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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

       * * *

       

       

       북만주

       

       

       적백내전이 터지고 러시아인이 북만주로 피난을 오며 군대도 간혹 보이자 봉천을 거점으로 둔 군벌 동북 3성 순열사 장쭤린은 러시아와의 국경인 북만주에 군대를 배치했다.

       

       그렇게 배치된 봉천군은 최근 매일 같이 러시아군을 구경하고 있었다.

       

       뭐 오늘내일 만주를 통해 내전의 지원을 받는 백군이었으니 이상할 것도 없는 노릇이지만, 최근에는 대놓고 이곳을 정찰하는 느낌이 강했다.

       

       

       “러시아군이 최근 자주 보이지 않냐?”

       “걔네 미국에게서 보급받잖아. 그것 때문이겠지.”

       “헤헤. 그럼 우리도 조금 뜯어먹으면 되겠구먼. 통행료로 말이야.”

       “그거 좋겠네.”

       

       

       비적 출신의 음습함을 숨길 수 없는 봉천군이 이번에도 좀 해먹자 이런 생각을 할 무렵.

       

       뭔가 말을 탄 군대가 저 멀리서 달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저것들 뭐지. 기마군단인데?”

       “대체 어느 소속. 잠깐 왜 멈추지 않아?”

       

       

       이번 러시아군은 이상했다.

       

       자신들을 알지 못 하는 언어를 쓰는 백인도 있었지만, 자신들과 같은 중국어나 만주어를 쓰는 황인종도 있었다.

       

       

       “중국 비적 떼들을 토벌하고 북만주의 러시아인들을 지켜라!”

       

       

       중국에서는 들을 수 없는 다양한 언어의 군대. 깃발을 보면 러시아의 군대가 맞지만, 봉천의 병사들은 설마 하니 러시아군이 남하할 거라는 생각도 못 했다.

       

       아니, 애초에 운 게른의 군대는 러시아 백군 정규군이라 보기에는 미묘했다. 북만주로 진입한 것은 그가 길러 낸 아시아 기마사단이었으니까.

       

       

       “수.순열사께 전령을 보내야.”

       “이.일단 막아!”

       “이놈들. 감히 몽골제국을 계승한 대러시아에 반기를 들다니! 만주는 몽골의 영역이자 정당한 러시아의 강역이다!”

       “무슨 개솔-”

       

       

       이 무렵, 호법 전쟁에도 참전하고, 만주에서 기세를 떨치는 장쭤린의 봉천군이었으나. 그 한계는 명확했다.

       

       이들은 동북지방에서 마적질이나 소규모 전투밖에 경험하지 못해 전투력도 뒤떨어졌다.

       

       운게른의 기마사단이라고 해서 규모가 많은 건 아니지만, 폴란드인, 러시아인, 부랴트인, 타타르인, 바시키르인, 몽골인, 일부 중국인, 만주인, 기타 다양한 민족구성을 이루고 있는 이 군단은 운 게른의 지휘 아래에 뛰어난 기마술을 운용해 순식간에 봉천군을 두들겨 팼다.

       

       중러국경에 배치된 장쭤린의 봉천군은 도둑에게 지갑 털리는 것마냥, 탈탈 털렸다.

       

       다른 군벌과 대치하느라 주병력을 주둔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수만 명에 달하는 군대가 운게른의 수천에 죽거나 도망을 쳐 대면서 처참한 패배를 맛보았다.

       

       이것을 운게른은 어디까지나 분쟁으로 치부해버렸다.

       

       북만주가 이렇게 운게른의 손에 넘어가 버리지만, 동북 3성 순열사 장쭤린은 이곳을 탈환할 수 없었다.

       

       

       “개자식들!”

       

       

       운게른의 군대는 머릿수만 따지면 봉천군에 비해 한참 떨어지지만, 전투력에서 큰 차이가 장쭤린은 이 운 게른과의 전투에서 소모될 군대를 생각해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운게른을 무찌른다면 내전에서 우위를 점하는 러시아 백군이 그것을 명분으로 만주에 남하해 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무엇보다 러시아의 뒤에는 열강도 있었다.

       

       장쭤린은 일본에 연락해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군사적 개입보다는 러시아와의 만주분할로 계획을 잡던 일본으로선 굳이 열강들이 묵인한 북만주 일로 봉천 군벌을 도울 생각도 없었다.

       

       실제 역사라면 길림독군 명언위안을 축출할 계획을 짜고 있을 장쭤린이었으나. 이번 사건으로 꿈도 못 꾸게 되었다.

       

       애초에 봉천이 기반인 장쭤린에게 운게른의 기습으로 빼앗긴 땅은 앞마당이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이 무렵, 장쭤린은 길림독군 명원위안을 축출하기 전이라 동북 3성에 완전한 세력을 떨치던 것도 아니었다.

       

       운게른의 남하는 호법 전쟁으로 승승장구하던 장쭤린에게는 상당히 큰 타격이었다.

       

       

       “장쭤린 꼴 좋구나!”

       

       

       한편, 장쭤린의 견제를 받으며 몰락하고 있던, 길림성에 기반을 둔 길림독군 명언위안은 이번 일로 러시아 백군에 큰 감명을 받고, 장쭤린에게 축출당하던 원래 역사와 달리, 반대로 러시아 백군에 줄을 댔다.

       

       

       * * *

       

       

       

       북만주가 손에 넘어왔다.

       

       

       “이게 왜 되냐. 왜 가능?”

       

       

       운게른 말로는 만주 비적 수장인 장쭤린의 비적떼를 토벌하고 북만주에 제국의 삼색기를 꽂았다고 한다.

       

       지금은 하얼빈의 빨갱이들을 두들겨 잡고 있다고 한다.

       

       장쭤린은 남만주로 퇴각해서 그곳에서 다시 힘을 기르는 모양이지만, 여기에 낭보도 있었다.

       

       길림독군 명언위안이 이쪽에 붙겠다고 한다.

       

       어쩌다 보니 길림성에도 영향력을 떨치게 되었다.

       

       그렇게 다시 해를 넘겼다.

       

       나는 우리 혁명의 아이돌 레닌이 발작하도록, 러시아 경제를 재건한다는 핑계로 계획경제를 도입해 사회주의 맛이 살짝 돌게 했다.

       

       물론 말이 계획경제지. 어디까지나 시장 경제에서 정부의 간섭을 강화한 통제 경제정책이다.

       

       이것이 내전도 끝내지 않은 상태에서 밀어붙인 여러 정책은 사회주의 맛이 살짝 돌기는 하지만 중요한 점은 소련보다 먼저 시도했다는 뜻이다.

       

       원래 소련이 해 버려서 빨갱이들의 대표적인 정책처럼 보이게 될 것들이 아나스타샤의 손에서 다시 태어난 거다.

       

       이거면 대공황 때도 피해를 최소화 시킬 수 있을지도.

       

       이러면 레닌은 뭘 할 수 있을까?

       

       결국, 나와 겹치지 않는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할 테고. 어쨌든 그렇게 나올 정책은 자기들 사상에 입각한 사유재산 불허 정책일 터.

       

       소련은 지금, 그 어떤 것도 제대로 못 하고 있었다.

       

       그놈들에게 남은 건 백러시아를 토벌하는 일.

       

       그러기 위해 군사력만 증강한다는 것은 다시 소련인들의 원망만 살 것이고.

       

       결국, 나중에 가면 ‘차르정 시절이 좋았다!’이렇게 나오거나 이쪽으로 넘어올 사람들만 늘어날 거다.

       

       저놈들은 그 악순환만 반복하게 된다는 소리다.

       

       물론 내전 중에 우리도 멀쩡한 것은 아니니 정책이 제대로 시행된다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아무 말도 못 하는 놈들보다야 뭐라도 하려고 하는 이쪽이 더 낫지 않겠는가?

       

       합중국이든 뭐든 백군세력에 있는 러시아인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이거 좀 빨간 맛 나지 않아요?”

       “어허, 우리 황녀님께서 하시는 정책이 무엇이 빨갛더냐! 빨갱이들이 우리 황녀님 같은 정책을 펼치고 있나? 해도 따라 할 뿐이지.”

       “그건 그렇죠?”

       “그럼 됐지! 무능한 볼셰비키 놈들을 어따 들이밀어?”

       

       

       볼셰비키는 사탄의 무리이며 무능하다.

       

       볼셰비키는 사탕발림 말로 선동이나 해대는 더러운 바퀴벌레 같은 놈들이다.

       

       그렇게 최근 볼셰비키에게 붙은 악명은 분명했다.

       

       볼셰비키는 무조건 악. 상대하면 안 되는 더러운 벌레 같은 놈들.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군대 징집 밖에 없는 병신들. 딱 이 정도.

       

       트로츠키가 계급이 박살 난 군대를 재건하면서 수백만 단위의 병사들을 모으지만. 이곳에서는 인민들 눈치 좀 봐야 할 거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주제에 병사들만 징병해서 데려간다.

       

       차라리 차르정 시절이 좋았다는 말이 결국, 나오지 않겠냐고.

       

       뇌사 상태에 빠진 볼셰비키.

       

       혼자 살아남아 어떻게든 신민들 마음을 돌리기 위해 직접 뛰어다니며 고군분투하는 황녀.

       

       물론 이쪽도 처지가 처지인 만큼 모든 개혁이 효과적으로 시행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히 말해 내전으로 파가 분명하게 갈린 지금. 반대할 기득권세력도 없는지금. 느리긴 하지만 조금씩 내 러시아는 개혁의 덕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차르의 마지막 황녀인 내가 있는 백러시아로 올 수밖에 없거든 이게.

       

       이 적백내전에서 백군이 질 거 같지도 않다.

       

       뭔 짓을 해도 그놈들은 나에게 밀린다.

       

       아니면 스스로 무너질 수도 있겠지.

       

       자, 그건 되었고.

       

       나는 눈앞의 혐성국놈을 지그시 올려다 봤다.

       

       조금 전부터 내가 자신은 무시하고 보고서만 읽는 걸 보고 기분 나빠하는 이 영국의 불독.

       

       윈스턴 처칠.

       

       무려 갈리폴리에 수많은 영연방 장정들을 꼬라박고 갈아버려서 미스터 갈리폴리로 불리는 작자.

       

       욕을 어지간히도 처먹어 무명장수하게 생겨 먹은 이 작자가 직접 이곳에 특사로 왔다.

       

       남러시아 탈환 이후에 어지간히도 잘 오더라고.

       

       

       “그래서 북만주는 어떻게 해주실 겁니까.”

       “그 전에 묻겠습니다. 황녀님.”

       “네.”

       “정말로 다른 곳으로 망명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지위를 유지하시고 싶으시다면 이번에 오스만을 찢고 콘스탄티노플을 영지로 대공국을 세워 드릴 수 있습니다. 로마 대공국, 콘스탄티노플 대공국. 어떻습니까?”

       

       

       대전쟁은 결국 무승부로 끝난 거 아니었나?

       

       아, 오스만이 제물이라는 건가.

       

       오스트리아도 책임을 져서 ‘이중제국이었던 것.’이 되어 버렸으나, 정작 주축인 독일은 꽤 멀쩡하다.

       

       아마 협상국 측으로 참전한 국가 중, 프랑스가 제일 거품 물었을 거다.

       

       영국이야 카이저가 싹싹 빌고 식민지고 뭐고 다 넘겨댔을 테니까.

       

       그게 온전히 프랑스 손으로 들어간 것도 아닐 테고. 그러니 오스만이라도 쪽쪽 찢어서 봤지? 우리는 승리했어. 이걸 과시하려고 오스만이라도 찢는다 이건가.

       

       대체 너희 오스만을 얼마나 찢고 싶은 건데.

       

       그건 해체 수준이 아니잖은가?

       

       그보다 콘스탄티노플? 오스만의 콘스탄티니예를 나한테 콘스탄티노플 대공국의 주인이라도 되라는 건가.

       

       아나스타샤의 작위가 여대공인 걸 감안 하면 대공국이 맞긴 하지만. 내가 한입 먹어도 괜찮은 건가 그거.

       

       애초에 갈 생각도 없다.

       

       물론 제 3의 로마라 칭하는 러시아라면 당연히 가져가야 할 땅이지만.

       

       이거 단순한 떠보기일지도 모른다.

       

       립서비스는 해야 하니 말이다.

       

       

       “콘스탄티니노플을 영지로 가진다면 돌아가신 차르께서도 동로마의 영광을 되찾았다며 좋아하실 것입니다.”

       

       

       러시아 본토 다 잃고 콘스탄티노플 하나 얻으면 어쩌란 말이냐.

       

       애초에 그거 가능은 해?

       

       그렇게 덩그러니 던져 줘 봤자. 나 몰라라 하면 대공국 있으나 마나잖아. 룩셈부르크처럼 가련하게 유지될 거 아니냐고.

       

       이건 그냥 거의 맥이는 거라고 봐야 한다.

       

       이 망할 갈리폴리 새끼가.

       

       젊을 때부터 벗겨진 탈모 주제에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막말하는 거 아니냐고.

       

       

       “이거 지금 맥이는 겁니까?”

       “예?”

       “그까짓 북만주도 용인해 줄 수 없다. 이 말 아닙니까. 댁들의 충견인 일본이 러시아 함대를 모조리 침몰시켰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태평양으로 나아갈까 염려되는 겁니까? 아니면 저희가 지금, 이 꼬라지라고 해서 무시하시는 것입니까?”

       

       

       이 갈리 폴리 새끼가.

       

       내가 입으로 미스터 갈리폴리라고 부르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할 놈이. 참 띠껍게 말은 잘한다.

       

       내 말에 이 탈모 불독은 그제야 화들짝 놀라 두 손을 저었다.

       

       

       “절대 그럴 의도로 말한 것은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시지요. 아무래도 제가 말을 잘못하여 황녀님을 언짢게 만든 듯하군요. 북만주 어렵지도 않습니다. 다만 로마 대공국은 어디까지나 전략적인 정말 만약의 경우에 세운 계획입니다.”

       “그럼?”

       “내전 이후,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에 따라 독립한 우크라이나, 폴란드, 발트 3국, 벨라루스, 핀란드 등의 독립을 보장해주신다면야, 캅카스, 몽골과 북만주 모두 황녀님의 보석이 될 것입니다.”

       

       

       캅카스? 아 거기도 있던가.

       

       원래 독일 몰락 후, 그 지역은 영국군이 주둔했는데, 이것도 역사로 바뀌었나.

       

       제아무리 영국이라고 해도 독일이 다 토해낸 곳에 군대를 주둔시키기 어려울 거다. 캅카스에 눌러앉을 수 없을 테고.

       

       조지아와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이놈들이 자기 땅을 내주는 것처럼 생색이나 내고 있다.

       

       애초에 우리한테 내어 줄 건 내줘야 한다.

       

       빨갱이를 무사히 무찌르려면 우리는 힘을 조금이라도 끌어모아야 한다.

       

       캅카스 역시 마찬가지지.

       

       

       “흠, 그렇습니까.”

       

       

       독일한테 뜯긴 꿀땅 자기들이 다 가져간 주제에.

       

       폴란드, 발트 3국,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이중,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식량을 책임질 땅이긴 한데. 후에 자유무역이나 러시아 자체의 생산량을 늘려야지 별거 있나.

       

       하지만, 백군내에서는 우크라이나를 뺏기는 걸 싫어하는 자들도 있다.

       

       당장 이 자리에 있는 표트르 브란겔만 해도 심기 언짢은 표정이고.

       

       우크라이나를 얻는다는 건 뭐 내가 하고 싶어도 힘들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소리다.

       

       이놈들도 직접 관리할 여력은 되지 않으니 그곳들에 그냥 친영 정부를 세워 러시아로부터 독립보장을 뽑아내겠다 이거 같은데.

       

       뭐 좋다.

       

       애초에 내가 이곳에 얼마나 있을지 모르고. 지금 당장 지원이 급한데 내가 이걸 용인하지 않겠다고 해서 기분이 상한 혐성국이 지원을 멈춘다고 하면.

       

       이건 좀 귀찮아진다.

       

       그래.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이야기가 빨라서 좋습니다. 그럼 열강들도 러시아의 정통 정부는 우리 백러시아로 인정하셔야 할 겁니다.”

       “당연하죠. 그런 사탄 놈들을 어찌 정부로 인정하고 교류하겠습니까? 빨갱이들은 두들겨 잡아야죠. 대영제국의 국왕 폐하께서도 허락하신 일입니다.”

       

       

       일이 술술 풀리는 걸 보면, 이놈들도 어지간히 붉은 역병이 두려운 모양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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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I Became the Last Princess of the Bear King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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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Russian princess destined to die in a 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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