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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0

       오늘도 어김없이 감옥에서 시작되는 하루.

         

       그간 헬레나가 식사를 전해주러 왔었지만, 최근에는 프란체가 대신 가져온다. 아마 이번에도 같이 조식을 먹기 위해 직접 오겠지.

         

       프란체가 주는 그 이상한 약을 먹은 지도 벌써 이틀이 지나 마지막 날이고.

         

       ‘이제 확신이 섰으니 얘기를 꺼내야겠어.’

         

       지금까진 그녀를 믿었기에 혹시라도 내가 오해를 하고 있나 싶어, 얌전히 프란체의 용태를 살폈지만…….

         

       ‘내 예상이 맞았지.’

         

       이상한 약까지 먹이며 뭘 꾸미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프란체가 이상한 오해를 하고 있는 듯하다.

         

       ‘아, 그리고 그것도 다 거짓말이었지.’

         

       아직 내 존재가 불안정해 안정이 필요하다는 말. 힘이 빠지는 이유가 그 탓이라는 것도.

         

       다 거짓말일 거다. 그도 그럴 것이, 프란체와 접촉할 때마다 힘이 빠져나가고 있으니까.

         

       ‘이유는 조금 있다가 물어보면 알 거 같고.’

         

       나는 팔짱을 끼고 침대에 걸터앉은 채 프란체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또각. 또각. 구두 소리가 울려 퍼졌다.

         

       “진? 일어나 있었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철컥. 문이 열리고 프란체는 웨건에 식사를 담아왔다. 늘 그랬던 것처럼 테이블에 그릇들을 올려뒀다.

         

       그런데 오늘은 옷이 평소와는 좀 다른 거 같은데…….

         

       “조식이야. 오늘도 약 먹어야지?”

       “…….”

         

       바로 캐물을 수 없으니 일단 식사부터 하면서 얘기를 꺼내자.

         

       “예.”

         

       나는 싱긋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실시간으로 계속 힘이 빠져나갔던 탓에 무기력함은 여전하다.

         

       “어서 먹으렴. 오늘도 약 먹어야 하니까.”

         

       산뜻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음식을 권하는 프란체. 나는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프란체.”

       “응?”

       “왜 저한테 거짓말을 하신 겁니까?”

       “…….”

         

       시선을 올려 그녀와 눈을 마주했다. 프란체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그게 무슨 소리니?”

       “다 거짓말이잖습니까.”

         

       탁. 나는 포크와 나이프를 테이블에 내려둔 채 말을 이었다.

         

       “제 존재가 불안정한 탓에 안정을 취해야 하니 이곳에 갇혀있어야 한다는 것도, 힘이 계속 빠져나가는 이유도, 약에 대한 것도. 전부 거짓이잖습니까.”

         

       내 말에 프란체의 얼굴이 경직됐다. 반응을 보니 진짜로 전부 거짓이었군.

         

       “무슨 일을 꾸미고 계신 겁니까? 아니, 왜 그러시는 겁니까? 제가 못 미더우신 겁니까?”

         

       나라는 삶을 평생 그녀에게 바쳤다. 모든 게 끝났는데 어째서 신뢰를 못 받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

         

       프란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말이 없었다.

         

       “말씀해보세요. 화내는 게 아니니까. 그저 물어보는 겁니다.”

         

       이건 정말이다. 순전히 의문이 더 컸다. 어차피 존재가 귀속되어 나는 영원히 프란체의 것인데,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불안해서.”

       “불안이요?”

         

       프란체는 고개를 올리며 나와 눈을 마주쳤다.

         

       “한번은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은 채 도망쳤고, 드디어 만났나 싶었는데 계약이네, 존재가 사라지네, 하면서 또 날 떠나려 했잖아.”

         

       나도 설명이 부족했으니 그거에 대해선 할 말이 없다. 끝난 문제라 넘겼는데, 아직도 이렇게 불안해할 줄은 몰랐다.

         

       “내가 그런 것처럼, 너도 내가 없으면 살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어. 다시는 떠날 생각은 하지 못하도록. 만약 큰일이 생겨도 어떻게서든 내 곁에 있고 싶어서 발악하도록.”

         

       프란체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윽고 새하얀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다.

         

       “속인 건 정말 미안해… 근데 너무 불안했어. 모종의 이유로 갑자기 네가 떠나면 어떡해? 거기에 황녀가 너를 노린다길래 급해져서… 그래서…….”

         

       떨리는 목소리. 손은 갈 곳을 잃어 방황한다.

         

       “이런 불안감을 느끼고 싶지 않았어…….”

         

       나는 할 말을 잃었다. 프란체는 불안감에 휩싸여 꼬여도 단단히 꼬인 사랑을 내게 주고 있던 것이었다.

         

       “하아…….”

         

       뜨거운 한숨. 나는 미간을 주무르며 눈을 감았다. 그녀에게 트라우마가 너무 깊게 새겨졌다.

         

       애초부터 프란체는 아무것도 없던 사람이었다.

         

       사랑을 받을 일도, 줄 일도 없던 사람. 언제나 냉정하고 차가우며, 외로움과 고독함으로 가득했던 삶.

         

       나의 영향으로 운명이 바뀌고 환경이 달라졌다곤 하지만, 내가 오기 전까지 그러한 삶을 살아왔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여러 방면에서 성인이 되었다고 한들, 인연에 있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와 같다.

         

       ‘서툴구나.’

         

       처음부터 그녀에게 모든 걸 알려줬어야 했다. 혼란스러울까 봐 자세하게 얘기하지 않은 건데…….

         

       “프란체. 지금부터 제 얘길 잘 들으세요. 모든 걸 말씀드릴 테니.”

         

       프란체는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가 당신을 위해 지금까지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왜 당신을 살리기 위해 존재가 사라질 뻔했는지. 다 말씀드리겠습니다.”

         

       꽤 긴 얘기가 되겠지만…….

         

       그녀를 안심시켜주기 위해선 알려 줄 필요가 있다.

         

       “긴 얘기가 될 겁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말씀드리겠습니다.”

         

         

       * * *

         

         

       진의 길었던 설명이 끝났다.

         

       프란체를 살리기 위한 2천 번의 회귀. 그로 인해 손상된 영혼. 어떻게든 운명을 바꾸기 위해 라드리엔과 한 거래. 대가로 존재가 사라질 뻔했지만, 성녀의 도움으로 이렇게 살아있는 것까지.

         

       마지막으로 자신이 얼마나 프란체를 사랑하는지도.

         

       “…….”

         

       프란체는 눈만 끔뻑거리며 입술을 달싹였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럴 것이, 결과로 이어지는 과정은 얘기해주지 않았으니까. 자신을 살리기 위해 라드리엔과 계약을 했다고만 했으니까. 그로 인해 존재가 사라지는 거라고 했었으니까…….

         

       “이렇게 된 겁니다. 이제 저를 믿어주시겠습니까? 프란체에게 향하는 제 마음은 절대 변하지 않을 거고, 어디론가 떠나지도 않을 겁니다.”

         

       진이 엄중히 말하자, 프란체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나는, 나는 그것도 모르고…….”

         

       목이 막힌 것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 단어를 엮어서 한 문장으로 만드는 것이 이다지도 어려웠나.

         

       불안했다.

         

       또 그가 곁에서 떠나갈까 봐.

         

       눈앞에서 사라질까 봐.

         

       처음으로 신뢰를 준 사람이자, 애정을 쏟은 사람.

         

       여태껏 아무것도 없었고, 배신만 당해왔던 프란체에게 있어서 진은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였다.

         

       자신의 목숨보다 더.

         

       그래서 진이 프란체에게 명목적으로 의존하도록, 프란체가 없으면 살 수 없는 몸으로 만들려 했다.

         

       자신이 그러한 것처럼.

         

       그런데 진의 이야기를 들으니 머리가 어지럽다.

         

       누구보다 자신을 생각하고 사랑해줬던 사람을 믿지 못해 그런 강압적인 방법을 사용하려 했다니…….

         

       자괴감과 자기혐오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진은 싱긋 웃었다.

         

       “하지만 이해합니다. 당신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고 있고, 프란체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게 아니니까요. 불안했다는 것도, 저를 완전히 소유하고 싶었다는 것도.”

         

       그는 그런 프란체마저 사랑해주었다.

         

       “그러니 이제 이상한 방법은 사용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당신의 모든 순간이 저였던 것처럼, 저 또한 모든 순간이 프란체니까.”

         

       나긋나긋한 그의 목소리.

         

       “좋아해, 프란체.”

         

       진의 산뜻한 미소. 프란체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진.”

       “예?”

       “지금 안아도 돼?”

       “물론이죠.”

         

       프란체는 자리에서 일어나 진에게 달려들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저도 죄송해요. 다 말을 해줬어야 했는데.”

         

       이거로 됐겠지. 진은 프란체의 뒷머리를 쓰다듬으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진, 키스해도 될까?”

       “원하신다면.”

       “그럼 눈을 감아줘…….”

       “…….”

         

       프란체는 진이 눈을 감은 틈을 타 약을 들이켜 입가에 담았다. 그대로 양팔을 목덜미에 휘감고, 살며시 입술을 맞추었다.

         

       “우웁…?!”

         

       꿀꺽. 꿀꺽.

         

       혀가 비집고 들어오며 약물이 강제로 넘어간다. 진은 순간적으로 반응해 뒤로 물러서려 했지만, 목덜미에 프란체의 팔이 강하게 휘감겨 빠져나올 수 없었다.

         

       “대체 무슨 짓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효과가 증폭되었다. 이게 대체 뭐지? 진은 이마를 부여잡았다.

         

       “미안, 네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못 참겠어.”

         

       어지러운 정신을 붙잡고, 진은 살며시 시선을 올렸다. 평소와는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드레스가 많이 선정적이다.

         

       얇은 몸에는 어울리지 않는 풍만한 가슴이 노출되어 있다. 들러붙은 드레스의 굴곡진 허리를 따라 내려가면 가운데에 위치한 배꼽이 존재감을 내뿜고, 그 아래로는 넓은 골반이 차지하고 있다.

         

       노린 것인지, 짧은 드레스인지라 맨다리가 그대로 드러난다. 얇은 발목을 타고 올라가면 매끈한 종아리와 탐스러운 허벅지가 눈에 들어온다.

         

       “프란체, 설마…….”

       “그 설마가 맞아.”

         

       프란체는 천천히 다가와 진에게 몸을 밀착시켰다.

         

       “이날을 위해 준비했고, 이날만을 기다렸는데 그냥 넘길 순 없잖아…?”

         

       그러고는 진의 목에 입술을 갖다 대며 가볍게 훑었다.

         

       “츄웁…….”

         

       프란체는 진의 목을 훑으며 요망하게 올려다봤다. 여태껏 진은 약을 먹으면서도 욕정을 참았다. 말도 안 되는 정신력. 기울어질지언정, 절대 꺾이지 않는 사람이다.

         

       그의 마음을 꺾기 위해선 더욱더 강한 자극이 필요하다.

         

       “초야까지 못 참겠어.”

         

       프란체가 진의 귀를 깨묾과 동시에 그녀의 촉촉한 목소리가 고막으로 전해진다. 전신의 근육이 사르르 녹는 듯한 느낌.

         

       “프란체…!”

         

       진은 숨을 헐떡이며 눈을 질끈 감았다.

         

       “우리 서로 소중한 처음이잖아요…. 지금 상태로는…….”

         

       쓸데없는 부분에서 고지식하기는. 프란체는 검지로 진의 입가를 막았다.

         

       “괜찮으니까, 응…?”

         

       일부러 가슴을 밀착시켰다. 부드러움을 느낀 진의 심장이 쿵쾅거리는 게 프란체에게도 전해졌다.

         

       “처음부터 이러려고 그 약을…?”

       “맞아.”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

         

       “이날만을 고대했어. 남자에 대해 빠삭한 사용인에게 많은 걸 들었고, 그에 필요한 준비까지 했다고.”

         

       사실 이럴 필요 없이 단순히 존재에 명령을 내리면 되지만, 프란체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사랑을 확인할 때. 진이 직접 자신의 욕망으로 움직여야 의미가 있다.

         

       “진…?”

         

       프란체는 진의 가슴팍을 쓰다듬으며 시선을 내렸다. 터질 것처럼 불룩해진 다리 사이. 진은 그 어느 때보다 흥분하고 있다.

         

       ‘거의 넘어왔어.’

         

       가슴팍을 타고 내려온 프란체의 끈적한 손길이 허벅지를 더듬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진의 목에다 후, 하고 바람까지 불었다.

         

       “흐읍…!”

         

       약물의 효과로 약한 자극에도 전신을 떠는 진. 애써 참는 것이 느껴진다. 프란체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거친 호흡을 내뱉었다.

         

       “진, 이런 거에서 명령을 내리고 싶지 않아. 그러니 부탁해, 응…?”

         

       프란체의 끈적한 속삭임. 진은 눈을 질끈 감은 채 조용히 읊조렸다.

         

       “…처음이잖아요. 지금 하면 제가 흥분을 주체하지 못해서 프란체가 아플 거예요. 저는 강압적으로 하고 싶지 않아요.”

         

       애초부터 강압적으로 당하는 걸 노렸는데?

       

       원래의 계획은 의도적으로 그를 흥분시킨 다음 부부의 첫날, 이성을 잃은 진에게 강제로 범해져 죄책감과 채무감을 심어주는 것이었다.

         

       다소 계획이 틀어졌지만…….

         

       ‘그러면 어때? 진이 이렇게 날 사랑하고 소중히 대해주는데.’

         

       그딴 건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다.

       

       “진? 날 봐줘.”

       

       진이 넘어오지 않자, 프란체는 그의 뺨을 쓰다듬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이상한 계획을 짜서 감금하고, 미약까지 먹인 괘씸한 내게 벌을 줘야 하지 않겠어?”

       

       프란체는 진의 무릎 위에 앉아 입고 있던 드레스의 매듭을 천천히, 하나씩 풀었다.

         

       툭. 툭. 툭.

         

       입고 있던 드레스가 스르륵, 하고 내려가자 검은색 네글리제가 나왔다.

         

       새하얗고 고운 살결이 천을 뚫고 나와 적나라하게 비치고, 그녀의 가슴에 있는 분홍색 첨단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게 무슨…….”

         

       레냐에게 성교육을 받은 프란체가 이날을 위해 준비한 두 번째 필살기.

         

       “서로를 탐해서 쾌락으로 가득한 첫날을 보내자…?”

         

       유혹에 넘어오지 않는다면, 강제로 욕정을 품게 만들어 범하도록 만드는 작전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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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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