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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0

       

       

       

       

       

       170화. 금의 가치 ( 2 )

       

       

       

       

       

       계약.

       

       상호 간의 신뢰와 믿음을 바탕으로 각자의 이득을 위하여 약속한다. 계약의 밑바탕에 깔리는 초석은, 서로를 향한 굳건한 신뢰.

       

       그런 의미에서 케이건의 눈앞에 있는 악마는 최악의 계약 상대였다. 

       

       신뢰? 인간도 아닌 악마의 무엇을 믿겠는가.

       

       당장 저 악마가 콧방귀만 껴도 그의 여린 심장은 말라비틀어지며 불에 타오를 텐데.

       

       악마는 약탈자다. 인간 따위와 상호 동등한 계약을 맺는 존재가 아니라.

       

       “후으- 흐으읍! 썩 꺼져, 꺼져라 이 악마야! 꺼져어-!”

       

       케이건의 두툼한 턱살이 부들부들 떨리며 침이 흩날렸다. 악마는 낮고 깊은 목소리가 눈보라를 뚫고 생생하게 들려왔다.

       

       《오, 케이건 케이건 케이건. 그렇게 두려워하지 말게.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야. 난 자네를 아주 잘 알거든.》

       

       사아아아-

       

       하얀 눈 위를 미끄러지듯 다가오는 먹물의 무언가. 기묘하게 일렁이며 제 형상을 수시로 바꾸는 것이, 한순간 도마뱀처럼 보였기도 했고 이글거리는 불처럼 보이기도 했다. 

       

       “허, 허어억!”

       

       케이건의 코 앞까지 다가온 악마.

       

       《나는 자네의 욕망이 보여. 오, 그럼 보이고말고. 자네가 열렬히 사랑하고 또 바라는 것이 보인단 말이야.》

       

       “무- 무슨 헛소리냐 이 악마야! 썩 물러나라!”

       

       케이건이 품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찾더니 날카로운 단검을 꺼내 들었다. 애처로울 정도로 떨리는 단검으로 악마를 겨눈다. 

       

       사자에게 이빨을 들이미는 개미의 꼴이다. 그 사실을 케이건도 알고, 악마도 알았다.

       

       《이런 케이건. 우리 차분하게 얘기해보자고. 나는 자네와 충분히 이야기하고 계약할 의사가 있단 말이네.》

       

       “무슨,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번쩍거리는 돌덩이를 탐하는 귀여운 나의 친구여. 자네는 더 많은 금을 원하고 있지 않나? 산처럼 황금을 쌓아두고 살아보고 싶지 않나? 금을 녹여서 자네의 눈이 닿는 모든 곳에 칠하고, 번쩍거리는 금으로 거대한 궁전을 세우고 싶지 않냐고. 》

       

       “…뭐?”

       

       악마의 낮은 목소리가 케이건의 귓바퀴를 통과하며 깊고 깊게 울린다. 머릿속을 웅웅 흔들며 뒤흔들어 버린다. 악마가 말하는 것들이 눈앞에 보이는 듯 선명하다.

       

       하늘에 닿을 듯 높게 솟구친 황금의 궁전. 번쩍이는 순금 조각상이 가득한 정원과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금화의 폭포가 보인다!

       

       “오, 오오-”

       

       《뭘 원하지? 금으로 된 오백 개의 옥좌? 순금을 녹인 삼백 개의 온천? 아니면, 폭포수처럼 흐르는 금화?》

       난 전부 자네에게 줄 수 있어- 

       

       대신.

       

       《자네는 아주 가벼운 것만 해주면 되네. 그러면 전부 자네의 것이야.》

       

       “흐으-…”

       

       순금의 옥좌, 금으로 세운 왕궁. 그 모든 것들이 손을 뻗으면 잡힐 듯 아른거린다. 

       

       《아직도 믿음이 부족한가? 그렇다면 이게 선금이라면 믿을 수 있겠나. 우리 사이에 신뢰가 형성되는데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은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

       

       악마가 거대한 황금 한 덩어리를 허공에서 만들더니 좌우로 흔들었다. 케이건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황금을 따라 시계추처럼 이쪽저쪽으로 흔들렸다. 

       

       꿀꺽- 하고 먹울대가 꿀렁인다. 군침 돈다. 상당히 먹음직스러운 조건이다 하지만…

       

       “악마와 계약을 맺으면, 나는 천벌을 받아 육체는 불타고 영혼이 갈기갈기 찢길 거다! 영원히 지옥에서 불탈 거야!”

       

       케이건이 발작하듯 소리친다. 수인을 파는 노예 상인이면서 천벌이 두렵다니. 악마가 짙게 지었다.

       

       《오, 그럼. 자네의 걱정이 뭔지 이해하지. 하늘에서 떨어진 수십의 벼락이 악마와 계약한 자를 벌했다고 하지? 무시무시한 일이야. 그렇고말고. 그런데ㅡ》

       

       아주 만약에.

       

       《■은 자네에게 천벌을 내릴 수 없다면? 저 가증스러운 눈동자가 자네를 볼 수 없다면? 그렇다면 어쩔 텐가.》

       

       “그게 무슨…”

       

       《지상의 모든 것을 볼 수 있고, 하늘 아래 전지하다면 그 잘난 번개로 나부터 벌했겠지. 안 그런가?》

       

       “…”

       

       《케이건 케이건. 걱정 많고 소심한 나의 친구야. 자네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내가 몸소 지상을 거닐고 있는 것이 자네의 안전에 대한 증거 아니겠나? 자네는 그저 금을 취하고 편안한 일생을 보내면 되는 거야.》

       

       꿀꺽-

       

       악마가 금덩어리를 몇 개 더 만들더니, 케이건을 유혹하듯 살랑살랑 흔들었다.

       

       짧은 침묵이 이어졌다. 케이건은 수십 수백 번을 고뇌하고 갈등했지만, 악마가 주는 금의 유혹은 너무나 강렬했다.

       

       마침내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뭘 원하십니까?”

       

       악마가 보이지 않는 혓바닥을 낼름거리며 속삭였다. 그것은 너무나 소중하고 귀중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

       

       도리어 귀한 줄 모르고 그 존재를 의심하는 이도 있었으니, 악마는 오직 한 가지를 원했다.

       

       《제물을 가져오라.》

       

       나에게 영혼을 바쳐라.

       

       그대는 황금을 받을 것이다.

       

       

       

       ***

       

       

       

       챙-! 채채챙!

       

       날카로운 금속음이 울려 퍼진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거친 고함과 짧은 단말마, 비릿한 철의 향기가 코를 파고든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익숙한 전장의 향기다.

       

       평생을 북부에서 살아온 프리가의 부단장, 애꾸눈에게는 더없이 친숙한 장소였다. 그렇지만-

       

       “니기미, 똥개 새끼들아! 적당히 쳐 기어 와라!”

       

       “캐앵!”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요 며칠 동안 밤낮없이 쳐들어오는 웨어울프들의 지랄병은 정말이지 도가 지나쳤다. 

       

       거친 욕설과 함께 웨어울프 한 놈의 모가지를 썰어낸 애꾸눈이 거친 호흡을 내쉬며 주변을 둘러봤다.

       

       눈은 하나뿐이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유심히 보고 관찰했다. 그렇게 해서 거의 평생을 살아남았다.

       

       ‘지랄. 안 좋은데.’

       

       “흐아압! 죽어라 똥개 새끼야!”

       

       “잠 좀 자자, 이 개새끼들아!”

       

       보이는 것은 북부의 사내들답게 거친 욕설과 함께 싸우는 전사들. 그리고 끝도 없이 몰려오는 광견병 개새끼들.

       

       중간중간 몇몇이 위태롭게 비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들의 눈 밑에는 거뭇한 그림자가 뚜렷하다.

       

       제아무리 북부의 사내들이어도, 며칠씩이나 잠을 못 잔 채로 계속 전장에 나가는 것은 큰 부담이었다.

       

       까득.

       

       ‘젠장. 뒤로 빠져야 되나?’

       

       찰나의 망설임. 전장에서 누군가의 생사가 오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끄하아악-!”

       

       “꺼흡…!”

       

       둔탁한 비명이 울려 퍼진다.

       

       웨어울프의 길쭉한 손톱이 이름 모를 전사의 배를 꿰뚫고 자라났다. 그대로 들어 올려 어깨에 둘러메더니, 녀석은 쏜살같이 뒤돌아 도망쳤다.

       

       저 멀리 또 다른 전사를 둘러멘 웨어울프도 보였다.

       

       “저 개새끼가!”

       

       아우우우ㅡ!

       

       사냥이 끝났음을 알리는 하울링이 산맥에 메아리친다. 우두머리의 퇴각 신호에 맞춰 일제히 뒤돌아 달리는 웨어울프 무리. 치열하게 싸웠다는 것이 거짓말처럼 도망치기 바쁘다.

       

       “씨발, 쫓아! 개새끼들 또 도망간다!”

       

       그중 몇몇의 웨어울프는 어깨에 사람을 둘러메고 있었다. 아직 숨통을 끊지 않았는지 작게 발버둥 치는 이도 있다. 저 뒤를 쫓는다면 당장이라도 저들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멈춰!!”

       

       애꾸눈이 멈춰세웠다.

       

       “부단장! 하지만 우리 애들이 몇 명이나 잡혀갔는데!”

       

       “그러니까 하는 말이야. 넌 저 새끼들이 사람 잡아가는 게 예삿일 같냐? 함부로 뒤쫓다가 얼마나 뒤졌는지 기억도 못 해?”

       

       “그건ㅡ!!”

       

       “정신 차려! 저 새끼들이 사람을 안 죽이고 잡아가는걸 본적이 있냐고! 그것도 벌써 몇 번이나! 이건 보통 일이 아니야.”

       

       “이, 이 씨바알!”

       

       부하 한 명이 분한 듯 씩씩거리다가 거칠게 욕설을 내뱉었다. 눈앞에서 동료가 잡혀가는 걸 지켜봐야 한다니.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다.

       

       비단 한 명의 반응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분하다는 듯 입술을 씹었고, 당장이라도 뛰쳐나가야 한다는 듯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도 알고 있었다.

       

       웨어울프에게 잡혀간 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나선 이들은 모두 죽었다. 그 수가 얼마나 많더라도, 나이가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모두 죽었다.

       

       그들은 차디찬 눈에 삼켜져 아무런 소식도 전해올 수 없었다.

       

       “그러면 이대로 당하기만 할거요? 저 광견병 걸린 똥개 녀석들을 그냥 둘 거냐는 말이오!”

       

       “…내가 오늘 담판을 낼 테니, 조금만 더 기다려라.”

       

       낮게 중얼거리는 애꾸눈의 하나뿐인 눈동자가 희게 번들거렸다.

       

       지금까지는 보고를 올리는 선에서 그쳤지만, 오늘 공작님과 담판을 지어야 할 듯 싶었다.

       

       

       

       *****

       

       

       

       쿵! 쿵! 쿵!

       

       성난 노크 소리가 들려온다. 커다란 문이 덜그덕거릴 정도의 기세.

       

       북부 몬테그로스의 적법한 지배자, 루샨 닉스 공작은 만년필을 내려놓고 가만히 문을 바라봤다. 그리고 속으로 천천히 초를 셌다.

       

       ‘하나… 둘…셋…’

       

       지금.

       

       “공작님ㅡ!!”

       

       아니나 다를까. 문을 힘차게 밀고 들어온 애꾸눈이 우렁차게 외치며 루샨 공작을 찾았다.

       

       “귀 나가겠네, 이 사람아. 성 내지 말고 여기 앉게. 차도 좀 마시고.”

       

       진작부터 예상하고 있던 루샨 공작은 태연하게 자리를 권하며 차를 마셨다. 그의 딸 프리가가 성도로 떠난 이후 간간이 보내온 고급 찻잎인데, 향이 아주 좋았다.  

       

       후룹ㅡ

       

       입 안 가득 퍼지는 은은함이 아주 일품이다. 루샨 공작은 딸 하나 잘 키웠다며 흐뭇해했다.

       

       ‘프리가는 제 어미를 쏙 빼닮아서 생각이 깊단 말이지.’

       

       이렇게 아비한테 선물도 보낼 줄 알고. 누굴 닮았는지 아주 잘 컸다.

       

       물론 애꾸눈에게 차 따위는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공작님, 벌써 몇 번째입니다! 웨어울프들이 몇 번이나 사람을 납치해가고 있다고요. 조치가 필요합니다!”

       

       “나도 아네, 이 사람아. 설마 내가 그걸 모를까.”

       

       “그러면 당장이라도 토벌대를 꾸리셔서ㅡ!”

       

       “애꾸눈.”

       

       공작의 낮은 목소리가 집무실을 덮는다. 한순간에 퍼진 기백.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올라가던 애꾸눈은 즉시 무릎을 꿇었다.

       

       “죄, 죄송합니다.”

       

       후룹.

       

       차를 한 모금 마신 루샨 공작이 말을 이었다.

       

       “애꾸눈, 나라고 자네 심정을 모르겠나. 나도 잘 아네. 그런데 말이지, 지금 상황이 심상치 않네.”

       

       마수의 습격은 늘 있던 일이다. 웨어울프도 이따금 산에서 내려오곤 했다.

       

       하지만, 마수의 산 중턱에 사는 웨어울프가 이렇게 매일 산에서 내려와 사람을 납치하는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거기에 노예 상인까지 기승을 부리며 수인과 사람들을 납치했으니 점점 민심이 요동쳤다. 마치 기다렸다는 메뚜기처럼 곳곳을 들쑤시며 혼란을 부추기는 꼴이라니.

       

       예삿일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북부를 지켜온 루샨의 감이 속삭였다. 이건 몬테그로스의 저력을 넘어선 사건이 일어날 징조라고.

       

       “방금 막 도착한 공문이라네. 읽어보게.”

       

       “이건…”

       

       공작이 애꾸눈에게 문서 한 장을 내밀었다. 고급스러운 필체로 작성된 문서의 끝에는 황제 카이사르와 만신전의 문양이 선명했다.

       

       “곧 성도와 제국의 병력이 이곳으로 올 것이네.”

       

       눈을 부릅뜬 애꾸눈이 하나뿐인 눈을 빠르게 움직여 문서를 훑었다.

       

       “냄새가 나네, 애꾸눈. 냄새가 나.”

       

       창문을 열고 한껏 공기를 들이마신 루샨 공작이 중얼거렸다.

       

       차디찬 북부의 공기가 폐를 한가득 채우고는 날숨을 따라 빠져나갔다. 저 멀리 보이는 산맥을 따라 저물어가는 태양이 길게 그림자를 늘어뜨렸다.

       

       기분 탓인지, 설산의 그림자 속에서 일순간 무언가 꿈틀거린 것 같았다.

       

       “빌어먹을 것의 냄새가 나.”

       

       루샨 공작이 씹어먹듯 중얼거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신선우’님!!! 허어어억!! 이 무슨 비인간적 후원!!! 마치 시카고 피자에 줄줄 흐르는 치즈가 제 혈관을 틀어막는 듯 엄청난 사랑!!!! 감사합니다!!! 악마의 큰 그림이 과연 어떤 그림을 그릴지…!! 작가인 저도 몹시 궁금한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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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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