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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

       트릴 트릴로의 세상에 떨어진 첫날.

         

       내가 가장 놀랐던 것은 이곳이 게임 속 세상이라는 사실도, 내가 원더스타인이라는 사실도 아니었다.

         

       내가 적응하기 가장 어려웠던 것은…….

         

       띠딕.

         

         

       특성: 팔

       적용 부위: 어깨

       효과: 평범한 팔입니다.

       요구 자원: [데볼루트 16]

         

         

       너무나 어색한 내 몸뚱어리.

       평생 사용한 기억이 없는 생경한 것들이 내 몸에 달려 있었다.

         

       나는 일어섰고, 만졌고, 걸었고, 집었다.

         

       보통 사람들은 낯선 것을 마주 대하면 공포를 느낀다고 한다.

       내가 느끼는 이 이질적인 감각 역시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던 생소한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느끼는 감정은 두려움이 아니었다.

       그건 환희였다.

         

       착각이지만 순간 무언가가 폭발하는 소리를 들었다.

       저 밑바닥에서부터 억눌려 있던 무언가가 터져 나왔다.

       내 입에 그려진 미소는 결코 ‘웃는 남자’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홀로 섰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어떠한 도구의 도움 없이.

         

       1년에 몇십 번씩 꿈꿔왔던 그 감각.

       상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다.

       그래도 이것이 ‘진짜’임을 누구보다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쁜 건 기쁜 거고, 익숙하지 않은 것은 익숙하지 않은 것이었다.

       이 몸을 자연스럽게 다루는 데는 나흘이나 걸렸다.

         

       사실 나흘‘밖에’ 걸리지 않은 것이다.

       아기는 걸음마를 떼는 데도 몇 달이나 걸리니까.

         

       나는 새로운 것을 익히기보다 익힌 것을 깨닫는 과정을 거쳤다.

       사람 누구도 한 걸음 한 걸음을 생각하면서 걷지 않는다.

       사람 누구도 무언가를 집을 때마다 손가락 하나하나의 움직임을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의 몸을 움직이는 것은 기술이라기보다 몸에 새겨진 ‘버릇’ 같은 것이었다.

       걷고 뛰는 것은 하루도 안 되어서 금방 익숙해졌다.

       원더스타인의 몸이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젓가락질 같은 고등 동작은 적응하는 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

       그래서 며칠 동안 마차 안에서 혼자 식사를 해야 했다.

         

       그래. 고작 2년 반이다.

       원래의 삶에 미련은 없다.

       살면 좋지만, 죽어도 딱히 상관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몸은 오랫동안 누리고 싶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서, 2년 반을 꽉 채워서, 오랫동안 이 감각을 느껴보고 싶었다.

         

       띠딕.

         

         

       특성: 팔

       적용 부위: 어깨

       효과: 평범한 팔입니다.

       요구 자원: [데볼루트 16]

         

         

       “으아악! 진짜 팔이 여섯 개야!”

       “정말 그 거미 여인이었어! 잘못 본 게 아니야!”

       “징그럽잖아!”

       “어휴, 뭐 저렇게 생겼대.”

       “웩, 저게 사람 꼴인가.”

         

       불쾌한 축제의 현장.

       그 가운데 몸을 웅크리고 떨고 있는 여린 여인.

         

       나는 괴물서커스단의 단원들의 과거를 알고 있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게임에서 그들이 어떤 성장 과정을 겪었는지 충분히 정보를 제공했다.

         

       게임에서 그들의 과거를 봤을 때, 솔직히 나는 심드렁했다.

         

       내가 겪은 불행 때문일까.

       소재 자체의 불쾌함 때문이었을까.

         

       그들의 동기를 이해하면서도 공감하고는 싶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런 일을 겪었다고 다들 너희처럼 미친 살인자가 되지는 않거든?

         

       코웃음 쳤다.

       사연 팔이 한 번 우습다고.

         

       하지만 막상 이런 광경을 눈앞에 두자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불현듯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절이 떠올랐다.

         

       -어휴, 뭐 저런 꼴을 하고 돌아다닌대.

       -쉿, 왜 있잖아. 그 고발 프로그램에 나온 고아원에서…….

       -어이구, 쯧쯧. 저렇게 사느니 차라리 자살하지.

         

       사람들은 땅을 기는 벌레에게는 자비심을 보일 수 있지만, 날아다니는 벌레에게는 불쾌함을 느꼈다.

         

       그걸 고아원을 나오고 나서야 알았다.

         

       -살아남은 아이는 너뿐이란다.

       -원장은……자살했고…….

       -재단 쪽에서 남은 기금……억 원을 모두 너에게 지원…….

         

       어딜 가도 사람들이 알아봤다.

         

       그렇게 대대적으로 보도됐는데 못 알아보는 게 신기하겠지.

         

       내가 받았다는 원장의 유산과 기금을 노리고 접근하는 사람도 있었다.

       묘한 적대감을 가지고, 시비를 걸거나 아니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많았다.

         

       바닥을 기며 앵벌이를 할 때가 나은 점이 있었군.

       그때는 그냥 동정심뿐이었잖아.

         

       -혼자 밥을 먹을 순 있니?

       -혼자 화장실은 갈 수 있어?

         

       띠딕.

         

         

       특성: 다리

       적용 부위: 골반

       효과: 평범한 다리입니다.

       요구 자원: [데볼루트 24]

         

         

       입술이 비틀렸다.

       [웃는 남자]는 여전히 내게 미소를 강요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웃고 싶지 않았다.

         

       그녀를 바라보며 그런 표정을 짓고 싶지 않았다.

       아니, 적어도 그녀에게 그런 표정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아이 트래커는 익숙해지면 마우스나 키보드보다 훨씬 빨라요.

       -매일 복지원에서 도우미분이 오실 겁니다.

       -신변처리나 식사는 매일 일정한 시간에…….

         

       띠딕.

         

         

       특성: 다리

       적용 부위: 골반

       효과: 평범한 다리입니다.

       요구 자원: [데볼루트 24]

         

         

       호감도 같은 것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으로서 그녀에게 그런 얼굴을 보이기 싫었다.

       그녀의 주변을 둘러싼 이 쓰레기들과 같은 표정을 짓기 싫었다.

         

       띠딕.

       띠딕.

       띠딕.

       띠딕.

         

         

       특성: 팔

       적용 부위: 어깨

       효과: 평범한 팔입니다.

       요구 자원: [데볼루트 16]

         

       특성: 팔

       적용 부위: 어깨

       효과: 평범한 팔입니다.

       요구 자원: [데볼루트 16]

         

       특성: 다리

       적용 부위: 골반

       효과: 평범한 다리입니다.

       요구 자원: [데볼루트 24]

         

       특성: 다리

       적용 부위: 골반

       효과: 평범한 다리입니다.

       요구 자원: [데볼루트 24]

         

         

       유라크네가 처한 상황이 그 시절의 기억을 불러일으켰다.

       그 시절에 내가 가장 바랐던 것들.

       나에게 없던 것들.

       내가 가지고 싶은 것들.

       진화연구소는 제멋대로 그것들을 계산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어떤 불쾌한 감정을 느끼건 웃는 남자에게 저항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는 미소지었고, 나를 바라보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단장…님……?”

         

       시끌벅적해서 그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입 모양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두 눈동자가 절망에 물들어가는 것도 확실히 보였다.

         

         

       ***

         

         

       ‘그런 거였구나.’

         

       유라크네는 단장의 미소를 본 순간 모든 것을 알아차렸다.

       왜 그가 아까부터 자신의 실수를 관대하게 넘겨주었는지.

       왜 그가 굳이 자신을 따라오고 싶어 했는지.

         

       그는 단순히 육체적 폭력을 가하는 것보다 사람을 더 아프게 만드는 법을 알고 있었다.

       

       처음 그와 만난 날.

       술에 취해 그에게 자신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모두 털어놓았다.

         

       가장 괴로운 기억을 빼고 모두 말했다.

       어렸을 때, 마을 사람들에게 끌려 나와 철창에 갇힌 채, 돌멩이 세례를 받았던 이야기도 말했다.

         

       그는 그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걸 재현하는 것이 그의 속셈이었다.

         

       “역겨운 괴물 년!”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와!”

         

       그날과 같았다.

       증오에 가득찬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린치의 대상이 됐다.

       그날과 다른 점이 있다면, 사람들 앞을 막아서 줄 남편이 없다는 것이다.

         

       퍽. 터덕. 철퍽.

         

       썩은 조갯살.

       생선 대가리.

       깨진 소라 등.

         

       온갖 냄새나고 지저분한 오물이 그녀의 몸을 때렸다.

       그녀는 가만히 고개를 숙인 채 폭력을 감내하는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뭐 어떻게 반항을 하려 든다면 사람들이 더 무자비해진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견뎌야 했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아팠다.

       맞는 부위보다 가슴이 너무 아팠다.

         

       저기 불빛 아래 군중 속에서.

       단장은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웃고 있었다.

         

       그는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저 자신이 절망하는 모습을 보고 즐기고 있었다.

         

       사람을 벌레처럼 짓밟고, 괴물로 개조하는 것을 보며 웃음을 흘리던 악마.

       나는 그에게 무엇을 기대했던 걸까.

         

       악마를 믿지 말라고 했잖아.

       넌 바보구나.

         

       알고 있어.

       알고 있는데…….

       그래도 있지…….

       그래도 말이야…….

         

       “괴물은 꺼져라!”

         

       그때, 누군가가 묵직한 그물추를 주워 그녀에게 던졌다.

       아까 맞은 따개비나 생선 따위와는 달랐다.

       쇠로 만들어진, 정말로 사람을 다치게 만들 수 있는 물건이었다.

         

       아아, 저건 엄청 아프겠지.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래. 차라리 여기서 한 번 피를 본다면, 사람들이 주춤해지겠지.

       침을 탁 뱉고 재수없다고 말하며 돌아설 확률이 높아.

       그동안 엉거주춤 상황을 보고 있던 사람 몇 명이 튀어나와 이제 그만합시다 하고 때늦은 양심가 행세를 할 거야.

       몇 번 그랬으니까.

       늘 그랬으니까.

       그 정도로 그칠거야.

         

       한 번만 맞아 준다면…….

         

       퍽.

         

       둔탁한 타격음.

       그러나 유라크네는 아무런 충격을 받지 않았다.

         

       그물추는 그녀에게 닿지 않았다.

       무언가에 가로막혔다.

       사람 주먹만 한 쇳덩어리가 바닥에 굴러떨어졌다.

         

       “후후, 이거 좀 아픈데요.”

         

       심각한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

         

       설마……설마…….

       살며시 눈을 뜬 그녀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구두였다.

       익숙한 검은색 구두.

         

       그럴 리 없어.

       착각이겠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검은색 바지에 검은색 재킷, 그리고 검은색 망토까지.

       새벽 어시장에 입고 올 만한 복장은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그 남자는 언제 어디서나 그 복장을 고수했다.

         

       프랑크 원더스타인.

       그가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

       그의 이마에는 한 줄기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날아오는 쇳덩이를 그대로 받은 것이다.

         

       피는 붉구나…….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

         

       그는 그녀를 돌아보며 미소지었다.

       전혀 아프지 않은 듯.

       

       “괜찮으신가요?”

         

       -괜찮아?

         

       그날과 같았다.

       남편과 처음 만나게 된 그 날과.

       남편도 사람들 앞을 막아서서 그녀를 지켜주었다.

         

       하지만…….

       하지만 그가 왜?

       

       “이 이상 제 아내에게 무언가를 한다면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원더스타인에게 화를 내는 기색은 없었다.

       그저 웃으며 나직이 말했을 뿐이었다.

       그의 외모나 행동 무엇하나 위협적인 게 없었다.

         

       그러나 그를 보는 사람들은 그의 웃음에서 서늘한 살의를 느꼈다.

         

       소름 돋을 정도로 잘생긴 미남자.

       상황과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친절한 미소.

       그것이 사람들에게 공포를 느끼게 했다.

         

       불처럼 타오르던 군중의 광기 어린 열기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더는 유라크네에게 덤벼드는 사람이 없었다.

         

       “이만 떠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그가 손을 내밀었다.

         

       유라크네는 그가 방금 내뱉은 말을 곱씹어 보았다.

         

       아내.

       그 순간 원더스타인의 커다란 등에 남편의 그림자가 겹쳐졌다.

         

       잡지 마.

       이것도 수작이야.

       또 속으려고 그래?

         

       “저……더러워요…….”

         

       오물로 뒤덮인 자신의 몸.

       해산물 비린내가 가득하다.

       손을 잡기는커녕 가까이하기도 싫은 꼴이다.

         

       항상 깔끔한 정장을 고수하던 그가 이런 걸 견딜 리 없었다.

         

       아, 이것도 혹시 함정일까?

       이 상태로 그에게 다가간다면, 냄새난다고 손을 휘둘러 목을 날려버리는…….

         

       저벅저벅.

         

       그가 자신에게 다가왔다.

       입에는 여전히 미소가 걸려 있다.

         

       그는 허리를 숙이더니 그녀의 몸에 붙은 지저분한 것들을 대강 털어냈다.

       정장이 더러워졌지만, 그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몸을 살피며 그녀가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 물었다.

         

       “돌아가죠. 우리들의 숙소로.”

         

       너무나도 환한 미소.

         

       눈물이.

       눈물이 흘렀다.

       유라크네의 뺨을 타고 흐르는 두 줄기의 별빛.

         

       같은 눈물이었지만, 아까와는 전혀 다른 의미의 것이었다.

         

       “네……여보…….”

         

       유라크네는 그의 부축을 받고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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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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