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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0

        

         

       진성이 신사에 도착하자 얼마 전 영상통화에서 봤을 적과 똑같은 풍경이 그를 맞이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영상통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스산한 분위기가 신사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는 점이다.

         

       사람을 저절로 숙연하게 만드는 분위기.

       마음이 착 가라앉게 만들고, 행동 하나하나를 스스로 주의하게 만드는 그 특유의 분위기.

       누군가는 이것을 신사 그 자체의 경건함이라 말할 것이지만, 진성은 이 분위기의 정체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혼과 백, 허신에서 비롯된 주체성이 없는 신력이 뿜어내는 분위기라는 사실을 말이다.

         

       한때는 오랜 세월을 보내며 한곳에 모여 의지를 가졌던 신력은 이제는 단순한 에너지로 전락해버렸고, 그것은 진성이 만들어낸 슬라임 형태의 주물의 안에 갇혀버렸다. 그리고 거기에 신력을 다룰 자격이 있는 사이고 리세가 ‘왜곡된 이미지’를 신력에 부여하여 신앙하고, 그 신앙에 보답받듯 신력의 힘을 여러 차례 주고받음으로써 ‘뒤틀린 형태’로서 형태를 고정했다.

         

       본질에서는 멀어지지 않는.

       하지만 위화감이 들기도 하고, 그 위화감에 파고든다면 이상함은 발견할 수 없는.

       그 약간의 비틀어짐에서 나오는 기묘한 분위기.

         

       진성은 그 기묘한 분위기가 너무나도 마음에 든다는 듯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올바른 형태가 되어가고 있구나.’

         

       그는 신사가 뿜어내는 분위기를 만끽하며 토리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성큼성큼 본전을 향해 걸어갔다.

         

       드르륵.

         

       그리고 벌컥 본전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본전을 가득 메우고 있던 신력이 진성을 환영하기라도 하듯 소리 없이 움직이며 그의 곁에 달라붙었고, 마치 애교라도 떠는 것처럼 그의 곁에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엉겨 붙기를 반복했다.

         

       “오셨군요.”

         

       그리고 진성에게 명백히 호의적인 신력이 뿜어져 나오는 곳에는 여자가 다소곳이 무릎을 꿇은 채 진성을 맞이해주고 있었다.

         

       무녀복을 입고, 비물질로 된 여우의 귀와 꼬리를 그대로 끄집어낸 채 방긋 웃고 있는 여자가 말이다.

         

       “그러하다.”

         

       진성은 자신을 맞이해주는 리세에게 대답해준 뒤 일어나라는 듯 손짓했다. 그러자 리세는 바닥에 눕혀두었던 여우 꼬리를 슬쩍 들어 올리곤 끄트머리를 바닥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풍성한 꼬리를 움직여 바닥을 밀어 손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성은 그 모습을 보고 방긋 웃었다.

         

       “꼬리의 사용이 익숙해졌구나. 아주 훌륭하다.”

       “다행이네요.”

         

       리세는 진성의 칭찬에 슬쩍 미소를 지었다.

         

       “본래는 없는 신체 부위인지라 익숙해질 수 있도록 연습을 많이 했답니다.”

         

       진성은 그녀의 말에 슬쩍 주위를 둘러보자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는 증거가 이곳저곳에 널려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1kg, 3kg짜리 아령.

       운동용 고무 밴드.

       그리고 꼬리에 먹을 묻혀서 그렸을 것으로 추정되는 어설픈 그림들까지.

         

       진성은 그것들을 보고 리세가 꼬리의 단련에 힘을 썼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꼬리에 근육이 붙지는 않을 것이다.

       저것은 리세의 신체 일부이지만 동시에 육신에 속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저것을 함으로써 리세는 꼬리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으리라.

         

       “노력한 것을 잘 알 수 있겠다. 아주 잘하였구나.”

         

       그렇기에 진성은 리세를 칭찬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칭찬에 꼬리를 흔드는 리세를 흘끗 보고는 본전의 구석을 바라보았다.

         

       본전의 구석에는 네모난 상자 하나가 있었다.

       크다고 하면 크고, 작다고 하면 작은 크기라고 할 수 있을법한 애매한 크기의 상자였다.

         

       상자는 마치 의자 대용으로 사용하기라도 하려는 듯 보드라운 천이 덮여 있었고, 그 위에는 방석이 놓여 있었다. 방석에는 조금 전까지 리세가 앉아있기라도 했던 듯 앉은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의자 대용으로 썼을 상자의 앞에는 자그마한 테이블이 놓여 있었는데, 그 테이블의 왼편에는 부적을 담아놓을 수 있는 작은 크기의 주머니가 가득했다.

       그리고 주머니 반대편에는 공장에서 뽑은 것인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글씨가 쓰여진 종이 조각이 가득 쌓여있었다.

         

       테이블의 아래쪽에는 플라스틱 바구니가 있었는데, 입구가 잘 묶여있는 부적 주머니가 가득 쌓여있는 것이 잘 만들어진 것을 저곳에 던져놓은 듯 보였다.

         

       “신사에서 파는 오마모리(お守り)랍니다. 학업에 효과가 있다고 소문이 나서 개당 1,000엔에 팔고 있는데도 잘 팔리고 있어요.”

       “보아하니 종이는 인쇄한 듯 보이는데?”

       “네에. 마을의 인쇄소에서 납품받고 있어요.”

         

       리세는 진성의 물음에 웃으며 답해주었다.

         

       “효과라….”

         

       진성은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겨있는 부적, 오마모리(お守り)를 바라보았다.

         

       복주머니에서 사용할법한 부드러운 천을 이용해 만든 자그마한 주머니에는 황금색 자수가 새겨져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동그란 해를 닮은 듯도 보였으나, 빛에 반사되면서 음영을 그리는 것이 분명한 굴곡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울퉁불퉁한 굴곡이 그려내는 음영은 마치 목성을 닮은 듯, 혹은 눈을 닮은 듯한 신비로움을 품고 있었다.

         

       “그렇지. 효과만 있으면 그만이지.”

         

       그리고 진성은 부적 주머니에 새겨진 저 문양이 ‘학업에 효과가 있다.’라고 평가받은 이유임을 알 수 있었다.

         

       저 문양에서 신사가 풍겨내는 특유의 느낌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사람의 정신을 퍼뜩 들게 하고, 들뜬 것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뜨겁게 달아오르는 심장에 차가운 물을 몇 방울 떨어뜨린 것 같은 느낌이 말이다.

         

       마음을 다잡아야 하고, 졸음을 이겨내야 하는 수험생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효과였으리라.

         

       진성은 부적에서 시선을 돌려 그 옆에 있는 의자 대용으로 쓰고 있는 상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느껴지는 자그마한 숨소리와 생기에 피식 웃고는 허공을 쥐어서 그것을 자신의 앞으로 끌고 왔다.

         

       그리곤 상자를 덮고 있던 천을 치우고, 그 안을 열어보았다.

         

       덜컹.

         

       잠금장치로 굳게 고정되어 있던 문은 진성의 손짓에 따라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리고 문은 안에 있는 것의 부피 때문에 밀리듯 튕겨 올라갔고, 자신이 품고 있던 것을 진성에게 보여주었다.

         

       스-으.

       스으으.

         

       사람.

         

       상자 안에는 사람이 있었다.

         

       약간은 성숙한 듯 보이는 여우상의 미인이 좁은 상자의 안에 꾸깃꾸깃 접힌 채 처박혀 있었다.

         

       심지어 눈은 안대로 단단히 봉해져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막혀 있었고, 귀에는 솜이 쑤셔박혀 있었다. 게다가 그것으로 모자란 것인지 소음을 줄여주는 마법이 부여된 귀도리 형태의 아티팩트까지 끼워져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냄새를 맡을 수 없도록 코도 틀어막혀 있었고, 입 역시 재갈이 물려 있기까지 했다. 그나마 죽일 생각은 없었는지 재갈 한가운데에 투명한 관을 꽂아 상자 밖에 연결해 숨은 쉴 수 있게 해주긴 했지만….

         

       관의 크기가 너무 작은 데다가, 상자 안에 꾸깃꾸깃 접힌 채 쑤셔박혀 있었기 때문에 단 한 순간도 편하게 숨을 쉬지는 못했으리라.

         

       그 증거로 여자의 표정은 한껏 일그러져 있었다.

         

       진성은 여자의 표정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흠. 나루미를 잘 교육하겠다고 하더니, 새타니를 제대로 이용하고 있구나.”

       “네에.”

         

       리세는 진성의 한 발자국 뒤쪽에 다소곳한 자세로 선 채로 대답했다.

       그녀는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꼬리를 느릿느릿 좌우로 움직였다. 그리고 귀를 가끔 쫑긋쫑긋 움직이기도 했다.

         

       진성은 공포에 질린 듯한 나루미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흠.”

         

       그는 무엇을 생각하는지 잠시 고민했다가, 허공을 쥐어서 그대로 나루미를 상자 밖으로 빼버렸다. 몸이 상자에 단단히 낀 것인지 쉽게 빠지진 않았지만, 진성은 상자의 입구 부분을 쫙 벌려서 끄집어내는 것으로 해결했다.

         

       그렇게 나루미는 몸이 꾸깃꾸깃 접힌 상태로 상자 밖으로 나와 바닥을 뒹굴었고, 그 충격에 악몽에서 깨어나기라도 한 것인지 몸을 한차례 바르르 떨었다. 하지만 쥐라도 난 것인지 근육이 경련했고, 재갈 때문에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 비명을 억지로 내지르며 바닥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신음했다.

         

       그리고 이윽고 진성이 허공을 쥐어 재갈을 풀어주자, 입에서 침을 줄줄 흘리며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악몽은 싫어, 악몽은 싫어요. 악몽은 싫어….”

         

       그리고 그 중얼거림과 함께 나루미의 옷자락 사이에서 무언가가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그것은 종이가 부풀어 사람의 형상을 이루는 것처럼 밖으로 나오기 무섭게 몸을 부풀리며 형상을 이루었고, 텅 빈 눈깔과 벌레가 가득 떨어지는 입을 쫘악 벌리며 웃었다.

         

       그리곤 목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흔들흔들 움직였고, 움직임에 맞춰 쑥쑥 자라나는 머리카락을 나루미의 얼굴에 늘어뜨려 간지럽혔다.

         

       “시, 싫어. 그만. 그만…. 내가 잘못했어. 내가 잘못했어요. 그냥 혼자 고고한 척을 하는 게 꼴 보기가 싫어서, 누구는 무녀가 되기 위해 온갖 노력에 경쟁까지 하고, 어릴 적부터 종아리에 피가 터질 정도로 회초리를 맞으며 카구라(神楽)를 밤새 연습하면서 살았는데…. 그냥, 그냥 꼴 보기 싫어서 그랬어요. 미안해요. 내가 잘못했어요. 다른 사람들을 끌어모아서 이지메를 해서 죄송해요.”

         

       나루미는 새타니가 머리카락으로 자기 얼굴을 쓰다듬는 느낌에 기겁하며 자신의 죄를 쉴 새 없이 고백했다.

         

       “미안해요. 조금만 친하게 지내면 에워싸서 연락을 못 하게 만들고, 강제로 욕하게 했어요. 아가씨의 물건을 훔쳐 오게도 시키고, 핸드백에 일부러 흠집을 내거나, 파우치를 일부러 떨어뜨려서 파운데이션을 깨뜨리게 했어요…. 아이섀도를 깨뜨리게 만들고, 립스틱을 부러뜨리게도 시켰어요…. 가방에 일부러 구멍을 만들게 해서 비 오는 날 안이 다 젖게 만들기도 했고, 각자의 친구들한테 아가씨의 나쁜 소문을 퍼뜨리게도 했어요…. 일부러 아가씨인 척 러브레터를 만들어서 같은 무녀한테 보내서 동성애자라고 헛소문도 퍼뜨렸고….”

         

       나루미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치졸하기 짝이 없었던 자신의 과거였으며, 리세를 괴롭힐 때 사용했던 온갖 음험한 방법의 나열이었다.

         

       진성은 나루미가 줄줄 늘어놓는 것을 듣고는 고개를 돌려 리세를 바라보았다.

         

       “다시 집어넣겠느냐?”

         

       리세는 그 물음에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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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The Shaman Desires Transcendence

주술사는 초월을 원한다
Status: Ongoing Author:
The shaman realized he had gained life once more. This time, he would live a life solely for transcendence, through shamanism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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