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170

        

         본관 최심부 고층 첨단, 가장 접근하기 귀찮은 곳에 있는 사장실이었으나 거기로 이어진 복도는 충분히 넓고 화사했다.

         

         이 숨막히는 인간 병기들로 들어차 있지 않았다면 더욱 분위기가 살았으리라는 감상이 절로 들 정도로.

         

         양측의 대화는 없었기에, 오직 무거운 침묵 속에서 유지되는 미묘한 간격이 양측의 거리감을 대변하고 있었다.

         

         아니면… 전부 내 착각일지도 몰랐고.

         

         이것도 역시 작전의 일부인가…?

         이성은 그럴 리가 없다고 외치는데, 태연하게 정면으로 다가간-저걸 기습하려면 바깥에서 창문을 부수고 들어와야 해서 어쩔 수 없었는 지도 모르지만- 마사나리를 보고 있자니 전부 의도된 사항처럼 느껴지는 감이 있긴 했다.

         

         확정된 게 아무것도 없어서, 우리한테 유리한 쪽으로 일이 돌아가기를 기원하며 가슴 졸이는 방법밖에 남지 않았기에. 나는 속으로 부탁했다.

         

         야 이 놈들아, 그러니까 뭐라고 말이라도 좀 해줄래? 사람이 상황 파악이라도 할 수 있게!?

         

         …저벅.

         

         내 간절함이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잔잔해진 수면에 돌을 던지는 것처럼, 한 발짝 앞으로 나선 마사나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안녕하시오리까, 전세대(前世代; 이전 세대의) 선배공들. 소인은 마사나리 감마, 식별 코드 NG-HN00183의 부족한 후학後學의 몸으로 실례를 범한 점 먼저 용서를 구하겠소이다.”

         

         “……NG 타입의 후배인가. 벌써 현역으로 배치된 녀석이 있는 건 의외군.”

         

         

         아직까지는 평이한 대화다. 어찌 보면 차선 반대편을 스쳐 지나가는 버스 기사님들이 서로에게 슬쩍 손을 들어 보이시는… 그런 친근감마저 느껴진다.

         

         근데 예의 바르게 인사부터 시작할 줄이야. 이건 좀 놀랐다.

         군기… 라기보단 존중의 의미가 훨씬 강한 것처럼 보이긴 해도 격식을 차렸다는 건 달라지지 않으니까.

         

         그러면 이제 다음 단계는 뭐지? 역시 기습이려나?

         자연스럽게. 머릿속으로는 조금 더 대화를 시도하는 척 거리를 좁힌 뒤에 어마어마한 속도로 처리하는 그림이 그려졌다. 아군이 아니라면 그 방법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었고.

         

         하지만 나와 생리적으로, 역사적으로도 안 맞던 추적자답게, 마사나리 녀석은 내 기대를 무참히 배신했다.

         

         “허면 선배공들께서는. 부디 폐가 되지 않는다면 길을 터 주실 수 있겠소이까? 아무래도 소인이 중요한 임무를 수행해야 하기에 바쁜 지라.”

         

         ‘…뭐?’

         

         잠깐, 그게 정중하게 부탁한다고 될 일인가? 내 상식대로 풀린 일이 별로 없는 만큼, 뭔가 명령의 우선 순위를 결정짓는 조건이라도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숨을 죽여봤지만.

         

         ““…….””

         

         4인의 추적자들이 서로 시선을 교환한다.

         어이없어 하는 것도, 내부 투표를 진행하는 것도 아닌 무언가를 조용히 재확인하는 과정을 거친 그들은 별로 희망차지 않은 결론을 내린 모양이다.

         

         “…미안하군. 유감스럽게도 이쪽도 공무 집행 중이라 그런 요청은 묵살할 수밖에 없군. 특히나 오늘은 그 누구도 통하지 말라고 하셨으니 말일세.”

         

         ‘역시 안 되잖아…!!’

         

         너무 큰 동작을 했다가는 바로 들킬까 봐.

         조용히 모퉁이 뒤에서 얼굴을 감싸 쥐고 왁왁! 가슴으로 비명을 질렀다. 왜인지 나까지 부끄러워져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야 카사네 또한 에나마의 임원 중 하나니까 당연히 휘하에 추적자를 두고 있다.

         

         작전에 큰 장애물이 될 수 있는 잠재적 위협이 넷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감안하고도 원래 계획이 필드 엔지니어 한 명과 마사나리로만 짜였던 건 다름이 아니다.

         

         그녀의 안전을 위한 개인 호위이기에, 설령 방을 지키고 있더라도 하나나 둘이 한계라고 여겼던 게 첫 번째 실수. 그 다음 실수는 두 말할 것도 없이 아까 회장에서 쇼우와 함께한 인사로 낌새를 눈치채게 만든 것이리라.

         

         아예 들켰다면 안일하게 자리를 비웠을 리 없으니, 미심쩍은 마음, 약한 의혹을 남긴 수준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이런 대치가 벌어진 시점에서 전부 뒤늦은 한탄이다.

         

         그렇다고 또 예측하거나 대비하지 못한 책임을 누군가에게 몰아 버리기엔 카사네의 결단이 너무 훌륭해서…. 아니, 아무리 본진이라지만. 역으로 자기 주변을 비우고 호위를 모조리 방에다 집중시킨다는 선택을 보통 사람이 어떻게 내려? 진짜 기득권자들의 수싸움은 만만치 않네.

         

         하여간 후회는 이쯤하면 됐다. 바보 같은 ‘부탁’도 무참히 거절당했으니, 이제 마사나리는 금방이라도 벌집이 되어 쓰러질 게 뻔하니까 내가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그건… 유감이구료.”

         “그래, 유감이지.”

         

         그렇게 대표 노릇을 하던 추적자와 마사나리의 한탄이 교차한다.

         

         “어떻게. 소인은 소란을 피우기 곤란한 입장인지라, 가볍게 단검 정도만 쓰고자 하는데… 괜찮으시겠소이까?”

         “…그것 참 우연이군. 우리도 카사네 사장님의 행사를 굳이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말이…다!”

         

         이해하기 힘든 대화가 오고갔다. 거기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틱! 하고 끌러진 총기들이 바닥을 나뒹굴었고.

         이 최전선 요원들의 미세한 우위를 결정짓는 신경전 또한 순식간에 결판이 났다.

         

         덜컹. 파지지지직—! 마사나리의 신형이 돌연 낮아졌으며.

         콰드득!! 적이 그를 노리고 던진 투사체… 원반처럼 생긴 칼날이 허공을 가르고 벽면에 틀어박혔다.

         

         폭력적인 가속과 간결한 동작에 힘입어 적이 투사한 날붙이가 적중하는 것 보다, 그가 여태 들고 다니던 검은 수트케이스를 바닥에 내려찍는 게 아주 약간 더 빨랐으니.

         

         고급지지만 특별할 건 없어 보이던 가방의 손잡이가 흡사 스위치처럼 밑으로 움푹 들어가고는… 그대로 펄스 파동을 방류.

         

         일순간의 섬광. 사장실과 내가 있는 위치도 빗겨간. 반경 4~5m 이내를 겨우 덮을 것 같은 범위를 폭풍이 휩쓸고 지나가자. 동의 없고 건방진 전자파 오염에 카사네 측 추적자들에게서 침음과 노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 개 같은….”

         “헛짓거리를…!”

         

         “실례, 선배들께서 혹시나 지원군을 부르실까. 부득이하게 보험을 좀 들었소이다. 겸사겸사… 같잖은 저급 임플란트를 사용하시던 분이 계시다면 반성을 촉구하는 의미도 좀 담았기에. 마음에 드셨소이까?”

         

         예전에 봤던 EMP 폭탄의 소형화 모델이라 보면 되려나? 나라는 해커가 함께 있다는 정보를 원천 차단하는 효과와 더불어 자존심을 살살 긁는 도발까지.

         

         심지어 그때처럼 사람을 날려버릴 풍압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대신 바닥에 떨어진 총들이 복도 구석으로 밀려나 처박혀서 변수도 많이 줄어들었다.

         

         그나저나… 직접 보고 들었는데도 믿기가 어렵다.

         지금 서로 일절 화기 없이 싸우기로 협의한 거지…? 맞지??

         

         비록 일정 수준이 넘어가면 안구나 총구의 움직임을 보고 미리 움직인다던가, 1초를 수백 장면으로 나눠서 어떻게든 대응한다던가. 각종 인간이랑 괴리한 방법을 동원해서 대응하는 게 상정되어 있다지만.

         

         원거리에서 일방적으로 흩뿌리는 죽음의 비가 얼마나 상대를 몰아붙여서 큰 교전 우위를 가져다주는지 모르진 않을 터. 잃을 게 몸뚱아리밖에 없는 나만 해도 장난 아니게 스트레스 받았는데 말이지.

         

         그렇다면 과정이 좀 기상천외할지언정 도달한 결론은 간단한 것이다. 저것들은 그런 말도 안 되는 핸디캡을 감수하더라도, 모시는 주인이 개최한 파티에 누가 될 가능성을 줄이는 걸 우선했다는 거다.

         

         추적자의 대원칙, 모든 것에 있어서 에나마의 권위와 이익을 우선시한다는 광기는 정말 이쪽이나 저쪽이나 여전했다.

         

         다만 상충하는 선택을 내려야 하는 순간, 거시적 관점에서 결단을 내리기 힘들다면 어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이. 이런 정상과 어긋난 문답과 싸움을 초래한 것이리라.

         

         양쪽 모두가 무거운 공무의 업을 지고 있다면 깔끔한 동족 상잔으로 결판을 짓는다. 모시는 주인과 에나마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여유 부리지 말아라, 후배…!!”

         “미안하오. 아무래도 그만큼 차이나게 만들어진 몸인지라.”

         

         쾅—!!

         

         달려드는 네 줄기의 그림자에 응대해 마사나리도 질풍이 되어 맞부딪혔다.

         

         흡사 맞물린 톱니바퀴가 같은 방향으로 돌려고 고집부린 끝에, 어느 쪽도 물러나지 않아서 부서지고 깨져버리는 모습을 그린 순간. 때마침 카이쥰에게서 돌아온 답변 또한 참으로 가관이었다.

         

         [ 현재, 그녀 휘하의 추적자가 넷이나 모여 있다고 말씀하셨습니까? ]

         

         ‘태평하게 되묻고 있기는…!’

         

         현장에서는 지금 일분일초가 절박하다고 외치는데, 탁상공론이나 일삼는 윗대가리를 보는 기분이라 뭐라고 거하게 욕을 해줘야 이쪽의 급박함이 표현이 될까… 머리를 싸맬 뻔했는데.

         

         [ 상당히 애매하나…. 사내 전투 평가서와 테스트 리포트를 신뢰한다면 그 정도는 문제가 안 됩니다. 다만 이후의 그림이 조금 달라지긴 하겠군요. ]

         

         “…뭐?”

         

         뒷말이 의미하는 바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넷 정도는 괜찮다. 마사나리가 충분히 감당해낼 수 있다는 확답을 듣자 협소해졌던 감각이 다시금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러고보니 금방이라도 끊길 줄 알았던 타격음이 계속해서, 끊김 없이 들린다.

         쿵쿵, 피부를 떨리게 만드는 진동에서는 죽음의 기색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다. …그걸 감당하는 이들은 전혀 다르게 느꼈겠지만 아무튼.

         

         슬그머니 머리를 내밀자 어지러운 소용돌이가 눈에 들어왔다.

         빠르게, 좀 더 빠르게, 감당하지 못하는 이탈자가 생길 때까지. 견뎌내지 못하고 떨어져 나가는 빈틈을 위해.

         

         ‘오… 와…?’

         

         ……마땅히 힘을 실어줄 방법이 없다면, 우선은 상황이 흘러가는 걸 구경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임플란트를 통한 전력 증강이 어려운 나는 앞으로도 저들처럼 특별한 밑준비조차 없이 내키는 대로 일선에서 싸우긴 힘들 것이다.

         

         그러나 저런 괴물딱지들과의 충돌을 계속 피할 수도 없는 노릇, 언젠가는 대신 싸워줄 사람도 없는 상태로 부딪혀야 한다는 뜻인데.

         그렇다면 이렇게 특등석에 앉아서 수준 높은 전투를 관찰하는 것도 좋은 경험 겸 공부가 되지 않을까? 그냥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다.

         

         너무 정신없이, 뒤지게 빠른 속도로 움직여서 내 수준으론 일일이 알아보기도 힘든 것만 빼면 정말 완벽했을 텐데요…!

         

         

         

         

         “크… 흡…!!”

         “…….”

         

         약간 느린 바람 쪽, 그러니까 적에게서 신음소리가 새어 나온 것 같았다.

         

         아, 부디 제대로 해설하지 못하고 추측성 사견을 넣는 점은 관대히 용서해주길 바란다.

         

         지금 내가 똑바로 볼 수 있는 건, 장비 제식화에 있어서 무기는 일종의 예외로 처리된 건지 격돌하는 찰나에 언뜻언뜻 적들이 휘두르는 게 직도直刀니, 챠크람(Chakram)이니 하는 특이한 날붙이라는 걸 알아보는 게 한계였으니까.

         

         물론… 그것마저 헬레나처럼 유별난 도검 애호가여서 눈치챈 건 아니고, 사이버웨어가 반쯤은 멋대로 대조해서 출력해 준 결과물이었지만.

         

         빠각!

         

         “손속이… 맵군! 후배!!”

         “……순수한 칭찬으로 들어도 되겠소이까? 여기까지 오는 길에 그것과 관련한 핀잔을 많이 들은지라.”

         

         반면 기본적인 팔 보호구만 착용한 마사나리는 빈손으로 그걸 모조리 받아넘기고 있었다.

         어떻게? 무려 상대방이 목표로 한 타점이 닥치기 전에 한 발 앞서 관절부를 가격하는 방식으로.

         

         일단 수비는 완벽하다. 공격에 이루어지기 전에 원천 차단했으니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하지만 공격은?

         

         콰직!!

         쐐애액…!

         

         바로 직전까지. 마사나리가 디디고 있던 마룻바닥을 짧은 쥬몬지야리(十文字槍; 십문자창)가 쪼개 놓았고, 후퇴하는 궤적의 공기를 예의 직도와 궐수도(蕨手刀; 외날 곡도)가 아슬아슬하게 찢어발겼다.

         

         적이 네 명이라는 건 공방에 쓸 수 있는 팔도, 다리도 네 배라는 것. 그리고 거기서 취할 수 있는 전략의 가짓수는 단순히 그 정도 배율로 끝나지 않는다.

         

         얼마나 잘 대응하더라도 결국엔 수비 일색.

         내구전? 체력전? 버티는 것만으로 상대가 나가떨어지는 희망적인, 수동적인 관측을 가지고 저 녀석이 자신 있게 나섰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래도 상부에 연락을 부탁했으니 패배를 염두에 두었다고 봐야 하나?

         그랬으면 직설적으로 작전 실패를 입에 담았으면 담았지, 애매모호하게 중의적인 요청으로 책임을 전가하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으음….

         

         아니, 그보다도 니들. ‘어차피 그렇게 시끌벅적하게 싸우면 총을 쓰는 거나 다를 바 없지 않냐!’고 찔러보고 싶은 못된 마음도 살짝 들었지만.

         동등한 추적자라 여긴 상대를 일 대 사로 압살하는데 실패한 시점에서 금간 저들의 자존심이 구경꾼을 향해 뿜어질라 겨우 참아냈다.

         

         “후우…… 크으… 후읍…!!”

         

         말수가 점차 줄어들더니 이제는 서로에게 논담조차 두드리지 못할 지경까지 이르렀다.

         

         어느 쪽이나 가까스로 이동과 공세에 할애할 호흡만 조절하는 게 한계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약한 소리를 최대한 참아내며 버티는 근거는 무엇일까? 아마 수축된 근육들이 비명을 내지르고 있을 게 뻔한데도, 입에서 피가 흐를 정도로 다물고 버티는 이유는?

         

         그야 뻔하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아는 것이다. 견뎌내지 못하고 낙오되는 사람부터 죽으리라는 것을.

         

         이쯤 되니, 속도가 가지는 이점에 대해서 내 평가를 올리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 섰다.

         

         무작정 같은 공간 안에서 부대끼고 있다고, 대등한 싸움이 성립하는 게 아니다.

         

         예전에 제로가 어설픈 용병들이나 강도들을 급습해서 가지고 놀았던 것과 비슷하다. 애당초 우월한 속도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으면, 동일한 전장에 서는 것조차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그걸 인지하고 나니, 홀로 싸우는 마사나리를 몰아넣기 위한 합격을 시도하는 사인조가 역으로 사냥 당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서 달리는 초식 동물처럼 보여서 소름이 돋았고.

         

         쉬이익—…….

         

         질주하는 마사나리의 육체, 제복 틈새로 연기가 뿜어져 나와서 마치 인술忍術을 쓰는 것 마냥 형체가 흐릿해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 높은 확률로. 이대로는 모시는 이가 실망할 결과가 나오리라는 걸 직감한 저쪽의 한 명, 비교적 짧은 사거리를 가진 직도 추적자가 돌연 공세를 포기하고 이탈하고자 몸을 당겼다.

         

         “크으읍…!!”

         

         혈관과 근골이 찢어지는 고통을 감내하며 몸을 날린다.

         목표는… 추측이지만 구석으로 밀려난 소총. 자존심이고 뭐고, 이렇게까지 차이가 난다면 발을 묶고 경로를 제한해서 사살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모양인데.

         

         넷으로 간신히 동선을 억제하던 짐승을 셋이서 몰면 필연적으로 빈 공간이 생기지 않겠나?

         나는 그래서 그 틈을 이용해 어떻게든 숫자를 줄이는 판단을 하리라고. 정말 무심코 예측했지만… 녀석의 결단력은 내 상상을 웃돌았다.

         

         “허억, 하아… 잡았다!”

         “드디어, 급했구나……!!”

         

         “!!”

         

         배제하고자 했던 변수가 부활할 조짐에 조급해진 것처럼, 억지로 직도의 이탈을 막으려던 그의 어깨에 퍽! 하는 둔탁한 소음이 울리며 쥬몬지야리의 옆 날이 틀어박혔다.

         

         꼭 바늘에 걸린 물고기처럼 움직임이 제한된 상태를 본 챠크람과 궐수도. 그리고 총을 챙기려던 직도까지 상황을 확인하고는 다시 반전해서 벼락처럼 달려들었다.

         

         어깨의 상처는 분명한 전투력의 저하로 작용하겠지만, 그것보다는 전투가 개시된 이후로 거의 처음 0으로 돌아간 가속을 되찾게 내버려두면 안 된다는 집착이 나에게도 보였다.

         

         …그럼, 나 같은 비전투원에게도 뻔히 보이는 수를 함부로 들이밀면 과연 어떻게 될까요.

         

         부웅—!!

         공기를 가르며 온갖 종류의 날붙이가 몸을 향해 휘둘러진다.

         

         허나 오히려 지나치게 우수한 그들이기에.

         아무리 현란한 궤도로 눈을 속이려 들고 급한대로 공격을 퍼붓는 것처럼 보일지언정, 그 공격이 향하는 종착지는 최종적으로 급소.

         

         피해야 할 참격이 선이라면 곤란하지만 점이라면 상관없다는 광기어린 판단 하에. 함정을 판 당사자조차 그쯤은 당연히 해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적을 끌어들였으니.

         

         “큿……?!”

         

         직도가 가슴팍을 꿰뚫었으나, 예상과는 다른 감촉이 느껴졌는지 놈의 몸이 멈칫한다.

         두꺼운 흉부 장갑을 피해 약간 밑에서 위로, 심장을 노리도록 찔러진 일격은 수축한 폐와 심부 사이를 관통…했다고 여겨진다. 그 장기가 작살났는데 저렇게 움직일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내려쳐진 궐수도? 내리쳐지는 힘을 감수하고 옆구리로 받아냈고.

         휘둘러진 챠크람? 발목에서 피분수가 뿜어지는데도 역으로 다리를 휘둘러서 팔을 가격했으며.

         깊숙하게 박혀있던 쥬몬지야리는 벌써 마사나리의 몸이 회전할 때 튕겨 나갔다.

         

         그렇게 확실이 불확실로 변한 상태에서 안개 속으로 발을 내디딘 사냥감의 최후는 명백했다.

         

         “와….”

         

         허망한 결말이다.

         어느새 주인을 갈아탄 직검이 팔이 봉쇄당한 궐수도의 목젖을 깨부수고 관통, 그렇게 힘이 빠진 손아귀에서 궐수도를 이어받은 그는 그대로 원심력을 이용해 창병의 머리를 가로로…… 어우씨.

         

         퍼서석…!

         

         순서대로 이루어진 사형 선고였지만 소리는 숫제 하나로 합쳐져서 들린 게 제일 황당하지 않을까? 괜히 지켜보는 나까지 아드레날린이 마구 돌아서 겨우겨우 잔상으로만 파악한 결과가 이거다.

         

         “……그간 수고많으셨소이다. 선배공들.”

         “”…….””

         

         피칠갑을 한 채로. 세대 교체를 예고하는 듯한 무심하고 잔혹한 선언에 챠크람과 무기를 잃은 쥬몬지야리 둘 중 누구도 대꾸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포기하지도 않았다. 발목이 심하게 부상당한 만큼 속도가 느려졌으리라 기대하고는 동시에 달려들었으니까. 다만 마사나리가 귀신의 형상으로 사방에 피 웅덩이를 만들면서도 동등한 마지막을 선사했을 뿐이지.

         

         “하아아… 이게 뭐람.”

         

         참 숨막히고 어지러운 싸움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속도에 대한 대비책이 필수라는 건 확실하게 배웠어도… 너무 고차원의 전투를 경험한 탓에 그것 이외의 교훈은 전혀 못 얻은 것 같은데.

         

         아, ‘조급함은 죽음으로 이어진다.’ 정도는 평생 암기하겠네.

         

         …콰당!

         

         ……게다가 난장판 끝에 공멸이라니. 자신의 피에 익사할 것처럼 쓰러진 그를 보자 원인 불명의 착잡함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자그마한 희생이라도 조금은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게 사람일진대, 그들의 옥쇄는 당연한 일로 치부될 게 벌써 보여서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차마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어서 발목을 잡고 질질… 끌려다가,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서 급하게 몸만 옆으로 뒤집었다.

         

         “윽…!”

         

         그리고 상비하던 지혈제를 꺼내서 흉부에 난 구멍으로 보이는 피부에 한 방 꾸욱.

         또 너덜거리는 발목 위쪽 단면을 외면하고 종아리 부근에 꾹.

         

         잘린 비율을 보면 절단상에 가까운데 이런 보급형 지혈제 정도로 소용이 있을까, 진짜 돕고 싶다면 더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야 하지 않겠냐마는.

         

         [ ……상황 종료. 적은 전멸에, 우리 쪽 요원은 완전 중상. 가진 지혈제를 꽂아 주기는 하겠는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네요. ]

         

         [ 아쉽게 되었군요. 어쨌든 그런 경과를 지켜보실 여유는 없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자료를 찾아 주시는 게 이득이니까요. 그러니… 행운을 빕니다. 미스 아나스타샤. ]

         

         “…….”

         

         현장의 피땀 어린 노고도 몰라주는 새끼라고 한 번 씹어주고 메시지를 치워버렸다.

         

         쓸데없는 동정이라는 건 안다. 하지만 앞으로 능력을 발휘하는데 집중해야 할 걸 고려하면 자기만족이 필요했다고 강하게 주장하겠다.

         

         다소 씁쓸한 말이긴 해도, 내 운신이 어마어마하게 넓어지는 최고의 결말이긴 했기에.

         나는 고개를 내젓고 쓰러진 몸들과 피의 강을 건너뛰어 마침내 카사네의 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데 행운…? 저것도 고지를 코앞에 둬서 긴장했는지 이상한 말을 하네. 이런 기술자의 작업에 운이 끼어들 요소가 어디 있다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자신이 죽는 것도 에나마의 재산 손실이라는 걸 감안하고 내린 판단. 이라고 생각해주시면 되겠습니다.

    Glacia샤샤 님의 관대한 44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목격자조차 당황하는 암-살 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이틀에 한 번씩 연재분을 챙겨와서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원래 끊으려고 계획했던 곳에서 나누지 않으면 진짜 한참 걸릴 것 같아서…. 흑흑.
    고로 다음은 전뇌대마왕(?)의 턴입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