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70

       학생회실에 들어오면서 세라핀, 그리고 루크와 적당한 안부 인사를 나누고 난 후.

         

        루크가 안내해 준 서무 자리에 앉아 다른 학생회 멤버들이 등장하기만을 기다렸다.

         

        뭐, 일부 위원은 이미 세라핀에게 들은 내용도 있었고, 원작 스토리에서 세라핀의 학생회 구성원도 대충 누군지는 파악하고 있었으니.

         

        학생회실에서 내 자리에 앉아 다른 학생회 구성원들과 적당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쯤 여러 의미로 얼굴이 익숙한 등장인물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이에요, 릴리스.”

         

        “…오랜만에 뵙습니다, 오귀스트 아가씨.”

         

        “지난 여름 방학은 잘 지내셨나요? 저는 지난여름에 오귀스트 상회가 소유한 별장에서 여유롭게 휴가를 보냈답니다.”

         

        “그러시군요. 좋은 시간을 보내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혹시 괜찮으시다면 내년 여름쯤에는 함께 휴가를….”

         

        “내 메이드에게 너무 들러붙지 않았으면 좋겠군, 리지 린 오귀스트 영애.”

         

        “…시, 실례했습니다.”

         

         

        자기만의 여름 휴가 썰을 자랑하며 풀다가 에단의 등장에 황급히 시선을 피하며 도망가는 귀족 영애가 한 명.

         

         

        “다들 모였어~? 으음? 이쪽에 있는 아가씨는 왠지 처음 보는 것 같은데~?”

         

        “처음 뵙겠습니다, 오리온 선배님. 마법부 1학년, 릴리스 블랙우드 로즈우드입니다.”

         

        “아아, 네가 그 애구나~? 너는 소문 많이 들었어~.”

         

        “네? 무슨 소문을….”

         

        “그냥, 뭐~. 이것저것~? 1학년인데도 벌써 꽤 유명하던데~? 아마 마법부 1학년 중에서는 너랑 아그네스가 가장 유명하지 않을까~?”

         

        “…오리온 선배님, 제 메이드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오시면….”

         

        “어머, 에단~! 오랜만이다~! 저번에 왕궁에서 봤을 때 이후로 처음이네? 키는 그때보다 조금 더 큰 것 같고. 조금 남자다워졌으려나~?”

         

        “……네?”

         

        “에, 에단 도련님에게서 떨어져 주세요, 오리온 선배님!”

         

         

        게임 속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비주의자이자, 여러 의미로 위험해 보이는 마법부 선배 한 명.

         

         

        …그리고 거기에 더해, 다른 정보 없이 그저 ‘이름’만 알고 있을 뿐인 존재감 없는 평민 출신 캐릭터까지 한 명.

         

         

        “처음 뵙겠습니다. 기술부 2학년, 그윈 이벨트입니다.”

         

        “아, 네. 마법부 1학년, 릴리스 블랙우드 로즈우드입니다.”

         

        “네. 기억해 두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희미한 존재감 때문에 어떤 의미로는 오리온 이상으로 밝혀진 정보가 없는 캐릭터.

         

        루크 공략 루트의 라이벌 캐릭터, 그윈 이벨트와의 첫 만남이었다.

         

         

         

       ⁎ ⁎ ⁎

         

         

         

        그윈 이벨트.

         

        솔직히 말하자면 이름과 외형 빼고는 거의 기억하지 못하는 녀석이었다.

         

        『루미노르 아카데미』에 수천 시간을 꼬라박고 어떻게 히로인 라이벌 캐릭터를 모를 수 있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 녀석은 정말로 그럴 수밖에 없을 정도로 존재감이 희미한 녀석이었으니까.

         

        말도 없고, 주요 인물들과의 인맥도 없고, 그로 인해 스토리에서의 비중도 없는, 사실상 학생 NPC 정도로만 봐도 무방한 캐릭터였다.

         

         

        짧은 갈색 머리에, 키는 180 정도 되는 무뚝뚝한 성격의 남학생.

         

        그냥 『루미노르 아카데미』의 제작진이 ‘슬슬 애들 개성 만들기도 질리는데 적당한 캐릭터 하나 만들어서 루크한테 붙여주죠.’라고 말했을 법한 외형.

         

        기억에 남는 특징도 없었고 이 녀석이 메인으로 나오는 스토리도 없었다. 심지어 구 에단이나 카라함 같은 녀석들도 메인 스토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라이벌 캐릭터인데 라이벌로서의 행동도 안 한다. 주인공이 루크와 어느 정도 친분을 쌓기 시작하면 자연스레 스토리에서 공기처럼 사라지는 녀석이거든.

         

         

        그런데 왜 이런 엑스트라 같은 녀석을 보고 라이벌 캐릭터라고 말하냐고?

         

        정말로 루크에게 아무런 호감도 표시를 안 했을 때 엔딩에서 루크는 얘랑 결혼했다고 한 줄로 딱 소개하고 끝나거든.

         

        결말에서 루크와 이어지기는 하니까 라이벌 취급은 해준다는 거지.

         

         

        ‘어쨌든 나랑은 상관없는 녀석이니까.’

         

         

        애초에 릴리스나 에단과는 원작 스토리에서 엮일 가능성 자체가 없는 캐릭터였다. 애초에 저 녀석 스토리가 루크 말고 다른 캐릭터랑 연결되어 있을지 그 자체도 의문이었지만.

         

        이미 메인 캐릭터들과도 이리저리 귀찮게 엮여있는 상황에서 존재감 없는 녀석한테까지 쏟을 신경도 없었고.

         

        앞서 말했다시피, 이번 학기는 이런저런 일 때문에 더럽게 바쁜 시기였다.

         

         

        “부회장인 그윈 씨도 오셨으니 회의부터 시작할게요. 일단 오늘부터 시작해야 할 첫 번째 안건은….”

         

         

        전날 출석하지 못한 나를 비롯하여 모든 학생회 멤버가 모인 첫날. 세라핀의 주도하에 학생회 업무가 시작되었고.

         

        나는 딱히 안건 제안이나 질문 같은 건에 끼어드는 대신, 그저 묵묵히 서무로서의 서류 정리에만 집중했다.

         

         

        ‘눈에 띄지 말고, 중간만 가자.’

         

         

        어차피 학생회에 들어온 목적은 따로 있었으니까.

         

        떡상이 확실하게 예정된 세라핀의 제3 황녀 세력과 블랙우드 가문이 손을 잡았다는 걸 대외에 알리는 이미지.

         

        그리고, 2학기 기말 수렵제에 사용할 포션 제조 부탁하기 위해 리지와 친해지는 것.

         

        그 두 가지만 수틀리지 않고 진행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아무래도 좋았다.

         

         

         

       ⁎ ⁎ ⁎

         

         

         

        세라핀이 주도하는 학생회 질서를 따라가기 시작한 지, 약 2주일이 흘렀다.

         

        2학기의 중간시험을 치르고 난 후 약간의 여유가 생긴 시즌.

         

        2주일의 시간 동안에는 딱히 특별한 이벤트 같은 게 발생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주인공이 아닌 에단과 릴리스에게 특별한 이벤트가 생길 이유야 있겠냐마는.

         

        그동안 있었던 일 중 그나마 특별한 일이라면 해럴드의 수업 도중 치러진 대련에서 내가 또 처참히 깨졌다는 것 정도?

         

        두 번째 대련과 비교하면 조금 더 오래 버티기는 했지만, 이번에도 역시 첫 번째 대련만큼의 치열한 승부는 만들어내지 못했다.

         

        애초에 조금 더 오래 버텼던 것도 단번에 4레벨이 오르면서 전체적으로 능력치가 오른 덕분이겠지. 단검술 쪽에서도 약간의 변화는 있었겠지만.

         

         

        생각해 보면 그냥 첫 번째 대련이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을지도.

         

        검을 맞대면 맞댈수록 해럴드 얘도 나를 상대하는 법에 익숙해진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예 나에 대한 정보가 없었던 첫 번째 대련에서 어떻게든 일격을 먹였어야 했다.

         

        이러다가 정말로 학기가 끝날 때까지 한 번도 못 이기는 건 아니겠지.

         

        물론 마법부 학생이 검술부 교수에게 한 판을 못 따냈다고 해서 낙제점을 받지야 않겠지만, 그냥 개인적으로 해럴드에게 한 점도 못 딸 수도 있다는 점이 묘하게 불안해졌다.

         

        …해럴드에게 세 번째 패배를 한 날 이후 자주 꾸기 시작한 꿈 때문에 그런 걸지도 모르고.

         

         

        ‘형편없구나, 릴리스. 아무리 단검을 들고 싸운다지만 어떻게 한 학기 내내 한 번도 제대로 된 공격을 못 먹일 수도 있지?’

         

        ‘죄송합니다, 주인님. 제 실력이 미처 모자라서….’

         

        ‘이런 형편없는 검을 다루는 메이드는 더 이상 에단의 곁에 둘 수 없다. 내년부터는 전속 메이드를 그만두고 블랙우드 저택을 나가도록.’

         

        ‘아, 안 됩니다, 주인님! 한 번만 더 기회를…!’

         

         

        이런 이상한 꿈을 꿨다가 싱숭생숭한 기분으로 잠에서 몇 차례 깨고 나니 그 부분에 의식이 쏠리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뭐, 실제로 해럴드가 겨우 이런 이유로 전속 메이드를 자르거나 할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냥 요즘 내가 꾸는 꿈 내용이 이런 식이라는 거지.

         

        어쨌든, 꿈의 내용과는 별개로 해럴드에게 좋은 인상을 보이려면 학기가 끝나기 전에 어떻게든 한 판 정도는 따낼 필요가 있었다.

         

        단검만 세 자루에 공격 마법과 보조 마법까지 전부 검 한 자루로 막아내는 해럴드가 갈수록 묘하게 꼴 받기도 했고.

         

        아무리 상대가 소드 마스터라지만 그래도 한 번 정도는 이기고 싶다는 게 솔직한 내 심정이었다. 심지어 상대는 기력도 마력도 전부 봉인하고 싸우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관객석에서 에단과 해럴드의 수업 대련을 보고 있는 도중.

         

        소드 익스퍼트에 도달하기 직전인 녀석답게, 에단은 나와 해럴드가 했던 대련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대련을 이어가고 있었다.

         

         

        -깡! 깡! 까강! 깡! 깡!

         

        “허억, 허억…. 하아악…!”

         

        “…….”

         

         

        눈앞에 있는 상대를 잡아먹을 기세로 쌍검을 휘두르며 몰아치는 에단과 진지한 표정으로 그의 검을 막아내는 해럴드.

         

        얼마 전 있었던 크라켄과의 전투 이후 에단에게도 제법 많은 심경의 변화가 생긴 모양이었으니.

         

        그날의 전투 이후 에단의 검은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성장했다.

         

        해럴드와의 평가 대련에서도 훨씬 더 강하고 박력 있는 모습으로 지치지도 않고 쌍검을 몰아치는가 하면, 일주일에 한 번씩 있는 실전 몬스터 토벌 수업에서도 이전까지보다 더 많은 성과를 내고 있었으니.

         

        아무래도 소드 익스퍼트의 문턱을 한 차례 본 것이 에단의 성장 동기에 불을 지핀 모양이었다.

         

         

        -채앵!!

         

        “…큿!”

         

        “하아, 하, 하아….”

         

         

        에단의 가로 베기와 함께 순간적으로 해럴드의 손에 들린 검이 잠시 공중을 날았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학생들의 입에서도 얕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어?”

         

        “해, 해럴드 교수님 검을 내쳤다고…?”

         

        “역시 블랙우드 가문….”

         

         

        해럴드와 대련 도중 처음으로 ‘완승’을 거둔 모습.

         

        같은 수업을 듣는 학생 중에서는 겧뫄조셰기괏의 뒤를 이어 두 번째로 거둔 완승이었다.

         

         

        “에단.”

         

        “…네.”

         

        “나에게 완승하였으니, 너도 겧뫄조셰기괏과 마찬가지로 이번 학기 성적은 만점으로 처리하겠다.”

         

        “감사합니다!”

         

        “또한, 다음부터는 나도 마력까지 사용하며 대련에 임하겠다. 준비해 두도록.”

         

        “네!”

         

         

        상급반 중에서는 용사에 이어 해럴드의 이번 학기 수업을 두 번째로 졸업한 셈이었다.

         

        중급반인 나는 아직 기력도 마력도 사용하지 않는 해럴드를 상대로 1승을 못 따고 있는데 말이지.

         

        사람마다 잘하는 특기 분야는 다르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해럴드와의 대련을 마치고 내 옆으로 돌아온 에단에게 덤덤한 칭찬을 건넸다.

         

         

        “축하드립니다, 에단 도련님. 날이 갈수록 실력이 빠르게 느시는군요.”

         

        “…고마워, 릴리스.”

         

        “주인님과의 대련에서 승리하셨으니, 오늘 밤에도 보상을 준비해 놓겠습니다, 에단 도련님.”

         

        “…그거 말인데, 릴리스.”

         

        “네?”

         

        “오늘은 평소처럼 한 판을 따낸 게 아니라 아버지에게 ‘완승’을 한 거잖아. 그치?”

         

        “…그렇습니다.”

         

        “내가 이런 말 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완승인데도 보상은 평소의 그걸로 끝이야?”

         

         

        “…혹시, 완승의 대가로 다른 보상을 원하십니까?”

         

        “다른 보상을 원한다기보다는, 그냥 지금까지보다 진도를 더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단은 나와 릴리스는 임시 연인 사이이기도 하고. 물론 릴리스가 그걸로 끝이라고 말하면 어쩔 수 없겠지만.”

         

        “…알겠습니다. 에단 도련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럼 저도 ‘완승’에 걸맞은 보상을 준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기대할게, 릴리스.”

         

         

        …어떡하지.

         

        완승했을 때의 보상 같은 거 딱히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Maid of the Lout Prince

I Became the Maid of the Lout Prince

망나니 공자의 메이드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I transmigrated into a character from my favorite game in my previous life. Moreover, as the character I despise second most in the game. (Not a wasteman) The cover was designed by Deep Dark Wolf, and the typography was done by 유일유화 (Yu Ilyuhwa).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