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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0

    달그락, 달그락.

    요리실습을 하며 나온 부산물로 가벼운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하던 루크가 말했다.

     

    “자, 이런 식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될 것이야. 한번에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테니. 아, 그리고 말이다. 절대, 레시피에서 벗어나지 말거라. 알겠느냐? 너는 아직 요리를 창조할 능력이 되지 않으니까.”

     

    “그치만, 파이리스는 마싰다고 했눈데…….”

     

    “……그건 저 아이의 입맛이 특이해서 그런 것이니 잊어버리고.”

     

    “응.”

     

    디아나는 크게 고집피우지 않고 루크의 말을 잘 따라주었다.

    솔직히 자신의 말을 제대로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어쩌나 조금 고민하기는 했는데, 잘 따라와주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설거지를 마치고 앞치마에 손에 묻은 물기를 닦아내던 순간, 디아나가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언니! 그럼 다음은 뭐야?”

     

    “아, 그래. 다음 말이지.”

     

    루크는 잠깐 고민하더니, 금방 입을 열었다.

     

    “아마도 외모가 될 게다. 아름다움은 여성의 가장 뛰어난 무기이지.”

     

    실제로 과거 자신에게 탈피가 일어날 때, 피부가 조금 푸석해진 것을 가지고 숲지기들이 직접 나서서 온갖 화장품을 발라댄 적도 있었을만큼, 여성들은 외모에 필사적이었다.

    그 일은 여성들이 여성의 외모를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있느냐는 것을 증거하는 사례였다.

    고작해야 슬라임추출물에 꽃의 향기를 가둬둔 질척한 액체 외에 얼굴에 바를 만 한게 없던 과거보다 화장품의 종류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세밀해진 이 시대에서는 그것이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것이다.

     

    그만큼 외모가 중요하고, 또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리라.

     

    “그렇구나!”

     

    디아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외모는 당연히 예쁠수록 좋다는 사실은 8살짜리 아이도 충분히 잘 아는 사실이었다.

     

    왜, 그런 말도 있지 않던가.

    본래라면 화날 일도, 네 얼굴을 보아서 참는다고.

     

    하지만 디아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어떻게?”

     

    외모가 중요한 것은 안다.

    하지만 그건 노력해서 바꿀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이미 태어난 이상, 외모는 웬만해서는 바꾸기 어려웠다.

    폴리모프는 굉장히 비싸고 위험한 마법이고, 주기적으로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히 볼 수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골격과 체질에 따라 변형가능한 범위가 정해져있기도 해서, 무조건 예뻐질 수 있다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나는 네게 자신의 외모를 가꾸는 법을 가르쳐줄 것이다.”

     

    그러나 외모는 바꿀 수 없어도 가꿀 수는 있는 것이었다.

    비유를 하자면 꽃이다.

    민들레가 장미가 될 수는 없어도, 다른 민들레보다 생생한 민들레가 될 수는 있는 법.

    아직 어린아이인 디아나가 벌써부터 심각하게 관리를 들어갈 필요는 없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기본적인 관리는 어릴 때부터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하!”

     

    납득한 디아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 그럼 디아나. 잠깐 일어나보거라.”

     

    “응!”

     

    벌떡, 힘차게 일어나는 디아나.

     

    루크는 잠시 앞치마를 벗어 식탁의자에 걸쳐두고는 디아나를 머리부터 발 끝까지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육신의 관리, 그것은 루크도 어느정도는 알고 있는 것이었으니.

     

    “좋아, 일단 머리를 빗는 법부터 시작하지.”

     

    ——-

     

    디아나는 머리를 빗는 작업을 스스로 한 적이 거의 없었다.

    긴 머리는 어린아이 혼자서 관리하기에는 힘에 부치기도 하고, 딱히 머리를 빗는 걸 즐기지도 않는 성정 때문이었다.

    그래서 머리를 빗는 것은 요리를 배울 때처럼 행복한 일은 아니었다.

     

    “흐에, 힘드러.”

     

    어떻게 이런 빗질을 혼자서 매번 한다는 말인가?

    디아나는 그대로 바닥에 엎어지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보며, 루크는 한숨을 쉬었다.

     

    “이것은 기본이란다. 이 다음에는 머릿결과 피부를 관리하기 위한 화장품의 사용법을 가르쳐줄 생각이었는데…….”

     

    어쩌면 외모관리는 디아나에게 너무 일렀던 것인가 하는 생각에 루크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그 중얼거림을 들은 디아나는 금세 힘을 되찾은 듯 벌떡 일어나며 눈을 빛냈다.

     

    “화장?”

     

    여자아이들이라면 다들 화장에 큰 관심을 보이곤 했다.

    어릴적 엄마의 화장대에서 립스틱을 꺼내 얼굴에 발라보는 것은 흔하지 않던가?

    하지만 디아나는 고아.

    다이튼에겐 남성화장품은 있었어도 립스틱은 있을리가 없었고, 그 탓에 그런 경험을 가질 수 없었기에 지금은 더욱 흥미가 돋았다.

     

    “아, 화장까지는 가르쳐주지 않을 생각이었다만.”

     

    사실 화장은 루크에게도 미지의 영역이었다.

    아무리 자신의 육신을 철저히 관리하던 경험이 있다지만, 그렇다고 정말 여성들처럼 화장을 일상처럼 하고 다니던 것은 또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외모가 가꾸어진 것은 부수적인 것일 뿐, 남들에게 아름답게 보이도록 스스로를 꾸미는 작업에는 딱히 열을 올린 적이 없었으니.

    다만, 그만한 필요가 있는 자리에서 예를 차리기 위해 하인들에게 몸을 맡긴 경험은 조금 있었다.

     

    “화장…….”

     

    그러나 디아나의 시무룩한 표정을 보고 있으니, 한번쯤은 체험을 시켜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마침 예르나가 잔뜩 구매한 화장품들이 화장대에 전시되듯 놓여있기도 했다.

    그건 사실 조금 이상한 광경이었다.

    왜냐하면, 평소에도 예르나는 화장을 잘 하지 않는 편이었으니까.

     

    저 많은 화장품들을 예르나가 구매할 당시에는 자신이 쓰려는 것인가보다 하여 아무말을 하지 않았는데, 저토록 방치해둘 것이라면 대체 왜 산 것인지, 지금 생각해보니 의아한 점이로다.

    충동적으로 구매했다기에는 평소 소비행색으로 보아 예르나는 딱히 돈을 낭비하는 것을 즐기지도 않는 것 같았는데 말이다.

     

    ‘뭐, 예르나가 쓰고 싶으면 얼마든지 써도 좋다고 했으니까…….’

     

    아마 조금은 써도 예르나가 뭐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리라.

     

    사실은 그것이 화장대에 놓여있는 수많은 화장품들의 존재이유 그 자체였다.

     

    그 화장품들은 일전에 베리튼의 세계수에서 루크가 50만길 이상의 화장품에 관심을 보인 것을 보고 화장품 전반에 관심이 생긴 것인가 하여 예르나가 구매해둔 것들이었으니까.

    보통 10살짜리 아이가 화장을 하는 것은 그다지 권장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예르나가 그토록 화장품을 사놓은 까닭은, 어쩌면 어른이 되기 전에 죽을지도 모를 아이에게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너무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루크는 그것까지는 알 수 없었다.

    예르나는 혹시나 그것으로 루크가 ‘은혜를 입었다’라고 생각해서 어떻게든 ‘보답’하려고 할까봐 그것으로 생색을 부리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루크는 한동안 컴퓨터로 ‘화장 하는 법’, ‘화장품 사용법’등을 검색해 찾아보고는 디아나의 앞에 섰다.

     

    디아나는 의자에 앉은 채, 기대에 찬 눈빛으로 루크를 바라보고 있었고 루크는 그 아이의 기대에 부흥해야할 의무를 짊어진 상태였다.

     

    “……그럼, 시작하지.”

     

    “응!”

     

    루크는, 난생처음으로 화장을 해보기 시작했다.

     

    ——

     

    마법사, 세계의 진리와 지식을 추구하는 자.

    이성과 지식의 총체, 논리의 추종자, 냉정한 조율자, 자연의 배반자.

     

    그리고 마침내 세상을 개벽할 수 있는 권한을 손에 넣는 것을 목표하는 존재들.

    그렇기에 만인의 기대를 받으며 또 많은 것을 짊어진 자였다.

     

    그러나 그런 마법사에게 절대 기대해서는 안되는 것이 몇 있었는데, 그것들 중 하나는 바로 ‘미적 감각’이었다.

     

    “음, 흐음…….”

     

    루크는 눈썹을 모으고 미묘한 표정을 지은 채 신음하고 있었다.

     

    이 결과는 이상했으니까.

    분명 검색에서 나타난 정보대로, 확실히 엄선해서 조율해 정확히 따라했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하고 미묘한 느낌이 역시 이건 아니라고 외쳐오지만, 루크로서는 대체 어디가 어떻게 이상한 것인지 좀체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손을 잘못 움직였나? 그럴 리 없다.

    루크는 마법사로서, 그림 역시 웬만한 사람들보다 훨씬 잘 그릴 수 있다 자부하고 있었으니까.

    물건을 보고 정확히 따라그리거나, 풍경이나 생물을 정확히 똑같이 그려내는 기록물과 같은 느낌이라 실제로 작품을 그려내는 화가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아무튼 작업 자체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건…….

     

    “다 됐어?”

     

    “아, 그, 잠시만 기다려보거라.”

     

    뭔가 빠트린 것이 있을 것이리라.

    루크가 이마를 검지로 누르며 고민하고 있자, 더 이상 앉아서 가만히 있는 것에 지친 디아나는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우응……. 갑갑한데…….”

     

    그렇게 시작된 루크의 고민은 ‘이 화장을 살려내려면 어떤 작업이 필요할까?’였다.

     

    그러나, 마법사의 두뇌로는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질 않았다.

    수습할 방법은 생각 나지 않고, 식은땀만 잔뜩 흐르고 있었다.

     

    “…….”

     

    루크는 결국 수습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 디아나가 자신의 얼굴을 보면 울어버릴지도 모른다.

    마법사인 자신도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쾌감에 불편함을 느끼는 중인데, 8살짜리 여자아이라면 어떻겠는가.

    이 사태는 이대로 묻어버리는 편이 좋았다.

     

    “그냥 세수나 하자꾸나. 거울은 보지 말고.”

     

    “힝, 궁금한데…….”

     

    “자, 고집 부리지 말고 어서.”

     

    루크는 디아나의 등을 떠밀었지만, 디아나의 호기심은 그것보다 강했다.

     

    휙!

     

    “아앗, 디, 디아나!”

     

    바로 고개를 돌려 화장대에 딸린 거울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려는 디아나.

     

    루크는 순간적으로 라이트를 터트려 디아나의 시야를 가려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했지만, 어린아이의 눈 앞에 강력한 빛을 투사하는 행위는 굉장히 위험한 행위이기에 어쩔 수 없이 디아나의 행동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헉……!”

     

    디아나는 숨을 들이켰다.

     

    물론 굉장히 충격적이리라, 자신의 얼굴이 괴상한 가면처럼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루크는 곧 이어질 울음소리에 대비해 눈을 감고 어깨를 살짝 움츠러들었다.

    그러나, 결과는 루크의 예상과는 달랐다.

     

    “이게, 나야……?”

     

    디아나는 눈빛을 작은 별처럼 반짝거리며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새로운 자신의 모습, 그것은 디아나에게 공포나 불안감보다는 흥미로움을 유발했다.

     

    새하얀 피부, 발그스름한 볼, 진한 눈썹과 앵두 같은 입술, 디아나가 보기에 그건 마치 공주인형 같은 모습이었다.

     

    “……그, 정말 그 모습이 마음에 드느냐?”

    “응, 너무 예뻐…….”

    “하, 하하하…….”

     

    그런가?

    어쩌면 자신의 미적기준이 이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뭔가 조화롭지 않은 느낌은 그저 느낌뿐이었던 걸까.

    하긴, 자신에게는 5000년이나 되는 감각의 차이가 있었다.

    현대의 아이와는 미적기준이 다를 수도 있겠지.

     

    “아, 아무튼, 이제 세수를 해야겠구나. 듣기로는, 화장품은 아이의 피부에 그다지 좋지 않다고 하니.”

    “알겠어!”

     

    그렇게 디아나를 화장실로 보내고, 잠깐 옆을 돌아본 순간이었다.

     

    루크는 경악했다.

     

    “아니, 파이. 그대는 또 무슨 짓을 한 겐가…….”

     

    “이거 재미따!”

     

    그곳에는, 립스틱을 들어 자신의 얼굴에 온통 붉은 색을 칠하며 웃고 있는 파이리스가 있었다.

     

    “그대도 화장실로 따라오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애기들은 화장같은거 하지 않아도 충분히 귀여운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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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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