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70

       나의 강력한 주장으로, 일단 의뢰는 코끼리 사냥이 아닌 사자 사냥으로 바뀌었다.

        

       민가 근처를 떠도는 늙은 사자 한 마리에 대한 사냥이었는데, 적어도 이 사자는 실질적으로 문제가 되는 존재였으니까. 적어도 허허벌판에서 별생각 없이 풀 뜯고 있는 코끼리와는 다르다.

        

       안 그래도 거대한 사자가 진짜 괴물이라고 불릴 수 있을 만큼 몸집이 커지고, 송곳니가 아주 단단하게 언 얼음이라는 점에서 특이하다면 특이했지만, 하는 일은 민가를 습격해 가축을 잡아먹는 것이었다.

        

       게다가 몇 번은 사람도 습격했다고 한다. 그 사람들이 죄다 자동차 안으로 숨었고, 사자가 창문을 깨기 전에 사냥꾼 무리가 오는 것을 보고 도망가버렸지만.

        

       “설명에 따르면 몹시 까다로운 사냥감이라고 했습니다.”

        

       소총을 들고 있는 걸 알아보기 때문에 큰 총기를 들고 갈 수는 없다. 첫 의뢰가 코끼리 사냥이 되었던 것도, 내가 화력 시험을 한답시고 그 거대한 엘리펀트 건을 골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도 알아보는 모양이었다. 아직 사람까지 잡아먹지는 않았지만, 달려들었던 당시에도 남편은 일을 나가 있었고, 어머니와 아이 두 명이 시장에 다녀오던 길이었다고 했으니까. 남자가 있긴 했지만 늙은 운전수라서 사자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차 문을 열고 내릴 때까지 쭉 숨어있다가 갑자기 달려들었고, 운 좋게 다시 차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네가 혼자 서 있겠다고?”

        

       “그렇습니다.”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하다못해 다른 사람이 같이—”

        

       “이 자리에 계신 다른 분들은 모두 기척을 완벽하게 숨기지 못하니 안 됩니다.”

        

       나는 그 짧은 말로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라버렸다.

        

       내 말에도 일리는 있다. 나는 이런 쪽으로는 재능이 없어서 살기 같은 것을 내뿜을 줄 모르지만, 여기서 검술을 쓰는 애들은 모두 나름대로 기운만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법을 알고 있다. 자기 실력 이상의 상대라면 씨알도 먹히지 않겠지만.

        

       사람을 상대할 때는 나름 유용한 능력이고, ‘사람’을 상대로 한다면 역시 숨기기도 용이하지만, 상대가 짐승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특히 경험이 쌓인 늙은 사자라면, 레오 같은 애를 상대로 달려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로티나 릴리 베이커를 내보낼 수는 없었다.

        

       실력을 못 믿어서라기보다는, 내가 생각하는 일을 벌이기 위해서.

        

       “……좋아.”

        

       앨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조금이라도 위험한 것 같으면 곧장 작전을 취소하고 우리가 모두 튀어 나갈 테니까.”

        

       “알겠습니다.”

        

       뭐, 나도 죽을 생각은 없다.

        

       진짜 위험하다 싶으면 그냥 애초에 없던 일로 만들어버릴 생각이었으니까.

        

       *

        

       ……진짜 크네.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는 사자는 정말 엄청나게 컸다. 네 발로 땅을 짚고 서 있는데도 눈의 높이가 나의 눈높이와 거의 비슷해 보일 정도로.

        

       저 사자의 눈으로 보기에는 내가 정말 맛있는 먹잇감으로 보일까?

        

       그럴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냥 발톱을 휘두르기만 해도 나는 반토막 날 테니까. 사자가 보기에는 그야말로 부드러운 푸딩 같아 보이겠지.

        

       물론 나는 그렇게 쉽게 잘려줄 생각은 없었지만.

        

       사자가 세 발자국 내 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보다가, 나는 그대로 허리 뒤쪽에 숨겨두었던 권총을 꺼내 들었다.

        

       사자는 권총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를 보더니, 잠깐 몸을 긴장시켰다가—

        

       그대로 내 쪽으로 달려들었다.

        

       권총 정도는 버텨 보이겠다고 생각한 것일까. 도망갈 바에는 먼저 공격해서 잡아먹는 쪽이 유리할 거라고 본 걸까?

        

       그런데 어쩌나.

        

       내 손에 들고 있는 권총은 요즘 애용하고 있는 자동권총보다 조금 더 구경이 큰, 원래 쓰던 리볼버였다.

        

       455구경의 마르마로스 탄이 장전된.

        

       화염탄은, 특히 저런 차가운 기운을 가진 짐승에게 잘 먹히는 탄이었다.

        

       게다가 저 사자가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말이다.

        

       나는 이미 탈인간급으로 빠른 루카스도 맞춰본 사람이라고.

        

       탕.

        

       한 발.

        

       그 한 발만으로도 충분했다.

        

       나에게 달려들던 사자의 얼굴에 맞는 동시에 폭발하며 큰 화염을 일으킨 그 탄은, 달려들던 사자가 바닥에 처박히게 만들었다.

        

       그대로 바닥을 쭉 미끄러져 오면서 발을 버둥거리는 것이 보여서, 나는 다시 총을 몇 발 더 쏘았다.

        

       탕, 탕, 탕,

        

       솔직히 말하자면, 적자다. 사자 가죽을 팔고 안에서 마르마로스를 정제해내도 내가 쓴 탄의 비용이 더 비싸리라.

        

       뭐, 그래도 죽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바닥에 떨어진 사자는 그대로 내 쪽으로 쭉 미끄러져서, 정말 우연히도 내 발 딱 바로 앞에서 멈췄다.

        

       좋아. 이 정도면.

        

       나 혼자서도 죽지 않을 수 있다는 건 알았으니까.

        

       다시.

        

       *

        

       이번에도 똑같았다.

        

       하지만 전제 조건은 달랐다.

        

       탕!

        

       보통 인간이라면 맞고 뒤로 벌렁 넘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탄환이었지만, 사자에게는 먹히지 않았다.

        

       당황할 일은 아니다. 애초에 이번에는 평범한 탄을 장전해왔으니까.

        

       처음 딱 두 발만.

        

       정확히는, 실린더에는 아까와 똑같은 순서로 탄환이 장전되어 있었다.

        

       불 속성 마르마로스 네 발과 평범한 탄환 두 발.

        

       나는 실린더를 돌려서 순서를 바꾸었을 뿐이다.

        

       하지만 결과는 완전히 달랐다.

        

       사자는 머리를 움찔거리긴 했다. 피가 조금 튀기도 했고. 하지만, 그렇다고 아까처럼 허공에서 뚝 떨어지지도 않았다.

        

       탕!

        

       일반탄을 한 발 더 발사했다.

        

       사자는 여전히 나를 한 끼 식사로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나는 당황한 척 오른쪽으로 두 발자국 움직이다가, 그대로 바닥에 털퍼덕 몸을 쓰러뜨렸다. 음, 멀리서 보면 그래도 대충 다리가 꼬여서 넘어진 걸로 보이려나?

        

       탕!

        

       커다란 총소리가 들렸다.

        

       내 총이 아니라, 오른쪽 저 먼 곳에서.

        

       허허벌판인 초원 한가운데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시선을 돌려보니, 그곳에서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로티의 소총에 달린 스코프가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기운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먼 장소에, 로티와 릴리를 배치했다. 다만, 릴리가 볼 수 있는 곳은 다소 불리한 위치였다. 자칫 잘못하면 사자를 쏘다가 나까지 쏴버릴 수도 있는 위치. 정확히는, 내가 오른쪽으로 움직이면 사자와 내가 거의 겹쳐 보일 수 있는 위치의 건물 위였다.

        

       레나는 오늘도 권총과 기관단총을 챙겨왔으니 맞출 수 있는 거리도 아니었고.

        

       떨어지는 사자를 보며 내가 회심의 미소를 짓는 것을, 로티가 보지 못했으면 좋겠다—

        

       “어, 잠깐—”

        

       하지만 다음 순간, 사자가 떨어지는 각도를 보고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뭐. 대충 이 각도로 떨어지도록 유도한 건 맞지만—

        

       내 몸 위로 떨어지는 사자의 앞발이 내 생각보다 훨씬 컸다.

        

       “겍.”

        

       ……내가 그런 소리를 내는 것을 주변 사람들이 듣지 못할 정도로 멀리 떨어진 곳이라는 게 다행이었다.

        

       *

        

       “실비아!”

        

       조금 뒤늦게, 앨리스의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가 들렸다.

        

       내 쪽으로 일행들이 얼른 쫓아오는 것을 보면서 나는 내 몸 위를 이불마냥 덮고 있는 사자 다리를 치웠다.

        

       큰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 강하게 내려찍은 것이 아니라 그냥 내 위로 떨어졌을 뿐이니까.

        

       그래도 멍 정도는 들까?

        

       발톱 부분이 몸을 긁지 않은 것은 행운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죄, 죄송합니다!”

        

       릴리가 얼른 뛰어와서는 허리를 푹 숙였다.

        

       “황녀님과 사자가 겹치는 각도가 되어버리는 바람에—”

        

       거기까지 말하다가 손으로 입을 틀어막는 것을 보니, 그 말이 내 탓을 하는 것처럼 들렸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바닥에 넘어진 건 제 탓이니까요.”

        

       거기까지 말하는데 갑자기 욱신거리는 옆구리가 시원해졌다. 몸에 푸른 빛이 감도는 것을 보고 시선을 돌려보니, 미아 크로우필드가 내 쪽으로 지팡이를 겨누고 있었다. 치유 마법이라도 써준 걸까.

        

       내가 미아 크로우필드 쪽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이자, 그녀는 시선을 슬쩍 피했다.

        

       정말로 괜찮느냐, 다쳤는데 숨기는 것은 아니냐, 다리를 삔 건 아니냐, 열심히 걱정하는 클레어와 앨리스 너머로, 이쪽을 향해 조용히 다가오는 로티가 보였다.

        

       “로티.”

        

       난 로티를 향해 말을 걸었다. 근처까지 다가온 로티는 공손히 손을 모으고 자리에 섰다.

        

       “덕분에 크게 다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아니, 따지고 보면 당신이 제 생명의 은인이라고 할 수도 있겠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것을 말없이 바라보던 제이크의 눈이 조금 가늘어졌다.

        

       “아닙니다.”

        

       나는 그런 로티를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

        

       “이렇게 보여도 저는 제국의 황녀니까요. 저의 목숨을 구해주신 것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요.”

        

       로티는 무표정했지만, 동시에 조금 당황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내리깔고 있던 시선이 내 쪽으로 올라왔으니까.

        

       그리고 나를 걱정하던 앨리스의 표정도 미묘하게 바뀌었다.

        

       이내 그 표정에 이해의 감정이 스쳐 지나가더니, 그대로 손을 들어서 자기 이마를 짚었다.

        

       뭐, 그런 거다.

        

       평민 신분이 수직으로 상승하는 방법 중 가장 좋은 것이 뭐라도 공을 세우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 공을 세운 대상이 그 나라에서 높으면 높을 수록 좋을 거고.

        

       눈을 가늘게 뜨고 있던 제이크의 얼굴이 웃음을 터뜨릴 것처럼 바뀌는 것을 보고,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ㅠㅠ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