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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

       두려움 섞인 비명과 고통어린 신음과 비통한 혈향이 가득한 전장의 한가운데에서 백우진은 눈을 감았다.

         

       문득 이럴 때에 더블 배럴 샷건이라도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의미 없는 상상을 하다 이내 털어내고 정신을 집중했다.

         

       단전에 남은 내공을 바닥까지 싹싹 긁어모아 검에다 때려박았다.

         

       검이 비명을 지르듯 격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검기(劍氣)라는 건 내부에 담긴 기운이 외부로 나가 형상화된 것을 의미한다.

         

       검을 휘감은 기운은 예기를 크게 증폭시켜 평범하게 벨 수 없는 것들마저 베어낼 수 있게 만들어준다.

         

       지금 시점에서 검기를 완벽하게 구현해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할 수 있는 최대한을 넘어 위기, 위험 수준에 이르러 그와 비슷한 걸 만들어낼 뿐.

         

       체내의 내공을 한 줌의 낭비 없이 쏟아 넣은 검에서 나는 소리는 우스갯소리라도 좋다고 할 수 없었다.

         

       그러기를 얼마쯤.

         

       내부에 가득 찬 기운이 점차 밖으로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온전치 못한 형태, 그로 인해 검에 머무르지 못하고 끊임없이 자연과 동화되어 사라져 내기가 줄줄 새고 있지만 그것은 분명 검기 비슷한 무언가라고 할 만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시간이 없다.’

         

       형태가 고정되지 못한 기운은 한 곳에 머무를 수 없다.

         

       검에 채운 내기가 모두 빠져나가기 전에, 녀석의 숨통을 확실하게 끊어두어야만 한다.

         

       양떼 사이를 누비는 늑대처럼 으르렁대는 녀석을 향해 나아가면서 끊임없이 생각을 거듭했다.

         

       단단한 몸을 지닌 주제에 날렵하기까지 한 녀석에게 완벽한 일격을 가할 방법을.

         

       ‘주선검결은 배제한다.’

         

       다행히도 백우진에게는 이런 상황에서 꺼낼 수 있는 패를 하나 더 쥐고 있다.

         

       ‘백섬검결(白閃劍訣).’

         

       섬서백가의 가전 무공이자 쾌(快)의 묘리를 지닌 검술.

         

       소설의 원작에서는 얼토당토않게 무슨무슨 이유로 체질과 맞지 않아 ‘백우진’을 끝없이 좌절에 빠트린 무공이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백우진이 생각으로만 품고 있던 또 하나의 가능성이 싹을 틔웠다.

         

       “후우….”

         

       계획은 모두 수립했다.

         

       남은 것은 이 모든 것을 행동할 의지를 세우는 것.

         

       호리병을 쥐고 술을 들이켰다.

         

       대다수가 목구멍이 아닌 입 주변을 타고 흘러 옷을 적셨지만 상관없다.

         

       선계에 있는 주선의 술 창고가 텅텅 비지 않는 한, 보패에서 술이 끊어질 일은 없으니.

         

       “끄윽.”

         

       약간 과하다싶을 정도까지 마셨다.

         

       앞으로 행동할 일들을 떠올리면 필요한 과정이었다.

         

       “끄아악!”

         

       또 한 명이 불괴의 손톱에 꿰뚫렸다.

         

       피가 날 정도로 아랫입술을 깨무는 제갈연지의 얼굴이 보인다. 굉장히 초조해 보였다.

         

       제갈세가의 무공은 굳건한 수비를 통해 상대의 허점을 유발하여 공세로 삼는 반수위공(反守爲攻)의 묘리를 띠고 있어 불괴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에는 수월했으나, 녀석의 날랜 발을 따라잡을 수 없어 피해를 완전히 틀어막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너무나도 무거운 짐을 지게 했다.

         

       검기 비슷한 아지랑이가 덧씌워진 검이 재차 백우진의 팔을 훑고 지나갔다.

         

       가볍게 휘둘렀을 뿐인데 피가 솟구쳤다.

         

       생각보다 깊은 상처였지만 고통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이것보다 더한 위기 상황은 이전 세계에서 수백 번은 더 겪어 보았기에.

         

       술에 취해 감각이 조금 둔화된 것도 한 몫 거들었다.

         

       “키익?!”

         

       갑작스럽게 터진 혈향에 또 다시 몸을 날리려던 불괴의 움직임이 멈춰 섰다.

         

       놈의 불길한 붉은 두 눈에 피를 잔뜩 흘리고 있는 백우진의 모습이 담겼다.

       

       갓 쏟아진 신선하고 뜨거운 피에, 그 무엇보다 맛있어 보이는 저 피에 집중하라고 본능이 외쳐댔다.

         

       “배, 백 공자…?”

         

       놀란 것은 제갈연지도 마찬가지였다.

         

       재차 제 몸을 상하게 하는 백우진의 모습에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백우진은 히죽 웃으며 피에 물든 팔이 잘 보이도록 녀석의 눈앞에다 대고 가볍게 흔들었다.

         

       “자, 먹고 싶지?”

         

       이리온, 우리 똥개.

         

       “키아아아!”

         

       거친 음성을 토해내며 불괴가 달려들었다.

         

       이족보행과 사족보행을 넘나들며 달려드는 녀석의 눈에 비치는 감정은 탐욕. 눈앞의 탐스러운 피를 빨아내겠단 의지만을 담고 있었다.

         

       “가여운 새끼.”

         

       욕망에 휘둘리는 직선적인 움직임 하나하나가 분절되어 백우진의 눈에 의해 해체된다.

         

       한 걸음 더 먼저 움직이는 것으로 녀석의 날랜 움직임에 대응했다.

         

       닿을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줄다리기에 불괴의 움직임이 더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백우진은 녀석에 한해 예지에 가까운 수준의 회피가 가능해졌다.

         

       허나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아무리 직선적이라고 해도 자신보다 몇 수는 앞서는 속도를 눈에 담아두기란 그 자체만으로 어마어마한 심력을 소모하는 일이었다.

         

       “캬아아앗!”

         

       날카로운 손톱이 날아들었다.

         

       찾아왔다.

         

       이 기나긴 전투를 끝낼 종지부가.

         

       “백 공자!!”

         

       제갈연지의 비명과도 같은 음성이 산에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그와 동시에 불괴의 손톱이 백우진의 어깨를 꿰뚫었다.

         

       푸슉

         

       녀석의 손톱을 타고 피가 줄줄 샌다.

         

       그러나 녀석은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그 맛을 음미할 수 없었다.

         

       “후우!”

         

       짧고 굵직한 호흡과 함께 백우진이 어깨를 꿰뚫린 팔을 들어 녀석의 목을 움켜쥐었다.

         

       “키륵?”

         

       단단한 돌덩이를 손아귀에 쥔 느낌.

         

       녀석 또한 숨이 막힌다거나 고통스러워하는 기색보다 의아한 기색이 앞서고 있었다.

         

       거기까지였다.

         

       “키, 키잇…!”

         

       깊게 침잠되어 있는 백우진의 두 눈을 마주한 순간이었다.

         

       그 어떤 것보다 본능, 쾌락을 우선하던 녀석이 공포를 느끼고 발버둥치기 시작한 것은.

         

       백우진은 멀쩡한 손에 쥔 검을 들어 올렸다.

         

       일찍이 섬서에 백씨 가문을 세운 초대 가주가 오랜 시간 공들여 창안한 백섬검결.

         

       그중에서도 그의 기상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초식이 발현됐다.

         

       백섬광망(白閃光望).

         

       한 줄기 빛살이 된 검의 끝자락이 창졸지간에 불괴의 심장에 닿았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침입을 허락한 적 없던 단단한 피부가 쩌저적, 하고 갈라졌다.

         

       단단한 피부를 뚫은 검은 더 이상 거칠 것이 없다는 듯 녀석의 심장 한가운데를 완전히 꿰뚫고 지나갔다.

         

       붉은 피가 쏟아졌다.

         

       “끼익, 끅….”

         

       고통어린 괴음조차 제대로 내뱉지 못하는 녀석과 시선을 마주했다.

         

       비로소 탐욕으로부터 벗어난 두 눈은 이 상황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착각인지는 몰라도, 붉은 눈도 조금은 색이 옅어진 것만 같다.

         

       서서히 허물어져가는 녀석을 지켜보다 백우진은 손에 쥐고 있던 검 손잡이를 놓아 녀석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다음에 태어날 땐, 보다 좋은 세상에서 태어나려무나.”

         

       병신 같은 작가가 생각 없이 써내려간 이런 개같은 세상 말고.

         

       이윽고 얼굴까지 가루가 되어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흩날려 사라져간다.

         

       괴물이 죽은 자리엔 피 묻은 검과 검붉은 색으로 요사스럽게 빛나는 보석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백우진은 허리를 숙여 바닥에 놓인 보석을 손에 쥐었다.

         

       “이게 마석이구나.”

         

       생을 마감한 마인의 육신은 허물어져 가루가 된다.

         

       허물어진 시체에서 나온 이 검붉은 보석만이, 녀석이 이 세상에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수단이 된다.

         

       보기만 해도 요사스럽게 시선을 빨아들이는 이 보석에는 마기가 잔뜩 담겨 있다.

         

       마기는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마석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직접적으로 주입되는 것보단 그 속도가 현저히 느리지만, 경지가 낮은 무인 또는 일반인이 지니고 있을 경우 광증에 시달리다 이성을 잃고 날뛰게 된다.

         

       그래서 무림맹은 이것들을 모두 회수하기 위해 마인을 처치하고 마석을 가져와야만 그에 합당한 보상을 치러준다.

         

       “백 공자…!”

         

       어느덧 다가온 제갈연지가 안절부절 못하는 몸짓으로 손을 이리저리 움직여대고 있었다.

         

       “고생 많았어, 제갈 소저.”

         

       백우진은 그런 그녀의 머리에 손을 얹어 가볍게 쓸어내렸다.

         

       “히힛…, 아, 아니.”

         

       잠시 기쁨에 물들어 있던 그녀가 금세 정신을 차렸다.

         

       “사, 상처부터 치료해요….”

       “잠깐만.”

         

       뻗어오는 그녀의 손을 밀어낸 뒤, 백우진은 이리저리 널부러져 있는 무사들에게로 향했다.

         

       살아남았다며 기쁨을 만끽하는 이, 죽어버린 동료를 끌어안고 울부짖는 이, 그저 망연히 눈을 깜빡이는 이, 풀린 긴장에 의식을 놓아버린 이.

         

       온갖 감정이 휘몰아치는 군상 속으로, 백우진은 발걸음을 옮겼다.

         

       “축하한다, 너희는 살아남았다.”

         

       무덤덤하게 내뱉은 말에 누군가는 안도했으며, 또 누군가는 분노했다.

         

       죽어간 제 동료가 보이지 않냐며 항의하듯 거친 시선을 쏘아붙였다.

         

       백우진은 아랑곳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은 살아남았다는 것에 감사하고, 기뻐해라.”

         

       인간은 제 목숨이 가장 소중한 법이다.

         

       제아무리 성인군자라 한들, 살아남았음에 기뻐하지 않을 이가 어디 있으랴.

         

       그러니 지금은 웃자.

         

       환호하고, 눈물을 흘리고.

         

       그렇게 모든 기쁨이 소모되고 나면.

         

       “나 대신 죽어간 동료들을 위해 울자.”

         

       비로소 진심으로 남을 위할 수 있다.

         

       무겁게 내려앉은 분위기 속에서 한 사내가 상처 입은 몸을 일으켰다.

         

       “우하하핫!”

         

       미친 듯이 웃어제끼기 시작했다.

         

       하도 웃어서 사레가 들려 기침을 토해내면서도 웃음만큼은 멈추지 않았다.

         

       하나둘씩 그를 따라 웃기 시작했다.

         

       어느새 산이 떠나가라 웃게 된 이들을 뒤로한 채, 백우진은 마차로 발걸음을 옮겼다.

         

       “괜찮으시오, 소협…?”

         

       소협 덕분에 살았다며, 정말 고생했다고, 이 일은 꼭 보상하겠다는 안세하의 말을 뒤로한 채 백우진은 마차에 올라탔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에 시야가 흐릿했다.

         

       “백 공자…, 이제 우리 치료해요….”

         

       뒤따라 들어온 제갈연지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하자, 백우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끝으로 백우진은 정신을 잃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안녕하십니까, 독자님들!

    전투씬을 어떻게 하면 드러날 건, 드러나면서 길게 끌지 않을 수 있을까 참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결과가 어떨지는,,, 여러분들에게 달려 있겠지요,,,!

    매일 연재하러 들어올 때마다 통계치를 보고 기쁨의 비명을 내지릅니다.

    벌써 조회수도 3만이 넘었고, 선작은 무려 1000,,,!

    과분한 사랑에 그저 눈물 흘리며 기쁘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매일 같이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 0.01%라도 더 나은 글이 될 수 있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선작, 추천, 댓글, 그리고 알람도 슬,,,쩍,,, 부탁드립니다 ㅎㅎ!

    그리고 이 글 이후 공지도 하나 올라갈 예정이오니, 그것도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들 편안한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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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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