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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0

       우리는 그녀가 식당 안으로 들어서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분명 우리가 알고 있는 마야였지만, 평소와 복장이 달랐다.

         

       늘 입던 옷은 어디 가고 없었다.

       대신 그녀는 연한 하늘빛 블라우스에 자신의 피부만큼이나 새하얀 정장 재킷과 치마를 입고 있었다.

         

       우리는 그 옷이 뭔지 알고 있었다.

       아까 엘라가 그것을 입고 우리 앞에서 한 바퀴 돌며 맵시를 뽐냈기 때문이다.

         

       그것은 레카체프의 의전용 교복이었다.

         

       중절모에 스타킹에 구두까지 온통 하얀색으로 도배한 덕분에 그녀의 눈동자에 깃든 붉은 색이 더욱 진하게 보였다.

         

       “어머, 마야 양도 청강을 들으러 가는 거예요?”

         

       유라크네는 교복을 입은 그녀의 모습을 살피며 연신 감탄사를 연발했다.

         

       “네.”

         

       마야는 고개를 끄덕였고, 다른 단원들은 넋을 놓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그녀의 옷차림은 빈말로도 단정하다 할 수 없었다.

         

       다 늘어난 스웨터는 군데군데 보풀이 일어났고, 카디건은 두 치수니 큰 거라서 어깨가 반쯤 드러났다.

       그나마 치마는 유라크네가 멜빵을 단단히 고정해 놓았기에 풀려서 흘러내리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녀가 워낙 옷을 대충 걸치고 다닌 덕에 그녀의 베레모도 원래 고깔모자였는데 찌그러진 것을 그대로 쓰고 다니는 것은 아닌지 합리적인 의심이 들 정도였다.

         

       자기가 몰두하는 일 외에는 관심이 없는 그녀였다.

       패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가 갑자기 단정한 복장으로 나타나니 단원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마야는 단원들의 웅성거리는 데도 조금의 눈길도 주지 않고 나만 빤히 바라봤다.

         

       나 역시 그녀의 변화에 감탄했다.

         

       어제까지의 그녀가 게으른 기지개를 켜는 야생의 살쾡이 같은 느낌이었다면, 지금의 그녀는 우아한 암컷 백사자 같았다.

         

       “마야 양, 아름답군요.”

         

       그녀는 내 말을 듣고 눈을 크게 뜨더니 갑자기 고개를 홱 돌렸다.

       그리고는 계단을 향해 걸어갔다.

         

       나는 조금 당황했다.

       외모에 대한 칭찬이 그녀에게 별 의미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렇다 해도 이렇게까지 무반응일 줄은 몰랐다.

         

       “피곤해서 먼저 잘게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계단을 올랐다.

       어깨가 살짝 떨리는 것으로 보아 정말로 피곤한 모양이었다.

         

       단원들은 그녀가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 동안 그녀의 변신에 대해서 떠들어댔다.

         

       “마야 누나가 그렇게 예쁜 줄 몰랐어요!”

         

       우몬은 마야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며 아직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트라이머리 3형제는 그런 막내를 바라보며 실실 웃음을 흘렸다.

         

       “이 녀석아! 입에서 침 떨어지겠다!”

       “다들 오늘 돌아가며 마야의 방 앞에서 불침번을 서야겠어. 우몬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라!”

       “맞아! 맞아! 이 녀석이 힘으로 밀어붙인다면……!”

         

       그들의 법석에 우몬의 붉은 피부가 더욱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크르르르! 이 형들이 진짜 자꾸 사람을 이상하게 만드네!”

       “이크, 우몬이 화났다!”

       “도망쳐! 잡아먹힐라!”

       “크하핫!”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엘라는 가만히 뭔가를 생각하는 듯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녀는 마야가 올라간 계단을 돌아보며 입을 샐쭉 내밀었다.

         

       마야의 깜짝 변신은 그날뿐이었다.

         

       다음 날 아침, 유라크네가 소품으로 샀던 예쁜 옷들을 들고 그녀의 방을 찾았으나, 단 한 벌도 입혀보지 못하고 쫓겨났다.

         

       마야는 울먹이는 유라크네의 만류를 뿌리치고 평소에 입던 옷을 다시 걸쳤다.

       교복은 학교 행사 전까지 다시 꺼내지 않을 모양이었다.

         

       “정말 수강 준비를 안 도와줘도 되나요?”

         

       내 질문에 마야는 기운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곡예에는 전혀 흥미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던 그녀에게 갑자기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마야는 평소대로 수수께끼를 파헤치기 위해 광장으로 떠났다.

         

       나는 엘라와 함께 곡예 연습을 하며 오전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평소보다 조금 더 강하게 훈련에 임했다.

       프로그램 역시 계획했던 것과 다르게 진행했다.

         

       “왜 갑자기 쏴 위주로 연습을 하는 거죠?”

         

       내 질문에 그녀는 단검을 살피다가 당황한 듯 고개를 들었다.

         

       “그, 그냥 좀 부족한 거 같아서?”

         

       그렇게 별다른 일 없이 며칠이 흘렀다.

         

       시간은 이제 개강 날을 하루 앞두고 있었다.

         

       사흘 만에 연락 온 레이나와 대화를 막 마쳤을 때, 엘라가 문을 두드리고 내 방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내게 잡지 한 뭉치를 건넸다.

         

       “자, 이번 달 발매된 것들이야. 난 다 읽었어.”

         

       이곳은 호텔과 달리 잡지가 제공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읽고 난 잡지를 받아서 보고 있었다.

         

       나는 잡지들을 펼치고 기사들을 읽어내려갔다.

       우리와 관련된 기사는 엘라가 표시를 해뒀기에 빠르게 찾을 수 있었다.

         

       레이나와 엘라가 서로 팔씨름을 하는 만평을 지나 다음 장.

         

       한 기사의 제목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서커스 그랑프리의 성화가 지펴지다!>

         

       성화라고?

       무언가를 떠올린 나는 기사의 내용을 읽어내려갔다.

         

       그리고 내 눈길이 어느 대목을 넘기는 순간,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내 눈앞에 빛이 번쩍했다.

         

       십수 개의 알림창이 내 눈앞을 가득 메웠다.

         

         

       ***

         

         

       슬라그보르트 공작은 극작가 크리스티앙의 열렬한 팬이었다.

         

       <크리스티앙 가이드>의 편집장을 제외하고 아무도 만난 적 없는 극작가 크리스티앙의 얼굴을 알고 있다거나, 그가 쓰고 미처 발표하지 못했던 ‘환상의 13번’을 소유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하지만 공작은 두 소문 다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역시 크리스티앙을 본 적이 없었으며, 환상의 13번 극본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두 소문 중 후자는 진실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젊은 비서가 자신의 손에 든 극본을 읽어나갔다.

       그는 연기의 재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사람이었다.

         

       순진한, 사악한, 발랄한 극 중 등장인물들 모두가 제국 대학을 졸업한 20대 후반의 엘리트가 되어 딱딱한 대사를 읊었다.

       그는 심지어 지시문과 무대 연출까지도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읽었다.

         

       “대, 대단하시군요.”

         

       레카체프의 길들이기 교수인 파이렌이 당황함을 숨기지 못하며 말했다.

         

       아무리 그녀가 뒤로 다른 일을 꾸민다고 해도 본바탕은 무대에 서는 연기자였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그녀의 본분을 부정하는 듯한 남자의 존재에 아무리 그녀라도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비서는 명령받은 대로 대본을 모두 읽었다.

         

       공작은 자신의 비서가 저지른 기행에 조금도 놀라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13번이 맞아. 진품이 확실하군.”

         

       공작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는 환상의 13번을 소유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알고 있었다.

         

       파이렌이 가져온 극본은 분명 크리스티앙이 쓴 것이 맞았다.

         

       “이걸 어떻게 입수했다고 했나?”

         

       공작은 비서가 건넨 대본을 품에 안으며 물었다.

       

       “스승님과 크리스티앙이 친분이 있으셨던 것을 아십니까?”

       “아, 그랬지.”

         

       공작이 5인방 중 길들이기를 특기로 삼았던 남자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이 생전에 소유하셨던 캐비닛을 최근 학교 창고 안에서 발견했는데, 제가 그것을 맡아서 정리했습니다. 대본은 그 안에서 나왔습니다.”

       “알겠네.”

         

       공작은 비서에게 손짓했다.

         

       오늘 그들이 만난 것은 거래를 위해서였다.

         

       파이렌이 이것을 그에게 건내는 대신, 그는 그녀가 원하는 물건을 구해주기로 한 것이다.

         

       비서가 금고 안에서 유리병 하나를 들고 왔다.

       그것은 오늘 점심에 예테린푸르크에 도착한 물건으로, 며칠 전에 베가스의 경매장에서 낙찰된 물건이었다.

         

       유리병 안에는 마치 보석을 으깬 것과 같은 가루들이 반짝이는 빛을 발하고 있었다.

         

         

       ***

         

         

       내가 단원들에게 ‘병을 고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라고 말한 것에는 근거가 없었다.

         

       혹시나 시스템이 그들의 바람에 반응해서 퀘스트를 주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를 담아서 던진 말이었다.

       그러나 한 달 내내 단원 퀘스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시스템은 그것을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게임 속 내용을 되새겨 보면 뭔가 단서가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돌이켜봐도 원더스타인의 악행만 떠오를 뿐이었다.

       그가 누군가를 구원해준다는 것은 상상이 가지 않았다.

         

       게이머로서 내가 기댈 곳은 결국 시스템이 제공하는 보상밖에 없었다.

       평균 호감도 혹은 서커스단의 명성에 대한 최종 보상이 고유 특성을 조작하는 것이지 않을까 하는 것 말이다.

         

       나는 잡지에 실린 기사를 다시 읽어내려갔다.

       그렇게 두 번, 세 번 읽고 나서 나는 크게 숨을 내쉬며 의자에 앉았다.

         

       실마리는 역시 원작에 존재했었다.

       왜 진즉에 이것을 떠올리지 못했나 스스로가 바보 같을 지경이었다.

         

       기사에는 사진이 실려 있었다.

       로브를 입은 사람들이 불꽃 속에서 쇠집게로 무언가를 끄집어내는 장면이었다.

         

       그것은 사람 머리보다 더 큰 거대한 보석이었다.

       보석을 꺼낸 자리 주변에는 유리 파편 같은 가루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나는 저 보석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TTT를 플레이한 사람이 저것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말이 안 됐다.

       타이틀 로고에도 박혀 있는 물건인데.

         

       지금 빠르게 울리고 있는 내 박동은 이 몸의 본래 주인이 느끼는 흥분일까, 아니면 내가 실마리를 발견했기 때문에 흥분한 것일까.

         

       어느 쪽이건 그 보석의 존재는 내 평정심을 뚫고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나는 기사에 실린 사진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저것이 바로 TT1에서 원더스타인이 하늘도시 히포드롬을 습격한 이유였다.

         

       저것이 바로 TT2에서 원더스타인의 영혼이 깃들어 6대 극장을 오염시켰던 물건이었다.

         

       저것이 바로 TT3에서 원더스타인이 최종 스테이지로 향하는 문을 열기 위해 사용한 물건이었다.

         

       검은 마도사가 노리는 보물.

       서커스 그랑프리의 성화.

       공연과 축제의 마신을 상징하는 성유물.

         

       ‘키르쿠스의 눈’이라는 별명을 가진 보석.

       원더스타인과 3명의 영웅과 더불어 시리즈를 상징하는 것.

         

       게임의 제목에도 들어가 있는 그것.

         

       마신 키르쿠스의 힘이 담긴 성유물 ‘트릴’이었다.

         

       내가 기사를 다 읽은 순간, 알림창이 떴다.

       그것은 내가 한동안 받았던 것들과 색깔이나 형태가 달랐다.

         

       내가 이 세계를 와서 딱 2번만 받아본 것이었다.

         

       [메인 퀘스트-프리퀄]

       [메인 퀘스트-서커스 그랑프리]

         

       그에 이은 3번째 메인 퀘스트.

         

         

       [‘메인 퀘스트-트릴’이 활성화되었습니다.]

         

         

       *메인 퀘스트-트릴

       : 당신이 손에 넣기를 원했던 그것입니다.

         

       달성조건

       : 트릴이 완전한 붉은색이 된 이후에 그것을 먹어치우십시오.

         

       성공 시 보상

       : ‘마인화 페널티’ 없이 ‘고유 특성’ 조작 가능

         

       실패 시 페널티

       : 없음.

         

         

       메인 퀘스트과 활성화됨과 동시에 시스템이 가능성을 감지했다.

       그동안 막혀 있던 단원 퀘스트가 활성화되었다.

         

         

       [‘단원 퀘스트-평범한 몸으로’가 활성화되었습니다.]

       [‘단원 퀘스트-삼등분’이 활성화되었습니다.]

       [‘단원 퀘스트-루저 탈출’이 활성화되었습니다.]

       [‘단원 퀘스트-탈피’가 활성화되었습니다.]

       [‘단원 퀘스트-피와 살’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이가 가리키는 사실은 명백했다.

       키르쿠스의 눈이 있으면 고유 특성을 조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뒤이은 메시지 때문이었다.

         

         

       [키르쿠스의 유물 ‘트릴’이 세상에 나타났습니다. 그에 따라 단원들의 마인화 진척도를 상태창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인화 진척도.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오직 괴물 단원들에게만 나타났기 때문이다.

         

       나는 단원 관리 창을 열어 그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대부분의 단원은 마인화 진척도가 0%였지만, 두 사람만이 달랐다.

         

         

       이름: 우몬

       나이: 10

       호감도: 21

       칭호: 적혈귀

       직업: 차력사

       특성

       : [칼날 저글링]

         

       마인화 진척도 : 1%

       마인화 페널티: [피의 갈증]

         

         

       이름: 유라크네

       나이: 26

       호감도: 38 (다음 보상: 호감도 50)

       칭호: 거미 여인

       직업: 줄타기 곡예사

       특성

       : [유라크네의 정성], [벽 타기]

         

       마인화 진척도: 22%

       마인화 페널티: [에로스와 타나토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도로시 님, 10코인 후원! 꾸준한 응원 감사합니다! b (^-^) d

    이번 에피소드는 도입부가 좀 길었군요. 찰리와 카렌의 이야기를 풀고 간다고 그런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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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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