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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170

     대관식.

     전철이 다녀야 할 길에 왕관처럼 형상을 갖춘 마도자동선이 천천히 바퀴가 굴러가고, 그 위에 테르시안의 전통적인 황제의 복색을 갖춘 합스베르크 폰 테르시안 황제가 월계관과 지팡이를 든 채 제국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든다.

     “아쉽군.”

     나는 그걸 황궁의 귀빈용 객실 창문을 통해 멀리서 바라봐야만 했다.

     

     “직접 가보고 싶으셨던 겁니까?”

     “직접 갔으면 아마 저기, 아스타시아의 드레스 차림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해서.”

     황제의 옆.

     

     자매와도 같은 두 백발의 여인이 드레스를 입은 채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그런데 코디는 죽여야겠군.”

     “예?”

     “아스타시아의 가슴을 드러내고 있지 않나. 망사든 뭐든, 가슴골과 쇄골은 전부 가렸어야지.”

     “아니, 그.”

     “쯧. 그래도 기자들이 찍은 사진, 나중에 에르윈 황후를 통해서 받아 간다면 본전인 건가. 내가 사절로 오지만 않았다면 몰래 나가서 사진 찍으면서 따라다니는 건데.”

     “도련님. 그것보다 지금 이것부터 신경 쓰는 게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로버트는 자신의 발치에 쓰러진 검은 옷의 괴한을 가리켰다.

     “이제는 대놓고 도련님 죽이려고 이렇게 독 발린 단검을 가지고 오는데요?”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네.”

     “아무리 퍼레이드 중이라고 해도,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닙니까?”

     “경. 자네는 갑자기 아버지가 밖에서 양자를 데려와서는 상속자로 내세워 준다고 하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그런 비유를 하지 않아도, 저는 충분히 현 상황을 정치적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나는 아스타시아의 흔들리는 가슴골에서 절로 고개가 실내로 돌아갔다.

     “진정으로?”

     “도련님 옆에서 제국신문만 7년을 읽었습니다. 지금 이 암살자들, 황제의 사생아들이거나 그들이 보낸 암살자들 아닙니까.”

     “그렇지.”

     아무래도 아스타시아의 황녀 드레스는 사진을 통해 접해야겠다.

     “미안하군. 시체가 좀 많이 쌓였나?”

     “많이 쌓인 정도가 아니라, 지금 10명이 넘었습니다.”

     바닥에 깔린 레드카펫을 흥건하게 적시는 검붉은 피.

     방 안은 이미 인간의 혈향으로 가득하고, 어떻게 마법이나 연금 공학 등으로 치워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람이라도 부르면…하아. 됐습니다. 아까는 시체 치워달라고 부른 백발 메이드가 도련님 향해서 단검 날리려고 할 때는, 어휴.”

     “생각보다 황궁이 살벌하지?”

     “언제 황궁에서 살아보신 적 있으십니까?”

     “소문은 많이 들었지.”

     노스트럼 왕가에 비교하면 제국 황궁은 하루에도 수 명이 죽어 나가는 살얼음판이다.

     “그런데 별수 있나. 이게 내게 주어진 시련이며 과제인 것을.”

     “황제의 월계관을 이어받을 자의 무게라는 겁니까?”

     “아니. 아스타시아를 내 것으로 공고히 만들기 위한 시련이지.”

     “…그 부분은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만.”

     “간단한 거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장갑을 낀 다음, 로버트 경과 함께 시체를 한쪽에 차곡차곡 쌓았다.

     “경이 생각하기에, 경은 내가 진심으로 황위에 관심이 있어 보이나?”

     “아니요. 아, 다음 답을 미리 답해도 되겠습니까?”

     “추가 질문도 하지 않았는데?”

     “어차피 진짜 관심 있는 분야를 물어보시려는 거 아닙니까. 도련님께서는 아스타시아 황녀님 말고는 아무래도 좋지 않습니까.”

     “300점.”

     역시 로버트다.

     “하지만 로버트 경만큼 나와 가까이 지낸 이들이 아니면, 내 본심을 이해하지 못하지.”

     “본심이기 이전에, 황녀님이 황녀님인 이상 계속 사람들은 도련님을 황위를 노리는 탕아로 여길 겁니다.”

     “나는 아스타시아가 황녀가 아니어도 상관없는데.”

     “문제는 황제가 아스타시아 황녀님을 계속 황녀로 두고 있다는 거잖아요.”

     “바로 그게 지금 상황에서 가장 큰 문제야.”

     나도, 아스타시아도 황위에 딱히 관심이 없다.

     문제는 다음 황위를 선정하는 결정권자가 나나 아스타시아만을 콕 찍어두고 있다는 것.

     “사생아놈들은 참으로 어리석어. 자기 실력을 늘려서 황제의 눈에 들어갈 걸 생각해야지, 자기 위 0순위와 1순위를 죽여서 자리를 빼앗으려고 하고 있으니 말이야.”

     그리고 그러한 욕심 때문에, 황제의 수백 수천 사생아들은 어떻게든 나를 제거하려고 어제부터 혈안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 도련님. 이건 진짜, 만일의 가정입니다만.”

     “내가 황제의 사생아 중 한 명에게 살해당하면 그 뒤는 어떻게 되냐고?”

     “300점입니다. 어떻게 됩니까?”

     “300점 하려면 그에 대한 답도 내놓아야 하는데. 경은 어떻게 생각하나?”

     “으음…. 황제가 몹시 노발대발하지 않을까요?”

     “노발대발이야 하겠지. 아끼던 0순위가 죽어버렸으니까.”

     “…아! 한 편으로는 기뻐하겠군요. 0순위를 죽인 자의 능력을 다시금 보게 되어.”

     “정확해. 적자생존, 약육강식. 0순위를 잡아먹었다고 0순위가 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순위가 몇 단계는 올라가는 게 사실이지.”

     그레이 지브롤터를 죽여서 황제의 시선을 받는다.

     기존에 이미 눈길에 들었던 이들은 신임을 받게 될 것이며, 황제가 신임을 주고 있던 이들은 총애받게 될 것이니.

     그 끝은 테르시안 제국을 이어받을 황태자/황녀이리라.

     “어처구니없는 일이지. 로버트 경. 왜 황제가 다른 이들이 아닌 나를 황위 계승자로 생각하고 있는지 알고 있나?”

     “다른 사생아들은 테르시안 제국을 이어받을 생각을 하고 있고, 도련님께서는 합스베르크 제국의 황위를 거부하고 계시니까요?”

     “오늘 무슨 날인가? 족집게가 따로 없군.”

     “암살자들 계속 제거하느라 정신이 곤두서서 그런 겁니다. …흐암.”

     아직 로버트는 멀쩡하지만, 슬슬 자신도 제어하지 못하는 피로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한숨 자겠나? 내가 호위를 서지.”

     “아니, 도련님. 호위 기사가 졸린다고 자버리면 제 체면이 뭐가 됩니까? 도련님이 먼저 주무십시오. 같이 밤을 지새우셨고…음, 또….”

     로버트는 민망한 얼굴로 가장 바닥에 깔린 백발 시체 두 구를 가리켰다.

     “…마스터 급은 도련님이 직접 제거하셨지 않습니까.”

     “기껏해야 마스터 초입 수준에 불과했던 암살자일 뿐이야.”

     나는 가볍게 지팡이 끝을 손가락으로 튕겼다.

     “그리고 로버트 경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적이었는데?”

     “아직 그 정도는 안 됩니다. 목숨 걸고 싸워야 하지 않습니까?”

     “목숨은 걸어도 이길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됐습니다. 제 목숨 거는 건 상관없지만, 거기에 도련님 안전이 걸려있다면 이야기는 다르죠.”

     “정작 마스터 상대는 내가 했는데?”

     “도련님께서는 피 한 방울 옷에 묻히지 않고 죽이셨잖습니까.”

     “무슨 말을 못 하겠군.”

     슬슬 로버트가 망가질 것 같았다.

     “어쩔 수 없군. 이 방법은 쓰기 싫었지만.”

     나는 퍼레이드가 한창 열리고 있는 유리창을 향해 다가간 뒤.

     슥슥.

     손날을 세워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퍼레이드, 1시간 내로 끝날 거니까 그때까지만 기다리게.”

     “예…?”

     “곧 끝나고 돌아올 거야. 아무리 국민들이 열광한다고 하더라도, 퍼레이드 당사자가 마무리 빨리하고 황궁으로 돌아오겠다는데 어쩌겠어. 그러니….”

     와장창!

     “그때까지만, 좀 버텨보자고.”

     “죽어라, 다리병신!!”

     유리창이 깨지며, 군청색 눈동자의 백발 암살자가 눈에 핏발이 선 채로 나를 향해 칼을 겨누며 달려왔다.

     “낮부터 술만 마신 게 아니라, 백은까지 빨고 달려오다니.”

     판단력과 이성이 날아간 상태.

     서걱.

     “황위에는 관심이 없지만.”

     나는 지팡이의 손잡이를 잠시 잡았다가, 다시 안으로 밀어 넣었다.

     “너희들이 아스타시아를 트로피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용납할 수 없지.”

     “크, 크윽…!”

     목울대가 잘려 피를 쏟아내는 백발 암살자의 눈에 열등감이 스친다.

     “아, 혹시 너.”

     나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암살자의 단검을 하나 발로 튕긴 다음, 직접 손으로 움켜쥐었다.

     “설마 아스타시아를 노리고 있었나?”

     “이, 개…!”

     “그건, 안 될 말이지.”

     새애액!

     

     내가 다가가기 무섭게, 암살자는 목을 붙잡고 있던 손을 내 얼굴을 향해 뻗으며 뭔가를 뿌렸다.

     “위험하게 연기독을.”

     “도련님!”

     “괜찮아.”

     나는 가볍게 발끝에 마력을 담아, ‘오른발’로 바닥을 찍었다.

     파ㅡㅡ앙!

     앞으로 솟구치는 풍압.

     가벼운 마력방출과 함께, 독연은 그대로 사생아 암살자의 얼굴을 뒤덮었다.

     부글부글.

     순식간에 끓어오르기 시작하는 피부.

     닿자마자 붉게 벗겨지기 시작하는 걸로 보아, 분명 엄청난 산성을 가진 독이었을 터.

     “다리, 병….”

     “뭐.”

     지팡이를 짚고 있다고 해서 다리가 불편한 게 아니다.

     “너 같은 녀석 속이려고 하는 거란다.”

     나는 움켜쥔 단검을 그대로 앞으로 던졌다.

     푸ㅡ욱.

     “독을 쓴 것보다.”

     암살자의 손등에 단검이 박히고, 그대로 손을 뚫고 들어간 단검이 목까지 꿰뚫어 그대로 박혔다.

     “아스타시아를 넘보려고 한 게 더 죽을죄지.”

     풀썩.

     암살자는 뒤로 쓰러졌다.

     와아아아ㅡㅡㅡㅡ!!

     제국 대로의 퍼레이드장에서, 환호성이 넘쳐흘렀다.

     “아, 젠장.”

     놓치고 말았다.

     “아스타시아가 손을 흔드는 걸 못 봤잖아.”

     푹.

     “…도련님, 그, 지금 엄청 그 뭐냐, 사이코처럼 보이는데 일부러 그러시는 거죠?”

     “……크흠.”

     모든 것은.

     “이미지 만드는 거지. 경, 어떤가? 역시 아스타시아 황녀에 미친 사람처럼 보이지? 응?”

     “여기 시체 중에 도청 장치가 있다거나, 지금 여기 보고 있는 사람 저밖에 없습니다만.”

     “…사람은 언제 어디에서 또 누가 지켜볼지 모르기에 연기를 해야 하는 것뿐일세.”

     연기다.

     * * *

     퍼레이드가 끝난 뒤.

     “집으로 가죠.”

     “피 묻습니다. 진정하세요.”

     “집으로 돌아가요.”

     “여기가 황궁이고, 당신은 황녀입니다. 아스타시아.”

     귀빈용 객실에 차곡차곡 쌓인 암살자의 시신을 보며, 아스타시아는 격분하며 나를 잡아끌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어요! 당장 폐하에게 가서…!”

     “합스베르크 황제에게 이런 걸로 이야기했다가는 코웃음을 칠 것 같은데요.”

     “으읏….” 

     “그럴 사람이 아닙니까. 이 정도 암살 위험은 자신도 충분히 견뎌냈고, 이 정도도 견뎌내지 못한다면 제위에 오르지 못할 것이다.”

     “그거야 그렇기는 하지만….”

     

     합스베르크 황제를 향해 불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다름 아닌 황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합스베르크 황제가 지금까지 황궁에서 아스타시아를 여러 ‘그림자딸’들로부터 보호해 왔고, 그 과정에서 명백히 선을 넘은 이들을 숙청해 왔다.

     즉, 상대적으로 남자들은-사생아 아들들은 덜 죽었다는 이야기.

     “저는 오히려 반갑습니다.”

     “암살자들이 반갑다고요?”

     “예. 아들 자리를 빼앗긴 것에 분개하여 죽이러 오는 이들은 뭐 그렇다 치고, 사실 저도 좀 제거하고 싶은 이들은 미리 제거하고 싶기는 해서.”

     훗날 합스베르크 제국과 전쟁을 할 때, 제국의 선봉에 설 이들이 누가 있겠는가.

     당연히 황제의 눈에 들고 싶어 안달이 날 사생아들이다.

     누군가는 장병이나 장교로, 또 누군가는 장군으로.

     전쟁이 한 달 만에 끝나기는 했지만, 왕국의 여러 귀족 가문이 옥쇄 총공세를 펼치겠다고 했을 때 그들을 무참히 짓밟고 학살한 건 전공을 세워 황제의 신임을 사고자 했던 황제의 사생아들이었다.

     그런 자들을 미리 제거하고자 하는 것도 어느정도 있기는 하지만-

     “저를 죽이면 아스타시아, 당신을 빼앗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던 모양이더군요.”

     “으읏….”

     10명 중 1명이라도 아스타시아를 넘보려는 놈을 죽일 수 있다면, 나는 계속 암살자를 매일매일 받아내며 죽일 것이다.

     설령, 내가 ‘마스터’라는 게 어느정도 들킨다고 하더라도.

     “아니면 황제가 당신을 제게 보내려고 한 것에 열등감을 느끼거나 그런 거죠. 내가 먼저 좋아했는데. 내가 가지려고 했는데.”

     “누가 좋아해준다고 그러나요?”

     “사람 죽이러 오는 인간들이 그런 생각이나 제대로 하겠습니까? 그러니….”

     “그레이.”

     멀리서, 심각한 얼굴의 합스베르크 황제가 나타났다.

     “합스베르크 폐하. 퍼레이드는….”

     “당장 짐을 싸라.”

     “…예?”

     “아스타시아, 너도 오로솔 아카데미로 돌아갈 준비를 하도록.”

     “어, 네…?”

     나와 아스타시아는 진심으로 당황했다.

     “이런 위험한 제국에 그레이, 너를 그대로 둘 수는 없지. 오로솔 아카데미는 이곳보다 훨씬 안전할 것이다.”

     “폐하. 그게.”

     “즉위식을 하는 사이에 아무래도 반역자들의 끄나풀이 멋대로 행동한 모양인데, 이는 결코 나의 의사와는 무관한 일이다. 왜냐하면 어제, 나는 술에 취해 깊은 잠이 들어있었거든.”

     “…….”

     “안전한 장소로 돌아가라. 그리고….”

     합스베르크 황제는 시체를 향해 진심으로 경멸 어린 표정을 지으며, 뒤따라온 기사들에게 손짓하여 시체의 앞을 가렸다.

     “황궁 내부의 청소가 끝나는 대로, 안전한 제국 여행이 될 때. 그때 다시 초대하도록 하지.”

     “…….”

     아무래도.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합스베르크 폐하.”

     황궁 내부에, 대대적인 피바람이 불 것 같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 기념식에 기분좋게 한 잔 하고 꿀잠 잤는데 자고 일어나니 내 최애가 내 아들들에게 살해당할 뻔한 건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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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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