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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0

       

       

       

       

       

       “안 돼.”

       

       알렉스의 입에서 나온 대답이었다.

       

       “응? 제발 부탁이야. 나 진짜 이 인형 매일 밤마다 껴안고 잔다고.”

       

       레키온이 알렉스를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냥 계속 껴안고 자면 되겠네. 뭐가 문제야?”

       “아니, 봐 봐. 알렉스. 내가 이 인형의 실제 모델이 있다는 걸 몰랐으면 말을 안 해. 근데 세상에 이렇게 귀여운 애가 살아 움직인다잖아! 이걸 어떻게 참아?”

       “좀 참아 봐라. 너 안 그래도 강아지에 고양이에 최근에는 쥐까지 밥 주고 있더만.”

       “쥐가 아니라 햄스터거든?”

       “어쨌든. 고양이랑 쥐랑 사이 좋게 밥 먹는 거 보고 내가 기절할 뻔했다. 그런데 거기다가 와이번까지 탐을 내? 어? 적당히 해야지, 적당히.”

       

       하지만 레키온은 물러서지 않았다. 

       

       “탐낸 게 아니라 그냥 만나 보고 싶은 거라니까? 어차피 사역마라잖아. 테이머랑 붙어 있어야 돼서 내가 키우고 싶어도 못 키워.”

       “계약을 끊어 버리면 가능하긴 하지. 방법이야 찾아 보면 많으니까.”

       “끔찍한 소리 하지 마. 억지로 계약을 끊어 낸 사람한테 사역마가 가려고 하겠어? 온다 해도 행복하게 못 지낼걸. 난 이 아르라는 애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레키온은 그렇게 말하며 품에 안은 아르 인형을 쓰다듬었다. 

       

       “참…. 애는 착한데….”

       

       알렉스는 네 번째 한숨을 쉬었다. 

       

       “만약에 이 아르라는 애의 계약자가 나쁜 사람이어서 아르가 막 고통만 받고 그런다면 네 말대로 계약을 끊어 버리는 것도 고려해 봐야겠지만….”

       

       레키온은 귀여운 아르 인형을 들어서 알렉스의 얼굴 앞에 들이밀었다. 

       

       “생각해 봐. 자기 사역마가 귀여운 걸 알고 일부러 인형 가게에 찾아가서 이런 고급 원단으로 인형을 만들어 줄 정도면, 그 계약자도 아르를 좋아하는 게 틀림없다고. 분명 잘해 주고 있을 거야.”

       “…그건 그렇긴 한데.”

       

       알렉스는 아르 인형을 슥 밀어내면서 대답했다. 

       

       ‘솔직히 이 인형이랑 똑같이 생긴 사역마가 있으면 귀엽긴 할 것 같은데….’

       

       데보라와 달리 알렉스는 그래도 귀여움을 조금은 아는 암살자였다. 

       

       “세상에, 알렉스.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만약 내가 그 계약자랑 친해지기만 하면, 아르를 한 번이 아니라 자주, 어쩌면 계속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네가 드디어 미쳤구나.”

       “데비도 똑같은 말을 하긴 했어. 어쨌든 알렉스. 부탁이야.”

       “후우….”

       

       알렉스가 계속 망설이자, 레키온은 쐐기를 박아 넣기로 했다. 

       

       “너, 옛날에 분명 나한테 한 번은 무슨 일이 있어도 도와준다고 약속했었지?”

       

       그 말에 알렉스의 눈이 커졌다. 

       

       “너, 너…. 설마!”

       

       -으흑, 흑, 흐윽….

       -야아아아!! 이 나쁜 놈들아! 왜 여러 명이서 한 명을 괴롭혀!

       -으악! 기사 되겠다는 또라이가 나타났다! 도망쳐!

       -괜찮아? 넌 이름이 뭐야?

       -…알렉스.

       -난 레키온이야. 앞으로 황실 기사단에 들어가게 될 꿈나무라고 할 수 있지!

       -황실 기사단?

       -응! 나랑 데비랑 황실 기사단에 들어가기로 했거든! 멋지지?

       -거기, 나도 갈 수 있어?

       -음, 글쎄. 이렇게 마르고 힘 없으면 힘들 텐데…. 앗, 그래도 날렵하게 생겼으니까 황실 소속 암살자 같은 건 할 수 있지 않을까?

       -암살자…?

       -응. 엄청 비밀스럽고, 멋있고, 황실에서 되게 되게 중요한 역할이래. 있다는 소문만 있고 진짜로 본 사람은 얼마 없다고 그러더라.

       -우와…. 나, 해보고 싶어!

       -그래. 넌 꼭 할 수 있을 거야! 우리도 황실 기사단 꼭 될 거고!

       -정말 고마워. 내가 나중에 진짜 황실 암살자가 되면, 레키온 네 부탁은 뭐든 하나 들어줄게.

       -히히, 좋지! 파이팅 하자고!

       

       그때 그렇게 한 번 지나가듯 언급되고, 레키온은 그 뒤로 알렉스가 진짜 황실 정보부에 들어갔음에도 그 이야기를 단 한 번도 꺼내지 않았었다. 

       

       ‘당연히 잊어버린 줄 알았는데!’

       

       심지어 그 말을 한 당사자인 알렉스조차도 거의 잊어버리고 있었던 기억이었다. 

       

       “후후후. 내가 다 기억하고 있었지.”

       “…….”

       “설마 천하의 알렉스가 그때 했던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이 모른 척하지는 않겠지?”

       “…….”

       

       레키온이 빙긋 웃었다.

       

       “꼭 좀 부탁할게. 알렉스! 네가 최고야!”

       

       그리고 아르 인형을 내려다 보며 혼자 들어 본 적도 없는 아르 목소리를 성대모사 해 가며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치, 아르야?”

       “우응! 마쟈! 알렉쓰가 체고야!”

       “하아….”

       

       그렇게 알렉스는 시간이 나는 대로 아르라는 와이번을 찾아 주기로 약속하게 되었다.

       

       ***

       

       “이거랑 이거까지 하면…. 12실버 72쿠퍼입니다!”

       

       마침내 아르가 고른 빵을 전부 계산한 직원이 합계 금액을 불러 주었다. 

       

       “와, 12실버 72쿠퍼요?”

       

       내가 금액을 듣고 놀라자 직원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네, 손님. 아무래도 많이 구매를 하셨다 보니 금액이….”

       “개혜잔데?”

       “예?”

       

       나는 한 봉투에 다 포장하기도 힘든 수십 개의 빵을 보며 감탄했다. 

       

       ‘이렇게 퀄리티 좋은 빵들을 이 가격에 사 먹을 수 있다니….’

       

       물론 지금 나는 빵 가격이 열 배가 되어도 사 먹을 수 있는 상태긴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저렴하고 퀄리티 좋은’ 빵을 구매했다는 것 자체에서 오는 만족감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차올랐다. 

       

       ‘아아. 한국에 살 때는 진짜 빵 한 번 사 먹기가 두려웠었는데.’

       

       무슨 주먹만 한 우유생크림빵 하나만 사도 가격이 거의 3천 원에 육박하다 보니 헉 소리가 안 날 수가 없었다. 

       

       ‘편의점에서 가장 낮은 퀄리티의 빵만 사도 최소 1500원씩 하고 빵집에 들어가는 순간 천 원대 빵은 찾아보기가 어렵다고 봐야지.’

       

       정말 빵 몇 개만 집어도 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 걸 보고 있자면 이게 맞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어, 가난한 자취생이었던 나는 그 이후로 빵집에 가지 않았었던 기억이 있었다. 

       

       흔히 말하는 ‘그 돈이면’ 다른 걸 먹지, 뜨끈한 국밥 한 그릇 먹지, 라는 말이 진심으로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지금 어림잡아도 빵을 한 오십 개는 산 것 같은데, 다 해도 12실버밖에 안 한다고?’

       

       심지어 이 가격은 카운터 옆쪽 진열대에 있던 ‘웰 던 패스츄리 케이크’, ‘스페셜 초코 생크림 케이크’, ‘초대형 밀크 카스테라(커피 첨가)’까지 포함한 가격.

       

       순수하게 진열대를 돌아다니면서 고른 빵만으로 따지면 10실버가 채 안 되는 가격인 것이다. 

       

       “이렇게 훌륭한 빵들을 이 가격에 살 수 있다니….”

       

       나는 바로 지갑에서 13실버를 꺼내 내밀었다. 

       잔돈은 받지 않았다.

       

       “가, 감사합니다! 고객님!”

       

       빵은 원래 보관을 위해서 개별 포장을 하는 게 맞았지만, 빵 수십 개를 전부 개별 포장하고 그걸 또 나중에 다 풀어서 먹을 생각을 하니 귀찮아 한번에 담아 달라고 했다. 

       

       어차피 밖에 나가자마자 빵이 눌리기도 전에 아르의 아공간에 던져 넣으면 그만이었다. 

       

       ‘진짜 아공간이 편하긴 편하다니까.’

       

       이거 없던 시절에는 불편해서 어떻게 살았는지, 참.

       

       “쀼우!”

       “아, 참. 아르가 먹고 싶어했던 건 따로 빼야지.”

       

       나는 아르의 말랑한 몸통을 잡고 빵 더미 앞까지 들어 주었다.

       

       “아르야, 이제 다 계산 된 거니까 네가 먹고 싶은 대로 손으로 막 집어 먹어도 돼.”

       “쀼!”

       

       아르는 그 말에 신이 난 듯 공중에서 꼬리를 빙빙 돌리더니, 피자빵을 가장 먼저 덥썩 집었다. 

       

       “푸흣. 피자빵이 딱 아르 입맛이긴 하죠.”

       

       실비아는 피자빵을 바로 덥썩 베어 물고 행복한 표정으로 먹는 아르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쀼움.”

       

       아르가 즉석에서 빵을 맛있게 먹자, 그 모습을 보기만을 기다렸던 사람들은 너도나도 감탄을 하기 시작했다. 

       

       “세상에, 어쩜 먹는 게 저렇게 복스러워?”

       “잘도 먹네, 잘도 먹어.”

       “행복해하는 것 좀 봐. 진짜 내가 다 먹여 주고 싶다.”

       “입에 소스 묻은 것도 귀엽네.”

       

       우리가 빵을 너무 많이 사서 줄이 좀 밀려 버렸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전혀 불평하는 기색이 없었다. 

       

       다음 손님의 빵을 계산하던 직원마저도 아르가 빵을 먹는 모습을 잠시 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하하, 아르야. 맛있게 먹었어?”

       “쀼웃!”

       

       나는 손수건으로 아르의 입가에 묻은 피자 소스를 닦아 주었고.

       아르는 활짝 웃으며 내 목을 껴안았다. 

       

       “여러분, 저희는 그럼 이만….”

       “아아, 벌써 가시는 거예요?”

       “아쉽다….”

       “얘야, 안녕! 빵 맛있게 먹어! 내가 사준 건 아니지만….”

       

       사람들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빵을 야무지게 집고, 복스럽게 먹는 아르에게 정이 든 듯 손을 흔들어 인사해 주었다. 

       

       “휴우.”

       “솔직히 조금 기 빨리네요.”

       “제 말이요.”

       “쀼우.”

       

       우리는 빵집의 뒷골목으로 가서 아무도 안 보는 사이에 양손에 한가득 든 빵 봉투와 케이크 상자를 아공간에 던져 넣었다. 

       

       “쀼.”

       “하하, 이번엔 초코조개빵이 먹고 싶다고? 이따 올라가서 먹자. 올라가서. 일단 지금 방 하나 잡긴 해야 되니까.”

       

       우리는 투호르반에서 가장 깔끔하고 공간이 넓은 여관을 골라 방을 잡았다. 

       

       로멜드처럼 엄청나게 호화로운 호텔급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면 아르가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도 충분히 잘 지낼 수 있을 듯싶었다. 

       

       “쀼우! 아르 다시 왕 커져써! 쿠왕!”

       

       아르는 거실에 들어오자마자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서 팔을 쭉 펴며 드래곤의 위용을 자랑했다. 

       

       그리고.

       

       “히히. 이제 아르 입 커져써. 빵 한 번에 마니 먹을 수 이써!”

       

       아공간에 보관해 둔 빵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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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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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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