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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0

        에리카는 에테르에게 손수건을 내밀었다.

       

        결투 제안.

       

        에테르는 피식 웃으며 손수건을 받았다. 그녀의 시선은 로멜에게로 가 있었다.

       

        다른 녀석은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 저 녀석만 죽어라 팬다. 그리고 적당한 틈을 타서 이야기를 듣는다.

       

        분명 로테에 관한 단서가 있을 것이다. 에테르의 머릿속에는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학생들이 하나둘씩 대운동장으로 모였다. 반장 메이릴이 심판 역할을 해줄 선생님을 모셔 왔다.

       

        운동장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한다.

       

        “규칙은 어떻게 정할 거야?”

       

        에리카가 물었다. 

       

        “4대 4로 하는 게 어때?”

        “너무 식상한데….”

        “그래도 이게 가장 무난하잖아.”

       

        4대 4로 하게 된다면 틸레트 재학생들은 에테르 외에 세 명을 추출해야 한다.

       

        “1등부터 4등까지 차례대로 나오면 되겠군. 그래야 할 맛 나지 않겠어?”

       

        제롯이 도발했다. 그러나 에테르는 동요하지 않고 팔짱을 끼며 웃었다.

       

        “나 혼자서도 충분한데, 규칙이 그렇다니까 세 명 더 골라야겠네.”

        “뭐야, 조금 전엔 전투 개못한다면서?”

        “내 동기들에 비하면 말이지.”

       

        그 말뜻을 제대로 알아들은 사람은 로즈마리와 로멜밖에 없었다.

       

        에테르가 말하는 ‘동기’, 그것은 아주 오래전에 사귀었던 동료들을 뜻하는 말이었다.

       

        사천(四天).

       

        구천지대계라는 개념이 생겨나기 훨씬 이전, 마왕군 중추를 담당했던 네 명의 최고위 금안족들이다.

       

        로멜은 말을 아꼈다. 반면에 로즈마리는 똘망똘망한 눈으로 에테르를 쳐다보았다.

       

        “안 그래도 요새 펜대만 굴렸거든. 몸이 찌뿌둥하던 참이야.”

        “허세 부리지 말고 세 명이나 빨리 고르시지?”

        “그래? 원한다면야….”

       

        에테르는 뒤를 돌아보며 학생들을 천천히 훑었다.

       

        버멜이 사라져서 자연스럽게 2학기 차석이 된 로테. 지계마도 하나만큼은 만점을 놓치지 않는 프레이. 남들은 모르지만, 틸레트 아카데미 전원이 떼거리로 덤벼도 이기지 못할 실력을 지녔을 로즈마리까지.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어, 언니…. 저는 안 나가면 안 될까요?”

        “왜.”

        “정령마도 사용하시는 분들 상대로 이길 자신 없어서요….”

       

        아, 그렇지.

       

        로즈마리는 지금 잠입 중이다.

       

        정령은 타인의 악의를 읽어낸다. 급이 높을수록 그 정확도가 올라가고, 마수를 직감으로 구분해낼 수 있게 된다.

       

        잠입 중인 로즈마리에게 저 엘프들은 최악의 상대.

       

        잠재적인 적이라고는 하나, 동생이기도 하다. 로즈마리가 도리를 다한 만큼 에테르도 그녀에게 페이백을 해 줘야 할 의무가 있었다.

       

        “하고 싶은 친구 있어? 아무나 나와도 되는데.”

        “그럼 이 몸이 나서도록 하지.”

       

        그렇게 말하며 앞으로 나온 건 황태자였다.

       

        에테르의 눈가가 살짝 좁아졌다.

       

        “뭘 그런 눈으로 보나? 나도 엄연한 학생인데.”

        “아니, 너 개못하잖아.”

        “무엄한 것! 말이 심하구나!”

       

        클리온이 바락바락하는 사이에 에테르는 아공간에서 스태프를 빼들었다. 양장본의 마력을 소모하여 꺼낸 것이다.

       

        “엇….”

       

        크고 우람한 캘리퍼스의 모습을 본 클리온이 질겁하며 머리를 싸맸다.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세, 세상에.”

        “금안족이 마력초도 없이 마법을 쓰다니…….”

       

        에리카와 제롯이 동시에 놀라며 입을 틀어막았다.

       

        한편, 메릴다는 그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입을 열었다.

       

        “당신, 혹시 악령이라도 데리고 다니는 건가요?”

        “그게 무슨 소리야?”

        “당신에게서 미약하게나마 고유한 마력이 느껴져요.”

       

        메릴다의 눈이 좌우로 찢어졌다. 그녀의 날카로운 눈빛이 에테르와 그 주변을 날렵하게 훑었다.

       

        설마 마수라는 걸 알아차린 건가?

       

        에테르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로즈마리는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기분 탓인가…? 마력초로 얻은 마력은 아닌 것 같은데.”

       

        여기서 들키면 안 된다.

       

        에테르는 무표정을 유지한 채로 변명거리를 떠올렸다. 그녀의 명민한 머리가 곧 괜찮은 말을 떠올려냈다.

       

        “편법 좀 썼어.”

        “편법이라뇨?”

        “마력초나 그런 거 없어도 금안족이 마법을 다룰 수 있는 방법이 있거든.”

       

        틀린 말은 아니었다. 여신이 내린 양장본에 담긴 마력을 빼다 사용하면 그만이었으니까.

       

        하지만 그걸 모르는 세 엘프는 신기하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재미있군.”

        “역시 교환학생 신청하길 잘한 것 같아! 금안족인데 마력초 없이 마력을 다룬다니!”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방법을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우리나라에 있는 금안족 공동체에 큰 힘이 될 거예요.”

       

        카우렐리아에 금안족 공동체가 있다고? 에테르는 놀란 듯 입을 슬쩍 벌렸다.

       

        “글쎄다.”

       

        그래도 뭐, 당장은 상관없는 일이겠지.

       

        “나와 싸워서 이기면 생각해 볼게.”

       

        에테르는 스태프를 가볍게 휘두르며 대련장 한가운데로 들어왔다.

       

        전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아무래도 들켰다. 그것이 버멜이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말이었다.

       

        “후우….”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이름 한 글자만 바꾼 건 너무했나?’

       

        성형 마법으로 어떻게든 얼굴을 뜯어고쳤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아서, 아예 로즈마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마력파와 목소리를 비롯한 모든 것들을 깡그리 갈아엎었다.

       

        그런데도 에테르는 곧바로 알아차린 것이다.

       

        로멜이, 사실은 버멜 호르데라는 사실을.

       

        “학생 분들…. 대련 규칙은 모두 잘 아실 거라고 사료됩니다. 크흠, 신변에 큰 위협이 생기지 않는 한… 제가 제지하는 일은 없을 테니 마음껏 대련을 벌여주시길…….”

       

        노교수는 그 말을 끝으로 대련 허가를 내렸다. 버멜의 곁에 선 세 엘프가 일제히 스태프를 빼들었다.

       

        하나같이 세계수의 가지로 엮어 만든 스태프였다.

       

        “그나저나 저 에테르라는 아이, 스태프부터 참 특이하지 않아?”

        “네, 처음 보는 모양이에요.”

        “아공간에서 꺼낸 스태프는 주인의 심상과 지식을 따라간다는 말이 있더군. 아마 우리와는 보고 들은 게 판이한 거겠지.”

       

        에리카와 메릴다, 제롯은 저마다 의견을 교환하며 쑥덕거렸다. 버멜은 겉도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엘프로 빙의하면 뭐하나. 본질은 인간인 것을.

       

        버멜은, 로멜은 나머지 셋과는 달리 정령이 없었다. 본성이 인간이라서 그런 걸까?

       

        여신도 참 가혹하시지. 버멜은 입술을 짓씹으며 엉성한 스태프를 꺼내들었다. 그의 위치는 자연스럽게 후열로 가 있었다.

       

        동급생들이 배려해 준 것이다. 정령이 없으니까, 약하다. 따라서 전위에 설 수 없다.

       

        약한 자는 앞에 서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한다. 버멜은 그 사실이 개탄스러웠다. 아무리 열심히 돌아다니고 수련하더라도, 높은 위계의 마수나 정령마도사는 상대할 수 없었다.

       

        슬픈 일이었다. 그러나 사색에 잠겨 있을 수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

       

        이러는 와중에도 세상은 흐르고 있었으니까.

       

        “셋, 둘, 하나, 시작!”

       

        타앙!

       

        제롯과 에리카의 신형이 교차선을 그렸다. 두 엘프는 축구 경기장의 공격수처럼 신속하게 치고 올라갔다.

       

        “빨라!”

       

        관중석의 누군가가 소리쳤다.

       

        당연하다. 두 엘프는 정령을 사용하여 신체 강화를 마친 뒤였다.

       

        공계정령을 사역한다면 반드시 익히는 기술, ‘바람과도 같은 질주’.

       

        그것이 20m가 넘어가는 양측의 거리를 단 1초 만에 좁히도록 해주었다.

       

        “어딜!”

       

        후열에 있던 프레이가 토벽을 생성했다. 연성진도 없는 즉발연성. 갑자기 생겨난 벽 앞에 두 엘프가 제동을 걸었다.

       

        그러나.

       

        에리카는 스프링처럼 튀어올라 벽을 넘어섰다. 제롯은 토벽을 풍랑으로 부수고 나아갔다.

       

        “메롱, 시간 벌이거든.”

       

        프레이는 혀를 베 내밀며 남은 고철과 흙으로 무기를 빚어내기 시작했다.

       

        그 사이였다.

       

        카카캉!

       

        네 개의 스태프가 공중에서 맞부딪힌다.

       

        클리온이 제롯을 막았고, 로테는 에리카를 막았다.

       

        “이 나라 황태자라고 했나? 높으신 분과 스태프를 맞닿는 날이 다 오다니.”

        “이 몸도 마찬가지다. 하이엘프라니, 평생 못 볼 종족 상대로 이런 일을 하게 될 줄이야.”

        “거기, 전투 중에 잡담할 시간 있나 봐?”

        “…읏, 제법 하네.”

       

        로테는 스태프를 짓쳐 올리며 에리카를 위협했다. 에리카는 재빨리 몸을 내빼어 사각에서 벗어났다.

       

        클리온은 수탄을 형성해서 로테를 보호함과 동시에 제롯과 에리카를 모두 공격했다. 여기에 프레이까지 가세하면서 난전이 펼쳐졌다.

       

        에테르는 중간에 서 있었다. 그녀는 심호흡하며 버멜을 바라보았다.

       

        버멜도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에테르를 포함한 모두의 스테이터스가 들어온다.

       

        [─SYSTEM : 인물들이 지닌 스트레스 수치를 판독합니다.]

       

        [에테르 : 65 – 위험함]

        [로테 살리에르 : 90 – 미약한 붕괴 상태(집착)]

        [프레이 폰 파스트렌드 : 15 – 안전함]

        [클리온 필리우트 : 45 – 보통]

       

        ‘빌어먹을.’

       

        자신이 없던 사이에 살리에르에게 정신병이 붙었다. 

       

        ‘그래도 집착이라서 그나마 다행인가….’

       

        ‘절망’이나 ‘파괴’ 같은 거였다면 사태가 더 심각해졌을지도 모른다. 이건 불행 중 다행이었다.

       

        버멜은 스태프를 고쳐쥐며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바로 코앞에서.

       

        “뭘 가만히 있어?”

       

        소녀의 신형이 쏘아졌다.

       

        “뭐, 뭐야…!”

       

        [최상급 공계마도 ─ 공간이동(Teleportation)]

       

        에테르는 순식간에 일리야드 진영의 후열로 치고 들어왔다. 재빠른 돌격이었다. 

       

        “어떻게 공계마도를…?”

        “옛날에 알고 지내던 모 친구가 가르쳐 줬거든.”

       

        맞다, 그랬지.

       

        버멜의 신음에, 메릴다가 당황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어, 어떻게 단숨에……? 아, 아니…. 이럴 때가 아니죠!”

       

        메릴다는 재빨리 정령을 전개했다. 그녀의 눈앞에 홀로그램처럼 빛을 내는 피아노가 그려진다.

       

        메릴다가 피아노를 연주하며 선율을 만들었다. 노랫가락을 들은 버멜의 몸에 힘이 충만하게 들어찼다.

       

        [─ SYSTEM : ‘마력 증강의 가락’에 의해 스테이터스에 일시적인 변화가 생깁니다.]

       

        [마법 명중률 증가(+20%)]

        [마력량 증가(+16%)]

        [마법 방어력 향상(+30%)]

       

        그 밑으로도 여러 버프가 줄줄이 따라붙는다. 메릴다가 연주하는 선율은 듣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버프의 개수와 효과가 크게 늘어나는 효력이 있었다.

       

        실로 사기적인 능력. 오죽하면 그녀도 마왕을 잡는데 필요한 주요 인물 중 하나일까.

       

        그런데, 잠깐만.

       

        “야, 물리 방어력이 없……!”

       

        뻐어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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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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