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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

       하멜 산맥의 정상

         

         

       정신 차리고 보니, 히스타니아 가문의 기사단이 사람의 탈을 쓴 곤충을 포박하고 있었다.

         

         

       “놔────! 내가 저 새끼만큼은 죽일 거야! 내 얼굴이 뭐를 닮았다고! 사마귀? 예술을 무시하지 마라!”

       “오우…. 곤충이 욕도 하네.”

       “으아아아아아악!!”

         

         

       소설에서 수백을 죽인 악당은 이렇게 쓸쓸하게 퇴장했다.

         

         

       좋은 사람은 아니지만, 마지막에 좋은 일을 하고 가는 모험가 사냥꾼. 선의의 거짓말을 깨닫게 해준 것에 대한 보답이었을까.

         

         

       그는 자신의 목에 붙어있던 30만 골드라는 현상금을 선물로 주고 갔다. 삼도류를 쓰는 검사가 왜 현상금 사냥꾼을 하게 됐는지 알게 된 순간이었다.

         

         

       방긋 웃는 얼굴로 모험가 사냥꾼을 떠나보내는 나와 다르게 한나의 표정은 굳어있었다.

         

         

       “…”

         

         

       엘리트 오크를 혼자 쓰러뜨렸다는 희열을 느낄 틈도 없이 그녀를 이곳으로 몰아세운 주인공들이 눈앞에 서 있었기 때문에.

         

         

       잔뜩 굳은 표정으로 바닥을 보는 한나였다.

         

         

       “히스타니아 한나.”

         

         

       중년의 목소리가 귓가를 타고 다가왔다. 사자같이 무겁고 중후한 목소리.

         

         

       목소리만으로 무위를 판단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눈앞의 남자는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히스타니아 로웬.

       제국의 검이자, 현시점 소설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를 똑바로 봤다.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

       밝은 갈색의 머리카락과 허리에 맨 제국의 국보. 소설에서 묘사된 기사단장의 모습 그대로였다.

         

         

       “아버지가 부르시잖아. 대답 안 해?”

         

         

       짜증 섞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웬의 옆에 서서 팔짱을 끼고 있는 여자. 진한 화장과 고양이처럼 찢어진 눈으로 나와 한나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좋지 못한 감정으로 보는 것 같다.

       물론 나도 그녀가 좋게 보이지 않았다.

         

         

       원작에서 한나를 죽게 만든 원인 중 하나일 테니까.

         

         

       “야. 대답하라고.”

         

         

       여자의 물음에 한나는 답하지 못했다. 정확하게는 대답을 못 했다는 말이 맞으려나, 여자의 작은 고함에 한나는 어깨를 움찔 떨고 슬금슬금 내 쪽으로 몸을 옮기고 있으니까.

         

         

       팔짱을 끼고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여자. 이대로 가다가 해가 질 때까지 우리를 바라보고 있을 것 같아서 친절히 대답을 대신에 해줬다.

         

         

       “네.”

       “그쪽 말고요.”

       “저 부르신 거 아닌가요? 계좌번호 알려드려야 할 것 같아서.”

       “장난하세요?”

       “아니요. 저 진지한데요.”

       “미친놈인가?”

       “정상인입니다만?”

         

         

       날카로운 공방이 오갔다.

       싸가지없는 여자와 돈이 중요한 남자의 싸움. 둘 중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지만, 13년 동안 악녀에게 교육을 받은 내 쪽이 아무래도 승기를 잡기 시작했다.

         

         

       “그쪽은 누구신데, 시비세요?”

       “그럼 그쪽은 누구신데요.”

       “야…. 히스타니아 한나. 친구가 없어서 이런 남자랑 어울리는 거야? 모자란 것들끼리 잘 노는구나.”

       “아~ 누나셨구나. 너무 경박해서 귀족이 아닌 줄 알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개새끼가.”

       “멍.”

         

         

       다소 분위기가 격양되자.

       한나는 다급히 입을 열었다.

         

         

       “두 분 다 그만 하세요.”

         

         

       아쉬웠다.

       조금만 더 싸웠으면 즙을 짜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나는 한나의 누나를 째려보며 다음을 기약했다.

         

         

       두 부녀의 대화는 한나의 대답을 기점으로 시작됐다.

         

         

       “여긴 어쩐 일로 오셨나요.”

       “…일 때문에 왔다.”

       “그럼, 일 보고 가세요. 저도 일 보고 갈게요.”

         

         

       한나는 아버지에게 차갑게 말했다.

         

         

       평소였다면 아버지에게 이러지 않았을 텐데, 엘리트 오크를 혼자 잡은 것을 칭찬해주시지 않을까, 몸을 배배 꼬고 기다리고 있을 텐데, 오늘만큼은 아버지가 반갑지 않았다. 오히려 짜증이 났다.

         

         

       로웬은 처음 보는 한나의 반항에 당황했지만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자신은 한나를 잘 알고 있으니까.

         

         

       아비를 무서워하고.

       자신의 명령을 반드시 지키는 온순한 막내딸. 지금은 저번 생일에 대해 화풀이를 하는 거겠지. 자신의 말 한마디면 수그러질 걸 알고 있다.

         

         

       로웬은 생각했다.

       이번 기회에 한나의 검을 확실하게 꺾어버리자고. 환각을 본 이후 더 이상의 방황에 어울려주면 안 되겠다고 로웬은 판단했다.

         

         

       한나의 의견 따윈 그의 사정이 아녔다.

         

         

       “재능이 없는 사람이 검을 드는 것만큼 꼴 보기 싫은 것이 없다고 아비는 생각한다.”

         

         

       그의 걱정이 담긴 말은 한나의 가슴을 후벼팠다. 직설적이었고 자신의 선택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머리에서 나온 말이 한나에게 좋게 다가올 리가 없다.

         

         

       “너는 재능이 없다.”

       “…”

       “검을 드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는 짓이다. 어떤 마음으로 이 산에 올라왔는지. 어떤 생각으로 검을 들었는지 아비도 알지만, 사실은 너도 그들과 같은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지 않으냐. 네가 아카데미에서 이름을 날리는 미하일도 아니고 네 오빠도 언니도 아니니까.”

       “…”

       “내 자식이지만, 너는 형편이 없다.”

         

         

       한나의 입은 열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실망감 때문일까.

       아니면 때늦은 사춘기가 와서 아버지의 말을 무시하는 걸까. 개인적으론 후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주먹을 꽉 쥐고 고개를 숙인 한나의 모습은 전자에 가까웠다.

         

         

       로웬은 한나의 검을 빼앗아갔다.

         

         

       “내게 인정을 받고 싶다면 검을 포기해라. 네가 아무리 검을 휘둘러도 너는 내 눈에 차지 못 한다.”

         

         

       딸한테 저렇게 말해도 되는 걸까.

       기사단장에 대한 호감도는 갈수록 떨어졌다.

         

         

       물론 그도 나에 대한 호감도가 바닥이지만.

       

         

       [히스타니아 로웬 Lv. 100]

       [직업 : 황실 기사단장]

       [호감도 : -42]

       [좋아하는 대화 주제 : 히스타니아의 명예/재능있는 검사/자식에 대한 칭찬]

       [싫어하는 대화 주제 : 무능한 아버지/재능없는 검사/히스타니아 한나]

         

         

       서로 싫어하는 게 마음이 통하는 것 같다. 다행이다. 겹치지 않아서.

         

         

       이기적인 로웬의 입은 그칠 줄을 몰랐다.

         

         

       “내가 그동안 너를 무시하고 차별한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다. 너는 머리가 똑똑해서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저는 그래도 검이…!”

       “시끄럽다.”

         

         

       챙그랑. 한나의 검은 바닥에 떨어졌다. 아버지가 선물해준 검이 바닥에 내팽개쳐지는 모습에 한나의 눈시울은 붉어졌다.

         

         

       재능.

       그놈의 재능이 뭐라고.

       집사님은 자신한테 재능이 있다고 해줬는데, 왜 당신은 나한테 그런 말을 안 해주냐고 한나는 따지고 싶었다.

         

         

       본인도 재능이 없다는 것 정도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말했고 언니, 오빠가 귀에 딱지가 질 정도로 말했으니까.

         

         

       그렇지만, 너희들이 나한테 해준 게 뭔데, 다른 길을 권유해 준 것도 아니고, 따뜻한 말로 보듬어 준 것도 아닌데. 너희들이 나한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된다고 생각하냐고.

         

         

       한나는 주먹을 꽉 쥐는 거로 답을 대신했다. 이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반항이니까.

         

         

       “집에 돌아오면 아카데미 자퇴부터 시작하지.”

       “아버지!”

       “다시는 검에 대한 생각을 못 하게 연무장 출입금지는 물론이고, 네 이름으로 된 검은 모조리 부숴버릴 거다.”

         

         

       로웬은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더 이상 여지를 주지 말자고.

         

         

       “그래도 못 접는다면 정략혼도 준비해보도록 하지.”

         

       “절대로 안 할거에요.”

         

       “오러라도 사용하면 인정해주겠다만 불가능하지 않으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 기분이 그렇다. 말이 되지 않는 일을 네가 하고 있으니까. 상당히 불쾌하단 말이다.”

         

       “제가 아버지께 많은 걸 바랬어요? 매번 매번! 싫다고밖에 안 하시는 아버지에게 제가 큰 것을 부탁했냐고요.”

         

         

       어느새 한나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이 여자는 왜 이렇게 눈물이 많은 걸까, 웃는 모습보다 우는 모습이 더 많은 것 같다.

         

         

       “이제 아버지에게 가르쳐달라고 하지 않을게요.”

       “…”

       “주제넘게 가문의 이름을 달고 검을 휘두르지 않을게요. 그래… 그래요! 그냥 저를 파문하시면 되잖아요. 딸로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잘됐죠.”

         

       “닥치라고 하지 않았느냐.”

         

         

       쿵. 한나는 무릎을 꿇었다.

       손을 삭삭 빌면서 자신의 아버지에게 빌고 있었다.

         

         

       “제발…제발… 저를 가만히 좀 내버려 두세요. 하던 것처럼 하시라고요.”

         

         

       나였으면 더럽고, 치사해서 집을 나간다고 했을 텐데, 부모 없는 고아라서 그런가, 눈앞에 가족이 전혀 부러워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아가씨와 나와의 관계가 더 화목해 보였다.

         

         

       끼어들고 싶지만.

       가족의 문제는 가족이 해결하는 거라고 배워왔기에 끼어들 수 없었다.

         

         

       하지만.

         

         

       기분이 너무 나빠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말을 끊어서 죄송합니다만, 혹시 어떤 부분에서 한나 씨가 재능이 없다고 판단했습니까?”

         

         

       나는 서슬 퍼런 눈으로 눈앞에 모두를 훑어봤다. 불만이 있으면 지금 당장 말하라고, 대신 입을 열면 각오하라는 의미를 담아서 친절한 말투로 말해줬다.

         

         

       “혹시 장님이십니까? 눈이 있다면 그런 말을 못 할 텐데 말이죠. 안 그런 가요 한나 씨?”

       “네…?”

       “그렇죠?”

         

         

       바닥에 무릎을 꿇은 한나는 나를 올려다봤다. 더러워진 무릎이 심기를 더욱 상하게 했다.

         

         

       한나를 일으켜 세우려고 했지만, 그녀의 다리는 힘이 풀려서 일어날 수 없어 보였다.

         

         

       한나는 그러면 안 된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지만, 화를 누그러뜨릴 마음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어차피 이미지도 바닥인데.

       여기서 욕을 더 먹어봤자. 제자리걸음이니까. 손해 볼 게 없다.

         

         

       “히스타니아의 가주께서는 이 나이 때에서 엘리트 오크를 잡아보셨습니까?”

       “…너는 누구지?”

       “한나 씨의 친구입니다.”

       “소속된 가문과 이름을 대라.”

       “거절하겠습니다.”

         

         

       나는 로엔의 말을 끊었다.

       내가 누군지 알면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무시밖에 더하겠냐.

         

         

       나는 기사단장의 질문에 답할 마음이 없었다. 자식을 재능으로 판단하는 미친놈하고 말을 섞기 싫다.

         

         

       “대답이 없는 걸 보니, 잡아보신 적이 없나 보군요. 물론입니다. 이 나이 때에 엘리트 오크를 잡으려고 도전하는 사람은…”

         

         

       나는 로웬을 지그시 봤다.

         

         

       “죽으려고 작정한 사람이거든요.”

         

         

       네가 죽일뻔했다는 악의를 꾹꾹 눌러서. 그를 향해 대놓고 말했다.

         

         

       “싸우면 죽을 거란 걸 뻔히 아는 정신병자 정도는 되야 이런 짓을 하는데 말이죠.”

         

         

       로웬은 나를 노려봤다.

       그의 자녀들도 마찬가지고.

       그의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어쩔건데.

       너희들이 나쁜 건 맞잖아.

         

         

       아가씨의 친구를 괴롭힌 너희들을 손님으로 대해줄 마음은 하나도 없다. 욕을 안 한 것을 다행히 여겨라.

         

         

       나는 한나를 높여줬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았지만.

       나만은 인정을 해줘야 했다.

         

         

       그래야, 지금까지 노력한 시간이 아깝지 않으니까.

         

         

       “한나 씨는 그걸 가능하게 했습니다. 대단하지 않나요? 왜 박수를 안 치죠? 저는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짜증을 담아 말했다.

         

         

       “당신들은 이렇게 해본 적이 있냐고.”

         

         

       나는 한나를 보며 말했다.

         

         

       “한나 씨는 말이죠. 가르침을 받는 데 재능이 있습니다. 가르치는 재능이 없어서 도망친 누구 때문에, 이 재능을 펼치지 못했지만 말이죠.”

         

         

       웅크려있는 한나는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백마 탄 왕자님을 본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보는 한나. 자신의 편에 서서 싸워주는 사람을 기다린 것 같았다.

         

         

       [한나의 호감도가 +30 상승합니다.]

         

         

       나는 한나에게 작게 웃으며 말했다.

         

         

       “재능 있다니까요.”

         

         

         

       ────────────────

          

       Q. [단명하는 비운의 엑스트라 ‘한나’]가 완료되었습니다.

         

       ────────────────

         

         

       

       순간, 한나의 손에서 황금색의 오러가 피어올랐고 한나는 내게 와락 안겼다.

         

       

       “생일 축하드립니다.”

       

       

       늦게 준비한 선물이 이제야 한나에게 도착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과 선작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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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Villainess Whom I Had Served for 13 Years Has Fallen

The Villainess Whom I Had Served for 13 Years Has Fallen

13년간 모신 악녀가 쓰러졌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t’s a story about a man who got transported into a novel and possessed a slum boy. He met a noble girl and served her as a butler for 13 Years. Now the girl has already fallen from her noble life and lives in an abandoned mansion with paralyzed legs. Why did she become like that? Of course because she is the villainess in the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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