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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

       

       

       “시험을 위한 준비는 충분히 해왔겠지?”

       

       

       클레어 선생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평소와는 다르게 교실이 아닌 장소에서.

       

       그렇다.

       

       우리 작가님께서 그렇게 원하고 원하던, 던전의 입구다.

       

       ···그런데 이상하네.

       

       그렇게 원했으면서 왜 이렇게 반응이 없지?

       

       

       “작가님?”

       

       [네, 네?!]

       

       “뭐야, 자고 있었어요?”

       

       [아뇨?! 그, 그냥 긴장해서요. 헤, 헤헤···.]

       

       

       왜 작가님이 긴장하냐고요.

       

       그건가.

       

       잔뜩 기대하던 영화를 보기 직전의 그 두근두근함을 느끼고 있는 건가?

       

       작가님의 한심함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자니, 클레어 선생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너희들은 앞으로 이곳, D급 지하 감옥 크노소스 궁전에 입장한다. 사전에 배포한 팀원들을 찾아 이동하도록.”

       

       

       크노소스 궁전이라는 이름이구나.

       

       D급 던전치고는 꽤 거창하네.

       

       근데 D급이 얼마나 강한 거지?

       

       모르겠다. 그냥 약하다고 생각해야지.

       

       설마 입학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학생들인데 위험한 던전에 들어가게 하겠어?

       

       작가님이 D급이라고 해놓고 이중 던전이에요! 하면서 갑자기 S급 던전을 던지지는 않을 거 아냐.

       

       ···아니겠지?

       

       갑자기 불안해졌다.

       

       

       “···작가님, 여기 그냥 D급 던전 맞죠?”

       

       [네? D급 던전이 D급 던전이지, 그럼 뭐에요?]

       

       “아, 그렇군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

       

       

       다행히 작가님이 그렇게까지 악랄하진 않은 모양이었다.

       

       어쩌면 그냥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고.

       

       그냥 작가님의 심성이 곱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생각 못 한 거면 내가 더 고생해야 한다는 뜻일 것 같아서.

       

       슬슬 주인공을 찾고 싶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그렇게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었다.

       

       저 멀리서 익숙한 뒤통수가 보였으니까.

       

       키도 꽤 커서 찾기 쉬웠다.

       

       부러운 자식. 다리를 한 10cm만 잘랐으면 좋겠는데.

       

       남자였을 무렵에도 그렇게 큰 키가 아니었기에 조금 열받았다.

       

       괘씸한데 장난이나 한번 쳐 볼까?

       

       발걸음을 죽이고 그의 주변으로 다가갔다.

       

       다들 팀원을 찾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소리는 자연스레 묻히고, 별다른 고생 없이 손쉽게 그의 뒤로 숨어들 수 있었다.

       

       툭 툭.

       

       가볍게 등을 두드렸다.

       

       

       “···? 누구···.”

       

       

       쿡.

       

       하고, 고개를 돌리는 타이밍에 맞춰 가볍게 볼을 찔러보았다.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하면 기분 나쁠 수도 있는 장난이지만, 그래도 주인공이니까.

       

       조금 무리수 같아도 빨리 친해지는 방법이 좋겠지.

       

       만약 기분 나빠하면 사과해야겠다.

       

       

       “안녕하세요?”

       

       “우와악?! ···아, 아르테인가.”

       

       

       아니, 뭔데. 왜 이렇게 놀라?

       

       그냥 깜짝 놀랐으면 별생각이 없었을 텐데.

       

       ···뭔가, 공포영화를 본 것 같은 반응이라고 해야 하나.

       

       무서운 걸 본 듯한 모습이었다.

       

       왜?

       

       내가 뭘 했다고?

       

       살짝 위기감이 엄습했다.

       

       너랑 나랑 사이가 안 좋으면 소설 전개가 힘들어진다고.

       

       매일같이 숨어서 지켜보는 건 한계가 있단 말이야.

       

       분위기가 어색해질까 싶어 최대한 장난스럽게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너무 싫어하시는 거 아닌가요?”

       

       “미안. 깜짝 놀라서.”

       

       “후후, 괜찮아요. 그럼, 다른 팀원분들을 찾으러 가볼까요?”

       

       “으, 응.”

       

       

       여성공포증인가?

       

       아니, 아니야.

       

       아멜리아와는 잘 대화하고 있었는데.

       

       여성공포증은 아닐 텐데?

       

       ···혹시 유시우 이 녀석, 친구 없나?

       

       문득 든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러고 보니, 아멜리아 말고는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없던 것 같았는데.

       

       물론 아직 아카데미에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는 않았지만···.

       

       사람 사귀기 힘들어하는 타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이번 기회에, 새 친구분들과 친해졌으면 좋겠네요.”

       

       

       뭐, 상관없나.

       

       이루어지지 않을 이야기임을 알면서도 빈말을 내뱉었다.

       

       친구는 무슨. 한 명은 여기서 퇴장할 예정이고, 남은 한 명은 엑스트라다. 친해질 시간 따위는 없겠지.

       

       주인공은 엑스트라들과 교류할 필요가 없다.

       

       그런 한 줄 적히고 퇴장하는 녀석들 말고, 주·조연들이랑 친구가 되는 거로 충분하니까.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유시우와 함께 라이라와 나머지 조원을 찾아냈다.

       

       별다른 특징이 없는 남학생과, 아직까지는 평범한 학생인 라이라와 함께 클레어 선생님께 다가갔다.

       

       

       “음, 좋아. 유시우 외 세 명. 확인했다.”

       

       [두근, 두근···!]

       

       “들어가도록. 던전 내에 감시카메라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클레어 선생님이 이런저런 잔소리를 시작했다.

       

       하여튼, 잔소리가 길다니까.

       

       작가님도 한참 동안 이어지는 잔소리 폭격에 강제로 진정 당한 모양이었다.

       

       

       [으응···. 동료를 잃은 PTSD가 있다는 설정, 이런 건 조금 안 좋네요. 너무 잔소리가 많아요.]

       

       

       그건 나도 공감하고 있어. 엄청나게 기네, 진짜로.

       

       ···길어도 너무 긴데.

       

       어쩔 수 없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잔소리를 적당히 끊어버리기 위해 던전에 진입하기로 했다.

       

       똑같은 걸 세 번째 말하기 시작하는 건 선 넘었지.

       

       

       “그럼,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아, 아르테! 아직 할 말 안 끝났다!”

       

       “다들 빨리 오세요. 선생님이 언제까지 붙잡을지는 아무도 모른답니다?”

       

       

       내가 막무가내로 던전 내부에 진입하자, 나머지 팀원들도 나를 따라 던전에 진입했다.

       

       

       [진짜 시작이네요! 헤헤, 기대된다.]

       

       

       작가님의 말대로, 시작이었다.

       

       아카데미의 시험을 말하는 게 아니야.

       

       물론 그것도 시작되기는 했지만···.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시작되었으니까.

       

       작가님과 만들어가는 소설의 메인 스토리의 시작.

       

       그래, 세계의 혼돈이 시작되었다.

       

       웹소설은 언제나 세상의 혼돈과 함께하니까.

       

       

       

       ***

       

       

       

       “흐읍!”

       

       

       촤아악!

       

       유시우의 검이 조명에 따라 밝게 빛나고, 붉은 피가 대리석 바닥에 흩뿌려졌다.

       

       초록색 피부의 마물. 고블린의 육체가 허물어지고, 잠깐의 시간이 지난 후에 시신이 재가되어 흩날렸다.

       

       남은 것은 바닥에 널브러진 보라색의 보석 하나.

       

       ···그래, 보라색의 보석이라고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그것.

       

       마석이다.

       

       작가님 왈, 차세대 에너지가 어쩌니 하면서 자기 설정에 열변을 토하던데.

       

       그런 건 잘 모르겠다. 그냥 그러려니 해야지, 뭐.

       

       

       [역시 던전이면 고블린! 던전 하면 마석! 꺄아, 주인공 멋있다! 더 싸워라!]

       

       

       작가님이 주인공의 활약상을 보며 잔뜩 흥분하며 외쳤다.

       

       그래봐야 유시우에게 들리지도 않을 텐데.

       

       TV 속 축구선수에게 들리지 않을 걸 알면서도 소리 지르는 느낌인가?

       

       유시우 대신 나한테 들리니까 조금 조용히 해줬으면 좋겠다.

       

       네 명밖에 없고, 별다른 소음도 없는 장소에서 작가님에게 말을 걸었다가는 미친년 취급받기 딱 좋았기 때문에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시끄러워 죽겠네.

       

       

       “···후우, 그렇게 어렵지는 않네.”

       

       “그러게요. 유시우 군이 잘 해줘서 그런 거 아니겠어요?”

       

       “야.”

       

       “네?”

       

       “너는 왜 안 싸우는데?”

       

       

       드디어 시작인가.

       

       언제쯤 시작하나 했어.

       

       아까부터 잔뜩 불만스러워 보였으니까.

       

       

       “저 녀석이랑 나는 앞에서 싸우고 있고, 저 녀석은 척후 노릇을 하고 있잖아. ···너는 뭐 하는 건데?”

       

       “말씀드렸죠? 언제 기습당할 지 모르니, 제가 뒤를 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고.”

       

       

       뭐, 핑계지만.

       

       이런저런 핑계를 대려고 했더니, 저 척후 담당 학생과 유시우가 불평 없이 고개를 끄덕이기에 생각 외로 쉽게 넘어갔다.

       

       굳이 싸우지 않고 농땡이 피우는 이유?

       

       그야, 지금 내 눈앞에서 화를 내고 있는 라이라 때문이지.

       

       내 능력은 오래 싸우면 싸울수록 불리하니까.

       

       싸우면 싸울수록 사용하는 코스트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처음에는 스타킹, 반장갑 등의 무난한 소재.

       

       하지만 계속 사용하다 보면?

       

       ···끔찍한 상상은 하지 말자.

       

       나는 치녀가 되기는 싫다고.

       

       어쨌든.

       

       라이라가 이 던전 내부에서 사건을 일으킬 거라고 알고 있는 시점에서, 굳이 내가 적극적으로 싸울 필요가 없잖아.

       

       그랬더니 시험에서 뭐 하는 거냐며 잔뜩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아니, 정론이긴 한데 말이야.

       

       너 어차피 아카데미 그만두는 거 아니었어?

       

       화를 낼 건 네가 아니라 저기 유시우랑 저 남학생인데?

       

       

       “말장난은 집어치워. ···도저히 못 참겠네. 보스를 잡을 때까지는 기다리려고 했지만, 더는 안 되겠어.”

       

       

       아까부터 수시로 머리를 긁적이던 라이라가 태도를 꺼내 들었다.

       

       뭐야, 벌써 하게?

       

       ···뭐가 이렇게 참을성이 없어?

       

       

       “라, 라이라 양. 제발 진정하시고···?!”

       

       

       카앙!

       

       태도와 검이 부딪히며 불똥이 튀었다.

       

       남학생에게 달려든 라이라의 일격을, 어느샌가 다가온 유시우가 막아냈다.

       

       

       “···뭐야, 너. 빠르네.”

       

       “칭찬 고마워. 있지, 너. 빨리 선생님께 가서 말해줄래? 변절자가 한 명 있다고.”

       

       “하, 하지만 너희는···!”

       

       

       힐끔.

       

       시우가 나를 돌아보았다.

       

       ···어, 왜?

       

       설마 나도 히로인 취급이야? 어?

       

       이,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웃으면 되나?

       

       유시우를 향해 어색하게 웃어주었다.

       

       

       “···어서 가, 빨리!”

       

       “아, 알았어!”

       

       

       그가 무언가 결심한 듯 결연한 표정을 짓고는 라이라에게 시선을 돌렸다.

       

       오, 그래도 주인공이다 이건가.

       

       꽤 멋있는데?

       

       자기보다 약한 동료를 대피시키고, 히로인···은 아니지만, 어쨌든.

       

       예쁜 미소녀와 함께 배신자와 대치하는 이 구도.

       

       이거 참 맛있거든요.

       

       

       [···.]

       

       

       작가님은 아예 숨 쉬는 것조차 잊은 상태로 몰입하는 모양이었다.

       

       그럴만한 장면이기는 해.

       

       자, 유시우.

       

       너는 이제 어떻게 할 거지?

       

       너를 노리는 아카데미의 배신자와 대치하는 이 순간.

       

       너의 등 뒤에는 예쁜 동급생 미소녀가 있어.

       

       과연 너는 무슨 선택을 할까.

       

       

       “하아, 같이 싸웠으면 조금이라도 살아갈 가능성이 있었을 텐데. 멍청한···.”

       

       “···빈틈!”

       

       “어? ···야! 어디가!”

       

       

       주인공, 유시우의 선택은 내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나랑 같이 싸워달라거나.

       

       나를 내버려 두고 먼저 가라던가.

       

       그런 말을 할 줄 알았는데.

       

       라이라가 방심한 틈을 타서 순식간에 던전의 안쪽으로 달려갔다.

       

       보스룸이 있는 방향으로.

       

       ···어?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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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Just Because I Have Narrow Eyes Doesn’t Make Me a Villain!

실눈이라고 흑막은 아니에요!
Score 3.9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Why are you treating only me like this!

I’m not suspicious, believe me.

I’m a harmless person.

“A villain? Not a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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