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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

       프리나는 앞으로 나서며 얼굴의 절반을 가리던 후드를 걷었다.

        인식 저해 마법이 걸려 있으니 정체가 드러날 걱정은 없을 텐데, 그것만으로 부끄러웠는지 귓볼이 제법 붉었다.

       

        고개를 한 번 털어낸 그녀는 목덜미 부근에서 머리칼을 두 갈래로 묶고 있던 머리끈들과 핀을 풀었다.

        그것들을 가느다란 손가락 사이사이에 걸어놓은 채로 수인을 맺으며 말했다.

       

        “자, 자기가 배운 마법 말고는 전부 무시하는 바보들이나 상대를 앞에 두고 희희낙락거리지. 제 손으로 뿌린 꽃잎이 자기 발밑에서도 여전히 향기로울 줄 아는 멍청이들.”

       

        착!

       

        현란한 손기술 끝에 검은 머리끈 하나가 인형의 다리를 붙잡는다.

        그러자 자기들끼리 재잘대며 경기장에 입장하던 플루비아의 마법사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마냥 동시에 미끌어졌다.

        조금 전 스스로가 뿌린 빗물에 미끄러워진 바닥을 향해 뒤통수부터 다이빙한 것이었다.

        퍽! 소리와 함께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관중들이 웅성거렸다.

       

        “빗물은 수렁에 고이고 시야가 좁은 이들에게 이변을 초래해. 나, 나라면 들어오기 전에 자기 신발 밑창 정도는 확인했을 걸. 마탑의 바닥은 죄다 흙이 아닌 기반암이니까.”

       

        일어서려 해도 손이 땅에서 떨어진 순간 다시 균형을 잃고 쓰러진다.

        그때 프리나가 인형의 콧잔등에 머리핀을 꼽자 뒤로 자빠진 마법사들의 코에서 핏물이 터져 나왔다.

       

        불행에 불행을 더하는 저주의 기본.

        멀리서 보는 사람들은 둘이 콩트라도 찍나 싶을 정도로 웃기겠지만 내 입꼬리는 느슨해지지 않았다.

       

        “계란유골(鷄卵有骨), 삼재(三災) 중 하나만 마주해도 두 다리가 꺾이는 것이 인간의 불행이라. 니들은 이 경기장에서 걸어나갈 자격이 없어.”

       

        저주란 원념(怨念)과 비한(悲恨)을 촉매로 비운과 재액(災厄)을 초래하는 마법을 뜻한다.

        위력도 효과도 천차만별, 허나 잘못 사용하면 그 반동으로 평생 얼음 정수기와 키재기를 해야 하는 몸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게다가 무엇보다 무서운 점은 저주를 남용하면 그 분야의 스페셜리스트들에게 스카웃 제의가 들어온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구름이 걷히기 시작한 하늘에서 ‘눈’의 형태를 갖춘, 일렁이는 분홍빛의 표식을 응시했다.

       

        마녀.

        명계의 왕, 태양의 적과 함께 대륙에 남은 4대 재앙 중 하나인 대마녀의 끄나풀들.

        저것들은 바쁘지도 않나, 마탑까지 기어 들어와서 동지를 찾을 줄은 몰랐는데.

       

        “뭐, 뭣보다 왜 신성한 경기장에 둘이 꽁냥거리면서 들어오고 있어! 비 오는데 손 꼭 붙잡고 있으니까 같이 넘어지지!”

        “크흠, 그쯤 하세요 선배.”

        “누, 누군 이 나이까지 하, 한 번도 못 해봤는데……!”

        “손 정도는 제가 잡아드릴 테니까 일단 그거 넣으시고. 후드도 도로 쓰세요.”

       

        나는 저주의 기운을 감지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마녀의 눈을 향해 창의 머리부분을 떼어서 날렸다.

        껌이 늘러붙은 창날에 닿기 직전 화들짝 놀라며 연기가 흩어진 직후, 심판이 우리의 부전승을 선언했다.

       

        “기권처리 했나보네. 잘됐어.”

        “저주 너무 남발하진 마세요. 다음부턴 제가 할게요.”

        “간섭기? 마, 말했잖아. 그건 어디까지나 방어용이야. 아무리 신비가 크다고 해도, 너한테 한 사람 몫은 기대 안 한다고.”

       

        고작 한 번의 승리로 자신감이 머리 끝까지 오른 그녀는 바로 다음 경기가 시작되자 입을 다물지 못했다.

       

       

       

        *

       

        “어, 어째서 내 불길을 맞고도 멀쩡한 거야……! 괴, 괴물!”

        “당신이 제게 알려주지 않았습니까. 그 마법으로 동료의 소중한 논문을 태워 버려, 그는 지금도 지하의 미궁에서 대학원생이 되어 고통받고 있다고.”

        “아니야아아!! 난, 난 그런 적 없어. 아무한테도 말한 적 없어!! 부, 분명 나만 볼 수 있는 곳에 적었는데에……!!”

        “멍청아, 정신차려! 마법이 깨지잖아!”

        “아아아악!”

       

        위치노트를 이용해 저주명을 발동시키고, 간섭기로 상대방의 마법을 파훼한다.

        온도가 낮아진 불꽃은 머리 위로 내리쳐지는 창대를 비추는 화려한 조명에 불과했다.

       

        하나 둘 승수가 쌓여갈수록 우리에 대한 이야기로 갤러리가 도배되기 시작했다.

        배팅에 실패한 이들과 역배에 성공한 이들의 희비가 하루에도 몇 번씩 엇갈렸다.

       

        ====

        [미친 저 새끼들 대체 몇 연승임?]

       

        내 피같은 포인트 또 꼴았잖아!! 개새끼들아!!!!

         

        — 꺼억~ 잘 먹고 갑니다~

        — 아 누군 해주학파가 저렇게 쌜 줄 알았겠냐고 ㅋㅋㅋㅋ

        — 아직도 우리 호감고닉 프리나나 님 못 믿어? 독하다 독해~

        — 해주학파를 믿어서는 승리를 예상할 수 없어, 해주학파를 믿지 않고서는 승리에 배팅할 수 없어.

        ====

        ====

        [이게…… 해주학파의 힘?]

       

        지금까지 내가 봐 왔던 쓰레기 잡종들은 대체……?

       

        — 진짜 의외로 쎔 ㅋㅋ

        — 첫 경기는 운빨인가 했는데 확실히 마법사 상대로 해주 마법은 잘만 쓰면 사기더라

         ㄴ ㄹㅇ 중간부턴 다른 학파들도 눈치채고 저주 각 절대 안 주는데 정작 자기들도 간섭기 때문에 아무것도 못함

         ㄴ 근데 왜 맨날 고닉 쪽이 이김? 고착상태 되면 결국 마나 많을수록 유리한 거 아님?

         ㄴ 아 수틀리면 마법사가 창 던지는데 어떻게 이기냐고 ㅋㅋㅋㅋㅋ

        ====

        ====

        [프리나나나님 슬슬 얼굴 까죠]

       

        남자쪽인지 여자쪽인지 모르겠지만 이 정도면 저격하려던 놈들도 죄다 저주로 보내버릴 수 있을 듯

       

        — 프리나나나나님이라면 무조건 여자임

        — 허구한날 주딱 남자라고 음해하는거 보면 여자긴 한 거 같음 남자면 걍 게이새낀데

         ㄴ 프리게이게이야…….

        — 남자든 여자든 일단 둘이 손 잡고 같이 나왔다는 거 아니야 ㅅㅂ

         ㄴ 갤창들은 전부 친구 하나 없는 아싸 아니었어? 또 나만 진심이었지

        ====

       

        “와, 왔어? 여기! 자리 맡아놨어.”

        “뭐하고 계셨어요?”

        “나, 나야 그냥 평소대로 갤러리 보고 있었지.”

       

        평소처럼 기숙사 순찰을 마치고 구내식당에 들어온 나를 프리나가 반겼다.

        마법제를 진행하는 동안 나에 대한 경계심을 제법 풀었는지 그녀는 어느 시점부터 갤러리를 한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그래서 한때는 시엔처럼 내 아이디를 물어보면 어떡하나 걱정하며 아직 갤러리 유저들에게 들키지 않은 23번째 부계정을 검토했지만, 다행히 기우였다.

       

        좆목은 죄악이라나? 대신 ‘프리나나’의 게시글 중 몇 개가 삭제 처리되었다.

       

        “이거 봐라? 쟤들 보기에는 우리가 커플이라고 느껴지나봐.”

        “플루비아 학파 처럼요?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 그렇다고 갑자기 고백하지는 마라!? 그런 착각 같은 거 진짜 극혐이니까!”

        “…….”

       

        어제까지 정확히 게시글 2만 7천개를 작성한 고닉의 철벽을 나는 한 귀로 듣고 흘렸다.

        사실 지금 갤러리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느라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해주학파의 인식을 바꾸겠다는 루퍼트의 계획도, 프리나의 저주명을 강화시켜 승리를 따내겠다는 내 생각도 모두 잘 들어맞았다.

        그러나 마법제의 열기가 과열되며 갤러리의 주된 떡밥이 우리가 될 수록 한 가지 부작용이 생겨 버렸다.

       

        ====

        [엄마 전 커서 해주술사가 될래요!! 엄마 전 커서 해주술사가 될래요!! 엄마 전 커서 해주술사가 될래요!! 엄마 전 커서 해주술사가 될래요!!]

       

        해주술사 되려면 2층 창구로 가면 되는 거냐?

        지금 가입 신청하러 간다

       

        — 아니, 한 놈은 누가 봐도 저주술사잖아 ㅋㅋㅋㅋㅋ

        — 자식농사 대실패 ㅋㅋㅋ

        — 거기서 물어보면 치안대가 쫓아온다는데?

         ㄴ 그럼 대체 어디서 가입함?

        ====

       

        최초로 두각을 드러낸 해주학파의 떡상, 그리고 하늘을 모르고 치솟는 아이테르 학파의 가입 신청율.

        결국 그들 중 대부분은 저주술사가 되는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할 게 분명한 상황.

       

        이런 미래를 바란 건 아니었는데.

        마치 인류를 절멸로 몰고갈 핵분열 공식을 발견해버린 과학자가 된 심정이었다.

       

        “뭐, 뭐야. 너…… 설마 진짜로?”

        “네? 아, 다음 상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어요. ”

       

        이미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보여 입상은 확정이고, 4강 진출까지 단 1승만을 남겨둔 시점.

        막아야 한다. 이쯤에서 스무스하게 져 줘야 된다.

        해주학파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며, 만약 골랐다간 3층부터 피눈물을 흘리며 탑을 등반하게 될 거란 사실을 모두에게 알려야 한다.

       

        그때, 대진표를 보며 고민하던 내게 한 익숙한 참가자의 이름이 보였다.

       

       

       

        *

       

        “후, 저희 이쯤에서 기권하지 말임다.”

       

        릴리벨은 7연승을 달성한 후에도 별 감흥없는 투로 애용하던 단검을 갈무리했다.

        이런 축제같은 자리에서 두각을 드러내면 낼수록 손해였다.

       

        마법제의 우승 상품은 마장을 비롯한 고위 마도구 제작에 이용되는 상등품의 영석(靈石).

        분명 작은 학파들에게는 큰 보상이겠지만 정보부 소속인 그녀들에겐 딱히 욕심나지 않는 물건이었다.

       

        “최근 치안대 업무가 너무 바빠져서 저희쪽에 불똥이 제대로 튀었슴다. 왠 이상한 놈들이 안내 데스크에 벨튀를 한다나? 2층에서 출동이 자꾸 잡히는 바람에 완전 마비 상태람다.”

        “…….”

        “시엔 선배, 듣고 있슴까?”

        “안 돼.”

       

        그녀를 반쯤 억지로 끌고 와 마법제에 참가시킨 시엔은 고개를 저었다.

        위치노트를 확인한 결과, 다음 대진부터는 사람이 많이 줄어 원하는 상대와 매칭될 확률이 높아졌다.

        갤러리에서 떠들썩한 그 이름을 계속 검색하는 시엔의 모습을 릴리벨은 이해하지 못했다.

       

        야밤의 데이트에서 돌아온 직후, 그녀는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위치노트만 보고 있었다.

       

        “그만하자니까요. 5년만에 개최한 마법제인 만큼 운 좋게 자격 제한에 걸쳐서 참가할 수 있게 된 건 좋지만, 이쯤하면 충분하지 않슴까?”

        “릴리벨.”

        “예?”

        “내가 예전에 딱 한 번, 이 검을 들고 누군가한테 패배했던 적이 있다고 했지.”

       

        5년 전, 시엔이 멋 모르던 수습생이었을 때.

        지금의 자신처럼 하루 종일 위치노트만 보고 있던 옆자리의 수습생에게 결투를 신청했다.

        같은 평민 출신에, 매번 옆자리에 앉아 관심을 표하는데도 눈길 한 번 안 주던 모습에 화가 나서였다.

       

        여느 남녀들처럼 투닥거리며 끝났을 법한 다툼의 결말은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았다.

       

        “운 좋게 자격 제한에 걸쳤다고?”

       

        그로부터 5년이 지난 후.

        정보부에 들어온 뒤로 단 1층도 탑을 오르지 않은 시엔은 다시 한 번 설욕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내가 여지껏 걔를 기다린 거야.”

        “설마…….”

        “반드시 올라올거라 믿고 있었거든.”

       

        중층으로 향하는 마지막 길목.

        39층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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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I Became the Master of the Magic Tower in Another World

이세계 마탑의 갤주가 되었다
Score 3.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10 years since transfer to another world

What I do inside the Ivory Tower of Truth isn’t much different from what I did on Earth.

====

[If you missed today’s attendance for the ‘Principles and Understanding of Dimensional Glass’ course, you’ll get a penalty] If you want to kill the professor who suddenly changed the classroom with a phase transition 2 minutes before the start of class, go ahead. Haha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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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t why does everyone think I’m the Tower 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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