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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0

       백화령이 민가의 손을 잡자마자 둘의 주변을 빛이 감쌌다.

       

       빛이 피어올랐다가 가라앉았을 때 주변의 풍경이 바뀌어 있었다.

       

       빙궁을 떠올리게 하던 화산의 방에서 주변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허한 벌판으로.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 벌판에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바람이 부는 소리와 까마귀가 우는 소리 뿐이었다.

       

       이 곳도 백화령에게 익숙한 장소였다.

       

       과거 그녀가 홀로 군세와 싸울 적에 전장으로 택했던 곳이 여기였으니까.

       

       꽤 긴 시간이 흐른 지금도 벌판 이곳저곳에는 그 때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어차피 척박하기로 따지면 화산이나 여기나 차이가 없지 않나?”

       

       주변을 살피던 백화령이 시선을 돌려 민가를 살핀다.

       

       그녀는 언제 꺼낸 건지 모를 곰방대를 입에 문 채 연기와 함께 웃음을 흘렸다.

       

       “또 화산의 부지를 부수면 바루에게 혼이 나서 말이다.”

       “바루라는 게 그 여우더냐?”

       “그래. 귀엽지 않나?”

       “귀엽지. 가지고 가고 싶을 만큼.”

       “그건 좀 곤란하구나. 바루는 본인의 삶에 소소한 행복인지라.”

       “그런가. 그것 참 아쉽군.”

       

       백화령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민가라는 무인을 살폈다. 몸의 경지는 기껏해야 일류의 끝자락 정도로 보인다.

       

       그것만 본다면 무림에서 강자 행세를 하기에도 창피한 수준이다.

       

       허나 그 안에 새겨진 것은 다르다.

       

       민가의 동작 하나하나에 자연스레 묻어 나오는 것들은.

       

       그녀의 몸 안에서 움직이는 내기에 담긴 것들은.

       

       백화령이 보기에도 가볍지 아니했다.

       

       그 끝이 어디인지조차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육신과 경지의 괴리가 이토록 심한 사람은 처음이군.

       

       보통 어느 한 쪽이 부족하면 그 차이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리기 마련이거늘 이 자는 어찌 멀쩡하게 서 있는 것일까.

       

       정상적인 사람과는 다른 구조를 지닌 외부인이기 때문에?

       

       아니. 아니군. 그랬다면 지금 저토록 안정되어 있을 수 없었겠지.

       

       그 괴리마저도 극복할 수 있을 정도의 경지를 지닌 것이구나.

       

       백화령의 입가에 웃음이 새겨졌다.

       

       오랜만에 싸울 가치가 있는 상대였다.

       

       “민가야. 시작하겠느냐?”

       “그러지.”

       

       대답이 나옴과 동시에 둘이 발을 떼었다.

       

       먼저 주먹을 내지른 것은 백화령이었다.

       

       본래라면 누구를 상대하더라도 몇 수를 내어주겠다 말했을 그녀지만 눈앞의 상대는 그런 여유를 부려도 될 사람이 아니었다.

       

       강자를 상대할 때에는 수싸움이라던가 간을 본다던가 하는 행위는 불필요했다.

       

       해야 하는 것은 오롯이 전력을 다해 상대를 무너트릴 일격 뿐.

       

       신공의 내기를 담아 권을 내지르는 백화령은 강이라는 단어가 현실에 강림한 것만 같았다.

       

       그에 대응하는 민가의 동작은 흐르는 강물과도 같은 부드러움이었다.

       

       세상이 무슨 풍파가 할지언정 강물은 물줄기를 따라서 흘러갈 따름이니 민가는 백화령이라는 폭풍을 태연히 받아낼 뿐이었다.

       

       “공명권인가! 도가의 그 늙은이가 이를 가르쳐 주었을 리는 없는데?!”

       “배웠을 리가 있느냐. 훔친 것이지!”

       “크흐. 그럼 그렇지!”

       

       일순의 시간 동안 수도 없이 많은 합이 이루어진다.

       

       백화령이 하나의 동작을 펼칠 때 마다 수없이 많은 허수가 민가를 유혹한다.

       

       그 허수들은 분명 상대를 꾀어내기 위한 수이지만 빈틈을 보이는 순간 그대로 살수가 되어버릴 것들이었다.

       

       허나 민가는 그 수많은 허수 속에서도 완벽한 대처를 선보였다.

       

       수백의 허수 속에 살수가 숨어 있다면 그 수백 모두에 대처를 하면 그만이라는 듯 모든 수를 흘려버린 것이다.

       

       그를 본 백화령의 입가에 새겨진 미소가 진해졌다.

       

       두 사람의 공방은 사정을 모르는 이가 본다면 꼭 두 사람이 합을 맞추어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최선을 향하는 공격에 최선의 대응이 펼쳐지니 그것은 꼭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배우들의 춤사위와 같았던 것이다.

       

       죽음이 휩쓸고 간 후 황폐화 되어버린 대지는 그들의 무대였으며 그 곳의 주연배우는 백화령과 민가였다.

       

       두 사람이 세상에 펼쳐 보이는 춤과 노래는 서로에게 서로의 강함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으니.

       

       그 관객은 춤을 추고 있는 서로면 충분했다.

       

       “아직 여유가 있어 보이는 구나!”

       “그러는 그 쪽도 마찬가지 아닌가?”

       

       즐겁다.

       

       기세를 올리더라도 거기에 대응을 해 줄 상대가 있다는 것이.

       

       내가 벌이는 수작에 휘둘리지 않고 대응해 줄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이런 상대를 만나는 것이 얼마만이지?

       

       새롭게 천마신교를 일으키고 나서부터는 본인을 대적할 자를 찾지 못했으니 거의 십 년이 다 되어 가는 일이구나.

       

       그런가.

       

       나라는 무인은 십년 동안 신교의 안에서 동면을 취한 것인가.

       

       그리고 이제야 그 긴 잠에서 깨어나 무를 펼칠 수 있게 된 것인가!

       

       백화령을 더욱 즐겁게 해주는 것은 저 자가 아직 천마신공의 편린조차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무얼 숨기고 있느냐.

       

       무얼 감추고 있느냐.

       

       본좌를 상대하면서도 여유를 부릴 틈이 남아있다니 믿을 수가 없구나.

       

       오냐. 그대가 진심을 내지 않겠다면 진심을 내도록 만들어 줄 수밖에 없겠지.

       

       백화령이 속에 감추어 두었던 내기를 주변에 퍼트림으로써 세상을 짓누른다.

       

       “최선을 다하라. 죽음을 각오하고 싸워라. 어차피 그대는 죽어도 죽지 않는 몸이지 않나.”

       

       그 압박만으로 대지가 짓눌려 아래로 그녀를 중심으로 거대한 구덩이가 생겨났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신공의 압박에 짓눌려 죽음을 직감했을 상황 속에서도 민가는 태연했다.

       

       그녀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백화령의 오만한 웃음을 바라보다 마주 웃어주더니 손을 움직여서는 자신의 혈자리 몇 군데를 지긋이 눌렀다.

       

       그는 백화령도 알고 있는 혈이었다.

       

       이전에 그녀가 신의라 불리던 남자를 고문하며 알아낸 혈도.

       

       단전을 폭주시켜 단전이 망가질 때까지 내기를 생산하도록 만들어 내는 점혈법.

       

       저 방법은 짧은 시간동안 무한에 가까운 내기를 제공해 주지만 그 대가 또한 크다.

       

       죽음 혹은 차라리 죽음을 원하게 될만큼의 피해를 입히니까.

       

       일반적인 무림의 인간이라면 저를 알면서도 절망적인 위기가 닥치지 않는 한은 결코 사용하지 않을 수.

       

       허나 민가에게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녀는 외부인이니까.

       

       죽더라도 다시 살아날 수 있으니까.

       

       자신의 몸을 소모품 마냥 버려도 상관없는 사람이니까.

       

       “그 점혈법은 어디서 알아낸 것이지? 그는 신의밖에 모르던 것일 터인데.”

       “내 굳이 입 아프게 다시 말을 해야 하나?”

       

       백화령은 민가가 어깨를 으쓱이며 꺼낸 말의 뜻을 이해했다.

       

       알고 싶다면 자신을 이기고서 입을 열라는 소리겠지.

       

       그래. 내가 멋이 없었구나.

       

       신교의 사람이 입을 나불나불 거리는 것은 옳은 행동이라 할 수 없으니까.

       

       “알겠다. 그리 하마.”

       “혹여나 싶어 묻는 것이다만 지금 내가 두는 수가 치사하다 생각하는가?”

       “허? 무슨 헛소리를. 승부에 치사함이 어디 있는가.”

       

       무슨 일을 하더라도 그 위에 승리를 덧씌우면 올바른 일이 된다.

       

       치사하다 성토를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약자의 외침일 뿐.

       

       진정한 강자라면 상대가 그 어떤 수를 둔다 하여도 그를 깨부수어야 한다.

       

       “그래. 그렇겠지.”

       

       처음으로 민가가 먼저 몸을 움직인다.

       

       그녀의 동작에 담긴 것은 이전과 같은 부드러움이 아니었다.

       

       강이었다.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깨부수겠다는 패도였다.

       

       하. 그렇게 나와야지.

       

       백화령은 민가가 다루는 천마신공을 보며 미소를 띄우고는 자신의 패도를 준비했다.

       

       민가가 지닌 천마신공의 숙련도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신교의 천마인 백화령이 그를 보증했다.

       

       그녀는 이미 천마신공을 대성한 사람이었다.

       

       어디에서 배웠는가.

       

       누구에게 배운 것인가.

       

       어찌 수련을 했는가.

       

       궁금증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지금은 그를 물을 차례가 아니었다.

       

       천마신공을 대성한 자끼리 만나 해야하는 일은 서로의 패도를 부딪혀 누구의 패도가 더 드높은 지를 증명하는 일 뿐이었으니.

       

       권과 권이 부딪히고 충격파가 일어 서로의 머리카락이 흩날린다.

       

       백화령이 지닌 빗자루 같은 단발과 민가가 지닌 매끄러운 장발이.

       

       그 순간 백화령은 민가의 머리를 묶고 있는 비녀를 어디선가 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라? 저것은 분명.

       

       “한 눈을 팔 시간이 있나?”

       

       그 말을 하는 것과 동시에 민가의 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잠깐 흐름을 잃은 백화령이었으나 그녀는 순식간에 평정을 되찾았다.

       

       백화령이 괜히 여태까지 무림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게 아니었다.

       

       그녀에게 감정의 흔들림이란 바로 다잡을 수 있는 것이었다,

       

       한치의 물러섬도 없이 백화령과 민가의 주먹이 부딪힌다.

       

       그 때마다 백화령은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다.

       

       똑같이 천마신공을 사용하는 자라 하여도 각자가 지닌 해석은 다르다.

       

       천마신공이 지닌 근간이 패도에 있다 한들 어떤 식으로 패도를 추구할 것인지는 개인에게 주어져 있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민가가 추구하는 패도는 백화령이 추구하는 것과 한없이 닮아 있었다.

       

       세상을 짓누르는 하늘을 깨부수고서 그 위에 서 군림하겠다는 의지.

       

       파천의 뜻이 민가의 무공 안에 담겨 있던 것이다.

       

       우연히 서로가 추구하는 방향이 똑같았던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백화령이 사용하는 파천을 보고서 따라한 걸 수도 있다.

       

       그 이외에도 이 상황을 설명하기 위한 무수히 많은 가능성들이 존재했다.

       

       허나 그 모든 설명은 백화령이 마음속에 품은 위화감을 설명해주진 못했다.

       

       자신이 인정할 만큼 천마신공을 대성한 자.

       

       거기에 완벽히 동일한 천마신공의 해석.

       

       자매라고 해도 모두가 믿을 정도로 비슷한 외모.

       

       먼 과거 그녀가 머무르던 빙궁의 풍경을 재현한 화산의 방.

       

       백화령이 신의에게 전해들었던 점혈법.

       

       그리고 먼 과거 나의 생일에 어머님께서 선물해주셨으나 잃어버리고 만 비녀.

       

       이 중 하나는 우연일 수 있지만 이 모든 것이 겹치면 그는 필연이 되어 버린다.

       

       믿을 수 없지만.

       

       도저히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눈앞에 존재하는 이가 외부인이기에 더더욱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말이 안 된다 판단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게 아니라면 위화감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백화령은 민가의 주먹을 받아내면서 이렇게 물었다.

       

       “그대는. 본좌인가?”

       

       그 말을 들은 민가는 방금 전까지 보이던 살의를 어디로 날려 보낸 것인지 뒤로 훌쩍 물러나서는 한참이나 실없는 웃음을 흘리다가 답을 내주었다.

       

       “이제야 알았는가?”

       

       그대는 본인이지만 참으로 눈치가 없군.

       

       바라는 답을 들었음에도 백화령은 자신의 머리가 더 혼잡해지는 걸 느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민초파피 vs 천마의 전초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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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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