리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자, 므냥아. 언니! 언니 해봐! 어서!”

       “…어, 언니…”

       “그렇지!!!”

       

       쭈우욱―!

       

       “므아아…볼 당기지 마…”

       “아이고 귀여워. 아 참! 내 정신 좀 봐.”

       

       뭐가 그리도 급한지 임혜자는 마하나가 뭐라 하기도 전에 가게 안에 있는 선반으로 달려나갔다.

       

       그러고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둥그스름한 보석을 가져왔다.

       

       거대한 진주처럼 생긴 투명한 보석에 마하나의 얼굴도 놀라움으로 뒤바뀌었다.

       

       “마, 마스터…이, 이거 설마?!”

       “언니라고 부르라니까! 아무튼, 맞아 므냥아. 그거라고 그거!”

       

       보석의 정체는 <빛나리>라고 불리는 소켓용 보석.

       

       흔히 장비에 끼워 넣어서 특수효과를 부여하는 귀한 대접을 받는 아티팩트였다.

         

       그중에서도 이 <빛나리>는 마하나가 그토록 원하던 옵션을 가지고 있었는데.

       

       방패 안쪽이 투명하게 되어 적들을 살피고 대응하게 해주는 [투명 시야] 특성이 담겨있었다.

       

       그것도 오로지 마하나의 시점에서만 발동되었다.

       

       몸체만 한 대형 방패를 쓰는 그녀에게 있어 일방적으로 적을 살핀다는 것은, 전투에 있어서 엄청난 이점을 가지기에 그토록 가지고 싶어 하던 거였다.

       

       임혜자는 ‘헤…’하고 벌린 채 2개의 꼬리를 살랑거리는 마하나를 보며 코를 쓱 하고 닦았다.

       

       무리해서라도 구해두길 잘했다는 생각하며 팔짱을 낀 채 ‘흐흥~’거리며 말을 이었다.

       

       “우선 이거 빌려줄 테니까. 나중에 천천히 갚으면 돼. 어차피 길드 차원에서 헌터들에게 미리 장비 대여해주는……?”

       

       임혜자는 끝까지 말을 이으지 못했다.

         

       분명, 신나서 방방거려야 정상인 마하나가 씁쓸하게 미소짓고 있었으니까.

       

       “……므…냥아?”

       

       그녀는 대답 대신 등 뒤에 맨 방패를 넘기었다.

       

       “…음? 아, 수리? 그러고 보니 방패가 많이 상하긴 했…잠시만. 이, 이거 대체 뭐에 맞은 거야? 뭐 다른 각성자랑 대련이라도 했어?”

       

       “아니…그건 아니고…카파 라이노랑 싸우다가…”

       

       “아하, 카파 라이……뭐?!”

         

       경악하는 임혜자.

       

       사색이 된 얼굴로 마하나의 어깨를 붙잡고 속사포처럼 말을 이었다.

       

       “너너미쳤어!?무려C등급의보스몬스터를상대했다고!?”

       

       “…언니. 숨 좀 돌리고 말해.”

       

       “다, 다친 곳은? 세상에…멍투성이잖아!”

       

       “…므아아…은근슬쩍 가슴 만지지 마…”

       

       마하나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그래, 생각해보니 이 언니도 유세하랑 동류였다.

       

       그렇기에 그의 기행에도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 있었던 모양이다.

       

       이리 보면 유세하가 특이한 게 아니라 아예 이러한 무리가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 우당탕한 분위기가 계속 지속했으면 하지만.

       

       ‘…이제 말해야지.’

       

       적어도 가족이나 진배없는 그녀에게는 말해줘야 했다.

       

       “…언니 그것보다 나 진지하게 할 말이 있어.”

       “…응?”

       “나, 이 방패…수리하려고 넘긴 거 아니야.”

       “…응? 그럼? 아 소켓용 칸 만들려고-”

       “-아니.”

       

       마하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막상 입을 떼려 하니 잘 벌어지지 않았다.

       

       ‘정말로 이대로 괜찮아?’라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가슴을 아프게 헤집어놓는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바로 자신의 내면이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싫어.’

       

       이제는 지쳤다.

       더는 상처받기 싫었다.

       더는 민폐 끼치기 싫었다.

       

       “…나 방패 팔려고.”

       “……”

       

       그 말에 임혜자는 망부석처럼 굳어졌다.

       

       “…너, 설마?”

       “응…”

       

       마하나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

       

       “더는…못하겠더라고. 아프고…힘들고…생각해보면…좋은…일도……”

       

       더는 말을 이으지 못했다.

         

       눈앞의 시야가 뿌옇게 변하기 시작했으니까.

       

       “…어…어라?”

       

       왜 이러지.

         

       언니의 모습이 일렁거린다.

       

       “흐…흐흑.”

       

       결국, 울음보를 터트리고 마는 마하나.

       

       임혜자는 그런 그녀를 보며 한숨과 함께 조용히 안아주었다.

       

       등을 천천히 토닥여주며 생각한다.

       

       ‘그래 결국은……’

       

       우려하던 일이 오고 말았구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은 2연참으로 오겠습니다.

    선작과 알람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아직 누르시지 않은 분이 있다면 한 번씩만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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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Cheat-Level Munchkin 5★ Character

I Became a Cheat-Level Munchkin 5★ Character

사기급 먼치킨 5★ 캐릭터가 되었다
Score 6.4
Status: Ongoing Type: Author: ,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Gonis Archive Life》 ‘GAL’ for short. I found myself possessed into the world of this game. Not only that, but I became a 5★ character from the very start, The only male character with ridiculously OP abil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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